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김영현展 / KIMYOUNGHYOUN / 金榮炫 / painting   2015_1003 ▶ 2015_1015

김영현_기억을 걷는 시간_코튼지 동양채색_130.3×193.9cm_2015

초대일시 / 2015_1008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09:00am~10:00pm

한가람 아트갤러리 HANGARAM ART GALLERY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194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B1 Tel. +82.2.535.6238 hangaramartgallery.com

김영현의 오늘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오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여전히 봄 하늘은 햇살에 아른거리고 봄비 먹은 꽃망울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피어나는데, 무지개 빛 세상은 순간순간 변화하며 빛을 발하는데, 어찌 화면을 색색의 화려함과 세련된 붓질로 채우지 않을 수 있을까? ● 세상의 색은 그대로인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눈에는 오색 무지개도, 에메랄드빛 봄 하늘도, 연분홍 꽃잎도 빛을 잃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아름다운 봄은 상처가 되었다. 그 순간 이전부터, 운명처럼 벌어질 슬픔을 감지했을지 모른다. 떨어지는 꽃잎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 이 시대에, 어찌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을까? ● 주변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화려한 도시의 밤이, 잘 가꿔진 정원의 뜨거운 태양이 보이지 않냐고. 왜 어두운 그곳에서 슬픔을 이야기 하냐고. 왜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자꾸 보여주려 하냐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현은 세상을 보려한다. 희번쩍거리는 도시의 환등상에 가려진 슬픔을, 거대한 바벨탑에 가려진 회색빛 시멘트 덩어리를 보려한다. 위정자들의 달콤한 약속에 가려진 아픈 진실을 보여주려 한다. ● 오늘, 우리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 그리고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치유를 해 줄 수 있을까? 김영현의 작품은 우리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성공, 발전이라는 도시의 마약에 취해 아픔을 있게 만드는 예술이 아닌, 어쩌면 날카롭고 거칠게 또는 무던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바라볼 수 있는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김영현_남겨진 너의 노래_코튼지 동양채색_116.8×80.3cm_2015
김영현_바람인가요_코튼지 동양채색_116.8×80.3cm_2015
김영현_생명은 밤에도 핀다_코튼지 동양채색_135×70cm_2015

서사적 회화 ● 모더니즘이란, 발전이라는 거대한 희망의 허상 속에 세워진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 발전의 허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예술은 허상의 이미지를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모더니즘 회화란 회화가 본디 가지고 있었던 무수한 색과 선의 목소리를 지워 버리고 단지 시각적 영역으로 한정지으려는 노력을 한다. 그것이 더 고급이고 멋진 상품임을 강조하며, 초역사적 건축물의 시멘트 덩어리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그와 함께 이야기 한다는 것은 여성주의적인 것, 동양적인 사고인 것, 유치한 아이스러운 것으로 회화의 외부로 밀쳐 내 버렸다. ● 회화가 모더니즘의 옷을 입으면서 거세시킨 서사를 김영현은 회화작품으로 다시 불러온다. 모더니즘 회화의 시각에서 서사적인 회화란, 덜되고, 거칠고, 부끄럽고, 무언가 모자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짧은 역사를 넘어 회화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처음 인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본능, 바로 그곳에서 회화가 가지는 본질적인 역할을 간과 하면 안 된다. 김영현의 작품을 읽어가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의 세련된 옷을 벗어던지고 원시적 알몸으로 읽어나가야 한다. ● 전통적 한국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가는 것이다. 김영현의 작품은 한국화의 전통적인 서사 속에 놓여있다. 그의 작품은 시각적이기 보다는 촉각적이며, 어떤 환상과 환영을 담기 보다는 화면의 표면에 아로새기는 붓질의 노동을 담고 있다. 눈이 아니라 그림의 피부로 작품을 느껴야 한다. 무수한 붓질 속에 담긴 땀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의 표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 그가 화면에 가져오는 오브제들은 각각의 성격과 이야기가 있다. 읽으려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모더니즘 전통의 해석법을 살짝 내려놓는다면 아주 쉽게 읽혀진다. 바로 그 점이 독특한 부분이다. 마음을 놓고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그림 속에 담아내던 마음들을 떠 올린다면 쉽게 읽어 낼 수 있다. 동자승이 되어 금강산을 유람하며 전통 한국화를 읽어가듯 한국의 오늘을 여행 하면 된다.

김영현_바라만 보네요_코튼지 동양채색_135×70cm_2015
김영현_조금 느린 노래_코튼지 동양채색_193×130.3cm_2015

오늘 ● 저 높은 콘크리트 상자 속에서 당신의 삶은 행복해지고 있습니까? 대지를 가르는 송전탑 덕에 당신의 일상은 윤택해 지고 있습니까? 돌부리 하나 걸리지 않는 포장된 길을 달리며 당신의 주말은 행복합니까? 작품을 따라 들어간 표현의 시간과 관객이 발 딛고 서 있는 무채색의 콘크리트의 표면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 김영현의 작품은 고상한 모더니즘의 시각적 코드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졸렬하고 거친 붓질을 그의 조형 언어로 불러온다. 그리고 끊임없이 현실의 표면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질문한다. 당신은 이 모순적인 오늘이 안 보이냐고. (2015년 4월)

김영현_가지마세요_코튼지 동양채색_60×40cm_2015

다시 폐허에 부는 바람 ●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았던 2015년의 뜨거운 더위가 한풀 꺾였다.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신화와 같은 낙관론은 무참히 폐기되고 있다. '헬 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옥, 폐허의 잔해를 둘러본다. 자살율과 실업율과 같은 수치가 아닌 잘 닦인 도로와 번쩍거리는 건물, 정비된 하천에서 예술가는 슬픔을 느낀다, 크레인이 움직이는 풍경에서 지옥의 아우성을 듣는다. 달리는 기차에서 보이는 유령과 같은 건물들, 마포대교의 기만적인 생명의 전화. 바람이 분다. 그럼에도 우리가 시를 쓴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고 숨 쉬고 있는 증거다. 물질만능과 인간소외의 풍경에서 작가는 아이와 동물들을 이용해 자신을 투영한다. 무덤을 지키는 석상과 말라버린 나뭇가지는 자연의 죽음을 은유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잘한 붓질의 불안한 호흡 속에서, 아직은 살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대지의 숨결을 느껴본다. 살아야겠다. (2015년 9월) ■ 안은하

Vol.20151003b | 김영현展 / KIMYOUNGHYOUN / 金榮炫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