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TFORM b.

2015_1012 ▶ 2015_1108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마도예술공간 AMADO ART SPACE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31번지 Tel. +82.2.790.1178 amadoart.org

본 전시는 동시대 예술의 공유와 전달을 위한 가장 유효한 플랫폼 중 하나로서 기능하는 '책'으로부터 시작한다. 예술의 가장 효과적인 공유와 전달을 위한 방법론/ 플랫폼에 대한 고민은 일반적으로 가장 주요한 플랫폼으로 인식되는 전시와 그것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될 수 있는 주변적인 여러 플랫폼의 내용적 보완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예술의 속성인 은유적이거나 우회적인 시각언어에서 생겨나는 소통의 간극을 줄이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전시를 중심으로 한 각 플랫폼 간 위계적 구조를 지니게 되거나, 혹은 형식적 구색을 갖추기 위한 의무로 전락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PLATFORM b.』는 전시를 위시한 이러한 형식적 위계로부터 탈피하여, 보조적 플랫폼, 그중에서도 전시의 외형을 이루는 가장 주요한 요소 중 하나인 '책'을 주도적인 플랫폼으로써 이해하고, 넓은 의미의 예술창작행위의 범주(작가들의 작품활동부터 큐레이팅의 영역까지) 내에서 그것이 가진 매체적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희킴_Don't cry baby_ 기부 받은 책 페이지에 과슈, 연필, 잉크, 스티커, 콜라주, 바느질_가변크기_2014~15

전시의 타이틀인 『PLATFORM b.』는 동시대 예술행위의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주요한 플랫폼으로 인식되어온 '전시'를 중심으로 파생되어온 또 다른 하나의 플랫폼인 '책'(도록 등 책의 형식을 취한 것 일반)의 영문 첫 글자인 'b'를 의미한다. 동시에 주(主)가 아닌 부(附)로서 전시에 종속된 채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보조재로 사용되어왔다는 의미에서, 예술전달과 공유를 위한 플랫폼으로써의 자격에서 첫째가 아닌 둘째를 은유하는 'b'이기도 하다. 『PLATFORM b.』는 전시를 중심으로 보조물-주변부로 존재하던 책의 지위로부터 벗어나, 책을 중심으로 그것이 동시대 예술창작의 행위로써 고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객체의 지위를 초월하여 주체로서의 책이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본 전시는, 전시를 중심으로 한 위계와 서열화를 도치시켜 책이라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시의 안과 밖, 과정과 결과로써 그것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개입하는 지점을 바라보고자 한다. 본 전시에 작가로서 참여하는 큐레이터, 작가, 그리고 디자이너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대표적인 포지션으로, 그들은 고유의 시선과 어법, 그리고 사유가 시작하는 지점을 책이라는 매체로 설정한다. 그리고 각 역할로부터 고유의 사유가 매체 - 책에 담기는, 혹은 매체로부터 확장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며, 더 나아가 그 영향력이 결과로써 미치게 되는 지점인 관객과 책이라는 매체-플랫폼을 통해 가능한 소통을 실험해보고자 한다.

UPSETPRESS_Mmuseum 뮤지엄숍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5

『PLATFORM b.』는 하나의 제목 아래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책이란 형식적인 유사성을 토대로 서로 다른 지점의 고민을 갖는 세 작가(팀) - 한 명의 순수미술 작가, 2명의 젊은 큐레이터로 구성된 큐레이터 콜렉티브, 두 명으로 구성된 디자이너그룹 - 이 참여하는 이 전시는 책이라는 동일한 형식 위에 서로 다른 포지션에서 건져 올린 그들만의 고유한 어법과 방식, 사유를 보여준다. 첫째로, 큐레이터 그룹인 유능사는 전시장 지하층 쇼룸공간을 활용하여 가상의 큐레이팅 상황실을 만든다. 공간내부 수평과 수직의 교차, 연속적인 분할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테이블 또는 책장 등 상황에 따라 응용이 가능하며, 건축가가 이해하는 '큐레이터'의 직능과 태도를 반영한다. 유능사는 전시의 오프닝을 전후로 이 구조를 활용하여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작가 (공간디자이너로 참여하는 Our Labour, 권경민, 신해철 등)와 큐레이터(윤율리,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팀 등) 등을 만나고 토론한다. 그리고 각 토론을 중심으로 발생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레퍼런스들은 수직/수평의 구조물과 상황실 뒤편에 위치한 바닥 높이의 수평적 레퍼런스 책장에 특정한 연결구조에 따라 배치된다. 각 토론에서 생성된 아이디어는 일견 비선형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축적되는 듯하지만, 책장에 책들이 배치/ 재배치 되어감에 따라 어떠한 하나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큐레이터로서 유능사만의 태도와 관점, 개념의 발전과 방향을 보여주는 일종의 레퍼런스 아카이브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방에서는 다수의 이미지가 텍스트와 함께 병치되면서 그물망처럼 펼쳐진다. 마치 독일의 미술사학자이자 문학사가인 아비 바부르크 (Aby Warburg)의 도상 아틀라스 '므네모시네(Mnemosyne)'의 형식을 일부 차용한 듯한 이 이미지맵핑의 시도는, 유능사가 규정한 특정 규칙을 중심으로 각 이미지/ 도상 그리고 텍스트 간의 연결구조를 탐구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구조 속의 특정한 맥락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시도이다. 유능사의 책이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으로부터 발생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레퍼런스의 축적으로 드러나며, 그것은 무정형적으로 증식하는 듯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편린 속에서 큐레이터로서 스스로의 태도가 드러나는 지점일 것이다.

유능사_현대적 큐레이터의 도구란 Horizontal(공간디자인 Our Labour)_책, 합판, 가변크기_2015
유능사_현대적 큐레이터의 도구란 Discussion platform 일곱개의 방과 하나의 책상 (공간디자인 권경민, 신해철)_철, 합판_가변크기_2015
유능사_현대적 큐레이터의 도구란 Vertical(공간디자인 Our Labour)_ 출력된 이미지, 목재, 커튼 천_가변크기_2015

둘째로, 디자이너그룹으로서 참여한 UPSETPRESS는 디자이너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매체에 대한 높은 기술적 이해도를 바탕으로 전시의 내용을 보완하는 책이 아닌, 전시의 내용을 완성하고 그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으로 설정한다. 외부의 어떤 요구가 삭제된 채, 그래픽 이미지와 텍스트 등을 통해 그들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UPSETPRESS는 가상의 박물관을 상정하고, 그것에 관련한 뮤지엄매뉴얼북과 서적을 제작하였다. 'Mmuseum' 이라고 명명한 이 가상의 박물관의 첫 글자인 'M' 은 Modern/ Memorise/ Metal을 상징하며, 고속압축성장이라는 한국의 근대화 이념에서 배제된 가치, 혹은 개발논리의 이면으로 사라진 시공간의 기억에 관한 것들로 이루어진 유물박물관이다. 사실 그 유물이란 청계천 주변 등지에서 수집한 철부산물 등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써, 유물로서 명명하기에는 그 가치가 다소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가상의 뮤지엄매뉴얼북과 별도로 제작한 서적을 통해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그것을 맥락화하고, 유물로서의 가치가 성립하도록 한다. 끊임없는 개발논리 속 사라지거나 사라질 것에 관한 Mmuseum은 상실과 부재에 대한 가상의 기억유물박물관이지만, UPSETPRESS의 디자인적 언어를 통해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의 이면을 환기시킨다.

UPSETPRESS_Mmuseum 소장픔_철, 자석, 시계_140×97×97cm_2015
UPSETPRESS_Mmuseum 매뉴얼북_판형 15.1×27cm, 면수 52쪽, 출간일 2015
UPSETPRESS_Mmuseum 뮤지엄숍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5

본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순수미술작가로 참여한 지희킴은 아티스트북과 아티스트 가이드맵을 제작하였다. 그는 기존에는 기부를 받은 책 위에 개인적 서사들을 드로잉을 통하여 담아내었다. 지희킴은 스스로의 작업방식을 '사고의 연상 드로잉'으로 명명하며, 임의적으로 선택된 책의 특정 쪽수, 특정 문장, 특정 단어로부터 자신의 과거 일련의 사건과 경험, 기억들을 떠올리고 그것을 드로잉으로 표현하였다. 그것은 개인의 사적인 서사로부터 파생된 상상에서 시작하는 것으로서, 책이라는 공적 플랫폼 위에 은밀하고 개인적인 사적 상상을 담아내고, 다시 그것을 전시라는 공적 영역에서 보여줌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를 허물고, 텍스트화된 언어가 시각언어로 치환되는 과정을 미학적으로 제시하는 행위였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기존의 드로잉 작업들을 하나의 책-아티스트북으로 엮어내고, 시작과 끝이라는 하나의 서사를 부여한다. 또한 작가의 작업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사고의 연상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아티스트 가이드맵을 제작함으로써 작업을 독해하는 대안적 방식을 작가 스스로 제안한다. 그리고 이렇게 제작된 아티스트북과 아티스트 가이드맵은 작가의 기존작업과 전시장 안에서 병치 됨으로써 상호보완과 참조를 위한 기능을 수행하고, 작가의 개념을 드러내는 대안적 플랫폼으로서 작동한다. 결국 지희킴의 책은, 책이라는 매체를 하나의 공간이자 작가의 사유를 드러내기 위한 또 다른 하나의 장으로 인식하고 기존의 작업을 책의 형식으로 확장함으로써, 조금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함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지희킴_Book drawing and Drawing book_기부 받은 책 페이지에 과슈, 연필, 스티커_가변크기_2015
지희킴_Shhh, don't tell mom 드로잉 시리즈, 종이에 과슈, 연필, 잉크, 스티커_가변크기_2012~15
지희킴_Shhh, don't tell mom 미,마이셀프 앤드 아이_아티스트 북 설치_21×14cm_2015

마지막으로 본 전시에서 떠오를 수 있는 몇 가지 의문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자 한다. 왜 다양한 플랫폼 중에서 하필 책이어야 했는가? 그것이 동시대 예술 창작의 행위에서 하나의 플랫폼으로써 고민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책이라는 매체가 전시 준비의 과정에서부터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개입과 작동을 하는 지점은 어디이며,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책이라는 매체가 고유하게 가질 수 있는 가치와 가능성은 무엇인가? 본 전시는 책이라는 매체가 동시대 예술행위의 전반에 걸쳐 최종결과물로 종종 인식되어온 전시의 내/외부로 유효하게 기능해 왔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언어가 취하는 가장 고전적인 형식 중 하나가 책이라는 사실과 그러므로 예술의 해석과 전달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써 책이 지니는 플랫폼으로써의 예술적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예술창작행위와 프레젠테이션의 내/외부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세 개의 포지션, 큐레이터-작가-디자이너로부터 그 고민을 시작하고자 하였다. 기본적으로 큐레이팅의 차원에서는 동시대의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예술의 내용과 그 형식을 담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원적인 전시의 영역을 넘어서 전시 이외의 다양한 매체를 플랫폼으로 이해해야 하며, 효과적인 공유를 위해 가능할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새로운 실험과 가치재고는 언제나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 '책'이라는 매체는 큐레이터의 언어와 사유가 시작하는 지점이자, 결과물로써 남겨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동시대 예술가들에게도 책이란 매체는 그들의 주요 작품과 더불어 고유의 개념과 사유를 발현하는 또 다른 형태로써 자주 등장해왔다. 예술가들의 언어는 시각화되어 책의 형태를 빌어 작품화되거나, 반대로 기존의 시각언어가 텍스트화되어 특정 작가의 독특한 개념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 왔다. 즉, 기존의 전시장을 통해 선보여지는 작업이 책이라는 매체적 특성을 빌어 재구성되고, 각 플랫폼 간 상호참조적 혹은 상호보완적 양상을 이루며 책이라는 형식이 가진 매체적 가능성을 여실히 내비쳐왔다. 또한 전시를 위시한 주변으로 존재하는 디자인의 영역은 가독성과 가시성을 유지하면서도 강력한 시각이미지로 치환된 전시의 보완물로써 그 해석의 범주를 넓게 하고, 사후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그 영역을 공고히 해왔다. 본 전시는 이러한 맥락에서, 책이라는 매체를 예술을 전달하고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형식이자 방법론 그리고 플랫폼으로 이해하고, 동시대 예술행위를 구성하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책이라는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한다. 그것이 본 전시에서 다루는 동시대 큐레이터의 태도에 대한 반영일 수도 있고, 작가의 작업에 대한 대안적 독해를 위한 도구일 수도 있으며, 전시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디자이너의 접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 전시는 참여하는 이들의 시각을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매체가 가진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표본으로 기능할 뿐이며,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이해를 통해 예술이 기능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책의 매체적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 김성우

Vol.20151018g | PLATFORM b.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