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하루는 이렇게 말하였다. Thus Spack the Day Passed.

윤채은展 / YUNCHAEEUN / 尹彩銀 / installation   2015_1016 ▶ 2015_1026

윤채은_지나간 하루는 이렇게 말하였다.展_오렌지 연필_2015

초대일시 / 2015_1016_금요일_06:30pm

후원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주최 / 재단법인 양포

관람시간 / 10:00am~07:00pm

오렌지 연필 ORANGE PENCIL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1895(행운동 1680-11번지) B1 Hall Tel. +82.2.888.2192 blog.naver.com/yangpo47 www.facebook.com/028882192orange

일상에서 현실가치가 벗겨지는 순간들은 흔히 퇴화로 나타나고 그 흔적은 시공간의 간극을 드러낸다. 또한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린 주위의 대상들은 타자의 인식 속에서 불분명한 폐물로 전락되기도 한다. 특히 급변하는 도시사회에서는 이와 같이 정체된 잉여적 산물들이 사물, 장소, 사건, 기억, 인물 등을 아우르면서 일상적으로 배출되고 있다. 주변에 산재하는 무용지물의 대상들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내적, 외적으로 끊임없이 접촉되면서 또 다른 자극을 양산하였다. ● 매일같이 반복되어 접하는 대상들은 일상적 만남과 동시에 폐물로써 재생산된다. 일반적으로 폐물이란 현실 속에 하찮은 것으로 격하되고는 하는데, 이는 그 이전에 지녔던 정체성의 누더기를 여전히 걸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용지물의 대상들이야말로 의식 속에서 한참 멀어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 오히려 생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나아가 망각됨으로써 재회를 맞이하였을 때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회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이미 동떨어진 현실과의 괴리를 뛰어넘는 우발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 보았다.

윤채은_지나간 하루는 이렇게 말하였다.展_오렌지 연필_2015

청년이자 주부의 일상을 맞이하는 나에게 특정적으로 다가오는 '일상잔여물'들은 계란껍질, 생수병, 인터넷 기사 등이었다. 작업에서 사용된 계란껍질들은 주부생활의 아침 시작부터 맞이하게 되는 일상의 첫 번째 잔여물이다. 버거운 모성을 버티던 중 알맹이가 빠지고 껍데기가 되는 일순간 무용한 폐물이 되어버리는 그것은 공교롭게도 동질감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로써 처한 나의 상황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꿈들을 단념하게 하였고, 절망과 동시에 자기 욕구에 대한 희생을 애써 스스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정신적, 육체적 변환기를 맞이하는 일은 곧 자신의 퇴보를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부터 나는 필사적으로 욕구 희생에 대한 보상을 물색하게 되고 그것은 새로운 자기 복제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쥐고자 하는 것이었다. 즉, 더 이상 '퇴화'를 향한 나의 태도는 관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고, 오히려 전환을 꿈을 꿀 수 있는 일약 대상으로 집착된다.

윤채은_지나간 하루는 이렇게 말하였다.展_오렌지 연필_2015

작업「껍질」은 촘촘하게 맞물려 개체의 외곽을 따라 지탱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매일 아침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둔 계란 껍질들은 수집, 세척, 정리 과정을 거치면서 독립적인 퍼즐의 조각처럼 각각의 주체적 회복을 향한다. 무작위적으로 파편화 되었던 대상은 표면의 요철과 듬성듬성 보이는 껍질 사이의 빈틈들이 형성되면서 더 이상 이전처럼 매끄럽고 말끔한 모습을 지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재되어있던 새하얀 속살을 완전히 드러내면서 위태롭고 아슬한 구조적 변성을 꾀한다. 이처럼 매일의 작업은 평범하고 익숙하게 잊혀진 일부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재도약하고자 하는 고투를 담고 있다. 이는 퇴화된 대상으로부터 비롯된 우발적 상상들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존재의 확대가능성을 고민하는 과정인 것이다. ● 작업「파쇄된 라벨」과 「망가진 타임캡슐」에 등장하는 비닐, 생수병, 신문기사의 이미지와 텍스트 등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작용한다. 내용물이 비워진 페트 용기나 인터넷과 같은 대체물의 등장으로 점점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인쇄물, 그리고 그것이 시사하는 어제의 사건들. 이와 같은 것들은 그 동안 일상을 수시로 스치면서 무감각하게 퇴출되어왔다. 하루의 시간 차이로 이미 쓰레기가 되어버린 대상들로부터 다가오는 현존성은 염세주의에 이미 취해버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윤채은_지나간 하루는 이렇게 말하였다.展_오렌지 연필_2015

삶 주위에서 흔히 발생하는 소외와 퇴색의 과정들은 그대로 방치된 채 여전히 산재한다. 어느 순간주부가 되어버린 나의 삶은 소실되어가는 대상에 대한 이입으로 작용하였다. 어느날인가 접했던 뮤지컬 '렌트'의 실황 중에서 "'전쟁(나는 이것을 '파괴'로 해석한다)'의 반대는 평화가 아닌 창조"라고 하였다. 현실 유지에서 조차도 퇴화는 다가오지 않을 수 없고, 부실해진 가치를 받아들여 다른 생성을 시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제도적 현실을 답습해 가는 일상에서 정체되어 있던 나를 일깨우고, 소멸의 나락에서야 회생의 기회를 찾는 복잡미묘한 원동력인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현실 질서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이렇게 쓸모 없음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주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 윤채은

Vol.20151016i | 윤채은展 / YUNCHAEEUN / 尹彩銀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