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결에 대한 단상

안태희展 / AHNTAEHEE / ??? / painting   2015_1028 ▶ 2015_1103

안태희_forest 1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13

초대일시 / 2015_1028_수요일

석사학위 청구展

관람시간 / 10:30am~06:30pm

세움 아트스페이스 SEUM 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소격동 73번지) Tel. +82.2.733.1943 www.seumartspace.com

집안의 가구, 거실 바닥, 카페의 의자, 테이블… 모든 것에서 보여지는 나뭇결무늬, 그것은 나에게 실제 자연의 나무보다 더 익숙한 모습으로 그렇게 자연의 모습을 말한다. 이런 익숙함은 때로는 인간에게 가림막이 되어 관찰의 힘을 저하(低下)시키고 현상의 분별(分別)을 흐린다. 그렇기에 인간은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익숙한 것을 다시 한 번 포착하는 것으로 지금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 실제 나무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거칠고 쩍쩍 갈라진 나무껍질, 흙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 '나무' 그대로의 모습이다. 허나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무는 매끄럽게 절단된 상태로 나무속살을 다 드러내놓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나뭇결무늬는 이제 익숙함과 편안함을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나무 그 자체를 상징하는 미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실제 자연 그대로의 나무에서 가공된 나무로, 거기서 더 나아가 나무가 아닌 나뭇결무늬의 시트지가 나무의 상징을 갖는다. 그런 시트지로 포장 되어있는 사물들, 그것은 이미 자연 상태의 나무와는 다른 물질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나무를 상징한다. 이는 이미 무늬목에 익숙한 사람들은 작품 속에서 실존할 수 없는 나뭇결무늬 숲을 익숙한 숲으로 의구심 없이 인식하는 것을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나무에 대한 이미지로 만들어진 시트지는 작품 속에서 나무, 숲, 산으로 표현되며 자연의 형상을 입는다. 현실에서의 시트지는 사물을 포장하여 가공된 나무의 모습으로 존재하던 것처럼 작품 속에서 그것은 자연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현실에서나 작품 속에서나 그것은 허구인 셈이다. 나무가 아닌 것을 나무처럼 보이기 위해 사용되었던 시트지가 나무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이유는 나뭇결무늬의 미적인 요소와 나무를 좋아하는 인간의 심성에 호소하기 위함이다.

안태희_forest 2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13
안태희_forest 3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15
안태희_꿈꾸다.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15
안태희_美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5

그런데 정말 나뭇결무늬를 미적 요소로 볼 수 있는 것 인가? 나무의 입장에서 본다면 푸른 잎사귀를 드리우고 단단한 껍질을 지닌 나무가 아름다울 터, 그들의 살과 뼈인 나뭇결무늬가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끔찍한 공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공된 나무의 모습에 익숙한 인간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작품은 본래의 우리가 향유하는 나무의 아름다움이 실존하는 나무의 그것과 같은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 보드라운 피부, 눈동자, 근육을 따라 드러나는 곡선과 같은 요소들 때문이지 그 속에 둘둘 말려들어있는 대장이나 배설물에서 비롯된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나무에서 미적 요소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방식을 인간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인간의 아름다움은 근육과 내장, 그 속의 배설물 속에서 발견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들을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개념들은 작품 속에서 인간의 근육모양을 따라 나뭇결무늬를 이용하여 훼손된 나무의 형태를 피부가 벗겨진(훼손된) 인간의 모습으로 조금은 괴기스럽게 표현하고 눈동자에 맺힌 상은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이미지를 넣어 그동안 바라보던 나뭇결무늬의 모순된 이미지를 전달한다. 나무가 아닌 나뭇결무늬 시트지에 인간을 대입시켜, 나뭇결무늬가 아름다운지에 대한 진정성을 이야기 하려고 했다. ● 무늬목 시트지를 관찰하면서 사물의 본질과 인간이 창조한 미적 요소간의 모순을 포착하였으며 그것을 표현했다. 작품을 하면서 무엇을 미적 요소로 볼 것인가는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작가에게 중요한 핵심이다. 그렇기에 이미 익숙하고 당연시 여겨지는 미적 요소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는 것은 작가에게 필연적인 과정이다. 나아가 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통찰하여 자신만의 시선을 갖는 것이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갖는 자세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 안태희

Vol.20151028d | 안태희展 / AHNTAEHEE / ???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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