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118g | 차규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091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 일,공휴일 휴관
이화익 갤러리 LEEHWAIK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67(송현동 1-1번지) 1,2층 Tel. +82.2.730.7818 www.leehwaikgallery.com
일품(逸品) ● 강가의 여관에서 맑은 가을 새벽에 일어나 대나무를 보니 안개, 해, 그림자, 이슬이 모두 성긴 가지와 빽빽한 잎사귀 사이에 떠돈다. 가슴속에 갑자기 흥이 일어 드디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사실 가슴속의 대나무는 결코 내 눈 안의 대나무가 아니다. 그리하여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서 붓을 대 순식간에 변화된 모습을 그렸는데 손 안의 대나무도 또한 가슴 속의 대나무가 아니다. 요컨대, 뜻이 붓보다 먼저 있다는 것은 정해진 법칙이요, 정취는 법 바깥에 있다는 것은 변화의 기틀이니, 어찌 그림만이 홀로 그러하겠는가?(청나라 정섭(1693-1765, 호는 판교)의 제발(題跋) 중에서 발췌, 대나무와 난초 그림으로 유명하다)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칠한 뒤에 한다는 뜻으로 '그림에 하얀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이라는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가 공자에게 아름다움에 관한 질문을 하자 공자가 회사후소라는 비유로서 대답하여 이후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이 처음으로 배우는 일종의 미술이론이 되었다. 이는 구체적인 기술보다 마음의 바탕이 먼저라는 뜻으로, 공자의 예술사상을 대표하는 말이다. 공자는 예술의 효용가치는 인격의 완성으로 보았으며 예술로서 예(禮)를 완성한다고 보았다. 물론 회사후소란 오늘날의 젊고 혈기 방장한 현대미술가들에겐 고리타분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겠지만 기본적 소양(素養)을 갖춘 작가의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여 보면 보는 이의 감성을 울리는데 있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차규선의 그림 제작에 있어 첫 번째 단계는 회사후소이다. 분토와 물감을 섞어 캔버스에 배경이 되는 바탕을 칠한다. 동시에 화가의 마음을 다스리는 단계이다. 문자 그대로 해의반박(解義般礡)(세속적인 사고와 작법에 구속받지 않음을 이르는 말)하여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속에 쌓인 것을 풀고, 느끼는 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중국 한나라 채옹의 말은 후세 차규선에게도 그대로 통하는 말이다. 그는 그런 후에 밑바탕에다 백자의 느낌이 나는 물감을 전체 화면위에 뿌리고 바람이 지나가듯 붓을 그 위로 스치운다. 이는 흉내낼 수 없는 그의 자유스러운 성향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움이다.
차규선의 그 다음 단계는 전체 화면의 구도를 잡는 일이다. 그의 그림의 특성상 미리 전체적인 경영위치의 구상을 해놓아야 한다. 정섭은 눈 속의 대나무(眼中之竹), 가슴 속의 대나무(胸中之竹), 손 안의 대나무(手中之竹)라는 세 단계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차규선에게도 그대로 통(通)하는 회화 법칙이다. 차규선의 고향은 경주 남산 부근으로 소나무 풍경이 유명한 지역이다. 그곳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그곳의 감성을 논할 수 없다. 차규선은 자연경물을 관찰한 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구상한다. 특히 그의 그림은 마르기 전에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단번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구상하지 않으면 그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그린다기보다 '바르고 뿌리고 스치우고 긁어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두터운 오일 물감으로 덧칠하는 유화와는 차이가 있으며, 그의 그림이 동양적인 정취가 강한 것은 단순히 소재 때문이 아니라 제작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차규선의 문인적이고 한국적인 감성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구상은 실제로 그리는 과정에서 미리 눈으로 보고, 가슴 속에 생각했던 그것과는 차이가 발생한다. 본대로 그리고, 구상했던 대로 그리는 단계를 벗어나 실제로 그리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예술적 감흥을 자아내는 즉발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 차이는 예술적 보편성으로 설명되어진다. 모름지기 회화에는 법칙이 있으나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 회화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동서양의 미술사를 일견하더라도 과거를 답습하고 정해진 법칙만을 준수하는 과정에서도 통하는 말이고, 당대의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하는 말이다.
일품(逸品)이란 중국고대화론에서 회화의 품격을 논할 때 거론되는 말로 일상적인 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작품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차규선의 제작기법이나 태도는 일반적인 작가들의 일상적인 그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일부 현대미술가들의 괴팍함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인문적 소양 위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차규선은 우리와 동시대의 일품화가이며, 시공을 관통하는 예술의 보편성은 오늘날 차규선의 그림이 가지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 변길현
Vol.20150911e | 차규선展 / CHAKYUSUN / 車奎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