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양도성 프로젝트 원

배정완_심철웅_이예승_한성필展   2015_1008 ▶ 2015_1129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로 134(성북동 246번지) Tel. +82.2.6925.5011 sma.sbculture.or.kr

다시, 도성에서 꿈꾸다. ● 옛 도시의 공간을 오롯이 품은 채 600년의 세월을 이어온 한양도성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자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근대 일제강점기, 6.25 전쟁 그리고 급속한 현대도시의 성장 과정을 거치며 여러 층위의 역사와 시간들이 중첩된 채 오늘날의 도시 공간 속에 존재한다. 또한, 그 공간 속에서 시대를 함께했던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들은 도시를 둘러싼 도성의 성벽과 문을 통해 현재 우리의 일상 속으로 전달된다. 한양도성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도시이자 건축물로서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사람과 역사, 자연의 공존과 순환을 통해 그 생명력을 지속해 오고 있다. ●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공간이 축적된 장소(place)에 대한 공간적 사유를 통해 그 곳에 다층적으로 내재된 가치와 의미를 탐구해 나가는 것이다. 한양도성이 품고 있는 수많은 기억과 흔적들은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산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지금, 여기'에 상응하는 새로운 가치와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2015 한양도성 프로젝트 「원」에서는 한양도성이 지닌 장소성과 시대적 의미 속에서 개인적 혹은 사회적 담론들을 형성하고, 이를 다양한 현대미술의 언어와 형식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배정완, 심철웅, 이예승, 한성필 4인의 작가들은 한양도성이 지닌 역사성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적 조형의 대상으로서 한양도성을 바라본다. ● 이번 전시의 제목 '원'은 문자가 지닌 중의적 의미와 음을 빌려 한양도성에 함의된 다양한 가치와 맥락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원'은 문자 그대로 둥글게 그려진 원(circle)을 의미하며, 시작과 끝이 이어진 한양도성의 표면적인 형태를 은유한다. 원(元)은 현존하는 세계의 수도 성곽 유산 중 규모가 가장 큰 도성으로서 한양도성이 지닌 독특성과 차별성 그리고 유일성을 나타낸다. 또한, 인간과 천지만물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우주를 형상화한 원(○)은 생성과 소멸, 변화의 과정을 반복해온 한양도성의 유기성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양도성에 대한 예술가들의 인식 체계와 공간적 사유가 구현된 각 작가들의 작품을 4가지 '원'의 개념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배정완_Comfortably numb_아크릴판, LED, 스테인리스 스틸_가변설치_2015

원_둥글다 ● 건축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배정완의 작품은 주로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설치 작업을 통해 공간을 해체하고 연결한다. 그는 주로 빛과 그림자, 움직임과 소리(음악), 시간을 통해 고정되고 단일화된 공간이 아닌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변화되는 공간을 창조한다. 입체 구조물을 통해 다각적으로 분절된 공간 속에 투영된 영상은 소리와 빛이 아우르는 공간 사이사이로 반사되고 충돌하며, 분산된다. 그가 창조한 시공간 속에서 우리들은 무의식의 심연에 존재하던 특정한 기억과 감정들을 환기한다. 이번 전시에서 배정완은 '한양도성'이라는 주제와 전시 공간을 고려하여 최초의 오브제 작업을 시도한다. 평소 거대한 공간 속에 펼쳐진 작품 속 요소들을 응축하여 만든 작품 「comfortably numb」(2015)은 그의 공간 작업에 대한 예술적 사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한양도성 형태와 건축 구조를 차용하여 집단적으로 공유된 사회적 인식과 관점을 담고자 한다. 둥글다 원(圓)은 사람을 나타내는 '員(인원 원)'이 '口'로 둘러싼 모양을 하고 있다. 원(圓)의 형태와 같이 4개의 산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연결된 한양도성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한 유기적인 성벽이자 도시이다. 그는 도성의 모양을 단순화하여 층층이 쌓은 아크릴 박스와 그 구조 속에 사람의 형상을 아로새겨 넣음으로써 인간과 공간(장소)의 상호관계에 존재하는 양면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작가는 왕과 국가, 관료주의적 질서를 함축한 도성의 형태와 구조를 차용하여 권력의 이데올로기의 의해 지배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상징하고 사회가 조장한 틀에 갇혀 현실의 본질을 잃어버린 –삶의 의식이 마비된- 우리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심철웅_Two Rings of Wall_HD 비디오 스틸_2014

원_ 원하다. 빌다. 기원하다. ● 심철웅의 작업은 장소성과 시대성을 포함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담론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한다. 특히, 비균질적으로 연결된 화면과 틀어진 앵글을 통해 구성된 그의 미디어 작품은 새롭게 구조화된 시선을 통해 의도적으로 편집된 공간과 장소를 제시한다. 또한, 작가는 삶의 본질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일상에서 잊혀진 공간들을 찾아내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속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와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전시에 출품된 심철웅의 작품들은 19세기 말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고 변형된 특정장소와 공간들의 변모과정을 역사적 사료와 이미지, 텍스트 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명명없는 성벽」(2013)은 대한제국 이후 서울의 특정 장소와 풍경들을 과거-현재로 이어지는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 작품이다. 「두 개의 성벽 원」(2014)은 구글맵에서 기호화된 현재 서울의 풍경과 일제 시대에 제작된 군사지도의 공간들을 한 영상 안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중첩된 이중 공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사라진 지정학」(2015)은 중일 전쟁의 야욕은 담은 일제에 의해 제작된 지도로서 지도 위에 표기된 철도의 위치를 따라 이동하는 공간의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앞의 두 영상은 각기 다른 시대의 지도를 기반으로 장소의 역사적, 정치적 측면을 시각화하여 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두 개의 성벽 사이의 아비스」(2013)는 다른 장소에 위치한 두 개의 성벽이 한 영상 공간 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공존한다. 성벽 사이를 가르며 화면 중앙에 나타나는 하얀 여백의 공간은 특정 장소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역사적 의식의 부재를 상징한다.

이예승_Arc 314_모터 센서, 라이트 프로세싱, 일상 오브제_가변설치_2015

원_ 집, 정원 ● 이예승은 빛과 그림자, 소리를 통해 일정 공간에 시각적 환영과 불특정한 표상들을 제시하는 작가이다. 가림막 뒤 공간에 고철, 식물, 잡다한 물건과 같은 오브제들이 배치되어 안 쪽 공간에서 투사한 빛에 의해 발생하는 오브제의 그림자나 영상을 통해 공간을 채운다. 회전하는 빛이 사물에 닿는 순간에만 머물렀다 사라지는 그림자와 이미지들은 묘한 사운드와 함께 관객들을 시각과 청각이 혼재한 환영의 공간 속으로 이끈다. 이번 전시에서 이예승은 한양도성의 건축 구조로 이분화된 공간을 상징적으로 은유한 원형 작업을 선보인다. 한양도성은 성벽을 중심으로 안팎의 생활 공간을 구분하였으며, 도성의 안 쪽 공간은 당시 사람들의 집이자, 정원이자, 삶이자, 꿈이었다(院).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에 의하면 집은 인간에게 안정의 근거나 또는 그 환상을 주는 이미지들의 집적체로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집의 실재를 상상하고 되상상한다고 하였다. 이예승 작가는 이번 신작을 통해 바깥 쪽 즉, 외부에서 꿈꾸고 상상했던 내부공간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공간과 공간의 상징이 지닌 양면성과 허구성을 표출하고자 한다. 그 동안 오브제의 그림자만 투영했던 가림막을 신작에서는 안 쪽이 보이는 레이스 재질로 변경하여 내부의 실체와 그림자를 동시에 외부 공간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경계나 규칙 없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실내의 오브제들(건물이나 집의 내부에 숨겨져 있던 배관, 벽돌, CCTV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집과 삶의 실체이자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의 본 모습이라고 말한다.

한성필_Overlapped in time_크로모제닉 프린트_122×167cm_2005~9

원_ 근원, 기원 ● 한성필은 건물의 임시방편 구조물로 씌워진 '가림막'을 이용한 가상의 파사드(Façade, 건물의 정면) 프로젝트 작업을 통해 일상의 공간이나 도시 속에 새로운 가상의 공간을 만든다. 실재하는 건축물의 정면이나 벽에 상상의 풍경들을 덧씌우고 이를 사진 작업으로 재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건축물과 그것이 존재하는 공간들을 낯설게 보이게 한다. 그 작업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지만 결국 사라지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대체하여 또 다른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파사드 프로젝트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중첩시키고 사진 속 이미지에 시각적 현실성을 새롭게 부여한다. 한성필은 가상과 실제, 과거와 현재의 간극에 대한 질문을 화두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한양도성과 문의 이미지들은 파사드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재현된 실재와 가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도성의 원형은 14세기 말 축조되어 600백 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건과 훼손, 복원을 과정을 거치며 끝없이 변모되고 있으며, 태초의 도성과 복원된(혹은 복구된)도성이 공존하는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이 조우한다. 작가는 남대문과 동대문 또는 철거 중인 건축물과 같은 특정한 장소에 내재한 사회, 역사적 의미를 기반으로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 혹은 비현실적인 가상의 공간을 창조함으로써 장소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시도한다. 한편,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인 한양도성의 풍경과 성북구립미술관의 건물을 합성한 영상작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시공간의 풍경을 역동적이고 극적인 화면으로 구성하여 정적인 사진 작업과 대비되는 강렬한 영상미를 전달한다. 사진과 영상을 아우르는 한성필의 작품은 동시대에 존재하는 역사와 예술, 자연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 한양도성은 서로 다른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을 간직한 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쉰다. 사람들의 삶과 시대상이 투영된 도성의 공간들은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도시의 일상풍경으로 함께 존재한다. 2015 한양도성 프로젝트 「원」은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한양도성을 현재 삶의 방식과 미적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예술가들은 각자의 인식세계와 상상력을 통해 도성의 공간들을 채우고 색을 덧입힌다. 도성의 곳곳에 퇴적된 시간의 층위와 공간들은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예술적 아우라가 펼쳐진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그 영역이 확장된다. 그 곳에서 우리는 한양도성에 내재한 아름다움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600년 전 조선왕조 최대의 프로젝트였던 한양도성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성북구립미술관의 공간에서 다시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 김경민

Vol.20151025k | 2015 한양도성 프로젝트-원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