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와의 대화 / 2015_1028_수요일_03:00pm
참여작가 1부_신영상_김호득_리이훙_리마오청 2부_김희영_임현락_정용국_양스즈_황보하오
후원 / 대만 RedGold Fine Art 협찬 / 주한타이페이대표부
관람료 / 일반_3,000원 / 어린이,청소년,단체_2,000원 *관악구, 동작구 청소년 단체는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 공휴일 휴관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MoA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1 Tel. +82.2.880.9504 www.snumoa.org
대만의 대표적인 수묵화가들과 한국의 주요 수묵화가들과의 교류전을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은 각별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한국과 대만의 미술교류는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반적인 대만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던 외에는 갤러리나 작가 개인의 차원에서의 간헐적 전시교류 정도로 유지되어 왔다. 어쩌면 대만은 '국가 정체성', '고유문화'라는 후기식민주의적 문제에 대해 1945년 일본에서 독립한 후 6.25를 겪으며 쏟아져 들어오는 서구의 영향력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한국보다도 더 혼란스러움을 실감한 지역일 수 있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었으면서도 그 시절의 문화적 잔재를 단지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유산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정치적 이상을 달리하던 과거 중국과는 문화나 언어적으로 가까운 만큼 한층 더 날카로운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다. 수묵화를 주된 매체로 작업하는 양국 작가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구미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전위적 현대미술사 속에 수묵 작업들이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현재진행형의 고민거리와 함께 정통성이나 국수주의라는 오래된 과제를 동시에 제공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수묵화가들의 작품의 상징적 차원에는 그 예술성뿐 아니라 은연중에 사회, 정치, 역사적 의사가 투영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국내작가들의 경우 일본적 경향의 차단과 서구현대미술의 흐름, 그리고 우리의 전통으로 부를 만한 요소의 확인이 해방 후 급속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인식되었으며, 이에 따라 하나의 방향성으로서 수묵의 추상화로의 진행이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전시에 모인 국내 작가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구체적 이미지 보다는 추상적 형상이 화면을 채우며, 이 작가들에게 이미지의 구체성이나 서술성에 의지하려는 의도는 (우연히, 얼핏, ~ 같아 보이는 효과를 순수하게 받아들인 것 외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의 화면에서는 먹이 붓을 통해 화면에 어떻게 닿았다가 또 다시 떨어지는가 라는 필법과 관계된 관심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그 결과 남겨진 형상은 때로는 지극히 섬세한 농담의 차이를 음미하게 하고, 바늘같이 가는 선 하나 하나가 신경질적인 화면의 균형을 만들어 내는 시각효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간이나 정신성, 감정 등의 조형 외적 요인을 반영한 결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커다란 맥락에서는 백양회(白陽會)나 묵림회(墨林會) 등의 해방 후 국내 수묵화단의 중요한 움직임이 출품 작가들의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이던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전위성'이라는 서구현대미술의 신화에 대한 잠재적 반응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 전시에 참여한 대만작가들의 경우 정통 중국화에 대한 의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주제로서의 자연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 획의 먹선은 폭포의 무자비한 물세이자 수목의 여린 줄기이면서 동시에 필획의 기억을 간직하며 화면 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내레이터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돌, 암벽, 산세의 표현에는 대륙적 성향에 대한 일말의 향수나 일본 채색화의 화려함에 대한 관심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현대적인 조형 감각이 돋보인다. 먹으로 그려진 부분뿐 아니라 이들의 화면에서 비추는 흰색의 여백은 모래밭이나 물거품, 바람이나 빛의 존재를 상기시키면서도, 동시에 항상 흰색 종이의 표면이라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듯, 순간적으로 공간과 환영 그리고 공기의 흐름을 차단하는 묵묵부답의 평면성의 공존을 감지하게 한다. 종이 위 공간과 거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축지법과 같은 화면 효과를 통해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고민이라는 매우 현대적인 회화사 상에서의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거시와 미시』라는 본 전시의 테마는 이처럼 고유하면서도 동질적인 역사, 사회적 배경을 갖는 양국 작가들의 작품의 역동적인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작품 속 선, 면, 여백 등의 기본적인 단위의 조형 요소들 속에 화면의 크기를 아득히 벗어나는 역사, 민족, 국가라는 보다 거시적인 사상적 배경이 함축되어있을 수 있다. 이들의 한 획, 한 획은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이면서 동시에 그 속에 전통적 필획에 대한 의식에서부터 이를 통해 표현 가능한 세계 및 우주관 까지도 내포한 단위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대한 자연을 품은 듯한 거대한 화면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작가의 반복되는 움직임을 먹의 농담이라는 순수한 조형성으로 환원하여 끝없이 '무'의 상태에 가까운 비움으로 다가가려는 손짓의 기록일 수도 있다. 이처럼 다각도의 크고 작은 시선들이 엇갈려 균형과 긴장감을 자아내는 순간이 이들의 수묵화를 감상하는 묘미라 할 것이다. ■ 정신영
Vol.20151019j | 거시巨視와 미시微視: 한국∙대만 수묵화의 현상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