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이우성展 / LEEWOOSUNG / 李宇城 / painting   2015_1001 ▶ 2015_1101 / 월,공휴일 휴관

이우성_바닥에 떨어진 작은 조각_천에 수성페인트, 과슈_210×21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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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홈페이지_www.woosunglee.kr

초대일시 / 2015_1001_목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5_1101_일요일_04:00pm 대담자 / 이성희(디렉터)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 이성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풀 ART SPACE POOL 서울 종로구 세검정로9길 91-5 Tel. +82.2.396.4805 www.altpool.org

돌고 돌며 움직이는 그림들 ● 이우성은 회화보다 그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두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에는 차이가 없지만 그림이 회화보다 넓은 의미로, 조금 더 열린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서는 그가 지난 1년간 그림의 가능성을 찾아 진지하게 고민한 과정과 흔적을 보여준다. 회화의 전형적인 형식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는 회화의 닫힌 프레임을 열고, 화이트 큐브를 위한 회화가 아니라 일상 공간, 실내외 어디든 옮겨갈 수 있는 움직이는 그림을 추구한다. 작가는 그림이 만들어내는 상황과 이동하는 행위에 의미를 둔다. ● 전시에 앞서 작가는 천에 그린 큰 그림들을 자신이 발로 걸어다니며 찾은 장소 곳곳에 걸어 불특정한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천에 그린 그림을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걸겠다는 의도는 형식 면에서 분명 새롭지 않다. 가깝게는 한국 민중미술의 걸개그림에서부터 캔버스 틀에서 탈피하고자 한 형식 실험인 프랑스의 1970년대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 그룹의 운동, 더 멀게는 타피스트리 회화를 집안에 장식하는 예까지 미술사에서 유사한 예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우성이 천그림을 여러 장소에 걸겠다고 제안한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배경을 가진 것도, 단순한 형식 실험에 초점을 맞춘 것도, 장식적인 기능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니며, 오히려 개인적이고 소박하지만 실천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우성_강변북로_천에 수성페인트, 과슈_210×210cm_2015 이우성_나는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_천에 수성페인트, 과슈_210×210cm_2015 이우성_감전된 오이들이 우수수_천에 수성페인트_210×210cm_2015 이우성_선물_천에 수성페인트_210×210cm_2015

그림을 걸 장소의 조건을 열어두는 것은 제작 과정과 재료 선택에도 변화를 요구했다. 프레임이 있는 캔버스 대신 이동이 용이한 천을 사용하고, 발색력의 부담에서 자유로우니 값싼 수성 페인트를 쓰고, 2미터 정방형의 큰 천을 여러번 접어 가방에 넣어 대중교통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부분, 그림을 접는 것에서는 작가의 결단이 필요했다. 그림을 접어서 가지고 다닐 경우 접은 자국이 표면에 남고 물감이 갈라지는 등 손상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말아서 운반할 경우 작가의 키보다 큰 그림 크기 때문에 매번 차를 빌리고 제3자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그가 애초에 기획한 의도, 그림과 함께 "부담 없이" 거리를 걸어다니며 이동하는 방식에 어긋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말아서 들고 다니는 방식은 포기했다. 이로써 작가는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기 위해 작가로부터 분리된 배타적인 상품으로서의 회화 작품이 아니라, 제작부터 그 이후까지 작가의 몸과 함께 하는 작품,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이는 대신 이동하면서 생긴 흔적과 손상을 고스란히 담은 소박한 그림을 선택한 것이다. 작가는 프레임에 결박된, 응고된 작품을 거부하고, 그림이 그 자체로 유동하게 두어 작품이 상품이 되는 상황에 저항하고 싶었던 것 같다. ● 그림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준비를 마친 그에게 나는 프로젝트의 취지와 내용을 밝혀 오픈 콜 형식으로 그림을 위한 장소를 찾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작가는 형식에서 벗어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직접 장소를 찾고 싶다고 했다. 주로 길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천에 옮겨 그린 이 작품들을 최소한의 계획만을 세우고 거리로 가지고 나가, 작가는 자신의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이동해갔다. 지나다가 우연히 바라본 곳, 버스 안에서 본 장소, 빈 벽이 있는 장소 등을 기록해두었다가 다시 찾아갔다. 이렇게 어느 정도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아가거나 친구의 동네를 따라가면서 자신과 주변인들 사이의 시간의 연결고리를 찾아 그림을 걸 장소를 정했다.

이우성_너와 나를 이어주는_천에 수성페인트_200×100cm_2015

작가는 그의 그림이 특정한 장소와 만나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지켜봤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거리의 벽에 걸고 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결국 이 일이 실패의 반복임을 깨달았다. 아무 사전 정보가 없는, 그림을 감상할 준비가 되지 않은 분주한 행인들에게 그의 그림은 의미 없는 벽광고판과 다르지 않았고, 거대한 건축물 한 가운데에서 그의 그림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 그림들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에게 얘기할 거리를 만들어주고 골목길의 무료한 할머니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왜 이 무거운 그림들을 들고 걸어다니고 때로 애원하여 벽에 걸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수없이 되뇌이며, 그는 다시 그림이 무엇인가 묻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림의 가능성을 탐구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렇게 기대와 아쉬움, 좌절감을 고스란히 담은 그림들이 이제 갤러리 안에 걸렸다. 작가의 행위를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이 그림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보여주고자 한다면, 바람들고 비들이치고 꽃잎과 나뭇잎이 새어드는 곳, 게다가 지금 한창 공사중인 아트 스페이스 풀의 공간이 제격일 것이다.

이우성_러브샷_천에 수성페인트_각 210×210cm_2015

결국 이우성의 회화의 형식과 전시 방식에 대한 고민과 소박하지만 실천적인 태도를 연결해주는 핵심 고리는 작품의 내용이다. 졸업식에서 졸업하는 선배들과 후배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의 한 구절인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가 그 내용을 설명해주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이 제목은 풀이라는 공간에서 전시를 하게 됐을 때 공간의 역사적 맥락과 장소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작가가 제안한 것이었다. 작가는 현실에 대한 발언을 했던 선배작가들의 행보에 대해 앞서 언급했던 그림을 들고 이동하며 보여주는 실천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우성은 그림들에서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그가 그려낸 이미지들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풀의 낡은 마룻바닥에 무언가를 떨어뜨린 후 엎드려 그것을 찾는 모습을 그린 「바닥에 떨어진 작은 조각」은 바닥에 귀를 대고 지나간 이야기들을 듣고자 함을 짐작하게 하고,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는 무표정하다 못해 섬뜩한 표정을 한 젊은이들을 그린 「돌고 돌아 제자리」는 모두 함께 할 자리를 찾아보자고 외치는 듯하다. 한편 그가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린 여러 스케치들을 한 화면에 이어붙인 「지속하기 위하여 이어달리기」의 곳곳에는 노인에게 '칼'대신 오이를 내미는 소년, 어른을 뒤에서 포박하여 못살게 구는 소년 등 도발적인 내용도 자리한다. 50개 이상의 작은 그림을 한 화면에 메모하듯 그린 이 작품의 작은 그림들 중 일부는 이미 큰 그림으로 옮겨졌다.

이우성_전시전경_천에 수성페인트_각 210×210cm_2015

또한 작가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작가가 이후 같은 방을 물려받아 쓸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해주는 영상을 보면서 세상에 전해주고 싶은 그림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그림을 불특정한 장소에 걸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일상적인 이야기와 친근한 대상을 그리고자 했다. 작업실에서 집으로 갈때 강변북로의 풍경, 어떤 그림을 그릴지 고민하면서 바라본 해질녘의 한강의 모습, 농촌 풍경, 작업실 근처의 송전탑, 숲 속의 새, 터널로 진입하는 자동차, 늦게까지 불이 켜진 건설회사, 부모님이 선물해주신 수박, 여행 중에 경험한 일과 만난 사람을 한 화면에 이어넣는 등 자신이 만난 순간들을 그림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화면에 옮길 때 그가 택한 평면적이고 단순한 방식은 어디서 본 것은 장면이 아니라 생경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다. 분명 이우성은 개념을 설정해놓고 작업을 만드는 작가는 아니다. 감각적이고 순간적이고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것들로 끊임없이 오해를 만들려고 한다. 작가는 일상과 사적인 순간을 길바닥에 갖다놓겠다는 강한 공공화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사적인 것을 공공적으로 만들어서 그 사이에서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어떤 의미와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우성_전시전경_천에 수성페인트_각 210×210cm_2015

작가는 1년 넘게 꾸준히 이 천그림들을 그려 전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자신이 계획한 대로 몇 주간 천그림들을 가방에 넣고 서울 구석 구석을 거닐며 그림을 걸 곳을 찾아다녔다. 그림을 벽에 건 후 그림에 무관심한 행인들을 지켜보고,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며 그림의 의미와 그리는 행위에 대해 자문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거짓되지 않은 사고로, 남김없이 자신의 힘을 쓰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림을 들고 걷고 걸으면서 그 이동의 행위와 그림의 가능성에 대해 알아가고자 했다면, 그림의 내용에도 좀 더 적극적인 메시지를 담았으면 어떠했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조각나고 펼쳐져 있는 산만한 이미지들이 아니라 치열하고 일관된 주제의식으로 뭉쳐진 이미지들 말이다. ■ 이성희

Vol.20151012e | 이우성展 / LEEWOOSUNG / 李宇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