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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월요일_12:00pm~06:00pm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 7길 37(팔판동 115-52번지) B1 Tel. +82.2.737.4678 www.gallerydos.com
"그림은 의미를 나타내는 평면이다." (빌렘 플루서) ● E. H. CARR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역사란 고정되어 있는 영원불멸의 그 무엇이 아니라, 여러가지 시대적・사회적 요구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어질 수 있는 가변적인 그 무엇이라는 의미로 읽혀진다. 다만 여기에서 가변적이라 함은 '역사'라는 이름의 집단적 기억을 재조직하는 것은 '해석'의 차원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지, '사실'을 조작해도 된다는 의미의 가변성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기록된 '기억'을 재조직 하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과거와 대화하고 있는가? 나아가 현재의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 을 어떠한 방식으로 기록해 나가고 있는가? 또한 현재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는 현실은 얼마나 실제에 가까운가? 인류의 역사는 그들이 경험한 혹은 경험하고 있는 세계의 실제를 추상하여 기록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새롭게 개발해 나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를 기록하는 방식이 변화한다는 것은 곧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고의 방식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물론 현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록되는 순간 곧 가상이 되어 버리고 마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더 나아가 플라톤은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 자체가 감각에 비친 가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현실을 추상하여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기록을 남겨온 것 만은 분명하며, 당대의 시대적・사회적 요구에 따라 기록된 기억을 재조직하며 역사를 만들어 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빌렌도르프인들은 그들의 실제를 추상하여 입체의 조각으로 기록을 남겼다. 라스코인들은 그들의 동굴에 그들의 실제를 추상하여 평면의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선형문자가 만들어 진 이후 인류는 그들의 실제를 추상하여 선을 횡으로 배열하는 방식의 텍스트로 기록을 남겼다. 시・공간을 포함하는 4차원의 현실을 3차원의 입체로, 다시 2차원의 평면으로, 다시 1차원의 선으로 추상화해 기록해 온 것이다. 이른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나 기억해야 할 그 무엇이 생기면, 스마트폰의 화면에 있는 비물질의 가상의 자판을 두드려 메모하고, 스마트폰의 비물질의 가상의 버튼을 눌러 사진을 촬영하며 동시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가상의 공간에서 전 세계인들과 공유한다.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처럼 손바닥 안에서 자유롭게 가능해 진 것은 길게 잡아도 불과 십여년 전 부터의 일이나, 마치 아주 오랜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디지털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우리의 일상 속으로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 디지털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0'과 '1'의 숫자가 만들어 내는 점의 세계이다. 인류는 그들이 직면한 '실제'를 3차원 입체로 시작해 2차원 평면을 거쳐 1차원 선으로 한단계씩 복잡한 추상화의 과정을 거쳐 기록하는 긴 터널을 지나 왔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우리의 손안으로 들어 오면서 현재의 모든 개인은 비물질의 가상의 종이와 펜, 그리고 카메라를 항상 휴대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오늘날 인류는 '0'과 '1'의 연산으로 이루어진 0차원의 점으로 더욱 더 추상화된 '실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디지털로 기록하는 현실의 세계가 점점 더 선명하고 사실적일수록, 사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기계적 과정을 통해 빌렌도로프인의 조각이나 라스코인들의 벽화보다도 더 추상화된 현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이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손에 쥔 펜으로 종이의 표면에 물리적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의 글쓰기 행위는 비물질의 가상의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로 대체되었고, 캔버스나 종이위에 붓으로 물리적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의 그림 그리기 행위는 '0'과 '1'이라는 숫자의 연산을 통해 더욱 더 복잡한 추상화의 기술적 과정을 거친 다음 가상의 평면위에 점으로 시각화 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 근래까지 대부분의 정보의 습득은 선으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횡으로 읽어 나가며 맥락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상상할 수 없는 분량의 정보와 카메라가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면서 부터 인류가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정보의 습득 방식이 바뀐다는 것은 정보를 기록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더 이상 인류는 대부분의 정보를 인쇄된 활자를 통해 습득하지 않을 뿐더러, 더이상 종이나 캔버스위에 펜이나 붓으로 물리적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우리의 실제를 기록하지도 않는다. 문자 이전 그림의 시대와 문자 이후 텍스트의 시대가 저물고, 마침내 새로운 그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작가는 본 전시를 통해 현재의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기억'을 문자 이전 마술적 그림이나 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텍스트가 아닌, '0'과 '1'의 연산을 통한 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한단계 더 복잡한 추상화의 과정을 거친 기술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해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오늘날의 방식으로 과거와 대화를 시도하는 작업이다. ● 작가는 현재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기억'의 기록들 중 디지털 이미지로 기록된 자료들만 모아, 가상의 공간에서 이음새없이 꼴라쥬한다. 이러한 과정은 전적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방식의 행위로 진행된다. 기존의 아날로그적 방식의 이음새가 보여지는 꼴라쥬와는 다른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든 가상의 이미지는 '0'과 '1'의 연산으로 만들어진 점으로 구성된 이미지이다. 이러한 가상의 점들은 모여서 가상의 선을 구성하고, 이러한 가상의 선들은 모여서 가상의 색을 구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게 가상의 공간에서 이음새 없이 꼴라쥬된 우리의 공적인 기억은 다시 여러번 중첩해서 출력하는 과정을 거쳐 물성을 획득하고, 0차원 점의 세계에서 2차원 평면의 세계로 환원된다.
'색채는 자연을 재현할 수 있는 능력 외에 그것을 상징할 수도 있다'는 오래된 명제를 신뢰한다면, 그것은 곧 '그림은 의미를 나타내는 평면이다' 라는 명제에 도달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명제를 근거로 가상의 점들로 이루어진 색채를 이용해 우리의 '기억'을 텍스트가 아닌 해독 불가능한 피상적 이미지로 대체해 기록할 수 있다는 명제에 도달하고자 한다. ● 이미 세상은 우리의 손바닥 안에서 해독 불가능한 피상적 이미지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과거와 대화하며 우리의 '실제'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 송영후
Vol.20151022d | 송영후展 / SONGYOUNGHOO / 宋營厚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