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다면 깊고, 얕다면 얕지 the moment that i feel that i know

노세환展 / ROHSEAN / 盧世桓 / mixed media   2015_1007 ▶ 2015_1028 / 월요일 휴관

노세환_0.000007456 mile_Under the Sea (Cerulean Blu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2×52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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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환 홈페이지_www.rohsean.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버튼 Gallery Button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 35길 83(성북동 1가 103번지) 1층 Tel. 070.7581.6026 www.gallerybutton.com

수심 0.000007456 마일 2만리 ●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9년에 쓴 고전 과학소설 해저 2만리를 재미있게 읽었다. 생물 분류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작가는 당시의 분류체계에 따라 바다 생물들을 분류하고 설명하는 부분이 자세히 기술되어 흥미 있었고, 잠수한 노틸러스호의 움직임이나 해류에 대한 묘사는 이유와 함께 구체적으로 설명되는 부분들에 많은 감동을 느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깊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묘사들에 빠져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심해에 대한 막연한 감정에만 정신이 빠져, 한번도 2만리가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깊은 바다일 것이라는 막연함만 있을 뿐이었다. ● 20,000리. 편의상 번역된 듯 보이는 '리'단위가 아닌 '리그'단위가 원제에는 사용되어있고, 20,000리그는 69,046.7 마일의 길이이고, 이는 111,120킬로미터에 해당하는 길이이다. 11만 1천 1백 20킬로미터라고 표기하면, 우리에게 더 현실성 있게 느껴지는 듯하며 지구 한 바퀴의 거리가 약 4만 킬로미터라고 알려져 있으니, 지구3바퀴가 조금 안 되는 거리라 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느껴지지만, 이도 역시 그 깊이가 상상하기 쉬운 숫자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단위를 친숙한 것으로 바꿔가면 갈수록 크기를 가늠하기 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 한 포탈사이트에서 운영하는 단위계산기이다. 밑에 수 많은 숫자들은 전부 1cm를 뜻하는 길이의 단위들인데, 가늠할 수 없는 크기들이 가득하다. 특히 간, 정, 리 등은 한번 본적도 없는 단위들이고, 마일, 야드, 피트 등은 미국에서 사용하는 단위들이라 귀에는 익숙하지만, 실제 길이를 가늠할 때는 여간 어렵지 않다. 수년 전 캐나다에서 운전을 해 보았던 경험이 있는데 자동차에 마일 단위가 가장 비중 있게 표시되어 있고, 거리에 표지판에도 온통 마일로 이루진 속도표기가 되어있어서, 내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감각이 무뎌졌던 기억이 있다.

노세환_0.000007456 mile_Under the Sea (Ultra Marin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2×52cm_2015

해저 0.000007456 mile ● 해저 0.000007456 마일이 얼마나 될까? 사실은 1.2cm 가 조금 안 되는 길이이다. 손가락 반 마디 깊이의 물이 깊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태로 보여준다면 '마일'단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0.000007456마일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할까? 각각의 깊이가 다르게 보여지고 주변의 환경을 철저히 배제한 채 보인다면 그 길이를 옳게 이해하기 쉬울까? ● 이 문제는 단지 단위의 개념에 대한 것처럼 보이기 쉽지만, 이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중들이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처음 접할 때 대중들은 그것들을 올바로 이해하기 노력하기 보다는 일단 그것이 보이는 그 상태를 나름의 방법으로 대충 머리 속에서 짜맞추기 시작하고 그것이 사실인양 믿기 시작한다. 설혹 나중에 그것에 대한 진실을 알았을 때, 본인이 별 생각 없이 짜맞추어놓은 결과와 실제의 결과가 다를 때, 사람들은 알아보기 힘든 단위를 쓴 사람들을 탓하기 시작할 것이다. 0.000007456 마일이 1.2cm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요즘 같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에서 위에 언급한 단위계산기를 사용하기만 하면 금방 알아차릴만한 것들을 사실이 어느 정도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 위에 있는 귀찮음이 이런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고, 언제나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알아보기 쉬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에 대한 기대는 조금이라도 사실에 대한 조작을 원하는 정보제공자를 만났을 때 속수무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가 이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이다.

노세환_Experiencing natural wave_혼합재료_2015

수심 1.2cm 의 수조 ● 너무 얕아서 작은 물고기 조차 살수 없는 1.2cm깊이의 수조를 제작했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물의 수면만을 볼 수 밖에 없다. 해변에서도, 한강을 건널 때 도 물의 표면에 보이는 물결만을 보며 물은 인지한다. 한강의 깊이는 평균 7-8m정도이며, 마포의 깊이는 30m가까이 된다고 하나, 이런 정보들도 누군가에 의해 측정된 깊이이며, 한강을 직접 보며 가늠할 수 있는 깊이는 아니다. 바다의 경우 깊이는 훨씬 더 추상적이다. 옛날에는 바다의 깊이를 잴 때 줄에 추를 묶어 바다로 내려 보낸 뒤 줄의 길이를 가늠하여 측정했다고 하나, 해류 때문에 일직선으로 내려 보내기 어려움이 있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며, 지금 은 음파를 내려 보내 음파가 돌아오는 시간을 거리로 환산 해 측정 되어진다고 하니 소리의 길이의 관계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 측량방식이 매우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소리가 바다 깊숙이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과정에 소리의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고려하면 더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노세환_What flavour would it b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9.7×21cm_2015

1.2cm는 나에게 매우 익숙한 길이이다. 작업할 때 주로 쓰는 목재의 두께가 1.2cm 이고 내가 쓰는 노트북 컴퓨터의 두께도 1.2cm, 자동차 키 홀더의 두께도 1.2cm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 에서 선보였던 만두 빚는 장인이 일정한 양의 반죽을 고르게 떼어내는 것처럼 나도 1.2cm는 보지 않고도 인지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센티미터 단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1cm정도는 대략적으로 상상해내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이를 방해할 수 있는 많은 방해물이 있다면, 여전히 그 깊이를 가늠하기 쉬울까?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들로 내가 사용하는 것들은 사람들 이 평소에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지식이다. 지도에 표기되는 바다의 깊이는 색으로 표기된다. 얕은 바다는 옅은 계열의 파란색으로 깊은 바다는 점점 더 진한 계열의 파란색으로 보여준다. 이는 분명히 자연에서 보여지는 현상을 기준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일 테지만 이런 상식을 다른 조건으로 보여준다면, 이 상식들은 사실을 인지하는데 불편한 요소들로 자리한다. 모두 다르게 보이는 물의 깊이들, 하지만 다 같은 물의 깊이 그것도 극도로 얕은 1.2cm 깊이의 물, 이것은 0.000007456mil(마일) 깊이의 물이다.

노세환_깊다면 깊고, 얕다면 얕지展_갤러리 버튼_2015
노세환_깊다면 깊고, 얕다면 얕지展_갤러리 버튼_2015

이해의 범주 ● 유인원들의 지능이 인간과 매우 가깝지만 그들이 인간처럼 문명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학습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이 학습능력은 상호주관성이라고 하는 인간 뇌의 지적인 기능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이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매우 관계가 깊다. 이렇게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인지능력이며, 이런 학습에 능력이 없이는 아마도 내가 이런 글을 쓸 수도, 아니 혹은 이런 비판 적인 지적이 놀이에 빠질 수조차 없이 나무를 타며, 열매를 따먹고 다녔겠지만, 가끔은 이런 학습능력이 사실을 인지하는데 방해가 되게 만든다. ● 물의 깊이에 따른 색의 변화, 바다는 왜 파란색일까, 물이 바람을 만날 때 보이는 물의 표면의 변화 등을 이미 학습 및 경험했고, 센티미터에 익숙해있는 사람들의 무리 안에서 교육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일의 단위를 가늠할 때 느끼는 생경함은 갑자기 바지의 치수가 센티미터로 바뀔 때 겪는 혼란과 맞먹을 것이고, 집 넓이의 단위가 평단 위에서 제곱 미터 단위로 바뀐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곱 미터로 는 가늠이 되지 않고 '평'에 의존적인 사람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런 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이는 혹시 학습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데 대한 두려움 아님 귀찮음이 우리의 뇌를 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로부터 듣는 잔소리가 조언으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불편한 이유는 그 반복성이 불편함과 비슷한 무게로 잔소리를 하는 이들과 듣는 이들 사이의 이해의 범주가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잔소리를 하는 주체가 가지는 이해의 범주가 깨기 어려움 것처럼 나의 이해의 범주는 그들을 향해 맞춰있는가에 대한 생각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 노세환

Vol.20151012i | 노세환展 / ROHSEAN / 盧世桓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