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912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01:00pm~05:30pm / 화요일 휴관
더텍사스프로젝트 THE TEXASPROJECT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290번지 www.facebook.com/thetexasproject2013
깨끗한 손, 더러운 손, 진노하는 손, 노동자의 손, 권력자의 손, 나라를 구한 손(안중근 의사의 단지), 나라를 팔아먹은 손, 어머니의 손, 아이의 손, 할머니 약손, 보이지 않는 손, 예술가의 손, 예술 작품 속 손, 갈구하는 손, 용서를 비는 손, 의지를 드높이는 손, 엉큼한 손, 빈 손, 예쁜 손, 상처 많은 손, 타인을 배려하는 손, 타인을 억압하는 손, 큰 손, 조막손, 내미는 손, 감추는 손, 만지는 손, 만져지는 손, 유혹하는 손, 입을 막는 손, 인간만의 손. (차주용 작업노트 중)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앙리 포시옹(Henri Focillon, 1881-1943)은 그의 짧지만 강렬한 에세이 「손을 예찬함(Eloge de la main)」을 통해서 인류의 끝없는 진보(進步)를 가능케 한 '손'에 경의를 표했다. 그는 '정신이 손을 만들고, 손은 정신을 만든다'는 표현으로 도구적 역할 이상으로서의 손의 재능과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이 표현하고 전달하는 상징성과 감정의 풍만함을 언급하며 손의 무한한 창의력을 재발견한다. 인간을 가르친 스승인 손은 자신이 변모시킨 모든 형태나 형식들과 끝없이 대결하면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인간을 번영케 하고, 그런 이유로 포시옹은 손에게 중요한 것은 행동과 진실을 위한 고유한 능력이지 편협한 척도의 엄격함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진과 조각을 예술 기법으로 주로 사용하는 작가 차주용에게도 손은 인간의 정신을 대변하며, 정신이 가진 온갖 종류의 의도나 욕망이 세계와 최초로 접촉하는 신체의 첨병이다. 작가는 손이 우리의 심리와 행동을 원초적인 촉각으로 번역하여 세상을 더욱 섬세하게 인식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에게 손은 그래서 예술가가 세계를 확인하는 통로이자 관찰의 대상이다. 부드러움, 딱딱함, 따뜻함, 차가움, 미끄러움, 물컹함, 거침, 날카로움, 연약함.., 그리고 그 안에 서려 있는 수많은 삶의 표정들과 신비로운 환상들. 작가가 확인하는 손은 외부의 유혹과 직접 접촉하고 세계를 건설하면서 '나'를 삶 속에서 감각적으로 서 있게 돕는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려는 의도와 그 의도를 가진 창작자 자신의 손에 대한 관심을 감상자들에게 동시에 전달하려 한다. 빠르게 완성한 드로잉과 오랜 시간을 투자한 돌 조각부터 사진과 행위예술(Performance) 그리고 전시 공간에서 직접 발상한 설치작업까지, 작가는 인간의 손을 담기 위해 자신의 손이 다양한 매체와 반응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작품 속 손은 인간의 모순과 진실이 교묘하게 중첩되어 '짓'으로 발화한다. 손짓은 내가 나의 내부와 외부 양방향으로 보내는 존재의 신호이다. 그 신호 안에서 우리는 얼굴이 다하지 못한 진실의 표정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서 읽을 수 있다. 차주용은 바로 우리의 이 표정에 주목한다.
사실, 전시가 열리는 '대안 공간 THE TEXAS PROJECT'는 과거 '미아리 텍사스'이라는 홍등가로 유명세가 대단했던 이 지역에서 실제로 영업을 했던 곳으로서 장소 특정적 성향이 강한 곳이다. 어찌 보면 위험한(?) 이곳에서 예술 전시를 연다는 것은 자칫 모험일 수도 있다. 흥미로운 공간인 만큼 그 흥미가 항상 말초적이지 않으리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여러 차례 전시장과 몇몇 집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일대를 사전 답사하였다. 예전에 넘쳤을 활기가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용도 폐기되어 가는 곳은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가를 불문하고 깊고 아련한 쓸쓸함을 불러오는 것도 몸소 느꼈다. 그가 고민한 점은 이곳이 지닌 역사에 대한 배려였다. 쾌쾌한 늦여름의 끈적함이 바로 근처 대형 백화점의 값비싼 시원함과 향수를 대신하는 곳, 옴닥옴닥 모여 붙어있는 여인들의 각기 다른 사연이 펑 뚫린 도시 대로변의 우쭐함을 대신하는 곳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한 웃음이 마음속 뜨거운 눈물을 대신하는 곳.., 이곳을 거쳤을 수많은 여인네를 연민의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세상과 거칠게 조우했던 '나'와 같은 우리의 이웃으로 보고자 함은 작가가 진지하게 했던 고민이었다. 차주용에게 이곳은 매끄럽고 영민한 피부에 대한 환영이 아니라 거칠고 지친 '살'의 진실이 녹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조각이나 그림을 잘(?) 그리려 하지 않는다. 인공적인 기교보다는 담담한 손짓으로 이미지를 확인한 눈이 느끼는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한다. 순진한 손짓은 붓으로 미끄러지며 곧 그림이 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도 최대한 작품에 개입하지 않고 행위자의 몸짓 안으로 스며들어 소통하고 그 흔적을 형상으로 인화한다.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그것이 인간만이 가능하다는 엄지와 검지의 정교한 맞닿음(「맞닿은 엄지와 검지」, 석조)이건, 불쾌한 포르노그래피에 담긴 탐닉하고 탐닉 당하는 손(「Drawing#25」, 드로잉)이건, 문명과 원시를 동시에 아우르는 인간 감정의 공통 기호로서의 손짓(「White#11」, 사진)이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위로나 분노로 표현하는 대신 한 걸음 다가가서 내미는 손으로 표현한다. 손이 인공적인 것들을 만들어내지만, 손이 인공적인 것들과 대결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기억하고 나의 모습을 세계의 본질에 투영한다. 타인을 소외시키는 개인의 욕망이 홍수를 이루는 도시의 냉정함에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는 것도 역시 우리들의 손이다. 작가는 우리가 손으로 다투었으니 그 손으로 화해하길 바란다. 귀를 손으로 받혀 작은 이야기까지 듣고자 한다. 정치하는 악수가 아니라 손을 잡아주는 것을 통해 타인의 아픔과 접촉하려 한다. 그렇게 그의 손은 우리의 희망이 담긴 초상이다.
손으로 손을 담아 인간의 끝없는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하는 작가는 이곳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곧 있을 겨울의 냉혹함을 예고하지만,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작가의 열정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인가, 세상에 반응하는 차주용의 손은 온갖 체액과 욕망이 젊은 여인들의 여리고 서러운 희망과 수없이 교차했을 이곳 미아리 텍사스촌에서도 온전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 이재걸
Vol.20150915f | 차주용展 / CHAZOOYONG / 車朱庸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