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 청춘극장

2015 힐링아트랩 프로젝트   2015_1029 ▶ 2015_1107

100초 모바일 청춘영화제 일시 / 2015_1107_토요일_06:00pm~08:00pm 장소 / 필름포럼 관람료 / 전석(90석) 무료

주최,주관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성북예술창작센터 기획,운영 / 복합설치문화공동체 ZIP 후원 / 디아콘협동조합_위즈메타

간담회 2015_1029_목요일_02:00pm~04:00pm

서울시창작공간 성북예술창작센터 SEOUL ART SPACE SEONGBUK 서울 성북구 회기로3길 17(종암동 28-358번지) 스페이스 나눔 Tel. +82.2.3290.9300 www.seoulartspace.or.kr cafe.naver.com/sbartspace

100초 모바일 청춘영화제 2015_1107_토요일_06:00pm~08:00pm

필름포럼 FILMFORUM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 527 B1 Tel. +82.2.363.2537 www.filmforum.kr www.facebook.com/filmforum.kr

"꽃피는 봄, 청춘극장"은 '청춘'이라는 젊은 시절을 이미 지나오신 어르신들과 지금 이 순간 그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는 문화의 장, 다시 말하자면, 까마득히 먼 날에 젊음을 보낸 앞선 세대와 질풍노도와 같은 사춘기를 지나 인생의 첫 걸음마를 떼며 푸르른 젊음을 보내고 있는, 그러나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닌 현 세대들이 각각 그 젊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場)이다. ● 우리는 "100초 모바일 청춘영화제"라는 이름으로 '현재와 과거의 청춘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이루어진 어르신들과 청소년들의 모둠을 만들었고, 그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어 '현재와 과거의 청춘이야기'관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 하였다. 이에 우리는 몇 편의 우수한 시민 공모 작들을 선정, 상연하게 되었다. (상이한 문화의 세계를 살고 있는 두 세대가 힘을 합한 시나리오와 영화 제작을 통한 소통 커뮤니티 프로젝트이다.) 청소년의 방황과 노년의 고립 ●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오늘날, 무한경쟁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은 오히려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절망적인 몸짓으로 방황하고 있으며, 반면에 모진 어려움을 극복하고 힘들게 한국의 고속성장을 만들어내고 이제는 은퇴를 맞은 노인들 또한 젊은 세대들에게서 응분의 배려나 이해를 받지 못한 채 점점 고립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세대의 간극은 너무나 커서 소통 불능인 어르신과 청소년, 이 두 세대는 서로 화합하지 못한 채 각기 서로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빠르게 진화하는 청소년들의 언어는 더 이상 노인세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처럼 되어감으로써 같은 공간에 있되 말이 섞이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서로간의 몰이해와 불통은 결국 청소년의 방황과 노년의 고립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이야기 ● 『관계미학』에서 부리요는 말하고 있다. "더 행복한 내일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현재 이웃과 더불어 가능한 관계를 창출해내는 것이 더 긴급한 일 아닐까?" ● 우리는 10대의 청소년들과 5060년대에 "젊은 날"을 보내며 어르신들의 사회적 가치관을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 것일까?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집단의 교집합인 '젊음'이라는 공통된 주제는 그 연결고리가 되어 청년들에겐 정체성을 견고히 다질 기회가, 노인들에겐 자신의 삶을 돌아봄으로써 고립감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자신의 생각들이 주축이 된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 과정을 통해 자아의 한 부분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 한다. "적어도 진정성 있는 말 걸기를 통해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이해하고 공감할 시간과 공간을 준비하며 모든 것을 공유한다. 그리하여 닫혀있는 사회, 급격히 바뀌는 도시환경과 이기적이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소원해진 이웃 간의 거리와 세대 간 소통의 간극(interstices)을 치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방황하고 어긋나기만 하는 듯이 보이는 청소년들과 자신들이 공들여 만든 사회에서 멀어져만 가는 어르신들이 함께 "청춘극장"을 영화로 공동 제작하여 보는 것이다 . ● 두 세대는 서로 화합하여 각기 서로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소통하며 함께 체험한 담론을 펼쳐낼 것이다. ■ 복합설치문화공동체 ZIP

간담회 ○ 행사일시 : 2015_1029_목요일_02:00~04:00 ○ 장소: 서울문화재단 성북예술창작센터 스페이스 나눔 - 안현숙(작가): "청춘으로~ 청춘이란" - 권희정(인류학): '노년'의 탄생과 '청춘' - 고영직(문학 평론가): " 벽을 문으로 : 서로 손잡기의 원리" - 조현기(필름포럼 프로그래머): " 영화, 청춘을 말하다" - 이혜선(작가): "청춘은 일반인 성인 인터뷰 " / 장종욱(작가) "날개 잃은 청춘"

100초 모바일 청춘영화제 ○ 행사일시 / 2015_1107_토요일_06:00pm ○ 장소: 필름포럼 ○ 관람료 / 전석(90석) 무료 ○ 관람시간 / 06:00pm~08:00pm ○ 상영 - 초청작: 자전거도둑(민용근) - 공모작: 흐르다(특별상연-한상훈), 청춘,이미지검색(이영재), 참아차마(송수진) - 공연: 판소리(류수곤), 하모니카(김선영, 전상윤) - 청춘극장: 서브웨이 미스터리, 청춘의 거리, 평안한 시간   김병선, 김재헌, 김순신, 김태희, 박경희, 박영암, 전성기, 조영민,   조영은, 임만숙, 류수곤, 윤다빈, 장충엽, 지수민, 차애숙   연출부: 안현숙, 김명준, 위성, 지용주, 장종욱, 이혜선   1. 서브웨이 미스터리: 01:30 지하철 노약자석에 남녀청소년이 앉아있다. 앞에 서있는 노인을 아랑곳 하지 않고 화장을 하거나 자신들의 행동에 집중하느라 지하철에서 지켜야할 예절엔 무관심하다. 그런데 결국 어느 순간 그들은 늙은이들이 되어버리고...   2. 청춘의 거리: 05:00 친구들과의 작업이 마음에 안 드는 영민은 잔뜩 화가 난 채 지하철을 탄다.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비어있는 노약자석을 보고 무작정풀썩 몸을 내맡긴다. 한 노인이 그에게 비난을 퍼붓는 것을 보고 지하철 택배 일을 하는 다른 노인이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노인들 보다 더욱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는 뜻의 말로 그를 두둔해 준다. 사실 그 택배노인은 미국에 와 같이 살자는 자녀의 전화를 받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영민은 감사함과 연민으로 택배 물건을 선반에서 내리는 노인을 도와주면서 노인의 여정을 함께 한다. 지하철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던 노인과 영민이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상처에 공감하며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배달을 위해 노인과 함께 시장 곳곳을 걷게 되고 힘들게 일하는 그 곳이야 말로 노인에게는 삶의 애환이 서린 곳이며 청춘을 보내온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3. 평안한 시간: 05:00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치는 무단횡단을 하던 노인을 치일 뻔 한다. 그런데 그 노인이 어머니와 같은 병원의 환자로 입원해 있으며 어머니의 간이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간이식을 거절한다. 그 노인 역시 자신의 죽음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잊고있던 가족을 만나 화해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노인을 따라 다니며 수술 해줄 것을 아치는 간청하며 무조건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나 수술시간은 다가와도 노인은 오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우연히도 같은 요양원에서 노인과 어머니는 각각 죽음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오히려 평안한 시간을 보낸다.

벽을 문으로 : 서로 손잡기의 원리 ● 인도 사상가 비노바 바베(1895-1982)는 "이 세상 최고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삶이란 명상 둘 곱하기, 실천 하나에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삶의 방정식을 제시한다. L=M2A. 다시 말해 삶(L:Life)이란 명상(M:Meditation) 둘 곱하기, 실천(A:Action) 하나라는 것이다. 비노바 바베가 이와 같은 삶의 방정식을 제시하는 이유는 뭘까. 어느 강연에서 비노바 바베가 한 말에서 그 핵심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법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지식이 아닌 사랑이며 진실된 가슴과 행함에서 보여주는 감동이다!" 비노바 바베의 이와 같은 주장은 갈수록 노년 세대와 청(소)년 세대 간에 문화적 분리장벽이 견고히 형성되는 되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관점과 삶의 태도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이 의미를 '우정의 사회학'을 회복하자는 의미라고 간주하련다. ● 19세기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W.블레이크가 쓴 아포리즘 가운데 "새의 보금자리 / 거미의 거미줄 / 사람의 우정"이라는 아포리즘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핵심적 작동 원리를 이 말처럼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사람의 우정으로 작동하는 사회는 저마다 환대(歡待)하는 삶의 실천으로 환대하는 마을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마을 공동체에서는 아이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서로 손-잡기'의 원리가 제일의 가치라는 점을 암묵적 전제로 하는 사회라고 보아야 옳다.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격려와 기대와 지원 외에는 다른 것은 전혀 불필요하다는 점을 자각한 사회를 '품위 있는 사회'(아비샤이 마갈릿, The Decent Society)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아이들은 저마다 생애 최대의 풍경이 되어야 할 유년 시절부터 낙오에 대한 공포와 부자되는 것에 대한 선망의 문화를 먼저 배운다. 아이들은 우정의 가치를 더 이상 믿지 않고, '숫자(돈!)'의 주술을 더 신뢰하며 십대를 보낸다. 저 『어린왕자』의 장탄식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누구랄 것 없이 아이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에서 십대로 사는 괴로움을 호소한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쓴 『10대가 아프다』(2012)에는 학교폭력과 왕따에 시달리는가 하면 극단적 자살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핏빛 절규가 쟁쟁하다. 이런 문제의 원인에 대해 저자들은 "십대 아이들과 사회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고 진단한다. 십대 아이들의 '죽음'이 일상화된 사회를 정상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십대 아이들이 죽음으로 말하는 메시지에 무심한 우리는 '괴물'일지 모른다. ● 십대 아이들을 위한 감동적인 예술교육이 필요하다. 예술교육의 강렬한 경험은 아이들의 인생길을 단수(單數)에서 복수(複數)로 변형시키는 강력한 마음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고2 때 셋째형의 죽음 이후 치른 나 혼자만의 고독한 '홈스쿨링'이었지만, 나는 그때의 대책 없는 책읽기 과정에서 '소유'하는 삶보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삶이 더 멋질 수 있다는 점을 자각했다. 그때의 강렬한 마음의 임팩트는 나 자신이 처한 현재의 삶에 대한 태도는 물론이요, 미래의 꿈을 확고히 하는 마음의 힘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 오늘날 가난과 소외를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제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십대 아이들이 정서적 반응을 선택하고 통제하는 힘을 뜻하는 정서적 자원을 갖출 수 있는 교육과 인간관계는 응당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지지 않도록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어른'과 자주 만나야 한다. 아이들이 그런 어른과 만나고, 놀이와 예술이 어우러진 예술교육에 참여하며 장차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에 참여한 아이들은 어쩌면 누군가는 '나 자신의 노래'(W.휘트먼)를 부르며 사는 삶을 당당히 선택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대물림되는 가난과 상황에 따른 가난에 처한 아이들고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일종의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의 아하!프로세스(aha!Process) 교육운동은 좋은 참조 사례가 된다. 아하!프로세스의 설립자로서 30여년 동안 빈곤층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헌신해온 미국 교육자 루비 페인은 『계층이동의 사다리』(2011)에서 "계층 간에 가장 큰 차이는 '세계'를 정의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계층에 따라 집단 내에 적용되는 암묵적 신호와 관습을 뜻하는 불문율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쉬운 예로 식사 후 가족들이 나누는 핵심 대화 내용을 보면, 각 계층에 따라 "배부르게 먹었니?"(빈곤층), "맛있게 먹었니?"(중산층), "차려진 음식이 보기 좋게 나왔니?"(부유층) 식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계층 간의 불문율을 넘어 빈곤층 아이들이 어른의 목소리를 의미하는 일종의 협상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과 인간관계는 다른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 오늘의 문화예술교육이 교육 자체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내면과 일상은 물론 세상을 바꾸려는 프로젝트로서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소외 지역의 빈곤층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술교육은 아이들 마음의 불문율을 깨고 새로운 정서적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작고한 에세이스트 장영희는 「괜찮아」라는 수필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괜찮아! 괜찮아!"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 이러한 문화예술교육은 결국 사람의 우정을 회복하려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사회통합 프로그램의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저마다 하나의 고유한 '사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경우 자족(自足)적 경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비슷한 기능교육과 체험교육 위주로 짜인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는 현상을 보라. 십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예술교육에 관한 철학적 고민, 교육의 목표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더 요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문화예술교육은 자아도취의 유혹과 매너리즘의 관성 사이에서 길을 잃게 된다. ● 예술 프로젝트 내지는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예술가/예술강사의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과 협력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점 또한 과제이다. 이 문제는 전국 어디랄 것 없이 해당하는 해결과제이다. 예술 프로젝트 내지는 예술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미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을 끄집어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예술가/예술교사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내공과 열정과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습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운영하는 등 자기 진화(進化)를 위한 적극적인 모색을 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런 열정을 위한 진정한 여행 속에서 탄생한 예술강사는 우리 시대 '아픈 십대'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선물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예술가/예술강사를 말의 바른 의미에서 '한 사람의 어른'이라고 부르련다. 그런 어른은 입은 줄이고 귀를 키울 줄 아는 능력을 갖추었다. 십대로 사는 고통을 호소하는 지금 이곳 아이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존재는 바로 그런 능력을 갖춘 한 사람의 어른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 없으리라. 노년의 양식(糧食/良識/樣式)을 위하여한낮에 국수 가는 전철은 한가하다. / 노인은 왜소한 몸으로 7인석 좌석을 다 차지하고 앉아 / 신문을 쌓아놓고 보고 있다. / 한쪽 다리를 좌석 위에 턱 얹어놓고 / 등을 옆으로 기대고 한껏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 편할수록 더 결리는 허리. / 최선을 다해 자세를 고쳐 앉아보지만 / 삶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 허리와 어깨는 10초 동안 평안한 척하다가 다시 못마땅해진다. (김기택,「국수행 전철에서」 1연, '최선을 다해 자세를 고쳐 앉아보지만 / 삶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인용자) ● 노년은 무엇으로 사는가. 김기택의 위 시는 노년기에 경험하는 역할 상실의 문제를 매우 쓸쓸한 언어로 환기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노인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외롭기 때문에 노인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것처럼. 노년기에 경험하는 역할 상실을 대체하는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한다면, 노년의 삶은 너무나 쓸쓸하고 또 쓸쓸할 법하다.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멋진 노년의 '말년의 양식'(late style)을 형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노년일수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는다. ●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며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삶의 문화가 요구된다. 노년의 문화 활동을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활동이론(activity theory)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활동이론은 노인들의 사회적 활동 참여가 높을수록 심리적 만족감과 생활 만족도가 높고, 긍정적인 자아 개념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노년의 '학습'이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노은영은 2015년 3월 『서울도시연구』(제16권 제1호)에 발표한 논문 《노인의 동아리 활동과 삶의 변화에 대한 질적 연구》라는 논문에서 서울 노인복지관 2곳에서 활동하는 남녀 노인 6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를 활동이론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 분석에 따르면, 노인들의 동아리 활동은 다섯 개의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①심신의 건강, ②자존감 및 삶에 대한 의욕 향상, ③다른 여가 활동으로의 연결, ④사회적 교류 확대, ⑤노인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이 그것이다. 문화원이 추진하고 있는 「어르신 문화프로그램」을 비롯해 노년 문화예술교육이 참여자들에게 일종의 '마음의 사다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이다. '인구정책은 타이밍'이라는 말처럼, 노년의 문화예술교육이 양적 확대될 뿐만 아니라 질적 제고되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 정부 차원에서도 변화를 모색하는 줄로 알고 있다. 올해 처음 추진되는 「인생나눔교실」의 경우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문화적 공유지대를 형성하고 소통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노인(어르신) 멘토를 5개 권역별로 선발해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자유학기제 중학생, 군인 등 청(소)년 세대와 만나게 하는 형식과 내용은 더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필요해 보인다. 노인이 보유한 경험을 청(소)년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이 되어서는 절대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생 나눔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리고 학습 참여자들의 '자발성'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만만치 않은 숙제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자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르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노년기일수록 나와 소통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자기교육(self education)으로서의 배움을 중단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움은 지금 당장의 쓸모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쓸모 이상의 가치를 준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 나는 예방적 사회정책 차원에서 노년을 상상하고 정책을 추진할 때, 세 가지 차원에서의 '노년의 양식'이 필요하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2014년 안양문화예술재단과 함께 「노년을 노닐다」 포럼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느낀 경험적 진실이다. 첫째는 먹고사는 문제로서의 양식(糧食)이고, 둘째는 품위 있는 시민들의 교양으로서의 양식(良識)이며, 셋째는 일종의 문화적 스타일(style)을 의미하는 문화형식이고 문화적 문법으로서의 양식(樣式)이 필요하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의 욕망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에 있어서 필요한 세 가지의 양식의 기반이 없고서는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말할 나위 없다. ● 이 세 가지 차원의 양식을 제대로 성찰하고, 적절한 예방적 사회정책을 만들지 못한다면, 노년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시선과 마음의 습관은 여전히 '퇴적 공간'에 쌓인 퇴적물로서 노년의 삶을 보려는 우리 안의 관점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시대 노년의 문화에 관한 새로운 '멋론'의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 볼 때, 두 번째 양식(良識) 측면이 「어르신 문화예술프로그램」을 비롯한 정책사업과 관련되고, 세 번째 양식(樣式)에 관한 담론 형성이 동시에 병행되어야 한다고 나는 보고 있다. ●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네 삶이 분절될 수 없는 것처럼 노년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 또한 '노년들끼리만' 진행한다고 교육효과가 높은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교육 공간 구성의 변화를 상상하고 실행하려는 정책적 관심과 태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전에 있는 커뮤니티센터 「뿌리와새싹」의 경우 노인과 아동이 함께 생활하는 노유(老幼)복합시설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한화그룹의 자회사인 대덕테크노밸리가 신도시를 분양한 후 지은 이 커뮤니티센터는 노인과 아동이 함께 생활하며 나들이를 하고 텃밭을 가꾸는 등 자연스럽게 일상을 교류하고 있다. 내가 직접 확인한 복합문화센터로서는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한 화성나래울의 경우를 꼽을 수 있다. 공부하는 노년은 아름답다 ● 오근재는 『퇴적 공간』(2014)에서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액자 밖 사람들'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액자의 바깥에 내던져진 존재와 같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노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처럼! 노년이 된 그는 같은 세대 노인들이 자주 머무는 서울의 주요 현장들(탑골/종묘공원, 허리우드클래식, 서울노인복지센터 등)을 찾아 일종의 문화기술지적 심층탐사를 한 후에 『퇴적 공간』을 집필했다. ● 오근재는 노인들이 머무는 이런 공간들을 '퇴적 공간'이라고 부른다. 도시의 인위성에 밀리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이 강 하구의 삼각주에 쌓여가는 모래섬처럼 모여든다는 뜻에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더 이상 내다팔 수 없는 잉여인간의 신세가 되어버린 노인들이 하구의 삼각주처럼 퇴적되어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 퇴적 공간에서 노인은 뒤처진 존재 혹은 그저 보이는 대상으로 물성(物性)화될 뿐,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런 사회에서 한 사람의 노인이 된다는 것은 내면화된 수치심(shame)의 문화를 수용해야만 한다. 영어 단어 'shame'이란 단어는 '수치심'이라는 명사이면서 동시에 '창피 주다'는 동사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자신들이 인간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자원(Human Resource)으로 분류되어 살아왔음을, 물성적 교환가치가 소멸되는 순간 시장에서 찌꺼기처럼 폐기되었음을. 그래서 '어르신'들은 누구랄 것 없이 고독하고 쓸쓸하다." ● 어쩌면 노년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척도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연 현상으로서의 노화(老化)보다 사회학적 노화 차원에 대한 우리 인식 자체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 저 그리스 시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역설한 바 있는 형상(eidos, 形象)론은 지금 시대에 와서 재화(財貨)의 획득으로 대체되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노화와 죽음 자체를 긍정하고, 노동과 정의가 제자리를 찾는 사회와 문화의 토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개인의 자존과 자아실현을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 개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노인들을 삶의 현장에서 몰아내고 노인'만'의 공간으로 고립시키는 지금의 노년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가정이나 공동체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집 지붕은 옆집과 이어져 있다"는 점을 회복할 수 있는 문화예술적 매개 과정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 공부하는 노년은 아름답다. 공부하는 노년이 아름다운 이유는 출세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고, 나를 위한 공부이면서 젊은 세대와 대화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뭘 어떻게 배울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선택한 행동들이 지금의 나를 이룬다는 관점은 노년의 교육에서 특히 중요한 것 같다. 이때 앞으로의 인생설계 같은 비전을 제시하고 공유하는 '총론' 식의 교육이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사진이든 춤이든 자서전 쓰기든 간에. 우리는 너무나 자주 '각론 강박증'을 몹시 앓았다. 노년에 배워야 할 진짜 배움은 '나는 나를 어떻게 대했는가?' 같은 큰 질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 존재 자체로 목적 되기를 경험하는 경지가 될 법하다. 우리 사회는 '노인이 되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꼰대' 말고 '꽃대'가 되기 위하여! ■ 고영직

'노년'의 탄생과 '청춘' ● '청춘'을 이야기함에 있어 '노년'을 배제할 수는 없다. '청춘'과 '노년'은 레비스트로스의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과 같은 것으로서 서로 다른 끝에서 차이를 통해 일정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젊음'과 '나이듦'에 대한 신화의 뼈대를 이룬다. 본 발표를 통해 '노년'에 대한 사회학 이론을 우선 살펴본다. 이론은 객관적 학문이고 과학이기 이전에 하나의 신념체계이고 한 사회를 바라보는 틀이며 이념을 구성하는 서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1. 사회노년학을 관통하는 관점들 ● '노인'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사회노년학 이론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미국에서 시작하여 한국 및 전세계적으로 노년 연구의 토대가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러한 이론들은 노년을 '쇠퇴의 시기', '문화적 황무지',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노인사회학은 크게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첫째, 유리이론 (disengagement theory)이다. 이는 노년이 되어 역량감소하고 사회적 활동 공간이 축소하고,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것은 정상적이며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활동이론 (Activity Theory)은 노인의 자기 긍정성을 유지하고 삶에 대한 만족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의 중요성 강조한다. 따라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역할 제공을 위한 여러 처방을 동반한다. 셋째, 하위문화 이론 (subculture theory)은 활동이론과 유사하나 노년기의 성공적 적응을 위해 동년배 집단 참여를 필수적인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하위문화가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넷째, 지속이론 (Continuity Theory)에서 노년기 적응은 개인이 이미 갖추고 있는 안정성의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고 본다. 노년으로의 이행과정에 어떠한 불연속이나 단절도 상정하지 않고 있다. 다섯 째, 사회적 교환이론 (Social Exchange Theory)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에 있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대가를 얻으려 노력함을 골격으로 하고 있는 이 이론은 노인들의 순응적 행동을 별다른 사회적 자원이 없는 노인들의 전략적 행동으로 본다. 2. '노년'의 초상은 '청춘'의 거울 ● 이상 간략히 살펴본 사회노년학 이론들은 모두 노년을 '쇠퇴'의 과정으로 전제한다. 그 중 쇠퇴의 구조가 가장 두렷이 드러나는 것은 나의 듦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사회에서 분리를 수반한다고 보는 유리이론이다. 하지만 나머지 이론들도 노년을 쇠퇴의 시기로 간주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 이론 모두 한때 충일했던 우리의 자존감이 나이가 들며 약화되거나 혹은 위기에 처한다고 보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특히 '활동이론'의 경우 삶이 만족스럽기 위해서는 활동성의 유지가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신체적·생리적 활력이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년의 삶은 점점 더 불만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두 가지 이론을 통합되었을 경우 노년은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싸움에 매달리는 일"이 된다. ● 또한 사회노년학 이론들은 노인들의 '삶의 만족도'와 이것을 측정하는데 과도할 정도로 주목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이렇게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삶의 만족도 측정 대상으로 고정되어 왔던 연령 집단은 '노인'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연령집단들도 간혹 삶의 만족도 측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이외의 다양한 종류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청년들의 경우 학업성취나 일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의 업무 능력이 종종 측정이나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이와 비교해 노년 세대의 삶에 관한 관심은 항상 주관적으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청년에게 주어지는 관심은 그들의 미래의 역량에 관한 것이다. 곧 그들의 삶의 의미는 현재와 미래에 있다. 노인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만족'이외에는 없으며 그들의 삶의 의미는 주로 과거에 있다. 남은 일은 '성공적으로 쇠퇴'하는 일이다. ● 끊임없이 삶의 만족도에 관심을 집중한 결과 노인의 삶 그 자체는 증류되고 최소한의 '본질'만 남긴다. 노인의 삶에 '개인적 만족도'는 최상의 가치를 부여받으며 노인들이 노년의 삶에서 추구하고 모색하는 다른 의미들은 다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노인의 초상은 거울의 반대편에 '청년'에 대한 이미지와 기대 그리고 이념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청년'은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위해 채찍을 가하고, 쓰려져서는 안 되며, 늘 꿈꾸고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서사에 갇혀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1908/최남선) ● 1908년 11월에 창간된 『소년』의 권두시로 발표된 최남선의 작품이다. 이는 신체시로 불리는데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서의 '소년'이 등장한다. 즉 '소년'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농경에서 산업사회로 이동해가는 전환의 시기에 '힘', '희망', '권위'의 이름을 부여 받았다. 1920년 "나는 청년을 외(畏)하노라"(최연택)에서 '청춘'은 희망의 원대함으로 경외하는 대상이 되었고 (동아일보 1920.5.12.), "내 벗 청년에게"(평파)에서는 '가장 활기차고 의욕이 충만한 시기로 규정된다. ● ...그러나 나의 청년을 외함은 하를 위함인가? 청년이란 그 전도가 무궁하야 그 희망이 원대하니 그 전정을 진행하는 도중에 행히 달한 즉 천을 흔하고 지를 진할만한 위인도 될 잇는 동시에 불행히 차질하면 일신도 자영치 못하는 졸렬자 될 수 잇슬세니라. 다시 말하면 일일의 모는 신(晨)에 재하고, 인녕의 기는 춘에 재하고, 일생의 계는 소에 재하니 숙특지우(淑慝智愚)의 분과 귀천영욕의 차가 다 이 소년에 재하니라. 연즉 청년은 오인일생의 흥망의 추(秋)오 영욕의 기(岐)이다. 맹모의 삼천단기가 무유이랴? 개식(蓋寔)을 감(鑑)함인뎌(동아일보 1920.5.12 "나는 청년을 외(畏)하노라", 최연택) ● 벗이여. 내 벗인 청년이여. 그대는 현대에 가장 새로운 청춘. 그 안인가 활기가 가장 충만하고, 의기가 가장 열렬하야 생의 환희를 절실히 늣기는 또 애의 정열이 가장 만흔 그대가안닌가. 그래도 현대를 초월하고 미래를 향하야 굿세게 살으랴는 강자 그대가 안닌가. 적어도 일생을 무의미하게 지내지 안으랴고 항상 번민하고 고통하는 오뇌자 그대가 안인가 벗이여 나는 나는 아노라 그대의 지에 대한 애와 욕구가 얼마나 크고 또 만흔지를 또 그러고 그대는 항상 무엇을 보고저 듯고저 알고저 부단히 애스고 힘쓰는 줄도. 아 벗이여 나로 하여금 이러한 말하기를 괘히 용서하라. 그는 별로히 새말도 아니나마나는 그대의 듯지못하는 무엇을 들어도 또 그대의 보지 못하는 무엇을 보아도 그러나 그러나 그를 다 말 못하며 다 전치 못함을 오직 서러하노라 구태여 말하지 안아도 그대의 아는 바이지만 불행의 무거운 짐지고 나감이 그가 우리의 운영이라 하면 그를 장엄히 할 것. 오직 우리의 노력그안인가. (동아일보 1920.5.9. "내 벗 청년에게" 평파) ● 사회이론은 이러한 사회적 서사들을 모아 만든 뼈대이며 일종의 담론이다. 그리고 '청춘'과 '노년'은 사회적 서사와 담론에 갇혀있다. 이항대립의 구도 속에 갇혀 있는 '청춘'과 '노년'을 꺼내어 날 것인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의 경험과 욕망을 드러내는 일은 중요하다. 그곳에서 바로 청년과 노년의 자기 정체성이 구성되며 현실과 사회적 담론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정진웅(2006) "노년의 문화인류학", 한울아카데미) ■ 권희정

필름포럼 찾아오시는길 ○ 지하철 - 2호선 – 이대역 4번 출구 7017번, 751번 타고 5번째 이대부중에서 하차 - 3호선 – 경복궁역 1번 출구 272번, 606번 타고 이대부중 하차 - 5호선 – 광화문역 2번 출구 606번 타고 이대부중 하차 ○ 버스 - 이대후문(종로에서 올 때) - 470, 601, 672, 710, 750A, 750B, 6714, 7737 등   (이 외 정류장에 표시된 모든 버스) - 이대부중(종로에서 올 때) – 272, 606, 673, 751, 7024, 567 ○ 자가용 이용 시 - 하늬솔 빌딩 지하주차장 이용 시 2시간까지 무료. 이 후 10분당 500원 부과

Vol.20151029j | 꽃피는 봄, 청춘극장-2015 힐링아트랩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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