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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이끼 SPACE IKKI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www.spaceikki.com
압도될 수밖에 없는 여정-너무 실제 같아 실재할 것 같지 않은 '마보로시' ●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생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는 입을 연다. -P- ● 정말이지 너무나도 시끄러워 나는 숨어버린 것이다. 아침이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에 누군가는 벌써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고, 이불을 부여잡고 창으로 들어오는 볕을 간신히 피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라디오 속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에서 성별과 가창력을 판단하고, 아침인지 점심인지 혹은 이른 저녁인지도 모를 식사를 챙기기 위해 식탁에 앉아 한 참 동안 벽을 노려보고 있을 때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누구인지,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왜 지금에서야 굳이 일어나 벽을 노려보고 있는 것인지 생각의 생각을 하고 있다가 문득, 어제의 일이 생각나 그만 머리를 흔들어 버리고, 마치 그러면 어제의 일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 같아 어린아이처럼 그런 주문을 알려 준 엄마의 말이라면 분명하겠지 하고 다시 한 번 세차게 머리를 흔들다 안경이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고 왼쪽 렌즈가 방정맞게 바닥에서 엉덩이를 들썩일 때, 나는 벌떡 일어나 내가 떠나야 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합당한 목적지를 찾고 싶었지만 그 이상으로 생각할 순 없었다. 순간 혼자서 멋진 말을 만들어 내려 했던 내가 멋쩍었다. ● 지갑을 챙겼고, 배낭을 하나 둘러메고 양말을 한 켤레 집어넣다, 속옷도 넣어야 하나 고민하다, 책 한 권을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책꽂이를 서성이다 읽었던 책은 다시 읽고 싶지 않고, 읽지 않고 꽂아 둔 책은 여전히 그냥 그대로 손을 대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래서 그냥 집을 나왔다.
내가 모르는 종착지가 쓰여 진 고속버스를 무작정 골라 타고, 눈을 감았다. 무음의 음악이나 소리가 있다면 그런 것을 골라 이어폰으로 듣고 싶었다. 이어폰을 꽂으면 그대로 세계의 소리와 단절되는 것이다. 그런 소리가 있다면, 그런 음악이 있다면 한껏 볼륨을 높여 온전히 그 음악 하나만으로 내가 집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나는 버스에서 내린다. 여기는 처음이다. 순간 두려움이 앞선다. 어디로 가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작은 시내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막차라는 것을 직감했다. 버스는 마지막으로 구멍가게 앞에 정차했고, 나는 내릴 수밖에 없었다. ● 가게 주인은 마치 예견된 것 마냥 심드렁하게 문을 열어 재끼고는 나를 맞았다. 자리끼를 건네주면서 자고 갈 거쥬? 하고 손가락 5개를 펴들었다. 습관적으로 카드를 빼내려 했지만 오만원 권 한 장을 대신 내밀었다. 주인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커다란 미닫이창을 열더니 방에 팔을 괘고 누워 있는 사내의 엉덩이를 발로 차며 나오라고 했다. 나는 그 방에 들어가 사내가 보던 TV 프로그램을 그대로 조금 보다가 껐다. 잠을 자려고 한 건 아니지만 불을 껐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감았는지 떴는지 눈꺼풀만 알 수 있을 정도의 새까만 어둠이 펼쳐진다. 얼마 안 있어 유리 홑창 가게 문을 통해 어스름히 동이 텄고, 영화 마보로시의 그것처럼 무엇에 홀린 듯 길을 나섰다. 어제는 몰랐던 산이 보였고, 마침 등산화 비슷한 것을 신은 준비성 많은 내가 대견했다. 한 참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구름 속에 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개였다. 안개나무, 안개시내, 구름 바위, 구름 풀잎들이 살갗으로 전해졌다. 땀인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그것들이 목덜미로 흘렀다. 닦을 필요는 없다. 아담한 정자 한 채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와야만 했는지 알 것 만 같았다. ● 그곳을 내려오면서 압도 라는 단어를 꼭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피서라
예천 초간정 ● 우리 자연, 문화유산을 모티브로 시작된 이미지들은 오랜 시간 수집한 옛모습 의 자료를 통하여 디오라마처럼 복원되고 제한된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이미 지나버린 시대를 회상시키는 존재들에게 다시 영혼을 불어넣는 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에 벅차있다. 나라의 역사성을 복원하고 우리민족의 정신속안의 정서와 가치관은 우리나라의 강산 안에서 흘러 나와 우리에게 서서 히 스며들었다. 우리 조상의 삶의 터전, 낯설지만 이내 곧 익숙해질 이미지들은 기존 관념상식을 옹호하거나 때론 배반하며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고 우리의 인식과 관념의 틈새로 스며들어 마치 우리 눈으로 직접 보거나 2차원적 질량이 부재한 몽환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개개인의 사고 한구석에 단단하게 융화되어 자리잡게 된다. ●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작가의 관념 속에서 실재와 가상, 진실과 사기는 경계를 알 수 없이 뒤섞여 버린지 오래다.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사진의 형태이기 에 인식된 물질은 더욱이 사실적 근거를 갖게 되고 종이에 고착된 이미지들의 조합된 파편들은 우리의 관념과 결합하고 어느새 진실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최초의 단편적인 서사인 달력사진2011 전시를 시작으로 작업은 디 오라마적 환상과 관념 그리고 우리자연의 역사적 복원적인 작업으로 발전 한다. 유진 ● 자연, 그대로인 풍수는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대화다. 좌우 옆 산, 뒷산, 앞산, 냇가 등의 위치와 형세 등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해석한 후 의미를 부여했다. 최대한 자연의 조건을 이용, 풍수의 원리를 따라 터를 잡고, 방향을 잡고, 혈을 정해 집이나 마을을 짓는다. 우리나라 지형은 이러한 풍수의 원리를 따르기 좋을 정도로 산과 물이 좋다. 바로 금수강산이다. 이 땅에서 자라고 성장한 우리의 삶, 당연히 남다를 수 밖에 없으리라. 이를 두글자 유진幽眞(고요하고 자연 그대로인)이란 글자로 표현한다. ■ 김병훈
Vol.20151102i | 김병훈展 / KIMBYUNGHOON / 金炳薰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