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flash

이호인展 / LEEHOIN / 李浩仁 / painting   2015_1106 ▶ 2015_1206 / 월요일 휴관

이호인_빛_캔버스에 유채_45.5×38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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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1106_금요일_06:00pm

기획 / 윤민화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케이크갤러리 Cake gallery 서울 중구 황학동 59번지 솔로몬빌딩 6층 www.cakegallery.kr

1. 어둠 ● 이호인은 자주 떠난다. 산으로 혹은 바다로. 왜 산에 오르는지, 떠나서 무엇을 하고 오는 것인지, 툭 하면 떠나곤 하는 그의 보이지 않는 쪽의 삶은 퍽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가 제주도로 일 년 정도 떠나있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의 친구들은 그를 만류했었다. 서울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두고 왜 굳이 고생하러 떠나 있으려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나중에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그가 떠났던 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 '제주에서의 작업 노트'라며 그가 보내준 텍스트에는 종일 창 너머의 바다를 본 일에 대해서 쓰여있다. 그는 창밖의 바다를 '내 바다'라고 칭하고 있었다.1) 그렇게도 원하던 바다를 온통 차지해버린 듯이 그렇게 하염없이 창밖을 보고 또 보았던 모양이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도시의 삶에서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엇나가버리고 마는 부대낌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꾸만 이렇게 자연 속으로 숨어들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함께 아감벤의 어떤 구절에 공감한 적이 있다. 그것은 동시대성을 "시차와 시대착오를 통해 시대에 들러붙음으로써 시대와 맺는 관계"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2) 이호인이라는 사람도 그렇지만, 그의 작품들에 당대성은 어떤 어긋남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감벤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동시대인이란 이 어둠을 볼 줄 아는 자, 펜을 현재의 암흑에 담그며 써내려갈 수 있는 자"라고.3) 따라서 동시대성을 체험하는 자에게 시대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호인_밤바다_종이에 유채_27×39cm_2015

이번 전시『번쩍』의 시간은 밤을 가리킨다. 한낮의 화창한 대자연을 그려내던 지난 작품들과는 달리 이번 전시에서 이호인은 어두운 밤의 시간만을 고집했다. 일상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이 시대와 공생하기 힘들어 자연으로 떠나게 했던 마음속의 거센 저항감이 결국은 밤이라는 시간으로 화폭에 물든 것 같다. 그림으로 그가 느끼는 시차와 당대성을 서술하기 위해 어둠의 시간을 택한 것이다. 특히 도시의 밤 풍경을 그린 작품들에서 이호인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어떻게 직시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검은 경복궁」은 그가 산에 올라 내려다본 광화문 등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 속에서 경복궁은 까만 밤보다도 어둡다.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도로를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잇 불빛 덕분에 겨우 이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한밤의 유적지는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그 역사만큼이나 까맣게 어둡다.4)

이호인_안개낀 저녁_캔버스에 유채_162×227cm_2015

2. 빛 ● 위대한 풍경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것이다. 그리스의 사원들이 매우 자그마한 것은 그것이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 빛과 가없는 풍경으로 인하여 정신이 혼미해진 인간들을 위한 대피소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장 그르니에, 『섬』중에서) ● 이호인이 산으로 혹은 바다로 떠나는 데에는 그곳에 매혹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경계 없음은 곧 혼돈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곳은 혼자 있는 걸 금하기도 한다. 그르니에가 묘사한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 빛'이 방아쇠를 당기게 했던 뫼르소5)를 떠올리게 한다면, '가없는 풍경'은 이호인의 밤 풍경을 상기시킨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밤바다가 그려진 그림들. 그런 작품에서는 한밤에 해변에 앉아서 까만 비단 같은 바다의 매혹에 이끌려 몇 시간이고 넋을 놓고 그것을 감상하고 있었을 화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빛」에는 새까만 밤이 펼쳐져 있다. 파도도 없는 고요한 바다와 달 없이 어두운 하늘은 서로를 잡아먹은 듯 꼭 닮아있다.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어디서부터 하늘인지 알 길이 없다. 밤이 깊어갈수록 가없는 풍경은 심연이 되어 화가의 마음속 가장 깊은 부분까지 까맣게 물들어 버렸을 것이다. ● 그러나 그 매혹으로부터 화가를 구원하는 것이 있다. 밤의 심연을 찢는 빛이 그것이다. 바다로부터 혹은 하늘로부터 빛들이 하나둘씩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새까만 천에 생채기를 내어 그어버린 듯이, 수평선 저쪽에서 이쪽으로 불빛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번쩍! 하고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 어둠이 자라는 곳에서만 비로소 빛이 생기는 것일까.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빛은 더욱더 강렬해진다.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매혹적이며 동시에 죽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영민한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몸을 묶어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감상할 뿐 그것에 동요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호인을 매혹으로부터 구원하는 돛대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다. 그 빛은 오징어들에겐 사이렌의 노랫소리와도 같겠지만, 이호인에게는 혼돈의 바다로부터 도망쳐 나올 수 있는 비상구가 된다. ● 그러니까 어쩌면 이호인은 풍경을 그리러 산과 바다를 떠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의 그림이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풍경을 풍경으로 내버려두지 않는 인공적인 것들- 가령 이번 전시에서는 '빛'-이다. 혼돈이기에 매혹적인, 그래서 위험천만한 자연은 화가가 실천하려는 예술이 아니다. 오히려 그 풍경을 가로지르는 가장 인간적인 흔적들에 있을 것이다. 아니, 흔적이라고 하기엔 풍경 안에 있는 것인지, 그 너머에 있는 것인지 모를 그저 생경한 조합일 따름이다. 「회항」에서의 작은 배, 「516도로의 밤」에서의 자동차 헤드라잇 불빛, 「노란 불빛들」에서 산등성이에 벌어진 틈과 같은 불빛들을 가만히 보라. 참으로 이상하지만, 이상할 것도 없는 풍경이 화가가 포착해내고자 하는 현실이다. ● 자연과 인공적인 흔적이 대치하듯 공존하는 풍경은 무엇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그저 증언한다. 그림에서 포착하려는 것–인공의 빛-으로부터 한적한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의 그림은 시대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가 바라본 것을 증거하기 위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어둠의 시간을 그려낸 것도, 어쩌면 아주 작은 미광까지 포착하기 위해서는 밤이 가장 깊어진 시간이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풍경은 낮과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최고로 어두운 시간이어야만 아무리 가는 빛의 꼬리일지언정 가장 강렬하게 밤을 밝힐 수 있다. 그 빛이야말로, 한낮에는 드러내지 않는 밤의 얼굴을 가늠하도록 하는 것이다. ● 풍경이 아니라 빛을 그리려고 풍경을 깔아둔 것이라면, 이호인의 그림이 갖는 전복의 힘은 인공의 빛에 있을 것이다. 그 빛은 미약할지라도 항상 무거운 그림자를 반드시 동반한다. 삶이란 아무리 찬란히 빛나더라도 발아래에는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새까만 밤이라도, 사람들의 들숨 날숨과 함께하는 빛에는 까만 밤을 덮는 더 짙은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6)

이호인_저쪽의 빛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5

3. 공상7) ● 많은 사람이 회화의 동시대성에 의문을 가진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예술의 정수였던 회화는 이제 그마저도 어떤 예술의 실천적 유용성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시대에 사는 것 같다. 회화에 관한 이같은 논란은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은 사실만을 원하오, 선생. 사실만을!"8)이라고 외치던 그래드그라인드 씨를 떠올리게 만든다. 디킨즈의 유명한 소설『어려운 시절』에서 그래드그라인드 씨는 지독한 공리주의자로 묘사된다. 그의 자식들은 달에서 사람 얼굴을 본 적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와 같은 노래를 배운 적도 없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우리 눈앞에 없는 다른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공상이나 상상 같은 것은 반대해야 하는 것들이다. ● 나는 그래드그라인드 씨라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을 바로 이 '공상'이야말로 이호인의 그림이 요구하는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려 넣은 빛은 번쩍하고 순식간에 우리의 망막 속으로 들어와 버린다. 어떤 이해나 설명의 과정 없이 그저 도달해 버리는 것이다. 제목과 같은 정보를 통해 그 빛이 어떤 빛인지 알게 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고 남겨지는 부분이 있다. 이호인의 그림이 증언하고 있는 것들에는 말로 전달되지 않는 공간들이 툭 툭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 수록 그 공간들을 상상으로 혹은 공상으로 채워 넣게 된다. 화가를 잡아끄는 매혹의 자연과 생경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불빛들 사이의 일들은 그 누구도 영문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공상과 상상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이호인_출항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15

흔히 예술 또한 의미로서 해석되도록 요청받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전시『번쩍』에서 만큼은 그저 빛이 어둠을 뚫고 나의 눈을 사로잡았듯이, 그림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내버려둬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단어 하나마다 고유의 공간을 갖는 시를 읽듯이,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그림을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그림 밖 세상에도 접근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 세계란, 이호인이 그렸듯 암흑처럼 까만 심연과도 같아서 특정한 무엇을 보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공상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이호인의 그림들이 '시차와 시대착오'로 시대와 관계를 갖는 방식일 것이다. ■ 윤민화

* 각주 1) 작업노트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매일 바다를 본다. 도시에서만 살던 나의 회색 창문을 이제 바다가 온통 차지해버렸다.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은 역시나 맑고 먼 푸른 물에 하얀 파랑이 여기저기서 부서지는 바다다. 그러나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그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는 않는다. 작은 배들이 지나다니는 바다를 또한 좋아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항상 배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내 바다를 장식한다. 특히 밤에는 배들의 외로운 불빛이 하늘의 별들 같기도 해서 좋았다. 그러나 해무가 자욱한 날엔 그 무엇도 보여주지 않았고 바람이 불고 비라도 올라치면 시커먼 하늘과 바다가 뒤섞이며 힘을 모아 그 무엇보다 깊고 거대한 벽이 되었다. 그렇게 밤이 오면 상상도 못할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어 전율을 일으켰고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풍랑 소리만이 현계의 감각을 붙들게 한다. 밤의 공포에 무뎌질 즈음 아침은 언제나 그랬듯이 찾아와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혔다. 비가 그치고 해무가 물러가면서 서서히 감춰둔 태양을 꺼낸다. 한 줄 두 줄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에 바다는 점잖게 춤을 추고 그 빛깔을 드러낸다. 마치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 것처럼 세상의 이목은 그 빛이 비추는 곳을 향한다." 2)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우리가 아감벤의 저서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학을 위한 서론』을 읽게 된 것은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각각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언급된 부분에 해당하는 구절을 발췌해본다. "즉, 동시대성이란 거리를 두면서도 들러붙음으로써 자신의 시대와 맺는 독특한 관계이다. 그것은 아주 정확히 시차와 시대착오를 통해 시대에 들러붙음으로써 시대와 맺는 관계이다. 시대와 너무 완전히 일치하는 자들, 모든 점에서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는 자들이 동시대인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까닭에 그런 자들은 시대를 보는 데 이르지 못하고, 시대에 보내는 시선을 고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르조 아감벤, 양창렬 역, 「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학을 위한 서론』, 서울, 도서출판 난장, 2010, 72p. 3) 같은 책, 76p. 4) 요즘 갑자기 불거진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된 이슈가 아니더라도, 이호인의 마음속에 한국의 역사란 이렇게나 어두웠던 것 같다. 그 착잡함이 심연과 같이 새까만 유적지를 그려낸 것이다. 5) 물론 카뮈의『이방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6) 「빛」, 「안개낀 저녁」과 같은 작품에서 화가가 세심하게 그려넣은 빛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7) '공상'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 [명사]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봄. 또는 그런 생각. /'공상'과 디킨즈의 소설과의 관계를 이호인의 회화에 빗대어 이야기하게 된 데에는 마사 누스바움의 글에서 도움을 얻었음을 밝힌다. 마사 누스바움, 박용준 역, 『시적 정의』, 궁리출판, 2013. 8) 찰스 디킨즈, 장남수 역, 『어려운 시절』, (주) 창비, 2015, 11p

Vol.20151107d | 이호인展 / LEEHOIN / 李浩仁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