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달빛

해련展 / HAERYUN / 海連 / painting   2015_0922 ▶ 2015_1005 / 9월27일 휴관

해련_Lunar Hal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1×116.6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련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0922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_02:00pm~07:00pm / 9월27일 휴관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Tel. +82.2.3141.8842 cyartspace.org

주술적 매개로서의 상징 이미지 - '조각 달빛'에 대하여 ● 미술의 역사에 대한 서적들을 살펴보면 예술의 기원이 주술적 행위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설명하는 예가 많이 있다. 인간이 생존의 한계 지점에서 초월적 존재를 향해 이미지와 같은 상징 체계를 통하여 기원하는 바를 담아내고 이를 기록하는 행위는 주술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행위이었다는 말이다. 해련 작가의 작업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본인의 작업 행위가 단순히 시각적이고 조형적인 실험에 그치지 않고 의미와 기원을 담아내는 매체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가 붓질을 하는 행위가 일종의 푸닥거리가 되어 인간의 내적 욕망으로 기인한 갈등이나 불안과 같은 정서들로부터 벗어나 평안과 안녕의 상태로 치유되기를 희망한다.

해련_stage no.02_캔버스에 유채_116.6×91cm_2015
해련_stage no.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30×120cm_2015

그는 이러한 작업 행위를 몸으로부터, 다시 말해 몸의 감각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재료의 물성에 대해 몸이 반응하는 원초적 감각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때 그 이전의 구상 작업을 할 때보다 더 감각이 확장됨을 느꼈다고 한다. 최근 그의 작업이 옻칠 재료까지 이르게 된 것은 역시 이러한 재료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감각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족이 옻칠을 즐겨 사용하였고 원시 시대에는 옻칠의 일종인 주칠을 인골에 하여 세골장이라는 방식으로 잡귀를 쫓고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였던 점에서 보면 물질에 대한 원초적 감각을 회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그의 주술적 작업방향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해련 작가는 물질성 뿐만 아니라 '조각 달빛'이라는 주제로 조각난 달을 상징적 이미지로 하여 에너지와 파장이 전달되기를 염원하는 조형적 구조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상징 체계가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자연의 사물을 대신하고 있는 듯한 부채꼴 모양의 추상적 이미지들은 달빛의 조각들이자 각기 에너지의 발산하는 상징체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 세계를 기운의 흐름 속에서 치유되는 공간이 되기를 기원하는 부적처럼 매개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해련_Woods_캔버스에 유채_162×390cm_2013
해련_Playing_캔버스에 유채_53×201cm_2014

작가는 예술적 행위가 예술작품이라는 시각적 감각에 기여하는 물질적 체계를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인간의 세계에 비물질적 세계의 기운을 연결시키고 인간의 내면 세계에도 유익함을 주는 매개적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관객에게 시각적 감각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일종의 기운으로 다가오는 상징물이자 주술적 의미의 상징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 ● 이것은 신령이나 초월적 세계에 대한 믿음과 상관없이 인간 본연의 초월세계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의 욕구에서 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작업이 실제 영적 작용이나 효력이 있고 없음을 떠나 예술 행위가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 된다. ■ 이승훈

해련_Boom_옻칠목태캔버스에 나전, 옻칠_38.8×47.5cm_2015
해련_The frontier area_옻칠목태캔버스에 나전, 옻칠_24.3×33.5cm_2015

인간을 비롯한 생물뿐 만 아니라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온전하게 무한할 수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유한한 것들에 내재한 원초적 불안 속에 살아간다. 완전체를 향한 욕망으로 끊임없이 갈등하며 매 순간 불완전한 존재임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 우리네 전통신앙인 정화수의 믿음 속에는 정한 시간이라고 하는 관념의 시간이 존재했다. 달의 기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한밤중, 자정이나 샛별이 스러지기 전의 새벽은 가장 정한 시간이라고 한다. 달빛의 맑음은 신앙의 정심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 하는 이미지로 형상된다. ● 그렇게 영속하다고 믿은 달의 일부– 달의 빛 –가 물을 매개로 마음의 평안을 갈망하는 신앙심과 함께 신령 앞에 바쳐진다. 본인은 인간 내면의 조형 커뮤니케이션을 완전한 형태의 달이 아닌 그 불완전한 파편을 통해 일상의 안녕을 염원해 본다. ● 이전에 해체되고 파편들이 난무하던 이미지들은 단순한 조형으로 변화되었다. 몸을 축으로 움직이는 부채꼴의 파편들, 날이 선 조각난 형태들, 붓질의 반복에서 오는 색채융합과 시간 속에 갇힌 레이어는 평면 속에서 시각의 무한 공간을 만들어 한 폭의 놀이가 시작된다. ■ 해련

Vol.20150922g | 해련展 / HAERYUN / 海連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