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918_금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풍년로 162(가경동 1411번지) 제1전시장 서부로 1205번길 183(가경동 633-2번지) 제2,3전시장 Tel. +82.43.236.6622 www.spacemom.org
청주 시내 가경동에 위치한 스페이스몸은 2000년 7월 동시대 젊은 미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이후 2005년 12월에는 미술관으로 등록하면서 전시장의 명칭은 스페이스몸미술관으로 바뀌었고, 작가의 개인전을 위주로 운영되던 이곳의 전시는 다양한 주제 기획전으로 확대되었다. 올해로 설립 15주년을 맞는 스페이스몸미술관은 그간 90여회 이상의 자체 기획전을 개최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이런 의욕적인 전시활동을 수용하기 위해 전시 공간 또한 시내의 제1 전시장에서 외곽의 제2, 제3 전시장으로 확장되었다. 미술관으로서의 위상과 특색 있는 전시공간을 갖춘 스페이스몸미술관은 지난 15년간 한편에서 동시대 미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소개하고, 다른 한편에서 관객 일반을 위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운영하여 미술을 둘러싼 창작과 향유 양 방향의 지원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 스페이스몸미술관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술의 다양한 양태를 수용하려는 노력으로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안목을 소개하고 기존 시각에 탈 시각을 만들어가는 주체들의 깊이 있는 작품발표"를 돕는다는 취지하에 "회화, 조각, 공예, 사진, 설치미술, 영상매체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현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주력해 왔다"고 운영 방향을 밝히고 있다. 설립 이후 15년간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소개하고 머금는 한국 미술의 '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인데, 90여회에 이르는 이곳의 전시연혁을 살피다 보면, 동시대 미술의 다채로운 흐름을 소개하는 횡적인 연계의 축과 함께 또 하나의 흥미로운 축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현대미술과 전통문화를 연계하는 시대적 연장의 기획전들이 그것이다. ● 일례로, 2006년의 『옹기! 그 힘과 울림』전은 전통 옹기와 현대 도예가의 작품을 연계하여 전시했으며, 2007년의 『최소한의 흔적 – 청화백자』전은 청화백자와 간결한 단순성을 키워드로 작업하는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했다. 2008년에는 동자석과 문인석 등 옛 석인과 얼굴을 주제로 한 현대 작품을 비교하여 살펴보는 『얼굴 그리고 기억 – 얼굴, 욕망의 파사드』전을 개최했고, 2009년에는 『소리풍경』전으로 국악과 음악성이 강한 현대 회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그밖에도 해주항아리, 옹기, 옛 그릇, 삐삐선 공예품 등과 현대 미술 작품을 아울러 전시하는 흥미로운 기획전을 꾸준히 개최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2013년에는 『장소를 품다』 연작의 첫 전시로 해주항아리를 집중적으로 소개했으며, 올해에는 그 후속으로 『장소를 품다 – 회령』전을 개최하고 있다. ● 20세기 서구 현대미술은 장르별 구분과 경계에 의한 매체 특정적 미술의 발전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개관한 스페이스몸미술관은 그러한 현대미술의 장르별 구분을 다양한 장르 간 경계 넘기로 일차 극복하고, 서구식 현대미술과 전통문화의 다채로운 조우 및 연계를 모색하는 전시로 다시 한 번 극복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가들을 부지런히 초대하는 동시에 특색 있는 민속 공예품을 꾸준히 수집하고 소장한 것이 스페이스몸미술관의 차별화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흥미로운 전통과 현대의 만남전을 기획한 것이 지난 15년 이곳의 전시연혁을 이끌어온 주요한 기틀이 되었다. 현대의 작가들을 선별하여 꾸준히 소개하는 것이 몸의 전시활동에서 중요한 근거이지만, 다른 한편 전통 공예품에 주목한 것이 몸 컬렉션의 특색이며 이처럼 다채로운 기획전을 개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전통과 조우하여 활성화되는 현대 ● 스페이스몸미술관이 주목한 전통 공예품은 옛 옹기, 청화백자, 석인, 동자석, 해주항아리, 회령항아리, 삐삐선 공예품 등 본격적인 미술품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의 요소를 담고 있는 기물이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민예품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몸 컬렉션의 이러한 특징에서 일제강점기 조선 민예품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의 긴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야나기는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누렸던 고급 미술품보다 이름 없는 장인이 만들어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던 소박한 기물에서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일본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불완전한 형태와 자연스러운 색채를 보여주는 조선의 민예품을 사랑하여 그러한 민예품을 수집하고 그 미적 가치를 찬미하는 민예론을 발전시켰다. 야나기의 민예론은 탁월한 기교와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지배계층의 엘리트 미학보다 사회 기층의 소박한 기물과 공예품에서 고유의 미감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저항적ㆍ대안적 속성을 지닌다. 이런 야나기의 민예관은 식민지 조선의 소박한 공예품을 다시 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많은 재력가들과 소장가들이 백자 항아리와 조선 목가구, 민화 등을 수집하고 완상하는 골동 취미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민예품의 가치를 발굴한 야나기의 민예론은 제국 지식인의 식민지 백성을 향한 연민과 동정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를 남기고 있으며, 일상의 기물을 미학적 가치로 박제화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 몸 컬렉션은 한편으로 야나기 이후의 수집과 완상 취미를 계승하고 있지만, 그 미학적 가치를 현재 활동하는 미술가들의 창작과 영감의 원천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예 본래의 가치에 한층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옹기, 동자석, 해주항아리, 회령항아리 등 공예품의 조형적 특징을 현대 미술품과 일 대 일로 비교하기 보다는 그 기능적 요소를 환기하고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미학적 특성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동시대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작을 독려한다. 또한 그러한 창작의 결과물을 전통 공예품과 병행하여 전시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도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의 동인과 미학적 감성의 공유를 목격하도록 한다. ● 다소 느슨하지만 유연한 제안으로 전통과 현대의 매칭을 꾀하는 스페이스몸미술관의 기획전은 특별히 고급미학이 아니면서도 자유롭게 변신하며 새로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는 생활의 멋과 창작의 맛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은 몸의 기획전에 참여한 동시대 미술가들의 이름과 함께 나란히 출품작가의 이름처럼 등장하는 청화백자, 해주항아리, 옛 석인, 삐삐선 바구니 등의 명단에서 찾을 수 있다. 몸이 수집하고 재조명하는 민속 공예품들은 수집과 완상의 대상으로 박제화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 이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물이며 형태적인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로써, 민속 공예의 전통에서 발원하는 유연하고 유기적인 조형의 감각이 이 시대의 창작의 요인으로 작가들과 교감하고 관객들과 호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회령항아리의 매력 ● 2015년 스페이스몸미술관의 전통과 현대의 조우 기획전은 『장소를 품다 – 회령』으로 꾸려졌다. 이미 여느 출품작가의 이름처럼 등장했던 청화백자나 해주항아리 등의 명칭이 몸의 전시 이력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올해의 기획전에 등장하는 회령항아리는 '회령'이라는 지명으로 그 낯선 새로움이 더하다. ● 한반도 최북단 두만강 유역을 지칭하는 '회령'이라는 곳은 20세기 전반까지는 왕래가 가능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분단 이후에는 지구상의 그 어떤 곳보다 멀고 낯선 곳이 되었다. 식민지 조선의 야나기는 갈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갈 수 없는 회령 지역에서는 12세기 이래 매우 이색적인 도자기가 생산되었는데, 청색, 분홍색, 연보라색, 회색 등 여러 가지 색채를 한꺼번에 지닌 화려한 표면에 소박한 기형을 자랑하는 생활 자기였다. 당시 함경북도 회령 지방은 여진족이 건설한 금(金)나라의 영토였는데, 금이 세력을 확장하여 중국 본토의 송(宋)을 점령하면서 중국 하남성 우주(禹州)지방의 균요(鈞窯)의 도공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켜 균요 계통의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회령항아리의 기원이 되었다. 질 좋은 점토가 다량으로 생산되고 땔감이 풍부하여 가마터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회령 지역에서 송대(宋代) 5대 자기 중 하나로 꼽히는 균요 스타일과 비슷한 도자기가 생산된 것이다. 이는 지푸라기 재를 유약으로 사용하여 폭넓은 자연적 색채를 보여주는 독특한 유형으로 한반도의 어떤 양식과도 달랐다. 청자 유형의 하나인 송대의 균요 또한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 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예로 꼽히는데, 푸른색에서 연보라색까지 자연 그대로의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색채를 가마와 유약, 소성의 과정을 무작위의 우연적 현상에 의존하여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런 균요의 양식이 함경북도 회령 지방에 전해지고 이는 다시 임진왜란 중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에 의해 일본 다도(茶道)의 3대 명기(名器) 중 하나로 꼽히는 가라츠(唐津) 자기의 기원이 되었다. ● 회령항아리는 추운 북한 지방에서 직접 불에 올려놓고 음식을 끓일 수 있도록 1,300℃ 내외의 고화도에 구웠고 밑바닥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아 불 위에서도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했다. 파르스름한 청색과 짙은 자색, 두텁게 칠한 흰색 등이 자유롭게 교차하는 회령항아리의 매력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자나 청자의 미감과 완연히 달라 도자에 문외한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 중국 도자의 파격이었던 균요는 회령항아리의 기원이 되고 이는 일본 규슈 지역에서 생산되는 가라츠 자기의 기원이 되는 도자의 디아스포라가 인상적이다. 가라츠 자기는 고도로 정제된 일본 다도 의식 내에 불완전함과 평범함의 미를 즐기는 '와비 사비(わび・さび 侘・寂)'의 정신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중국에서 발원하여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서 번성한 단순하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의 도자기는 지역과 시대의 경계를 넘어 미적 파격과 그에 대한 폭넓은 공감을 입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꾸미지 않은 비대칭의 소박한 형태와 무작위(無作爲)의 우연성에 의해 발현되는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을 허락하는 것이 균요-회령-가라츠를 잇는 동아시아 도자 전통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불완전함과 평범함, 단순하고 소박한 자연미를 즐길 수 있는 여유와 호방한 기질이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3국을 잇는 도자 전통에서 공통분모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미적 의식의 발현이 이번 스페이스몸미술관의 기획전에 참여한 우리시대 미술가들의 영감과 상상력, 창작 의욕을 자극하는 키워드로 제공되었다.
화려한 원색의 향연 - 유근영 ● 2015년 여름 스페이스몸미술관의 부름을 받은 유근영, 차명희, 채우승, 정승운, 전상용과 김기이의 뮈우다 팀은 몸이 소장한 다양한 회령항아리를 감상하고 그 미학적 특징과 역사적 유전에 대해서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이미 유연한 상상력과 호방한 기질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번 기획전을 통해 지금은 가볼 수 없는 지역에서 유물로 전하는 회령항아리를 보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발현되고 향유되는 미적 감각과 조형적 특성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었다. 백자나 청화백자, 분청사기 등 흔히 알려진 전통 도자기와 달리 오지유를 입혀 전면에 아롱진 윤기가 돌고 이중 시유로 깊고 오묘한 빛깔을 내는 회령항아리의 미학적 특성이 이번 기획전의 주제로 제시되었고, 참여 작가들에게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을 발전시키는 과제가 부여되었다. 그리고 한 달 여 숙고 끝에 창작의 결과물이 몸 전시장 1, 2, 3관에 펼쳐졌다.
먼저 2관 벽 전체를 채운 유근영의 회화는 화려한 원색의 향연으로 회령항아리의 다양한 색채 감각을 반영했다. '엉뚱한 자연' 연작으로 명명된 유근영의 회화는 '자연'을 주제로 하지만 실제 풍경을 마주하여 그리기보다 작업실에서 자연에 직면했던 경험을 근거로 그린 것이다. 형광빛 핑크색과 짙은 녹색, 청보라색과 연녹색 등 채도 높은 밝은 원색들이 이웃하고 중첩하면서, 고사리 순처럼 구불거리는 형태나 애벌레의 잔등처럼 꿈틀거리는 형상을 만들어낸다. 강렬한 원색과 두텁게 바른 중층의 물감, 역동적인 필선들은 이성보다는 직관을 환기하고 의식보다는 무의식을 개방시킨다. 꽃과 풀, 나무, 물고기, 곤충 등 유기적인 형상을 연상시키는 유근영의 이미지는 자연 그 자체의 구체적인 형상을 닮기보다 약동하는 자연의 힘과 원초적인 생명력을 표현적인 원색의 향연으로 드러내 보인다. ● 몸 전시장 2관의 거친 노출 콘크리트 벽을 배경으로 표현적 정서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유근영의 회화와 회령항아리는 우연성과 무작위의 제작 방식에서 비롯되는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운 생동감으로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는 교감을 이룬다. 일상적인 생활 용기로 제작된 회령항아리는 천연 지푸라기 재 유약을 이용하여 광범위한 청색, 흰색, 갈색 등을 자유롭게 구사하는데, 자연에 대한 감응에서 비롯되는 유근영 회화의 화려한 원색은 동아시아 도자 중 가장 폭넓은 색채의 변주를 자랑하는 회령항아리와 함께 하여 아름다운 다성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유근영 회화에서 두터운 물감의 재질감은 이중 시유하여 중층의 오묘한 색감을 자아내는 회령항아리의 표면과 닮았고, 우연적인 제스처의 붓질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유약의 흔적과 호응한다. 유근영의 회화는 붓과 물감, 여러 화구들로 가득 찬 인상적인 작업실에서 일상처럼 제작되는데, 박스 형태의 책 케이스를 활용한 설치 작품은 그런 일상의 요소를 재치 있게 반영한다. 미리 계산하여 정제된 형태로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고급 자기와 달리 가마와 유약, 소성의 과정에 우연과 즉흥성의 여지를 광범위하게 열어두는 회령항아리의 미적 파격은 유근영의 회화와 일상성, 우연성, 폭넓은 색채의 향연 면에서 잘 부합하는 추임새를 이루고 있다.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교감 - 차명희, 정승운, 채우승 ● 몸의 3관 전시장에는 중앙에 회령항아리를 두고 차명희의 회화, 정승운의 설치, 채우승의 구조물이 배치되었는데 이들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긴밀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2관을 지배하는 원색의 색채 감각은 배제되었으나 회백색을 주조로 이중 시유한 회령항아리의 은은한 푸른색의 요변을 연상시키는 청회색의 변주가 3관 전시장을 하나의 유기체로 감싸 안는다.
차명희는 캔버스에 회백색의 바탕색을 칠하고 서예를 연상시키는 필선을 긋는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과 붓, 목탄을 사용하지만, 흑과 백, 그리고 회색조를 기본으로 하는 그의 회화는 종이와 먹에 의거하는 동양화의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으며, 구상적인 형상을 제거하고 필선의 속도감과 에너지로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외적 재현보다 내적 발현에 의미를 두는 추상의 미학에 충실하다. 넓은 붓으로 바탕색을 칠하고 붓이나 목탄으로 선을 긋고 다시 칠하기와 선긋기를 반복하는 차명희의 회화는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액션 페인팅이 교차하여 접점에 존재한다. 거듭 펴 바른 회색 그라데이션의 표면 위에 수행적 행위 혹은 추상적 제스처의 필선을 부가하는데, 이 과정에 화면은 작가의 내면적 주관을 드러내는 바탕이자 우연과 무의식이 표출되는 무대가 된다. ● 차명희의 회화에서 중첩된 회색의 그라데이션은 두텁게 백토분장하는 회령항아리의 이중시유법과 닮았으며, 즉흥적으로 그어나가는 필선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유약의 우연적 흔적과 공명한다. 회령항아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푸르스름한 요변은 차명희의 회화 위에 화면을 대하는 각도에 따라 언뜻 언뜻 모습을 드러나는 푸른 터치의 필선으로 절묘하게 반영되었다. 리드미컬한 선으로 자연스러운 행위의 흔적을 남기고 무작위의 자연적 현상에 의지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차명희의 회화는 오랜 동안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였는데, 이는 천연 재 유약과 우연적 소성으로 제작되는 회령항아리의 추상적 아름다움과 맞닿는 지점에 존재한다.
'공제선'을 주제로 다년간 작업해온 정승운은 지금은 갈 수 없는 회령 지역의 산세를 연상시키는 모눈종이 뭉치를 회령항아리 위에 결합시켰다. 공제선은 하늘과 지형이 맞닿는 선을 의미하는데, 정승운은 그간 '공제선'의 주제로 고향 강진의 산 능선,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시의 스카이라인,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진 다도해의 풍광을 몇 가지 방식의 구조물로 재현해왔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점의 인상적인 스카이라인을 허공과 실재, 배경과 양감을 뒤바꾼 것 같은 방식으로 그려내는 정승운의 방식은 흔히 지형을 계측하고 축도하여 평면 위에 옮겨 놓는데 사용되는 제도용 모눈종이를 만나면서 일종의 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지형에 대한 관심을 제도용 모눈종이 위에 옮겨놓기 보다 오히려 그 종이를 구겨버림으로써 평면과 공간, 2차원적 도식과 3차원적 부피감이 반어적으로 치환하는 역설적 해법을 발견한 셈이다. ● 최근 서울 독일문화원의 로비와 계단 등에 긴 박스형 구조물을 이용한 설치에서 정승운은 파란 실선의 제도용 모눈종이를 구겨 '청산'의 형상을 가시화하는 방법을 선보였다. 이번 몸의 기획전에서는 독일문화원 건물의 말구유 형상의 트러프 대신 둥근 회령항아리가 그의 청산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직사각형 박스 형상의 트러프에서 설산 혹은 빙하를 연상시키는 구겨진 모눈종이 뭉치들은 이제 둥근 회령항아리와 함께 하여 함경북도 회령의 고산준령(高山峻嶺), 지금은 갈 수 없는 낯선 곳이 되어버린 그곳의 산과 하늘을 일깨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그 구겨진 모눈종이 뭉치가 회령항아리의 기원이 되었던 중국 균요의 하늘과 땅, 일본 규슈의 하늘과 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제도용 모눈종이를 구겨 회령항아리 안에 채워 넣은 정승운의 공제선 연작은 종이가 구겨진 정도에 따라 파르스름한 빛을 더하면서 회령항아리를 감싸는 짙푸른 유약의 광택에 호응했다. 회령항아리 위로 솟아오른 구겨진 모눈종이의 매스는 회령의 하늘과 산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회령도자의 푸르스름한 요변을 재치 있게 반영하는 이중의 환유법이 되었다. 재지 않고 구겨버림으로써 회령의 산세와 거기서 생산된 이색적인 자기의 미감이 교묘하게 중첩되었다.
조각을 전공한 채우승은 있는 것과 없는 것, 존재와 부재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조각적 형상을 만들되 신체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옷자락을 만들거나, 얇은 한지를 오려붙여 3차원적 입체감을 암시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가 현현과 소멸이 그다지 대립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깨달음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상을 만드는 조각가이면서, 존재하는 것으로 부재하는 것을 지시하거나 반투명한 한지로 3차원적인 볼륨감을 드러내는 것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가시화하기 위해 채택한 방식이었다. ● 정승운이 평면의 종이를 구겨 3차원적 형상을 만들었다면, 채우승은 3차원적 부피를 평면으로 펼쳐놓는 방법으로 회령항아리에 대한 오마주를 표했다.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항아리의 전개도 형태로 엮은 뒤 그가 즐겨 사용하는 한지를 감았다. 조각가답게 그는 회령항아리의 색채보다 기형과 내부의 빈 공간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일상의 생활용기로 사용되는 회령항아리는 물레 성형보다 점토판을 붙여 두들겨 형태를 만드는 전통 옹기의 제작법으로 빚어진다. 그리고 그 형태는 고급 자기의 균형 잡힌 정제미보다 비대칭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대나무를 얇게 쪼개 항아리의 전개도로 엮은 다음 한지를 감은 채우승의 작업은 점토로 빚어 기벽을 세우고 그로써 내부의 빈 공간을 머금는 항아리의 형태적 구성을 평면적인 전개도로 펼쳐서 보여준다. 구연부와 바닥면은 원형의 고리로, 기벽은 반원형의 호로 제작되었다. 기벽을 세워 내부의 3차원적 공간을 갖는 항아리의 형태적 특성은 평면의 구조물로 환원되고, 면의 형태로 제작되는 항아리의 기벽은 대나무의 선조로 환원되었다. 유연하게 휘어지지만 마디와 옹이의 흔적이 있는 대나무는 울퉁불퉁 흠이 있고 슬그머니 이지러진 회령항아리의 비대칭 기형과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그리고 채우승은 그 대나무 띠를 다시 한지로 감아, 있는 것과 없는 것, 담는 것과 담긴 것, 채움과 비움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예술과 일상의 접점 - 뮈우다(전상용/김기이) ● 이번 기획전을 위해 듀오 팀을 결성한 전상용, 김기이는 '움직이게 하다'를 뜻하는 고어 '뮈우다'를 팀명으로 정했다. 우연적 요소에 의한 자연적 현상을 폭넓게 수용하는 회령항아리의 미감을 현대의 조형적 어법으로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한 개인 작가의 개성을 강조하기보다 토론과 교감에 의한 공동의 작업을 지향하여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적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부친 문하에서 불교조각을 전수받는 전상용은 버려진 물건을 주워 불상을 단장하듯 개금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쓸모없어 버려지고 수명을 다한 것을 깨끗이 손질하여 금박을 입히는 방법으로 불멸의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길가나 쓰레기장에 흔히 볼 수 있는 양은냄비 뚜껑, 프라이팬, 맥주병, 플라스틱 수저, 돼지저금통, 의자, 깨진 거울 등 생활 폐기물들을 모아 깨끗이 닦아 금박을 입혔다. 작가가 수집한 물건은 더 이상 소용이 없어 버려진 물건들이며 그 용도와 수명을 다한 것인데, 전상용의 손에서 금박이 입혀지면서 다른 차원의 물건들로 환생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김기이는 불화의 밑그림인 불화초에서 영감을 받은 드로잉을 제작하고 숯과 오방색 천을 이용한 설치로 회령항아리를 듀오 팀의 설치 작업 안에 적극 수용했다. 몸 전시장 1관에는 오방색의 천이 회령항아리의 안을 채우고 하늘로 이어지는 길을 여는 가운데 불타고 녹슬어 버려진 자전거가 불탄 나무, 즉 숯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금박의 거울 너머로 승천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금박 거울 너머에는 지장보살이 관할하는 세상이 펼쳐져 있다. 버려진 밥상 위에 불탄 자전거를 타고 지옥을 돌아보는 지장보살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맞은편 드로잉에는 로봇들의 우주 공간 같은 가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 뮈우다 팀의 설치 작업은 가장 하찮은 것이 존귀한 것으로 환골탈태하고, 지상의 것이 천상의 것으로 환생하며, 낡고 오래된 것이 새로운 미래로 이행하는 윤회의 장면을 연출했는데, 다분히 종교적 의미의 설치 작업은 현대의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기물들과 무작위의 자연적 요소를 기꺼이 포용하는 회령항아리가 어우러지면서 완성되었다.
'몸'이 다음에 품을 '장소'는? ● 지난 십여 년간 스페이스몸미술관은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꾀하는 기획전을 꾸준히 개최해왔다. 전통 공예의 소박한 기물들과 현대 미술의 유연한 창작이 함께 하는 기획전으로 미술의 동시대적 확산은 물론 전통으로의 소급도 지속적으로 모색해온 것이다. 이번 『장소를 품다 – 회령』전은 회령항아리의 독특한 형태와 미감, 유래하는 곳의 지리적 특성, 그리고 동아시아 3국에서 비슷하게 번성한 도자의 역사적 공통점으로 인해, 예년의 다른 기획전보다 한층 강한 인상과 교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작품의 조형과 설치에서 회령항아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그 미감에 호응하는 창작을 선보였다. ● 1관에는 공간을 전체적으로 활용한 설치작품이 개진되었으며, 2관의 거친 벽은 강렬한 원색의 공명을 받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전통 창호와 중앙의 기둥을 특징으로 하는 3관에는 회령항아리와 긴밀하게 교감하는 회화, 설치, 조각이 혼연일체를 이루었다. 이색적인 회령항아리를 마주하는 관객들 또한 그 미감과 기능을 훌륭하게 반영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시대와 지역, 장르 간 구분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미학적 교감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스페이스몸미술관이 주목하는 전통과 현대의 조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이번 회령항아리 기획전을 통해 한층 뚜렷한 교감과 성과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전통 공예의 소장품에서 현대적 미감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스페이스몸미술관의 의욕과 도전은 그 제안에 적극 호응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창작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전의 키워드가 된 회령항아리와 몸 전시장의 특색 있는 전시공간을 활용한 창작의 결과물이 그 성과에 해당한다. 이제 '몸'이 다음에 품을 '장소'가 궁금해진다. ■ 권영진
Vol.20150918j | 장소를 품다-회령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