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빈, 유영 full, empty, floating

차미혜展 / CHAMIHYE / 車美惠 / video.photography   2015_1008 ▶ 2015_1031 / 월요일 휴관

차미혜_사라진 인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세계 혹은 그 반대_영상 설치_00:30:00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0118d | 차미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1008_목요일_06:00pm

*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케이크갤러리 Cake gallery 서울 중구 황학동 59번지 솔로몬빌딩 6층 www.cakegallery.kr

상실하고도 떠나지 못하는 것들 혹은 그 마음을 위한 애도 ● '바다극장'은 청계 4가 광장시장 인근에 있다. 약 사십여 년 전에 문을 연 극장은 재개봉관으로서 소위 말하는 비급 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이었다. 이곳에서 티켓 한 장을 사면 종일 객석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이어오다가 결국에는 2012년, 조용히 폐관했다고 한다. 쉽게 인터넷으로 영화를 내려 받아 볼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재개봉관이라니. 바다극장이 비교적 최근까지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폐관하게 된 후에도 어떤 이유에선지 바다극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되었다. 심지어 간판도 내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관객을 잃은 지 오래므로 누구도 그 자리에 똑같이 있는 바다극장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청계천은 복원되어 그 모습이 바뀌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그 곁을 지나다니게 되었는데도, 바다극장은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냥 그렇게 남겨지게 되었다. ● "길을 걷다 우연히 간판을 보게 됐어요. 이끌리듯 극장에 들어서게 되었죠."라는 차미혜의 술회를 가만히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수백 번이고 지나다닐 법한 길목에 있는 간판이 하필이면 왜 그 날 그 시각에 그녀의 눈에 띈 것일까.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극장에, 그 '바다'라는 간판 글귀에, 유독 그때 눈이 멈추고 마음이 동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녀가 바다극장을 발견한 2014년 봄은 슬픈 계절이었다. 때아닌 상실에 슬픔은 절규가 되어 우리 모두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다. 그 봄 이후로, 우리에게 바다는 결코 예전의 바다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 '바다'라는 이름의 극장이 있다. 아마도 차미혜는 '그' 바다가 삼킨 슬픔으로 길을 걷다가 '이' 바다를 만나게 된 것은 아닐까. 예기치 못한 상실을 안겨준 '바다'와 상실했으나 남겨져 있는 '바다'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가만히 겹쳐졌을 것이다. 상실하고도 이별하지 못하는 마음은, 상실하고도 남아있는 그곳에서 애도하고자 모인 두 손처럼 포개졌으리라.1)

차미혜_사라진 인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세계 혹은 그 반대_영상 설치_00:30:00_2015

애도.2) 차미혜가 바다극장을 만나고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을 조금은 멀리서 지켜보면서 늘 떠오르는 단어는 애도였다. "공간에도 이를테면, 청춘과 같은. 그런 시절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그녀가 애도하고자 했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이제는 차갑게 식은 극장 안에서 환영처럼 밀려오는 옛 시절의 떠나갔지만 보내지 못하는 추억과도 같은 것들. 그녀는 상상한다고 했다. 어느 때인가, 북적였을 관객석을. 무수한 약속으로 채워졌을 극장을. 많은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을 그곳을.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빈' 바다극장이 그녀에게는 '가득' 차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제는 빈 극장이지만, 그 공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의 겹만큼 무수한 익명의 기억들이 기입되어 있다. 그 기억들은 익명의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공간의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억들이 뒤엉켜 흘러넘치는 빈 극장에서, 그녀는 소멸하였으나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도를 시작한다. 더는 운영되지 않는 빈 극장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은 왠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애도에 실패하는 어떤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바다극장'은 우리 모두의 (불가능한) 애도를 환유한다.

차미혜_바다_2채널 영상_00:15:00_2015
차미혜_김을 바라본다_단채널 영상_00:05:30_2015

바다극장에는 한 인물이 있다. '김 과장'이라고 불리는 그는, 이곳이 더는 운영되지 않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장을 관리한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극장에 남겨진 사람. 바로 그가 차미혜가 극장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문을 열어준 사람이다. 그녀가 극장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주목한 것도 '김 과장'이라는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공간을 대면하는 방식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있다. 이를테면 그는 매일 극장 곳곳을 정돈하고, 꼼꼼하게 청소점검표에 펜으로 표시한다. 그 점검표의 모양새를 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오늘도 극장을 보내지 못하는 그의 마음에 난 구멍인 듯 그것 또한 먹먹하다. 그래서 일까, 그를 단지 '과장'이라는 직함으로 함축해 버리기엔 아쉬운 무언가가 있다. 오늘도 그를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그 미련은, 꼼꼼히 청소기록표를 작성하는 그 마음은 이미 '김 과장'을 넘어서 버렸을 것이다. 남겨진 자로서의 그는 더이상 기표 차원의 직함에 머무르지 않는다. 곧 소멸할 극장을 매일 정돈하는 그의 정성은 아마도 그 나름의 공간을 위한 애도의 몸짓이리라.

차미혜_사라진 인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세계 혹은 그 반대_영상 설치_00:30:00_2015

「사라진 인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세계 혹은 그 반대」는 세 편으로 이루어진 영상 작품이다. 바다극장에서 흘러나오는 공간의 기억들은 작품 속 인물들의 몸을 빌려 구현되고 있다. 세 개의 영상은 서로 이어지는 듯하지만 제각각의 흐름으로 공간을 유영하는 몸짓들을 보여준다. 마치 공간에서 스며 나오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 내는 듯 공간 내부의 세세한 것들과의 인연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내다가, 그것들을 극장 바깥으로 천천히 내보낸다. 극장 인근에는 오래된 건물들,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들이 편재하고 있다. 인물들이 극장 안팎을 오가는 모습은 스크린 사이를 흐르는 듯하기도 하다. 때문에 관객들은 그 움직임 앞에서 무력해지는 시공간의 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전시장에 구현된 스크린과 객석의 형태에서 바다극장의 시공간이 갖는 독특한 정서가 이어지는데, 같은 맥락에서 「지름 58cm 빈 곳에서」와 「가로 39cm 세로 53cm 목소리들」은 바다극장에 실제로 있는 뻥 뚫린 빈 영역들을 그대로 재현하도록 설치되었다.

공연_없을 수 있었던 하루 A day that could not have existed_바다극장_2015
공연_없을 수 있었던 하루 A day that could not have existed_바다극장_2015

작품 속 인물들이 공간의 기억을 '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마치 순조롭게 승천하지 못한 영혼을 달래기 위해 굿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차미혜가 불러들인 '몸'들은 이전에 단 한 번도 극장과 인연이 없었음에도 마치 그곳과 예전부터 연결되었던 것처럼 공간과의 공명을 끌어내고 그 이야기들을 표현해낸다. 익명의 기억이 빈 공간 안에 가득히 머물러 있다가 낯선 방문으로 인하여 탁 하고 봉합이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 것일까. 이렇게 접신한 듯 그들은 공간에 떠도는 기억들을 자기 안에 붙잡아 두었다가 꽉 닫혀있던 바다극장의 문 바깥으로, 열린 세계로 그것들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차미혜의 애도란, 이미 항상 우리 안에 들어서 있었던 익명의 기억을 떠나 보내기 위하여 비어 있으나 가득 찬 자기 안의 공간을 유영하는 일이다. ● 차미혜는 우연히 극장 근처에서 통화하던 한 사내가 "우리 바다에서 만나자"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내에게 바다극장은 매우 친숙한 공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수화기 건너편의 누군가와 아마도 오래전부터 종종 바다극장에서 만남을 가져왔으리라. 그들이 바다극장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내가 무심코 뱉은 한 문장의 말로, 나는 그가 갖는 바다극장에 관한 기억을 순간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바다라는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익명의 기억들, 떠나 보냈지만 남겨진 이야기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혹은 잔뜩 오버랩 된 이미지들처럼 저 문장 속에 겹쳐져 있었다. 아마도 차미혜는 우연히 바다극장에 처음 들어선 순간에, 그것들을 이미 마주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마치 이끌리듯이 그녀가 그녀의 것도 아닌 낯선 기억들을 받아 안게 된 것이 아닐까. 결국, 이 낯선 기억이란 타자와 다름 아니다. 김 과장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바다극장을 내면화하는 방식, 작품 속 인물들이 공간의 기억을 대면하는 방식, 차미혜가 바다극장을 만나 그 공간의 이야기들을 받아 안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일이란, 현재 우리에게 과연 어떻게 자기 안의 타자를 마주할 것인지에 관한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 윤민화

* 각주 1) 주지한 내용과 관련하여 상이한 두 '바다'라는 공간을 '애도'라는 열쇳말로 연결한 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해석임을 밝힌다. 작가는 2014년 봄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바다'라는 글자에 이끌리듯 바다극장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는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이번 개인전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 2)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애도'는 상실한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 어떤 상징적인 대체물로서의 애도, 즉 프로이트식의 심리적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타자를 상징적, 이상적으로 내면화하는 것, 곧 타자를 자아의 상징 구조 안으로 동일화 하는 데리다식의 애도작업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떠나간 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하여 오히려 잊어버리고자 하는 일과도 같다. 혹은 떠나보내기 위하여 오히려 마음 속으로 가져와 내 안에 품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역설적인 과정 속의 반복은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애도 작업이 된다. 애도 작업에 관한 텍스트는 다음을 참고하였다. 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법의 힘』, (주)문학과지성사, 서울, 2014

공연 / 없을 수 있었던 하루 A day that could not have existed - 일시 : 10월 17일(토) / 10월 24일(토) 오후 6시 - 장소 : 바다극장 Bada Theater / 서울시 종로구 예지동 222번지(청계천로 187번지) 바다빌딩 4층 - 예약문의 : [email protected] ▶ 예약링크 바로가기

Vol.20151010i | 차미혜展 / CHAMIHYE / 車美惠 / video.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