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타는 별 Burning Star

권순왕展 / QWONSUNWANG / 權純旺 / mixed media   2015_1005 ▶ 2015_1030

권순왕_264 타는 별 264 Burning Star_프레인팅_49×79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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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스페이스 이끼 SPACE IKKI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www.spaceikki.com

타는 별, 소멸 속에 생성, 수고로움에 대하여 ● 바닷가, 벌판 외딴 곳에서, 달빛 아래, 쓰라린 생각 속에 잠겨 있는데, 모든 사물들이 노랗고, 불확실하고, 환상적인 형태를 띠는 것이 보인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다양한 형상으로, 납작해지기도 하고, 대지에 붙으면서,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리게, 달리다, 오고, 되오고 한다. 옛날, 내가 젊음의 날개 위에 실려갈 때, 그것은 나를 꿈꾸게 했고, 나에게 이상하게 보기이기도 했었는데, 지금, 나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 바람은 나뭇잎 사이에서 초췌한... (말도로르의 노래_로트레아몽) ● 광복 70주년, 이육사, 광야, 역사의 무의식, 시, 말과 사물, 심연들, 기다림 망각, 침묵의 목소리, 무장투쟁, 폭력과 생성, 비판과 긍정, 파괴, 현전, 왜, 도대체, 무엇이, 무엇을, 봐야, 할까. 권순왕의 작품 앞에서 무수한 생각과 망상과 감정과 서성임과 책들과 말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여기, 이곳에서 내가 아닌 내가 존재하지 않는 이 공간, 이 면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까. 말 그대로 현재 이 순간, 아니 지나간 그 순간 내가 포착한 것은 '왜'이다. ● 무엇이 '왜'일까. 소름 돋는 이육사의 「광야」 앞에서 권순왕은 왜 그랬을까? 그는 작가노트에서 "264 그는 소금 눈으로 잔존하고 있다. 2015년 여름에 찾았던 이육사의 마지막 장소에 눈이 오는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역사적 시간으로 쌓이는 순간에도 녹을 수 있도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하필 소금이었을까? 그리고 왜 눈이었을까? 왜 온전한 사진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작가는 사진 위에 '작업'을 한 것일까? 왜일까, 왜일까, 왜일까, 왜일까. 며칠 전 있었던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것에 대해서 부러 묻지 않았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작업을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하면서 진행 중인 상황을 사진으로 보여 주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택한 방법이 흥미로웠고, 힘들어 하면서도 시간을 들여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어려운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의 노고를 영상으로라도 담아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물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 그동안 작품들에 대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이 '왜, 작가들은 어떤 것을 재현하거나 혹은 재현된 것을 파괴하고 또 다시 재현하려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이다. 권순왕이 이번에 택한 방법도 기존의 사진에 소금을 덧입히거나 또는 구멍을 내어 물감을 밀어 넣는,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인 수고로움이다. 물론 왜 그랬는지 작가는 노트에서 간단히 말하고 있지만, 왜 굳이 그런 재료를 택해야 했는지 밝히고 있지는 않다. 더군다나 「264 타는 별 264 Burning Star」의 뒷면은 우리가 볼 수도 없는데, 형형색색 곱기까지 하다. ● 서늘하고 소름 돋는 이육사의 시 앞에서 우리는 뭔지 모를 두려움, 외경, 뭉클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이육사를 대하는 권순왕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유구의 철학자들이 말한 서블라임sublime, 숭고를 만나게 된다. 숭고와 서블라임, 의미가 상통하는 두 단어의 발화음 중 어느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다. 예술가들은 어떻게 보면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어떤 존재에게 선택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에게는 우리가 볼 수도, 들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언캐니'한 영역이 존재한다.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이러한 부분을 자신도 모르게 재현해 내고, 때로는 기존의 것을 파괴함으로써 단순한 재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 말하자면 그들은 어떤 존재와 우리를 연결해 주는 매개자로서 발화되지 않는 언어로 참모습, 참뜻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참뜻은 바로 당신이 느끼는 그것이다. 정답은 없다. ● 서두를 시작한 로트레아몽의「말도로르의 노래」는 장편소설 분량의 시다. 운율도 없는 산문체의 이 읽기 불편한 시를 시인은 왜 썼을까? 다시 '왜'이다. 읽기 어려운 보기 힘든, 듣기 쉽지 않은 것들이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쉽지 않은 것들은 우리에게 사고의 장을 마련해 준다. ●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그 자리에, 그대로, 잠시만, 심연의, 당신의, 나의, 혹은 우리의, 소리가, 장면이, 들리고, 보이고, 마주할 것이다. 무수한 콤마가, 문장에서 저해되는, 콤마가, 콤마를, 여기, 이곳에서는, 써야 할 것 같다. 이육사를 만나고 권순왕을 만나고 로트레아몽을 만나고 피서라를 만나는 여기서, 당신이 서블라임을 검색하고 언캐니의 스펠링을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또한 불필요하고 반복되는 문장에 빗금을 치길. ■ 피서라

권순왕_잔존의 소금 눈 Salt Snow of the Survival_프레인팅_290×373cm_2015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날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지난 3월 밀양 금시당의 아침 시간에 150년 된 매화와 마주했다. 마당 한쪽 구석에는 400년 된 은행나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간사의 영화가 헛되고 헛되도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영원히 지속되고 있는가보다. 경술국치 이후 가려진 역사 속에는 만주벌판을 누비고, 대한독립을 외치며 항일무장 투쟁한 동지들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거처를 멀리하고 이역만리 차가운 남의 별빛 아래서 그리운 고향을 염원하며 쓰러져 간 선열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매화의 고귀한 향기를 맡는구나. 오늘의 가려진 역사는 비밀의 태양아래 지금도 숨 쉬는 그들의 영혼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264 그는 소금 눈으로 지금 잔존하고 있다. 2015년 여름에 찾았던 이육사의 마지막 장소에 눈이 오는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역사적 시간으로 쌓이는 순간에도 눈물이 녹을 수 있도록. ● 이육사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이다. 수차례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고 1944년 해방을 1년 앞두고 1944년 1월 25일 베이징 일본 총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그는 항일 무장 투쟁가이며 실천적인 민족저항시인이다. 지금 베이징 감옥 그 자리엔 환희의 꽃말인 나팔꽃이 청포도 가지위에 피어 있다. 죽음이 기쁨이 되는 조건은 완전한 독립일 때 절정을 이룬다. 264 그는 탁월한 문학인이다. 동시에 항일 무장 투쟁한 독립 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1934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작성된 그의 사진에 구멍를 내고 뚫린 상처를 배면으로부터 밀어내 회화적으로 치유하고 싶었다. 영원한 시인이고 싶었던 그가 왜 무장투쟁을 꿈꾸었을까. (2015. 9.) ■ 권순왕

Vol.20151006i | 권순왕展 / QWONSUNWANG / 權純旺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