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체적 풍경III

김주연展 / KIMJUYON / 金周姸 / installation.photo.drawing   2015_0915 ▶ 2015_0924 / 월요일 휴관

김주연_이숙異熟IX_드레스, 씨앗_22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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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915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광주 무등현대미술관 Moodeung Museum of Contemporary Art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9(운림동 331-6 번지) Tel. +82.(0)62.223.6677

김주연의 작업을 읽는 두가지 방법1. 로고스, 에로스, 파토스 그리고 미끌어짐 김주연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 무등현대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을 들어서면 다소 긴 사다리형 구조의 전시장 한 가운데 등신대를 능가하는 연녹색 어린 싹들을 입은 붉은 벨벳 드레스가 조명을 받으며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대칭형의 균제미와 부분과 전체의 완벽한 비례를 지닌 '드레스'는 단연 미적 형상이다. 연녹색 싹들과 붉은 드레스가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어깨주변의 마른 싹들이 만들어내는 금실 수를 놓은 듯한, 마치 여왕 드레스의 견장처럼 느껴지는 이미지도 아름다움을 더한다. 전체적으로 미적 관조의 대상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여기서 '미적'이란 작품에서 재현적 요소 보다는 선 형태, 색채와 같은 형식적인 요소에 우선권을 주는 Kant로부터 시작되는 형식주의 미학개념의 근본이다.

김주연_이숙異熟IX_드레스, 씨앗_220cm_2015
김주연_이숙異熟IX_드레스, 씨앗_220cm_2015
김주연_이숙異熟X_씨앗, 신문7000부, 나무파레트_2015

그러나 김주연의 작품에서는 미적 미aesthetic beauty를 능가하는 관능미erotics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풍만한 하반신에 강낭콩 보다 더 붉은 드레스, 그리고 그 위에 뿌려지고 싹튼 씨앗들은 에로스적인 욕망 즉 자기보존의 무의식적 본능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근대미술Modern Art이 예술작품의 관능성을 의식적으로 억압해왔다고 비판한다. 모더니즘 미술의 토대를 제공한 칸트의 순수이성pure reason이나 무관심성uninterestedness(칸트미학의 핵심개념. 어의대로 나와 대상사이에(inter) 어떤 이익도 남지(rested) 않는 다(un)는 점을 강조하는 무관심성은 예술작품 고유의 관능성을 억압하는 대신 순수성 개념을 개발하여 후에 형식주의모더니즘 미술의 근거를 마련한다. 의 미학이 그 장본인이다. 따라서 미학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는 주장한다.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관능성erotics이다." 수잔 손탁, 이민아 옮김,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11, p.35.) ● 관능의 매력에 이끌려 작품에 다가서면 우리는 또 다른 반전(反轉)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관객이 다가설수록 작품은 점차 그로테스크해진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싹들이 빛을 향하여 질서 있게 덮여 있는가 하면 이미 생명을 다한 싹들이 마치 시체처럼 나뒹굴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같은 혼돈chaos의 풍경은 몰입이나 관조적 체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미적 쾌나 관능미의 체험과는 전혀 다른 체험에서 관람자는 이미 인식능력 밖의 세계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시선은 작품주변을 맴돌며 일종의 촉각적tactic 체험(시각이 대뇌작용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합리성과 이상성idealism을 따르는 만큼 정신에 의해 매개된 결과라면 촉각성은 직접 감각에 닿는 시각효과를 말한다.)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바로 숭고sublime 체험이다.

김주연_Metamorphosis I_악보위에 혼합재료_34.5×55cm
김주연_Metamorphosis III_악보위에 혼합재료_34.5×55cm

미학사에서 숭고란 미Beauty에 대하여 타자other로서 기능하여 온 영역이다. 미의 본질이 조화롭고 균형 잡힌 비례가 만드는 형식Form을 토대로 하는 로고스적 사고방식이나 그 형식으로부터 미적 쾌를 감상하는 조형예술에 있다면 숭고는 형식과 질서의 파괴, 과도함과 불균형, 비합리적인 충동 등을 특징으로 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양태로서 예술의 질료적인 측면인 파토스의 원리를 대변한다. 주로 음악 같은 시간예술체험에 그 원천을 두고 있는 숭고는 '지금, 여기'에 재현된 것 너머의 보여 질 수 없는 것이나 재현될 수 없는 것에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 이와 같이 김주연의 작품을 시각적이라고 명징하게 느끼는 순간 관객은 관능의 세계로 미끄러지게 되고 다시 관능에 빠지는가하면 이미 숭고의 세계를 서성인다. 이러한 숭고 체험으로부터 관객은 이미 평범한 공간space이 아니라 어떤 성스러운 장소place에 들어와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녀 자신도 포스코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2005) 의 부제를 "일상의 성소"라고 명명한 바 있다. ● 김주연에게 있어서 숭고란 길들여진 눈을 파기하고 타자성의 관점에서 자신을 발견하려는 재탐구의 결과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마치 이동통로passage 같아서 예술의 역능이 미끄러짐slippage(초현실주의 시인 바타이유가 Form에 갖힌 예술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Formless의 예술을 주장하면서 그 특성를 시각화한 용어. slippage란 마치 책을 펴 놓고 있으면 책장이 미끌어지면서 페이지가 넘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의식하지 않으면 언제 책장이 넘어 갔는지 인식할 수 없는데 바타이유는 예술의 진정한 목표란 이처럼 미끌어짐을 통하여 '관객의 기대를 실망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탈근대미술의 반 정초주의적인 국면을 제시하고 있다.) 에 있다는 바타이유의 주장과도 근사하다. 이점이 김주연의 작업을 범주화하거나 어떤 의미로 고정하기 힘든 까닭이다. ● 탈근대의 도래와 함께 시각예술에서는 해석보다는 소통이 먼저 전제되는데 김주연의 작업도 의미보다는 오히려 느낌으로, 판단보다는 다양한 감각으로 소통되고 있다.

김주연_유기체적풍경V_사진, 피그먼트 프린트_91×137cm_2012
김주연_유기체적풍경VII_사진, 피그먼트 프린트_91×137cm_2012
김주연_유기체적풍경VI_사진, 피그먼트 프린트_91×137cm_2012

2. 문턱을 넘은 주체 ● 김주연의 작품들은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두 개의 특성을 지닌다. 첫째 작품 혹은 작업은 하나의 실체적 사물이 아니라 마치 작동적operational 기능을 수행하는 힘이다. 둘째 매 전시마다 장소의 특수성이나 문맥과 상관적으로 그 작동방식을 바꾼다. 이와 같은 까닭에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그녀에게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세계자체는 없으나 대신 김주연이 보고 해석하고 평가하고 실천하는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이점은 니체의 관점주의perspectivalism(차이가 동일성으로 환원되는 데카르트의 원근법주의와 반대로 관점주의는 각각의 관점들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다르다는 사실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와 닿아있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전시장이나 관객을 압도할 만한 규모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때론 수만 평 잔디위에 눈에 띄기조차 힘든 1m크기도 않되는 작은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기도 한다. ● 이 같은 작업들은 기존가치의 몰락과 새로운 가치의 부상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가치들과의 투쟁을 특징으로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김주연 예술의 운명이다. 위험과 위기가 없는 삶이 존재할 수 없듯이 그녀의 작품도 그 사이에 위치한다. ● 이번 전시에서 잘 보여주듯이 '붉은 드레스'는 일별할 때 당연히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만큼 기존 작품œuvre들의 가치인 기념비성monumentality을 잘 재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시각에 가려져있던 촉각과 같은 비시각적 감각을 복권시켜 공간적이던 작업을 시간적temporal으로, 당당하던 기념비성을 사진이나 드로잉 같은 기록성documentality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시각중심주의ocularcentrism를 탈-중심화de-centering시키는 수행적performative인 전략을 작동시키고 있다.

김주연_산책II_비계지주, 알루미늄팻말, 텍스트

우리는 늘 한계limit 안에서 생각하고 욕망한다. 마찬가지로 작가들도 당대의 가치적 한계 안에서 작업을 하고 욕망한다. 그러나 그 한계 안에서 더 이상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작가들은 한계의 문턱threshold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욕망하게 된다. 푸코에 따르면 문턱이란 삶이나 예술행위에서 기존 가치를 전도시키는 마지막 말이다. 그러나 문턱을 넘는 작가들이 많지 않다. 작가 대부분은 한 한계 내에서 다른 배치를 하기는 하나 이미 부지불식간에 내면화되고 길들여진 시각을 바꾸지는 않는다. 위험과 위기를 무릅쓰고 문턱을 넘어 새로운 권력관계를 만드는 사람을 푸코는 주체라고 부른다. ● 김주연은 주체다. 길들여진 눈 즉 자기중심적인ego-centric 이분법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자기-중앙적network-centric(네트워크의 세계에서 그물망의 코에는 자기중심적인 원근법적 세계에서의 중심이 없다. 통일된 중심대신 여기에선 관점에 따라 모든 그물코들이 중심이 될 수 있다.) 인 열린 시선으로 삶과 예술을 수행하는 진정한 주체다. 이점이 많은 비평가들이 그녀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는 소이연일 것이다. ■ 엄기홍

Vol.20150915l | 김주연展 / KIMJUYON / 金周姸 / installation.photo.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