마음을 담는 그릇 A bowl that contains the heart

최자현展 / CHOIJAHYUN / ??? / painting   2015_1111 ▶ 2015_1117

최자현_Reflection-C15053-1-94_나무패널에 유채_20×30cm×94_2015

초대일시 / 2015_1111_수요일_05:00pm

기획 / 갤러리 아트유저 www.facebook.com/artuserkorea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인사아트센터 GANA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관훈동 188번지) 제2전시장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마음을 담는 그릇... ● 30여 년 전 그릇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도대체 그릇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나의 물레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 3년여...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노자의 도덕경에서 "그릇은 찰흙을 빚어 만들되 그 쓰임(본질)은 비임에 있다." 라는 말이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래, 나는 빈 것을 만드는구나! 도예가인 내가 만드는 비움을 위한 그릇과 비교해 볼 때 그림이나 조각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교회나 사찰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마음을 담은 그릇이고 심지어 우리는 사람도 그릇이 크다, 작다 로 비유하지 않는가? 해서 최자현의 그림은 그녀의 마음을 담은 그릇이다.

최자현_Reflection-C15054_나무패널에 유채_73×200cm_2015

요즈음 몇몇 유명화가들이 달 항아리를 비롯한 국보급 도자기를 오브제 삼아 나름대로 그림을 그리는데 이는 역사 속에서 검증되어 있고, 대중의 선호도와 호기심에 기반을 둔 작품이겠으나 항아리의 본질인 비워지는 것에 쓰이기에 너무 부담스런 물건이 되어 버렸다. 이에 반해 최자현은 현재 만들어지고 쓰이는 그릇(차사발)을 그린다. 이는 분명 하나의 작은 실험으로 그녀가 선호도 높은 국보급 도자기를 멀리하고 현재 생산되는 평범한 차사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각 시대의 작품은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한다. 옛말에 "그 시대의 도자기를 통해서 그 시대의 상황을 볼 수 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해서 그녀는 과거의 유산을 뒤로하고 현재 만들어지고 쓰이면서 살아 숨 쉬는 그릇을 그림으로써 동시대의 문화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동시대의 살아있는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최자현 그림은 이러한 것들을 그린 그림이리라 생각된다. (2015. 가을) ■ 변승훈

최자현_Reflection-C15056_나무패널에 유채_150×150cm_2015
최자현_Reflection-C15052_나무패널에 유채_73×128cm_2015

최자현의 부조 회화 ● 일정하게 정해진 평면에 그린 것을 회화라고 부른다. 미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형식은 동양에서는 대략 2천여 년 전부터 그리고 서양에서는 1천여 년 역사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빤한 형식이고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제작하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의 회화를 창출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흔한 양식이며 정해진 평면이라는 표현의 한계를 지닌 탓에 그만큼 어려운 과제다. ● 최자현의 작업은 이런 한계를 넘어서 평면의 유쾌한 반란을 보이는 회화다. 평면에 대한 반란이 새로운 느낌의 회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의 회화에서 평면은 작품 주제의 배경인 동시에 평면 회화의 반란을 가능케 하는 기준 포인트가 된다. 최자현 회화에서 주제이자 소재인 도자기나 과일의 입체감을 살려주는 배경은 추상성을 보여주는 단색조의 평면이다. 회화적으로는 극사실적 묘사와 기하학적 추상의 대비다. 이처럼 상반되는 요소를 정면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작가는 자신이 의도하는 사실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극 사실회화를 추구하는 많은 작가들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 최자현도 이런 방식으로 사실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지점을 자신이 생각하는 사실성으로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 정도로만 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여타의 극사실적 회화와 다른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자현_Reflection-C14045_나무패널에 유채_30×30cm_2014

극사실적 회화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그가 택한 것은 부조 효과와의 결합이다. 배경이 되는 추상적 단색조 평면을 기준점 삼아 반 입체의 양각과 음각을 회화 방식으로 도입한 것이다. 부조와 회화를 믹싱하여 새로운 회화로 창출한 셈이다. 도자기나 과일 혹은 음료수 캔이나 병을 그리는데, 이것들은 모두 양각이나 음각 속에서 묘사되고 있다. 부조 효과를 덧입은 사물들은 그래서 실물의 입체감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하게 된다. 즉물적 사실성을 보여주는 극 사실회화인 것이다. ● 이쯤에서 만족한다면 사실성을 증폭시킨 극 사실회화 수준에 머물 것이다. 부조 방식의 차용으로 서양 사실회화가 꾸준히 추구해온 착시에 의한 환영의 효과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자현의 부조 극 사실회화는 사실성의 추구가 최종 도착지가 아니다. 그러면 그가 즉물적 사실성 통해 정작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최자현_Reflection-c14043_나무패널에 유채_55×33cm_2014

그는 사물의 진짜 모습을 평평한 회화로 구현해보고 싶은 것이다. 더 깊게 따져보자면 사물의 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아무리 잘 그린 사실 회화라도 화면에 나타난 사물은 작가가 바라보는 부분의 모습이다. 이를테면 사과를 그렸다고 치자. 그려진 사과는 한 면만 그림에 나타난다. 뒷면이나 옆면은 그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사과는 온전한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의 모습까지 파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사과를 제대로 아는 셈이다. ● 최자현이 평면 회화를 통해 구현한 것은 사물의 앞 뒤 모습을 동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생각은 최자현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20세기 초 입체파 화가들이 당시의 새로운 미학으로 정립하고 평면 회화로 구현한 방식이다.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이 바로 그런 미학의 성공작으로 서양현대미술사 한 면을 장식해 놓았다. 입체파의 원조는 조르주 브라크였지만 이를 완벽한 조형으로 구현한 이는 피카소였다. 입체파 화가들은 사물의 본 모습을 탐구하기 위해 사물의 전 후 좌 우 상하를 펼친그림으로 분해한 후 이 모든 면이 평면에 모두 보이도록 재구성하는 방식을 창출한 것이다. 그래야만 사물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피카소가 입체파 논리로 그린 인물을 보면 측면에서 본 눈과 정면에서 본 입 그리고 밑에서 본 코를 결합시키고 있다.

최자현_Reflection-C14033_나무패널에 유채_71×114cm_2014

그렇다면 이미 수 십 년 전에 조형 방식으로 확립된 미학을 따라하는 최자현의 회화가 왜 의미가 있을까.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과 최자현의 회화는 어떻게 다를까. 입체파 화가들의 회화는 그들의 미학이나 조형 방식을 모르면 이해하거나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피카소의 입체파풍 그림을 보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추상화라고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 이에 비해 최자현의 회화는 보는 순간 무엇인지 금세 느낄 수 있다. 실물을 보는 생생함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주위를 기울여 바라본다면 음각과 양각으로 묘사된 도자기나 과일이 사물의 앞면과 뒷면 혹은 윗면이나 아랫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뛰어난 묘사력 탓에 우리는 사물의 모든 부분을 평면을 통해 즉물적으로 느끼게 된다. 여기에 서양 회화의 영원한 화두인 환영의 진실에도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 환영주의에 의한 사실의 단계를 넘어서 사물의 진실에 다가서는 새로운 회화이기 때문이다. 결국 최자현의 부조 회화는 서양 회화의 영원한 미학인 환영주의와 현대미술의 새로운 조형원리인 입체파 미학을 결합시켜 새로운 사실 회화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 전준엽

Vol.20151111e | 최자현展 / CHOIJAHYUN / ???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