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Part 1. 글 그리다 기슬기_박은하_배미정_염지희 오민수_장진_지희킴_최영_함정식 Part 2. 그림 쓰다 김봄&김경해_김성윤&한은형_오석근&양진채 Part 3. 글을 엮고 짓다 백인태_위영일_이창훈
주최 / 인천문화재단_인천아트플랫폼 후원 / 인천광역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_대산문화재단 교보문고_열린책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9월26~27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 Tel. +82.32.760.1000 www.inartplatform.kr
글과 그림의 사이 Ut pictura poesis 시는 그림과 같아라 (호라티우스의 『시학(Ars poetica)』 중에서) 세 가지 경우 ● 1. 이런 경우 : 작품 없는 전시회 1961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태국 작가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는 2004~2005년에 걸쳐 로테르담, 파리, 런던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회고전은 지난 15년간의 작업을 정리하여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막상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볼 수 있는 작품이나 작품을 암시하는 그 어떤 물체도 없었다. 회고전이 열리는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전시 공간을 7개로 구획하고 있는 나무 가벽들이었다. 구획된 공간의 입구에는 티라바니자가 지난 15년간 개최했던 주요 전시들의 타이틀과 날짜, 갤러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세 가지 방식으로 작가의 지난 작품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나무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듣는 것이 있었고, 정해진 시간에 전시 가이드 투어, 즉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있었다. 연극 배우들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설명하며 가이드 역을 연기했다. 마지막 하나는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여 이어폰으로 지난 전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전시장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내용은 달랐다. 2. 그런 경우 : 말하는 미술 ● 최근 '말하는 미술'이라는 팟캐스트가 생겼다. 2015년 6월 6일자 방송에는 미술가 최정화가 초청되었다. 최정화 작가는 "저는 말하는 미술을 싫어하는데… 보여주는 사람인데…"라는 말을 시작으로 약 한 시간 동안 진행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가 각국에서 전시했던 경험과 작품 철학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구체적인 작품을 언급한 적이 있다. 1999년 '풀'이라는 공간에서 전시했던 작품에 대해 작가가 말했다. "…태국에서 사왔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세계의 선물'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금색 탑, 그리고 플라스틱 컵으로 만든 수평탑, 그 담에... 때밀이 타올을 수십 장 겹쳐서 색깔들이 중첩되어서, 형광색으로 보이는, 때밀이 타올로 만든 벽화…". 3. 저런 경우 : 허구의 작품 ●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을 보면 주인공이 미술관에 가서 한 시간 넘게 그림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새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보는 그림은 「문라이트」라는 제목으로 크기는 가로 70, 세로 80센티미터 정도이다. 주인공은 짙은 고동색, 진초록색, 귀퉁이에 아주 약간의 붉은 색 터치가 사용된, 명백한 드라마는 없으며 아주 관조적이고 내면적이며 평온한 풍경화를 보고 있다. 캔버스 한가운데에 완벽한 보름달이 있고, 하늘, 호수, 나무, 산, 개울 등의 자연 풍경도 보인다. 왼쪽 제방에는 인디언의 원추형 천막과 화톳불이 있고, 그 주변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있다. 말을 타고 수면을 응시하는 사람도 그려져 있다. ● 위 세 가지 경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정작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 그림 혹은 작품이 우리 눈앞에 없다는 것, 부재하다는 것이다. 작품은 없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 설명과 묘사만이 있다. 말로써만 존재하는 예술 작품. 과연 이 언급들의 대상이 되는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작품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억력이, 본 적이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 Part 1. 글 그리다 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세계의 모습 Imago Mundi」
□ Part 1. 글 그리다 ②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달빛 Moon Light」
'예술작품의 묘사', 에크프라시스(ekphrasis) ● 위 세 경우에서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서술법 혹은 수사법을 '에크프라시스(ekphrasis)'라고 한다. 그리스어 어원의 이 단어에서 ek-는 '밖으로', phrasis는 '이야기하다'라는 뜻이다. 결국의 의미는 '묘사하다'라는 것이지만 그 대상이 예술작품으로 국한된다. 에크프라시스가 사용된 최초의 문헌으로 꼽히는 것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이다.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 대서사시의 제18권은 아킬레우스를 위해 대장장이신 헤파이스토스가 방패를 포함한 무구를 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방패에 새겨진 여러 장면과 이미지에 대해 긴 설명과 묘사가 이어진다. 총 5개의 원 혹은 다섯 겹으로 구성된 방패 안에는 자연과 동물의 형상과 더불어 인간의 화합과 갈등을 표현한 형상들이 담겨있다. 학자들은 방패 속에 새겨진 이 형상과 이미지들을 호메로스가 전하고자 하는 '세계의 모습(Imago Mundi)'이라고 칭한다. ● 이외에도 여러 문학 작품에서 에크프라시스를 찾을 수 있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의 3장, '물기둥 여인숙'에 걸려있던 그림, 헨릭 입센의 『바다에서 온 여인』에 등장하는 인어의 그림과 악몽을 꾸는 여자를 표현한 조각,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 나오는 죽은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 등에 대한 묘사가 에크프라시스이다. 오스카 와일드의『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그림이 변해가는 과정이나 오노레 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에 나오는 작품은 그림의 장면이 자세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암시하는 방법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서술법을 '개념적 에크프라시스(notional ekphrasis)'라고도 한다.
□ Part 2. 그림 쓰다
내러티브의 세계인 글과 병렬적 세계인 그림 ● 그림의 묘사, 에크프라시스와 그림 자체는 어떤 관계일까? 일차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림은 시각의 영역이며 그것을 이야기하는 글 혹은 언어는 청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림은 공간에 관한 것이고, 글은 시간에 관한 것이다. 많은 에크프라시스를 포함하고 있는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에도 글과 그림의 특징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난 이제 소설이나 영화 같은 내러티브의 세계와는 얼추 끝난 것 같소. 음악도 마찬가지고. 이제 내 관심사는 오직, (시나) 그림 같은 병렬적 세계요." 18세기 독일의 비평가 레싱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회화가 공시적, 시각적 현상으로 즉각적이며 전체적으로 이해되고 감상되는 것, 공간에 관한 예술이라면, 시는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는 시간에 종속되는 것, 통시적이며 청각적인 예술이라고 하였다. ● 글(언어)과 그림(미술)은 형식적으로 교집합이 없다. 하지만 미술을 이야기해야 할 때 말과 글이라는 언어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림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항상 언어로의 변환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김춘수 시인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무엇'이라고 명명할 때, 묘사하고 설명할 때 그 무엇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고 해석과 분석이 더해진다. 그림은, 이미지 자체는 스스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림 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는 '묘사', '에크프라시스'라는 언어화, 사고화 과정이 시작될 때 드러난다. 말과 글을 통해 그림의 공간적이고 물리적인 지표들이 서사적이고 시간적인 지표로 변환되어야, 이른바 병렬적 세계가 내러티브의 세계로 전환되어야 '무엇을 볼 것인지'가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림의 의미가 생성되고 미적 판단이 성립된다. 이미지를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작품에 드라마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선사한다. 예술 작품에 진실이 있다면, 우리는 단지 언어를 통해서만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예술 작품에 생명이 있다면, 작품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시작되는 순간에 작품은 생명을 얻고 존재하기 시작한다. ● 'Ut pictura poesis est : 그림에서와 같이 시에서도'.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시학(Ars poetica)』에서 한 말이다. 글과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문구이다. 이 언급은 문학과 미술의 우위를 논할 때 주로 인용된다. 하지만 소통 불가할 것 같은 두 예술 장르의 공통점을 찾아내려는 시도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글과 그림이 서로에게 건네는 대화의 신호가 아닐런지.
□ Part 3. 글을 엮고 짓다
읽어요 그럼 보여요 ● 2015년 인천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책에 관한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이다. 책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책의 외형이나 책이라는 물체보다는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다. 책의 가치는 서재를 장식할 때보다 읽고 그 내용을 지식으로 받아들일 때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위에서 길게 설명한 글과 그림의 사이,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트플랫폼 입주작가들의 의견을 구했을 때에도 반응들이 괜찮았다. 마침 인천시가 내건 '책의 수도' 슬로건인 '읽어요 그럼 보여요'가 전시의 기획 의도와 멀지 않았다. ● 전시를 위해 인천아트플랫폼 작가들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킬레스 방패에 대한 묘사와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에 나오는 「문라이트」라는 허구의 작품에 대한 묘사를 읽었다. 작가들은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자신이 창작하게 될 작품의 상(像), 이미지를 보았을 것이다. 전시는 작가들의 창작 과정을 '글 그리다'라는 말로 함축한다. 작가들은 대체로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 자기만의 해석을 담는 쪽을 택했다. 『일리아스』를 읽은 오민수는 한국화 특히 실경 산수에 천착하는 만큼, 아킬레스 방패에서 첫 번째 원에 담긴 자연을 수묵화 기법으로 표현했다. 박은하는 두 번째 원에 나오는 재판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이미지화했다. 배미정은 방패에 설명된 과거의 이야기를 토대로 현재의 이야기를 끌어내 새로운 장면을 구성하였으며, 염지희는 다섯 개의 원의 내용이 통합되어 모호한 장면이 뒤섞인 꼴라주 작품을 제작했다. 지희킴은 책 속의 한 단어로부터 자유 연상을 거듭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출발점과 동 떨어지는 최종 이미지를 소환해 내었다. 『달의 궁전』을 읽은 기슬기는 「문라이트」라는 허구의 작품에서 제주의 풍광을 보았고 이를 사진에 담았다. 그는 책 속에서 묘사된 달을 작가의 퍼포먼스가 담긴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하여 사진에 시간성을 더했다. 최영은 「문라이트」의 풍경을 그간 연구해 온 '양안시차' 연작의 배경으로 사용했으며, 함정식은 「문라이트의」 문Moon의 마지막 철자인 n을 d로 바꿔 무드등, Mood Light라는 영상 작품을 창작했다. 「달빛 프리즘」이라는 작품을 꾸준히 그려온 장진에게 「문라이트」는 자기 그림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듯 전시를 위해 새롭게 창작된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따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같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나온 작품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이미지는 다양하다. ● 한편으로는 그림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 '그림 쓰기'를 추진했다. 전시를 위해 세 명의 인천과 관계가 깊은 소설가들이 미술 작품을 읽고 쓰는 작업을 했다. 글쓰기 대상은 인천아트플랫폼 출신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평면으로 3점을 골랐다. 소설가들의 머리와 손을 거친 미술 작품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김경해는 김봄 작가의 「어떤 동네_항」이라는 그림에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살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냈다. 양진채는 오석근의 사진 작품 「한국의 풍습_쌀 수확」을 보고 반(半)소설적 에세이를 썼다. 에크프라시스 기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한은형은 김성윤의 「한니발님」을 보고 매우 짜임새 있고 완성도 높은 한 편의 엽편(葉篇) 소설을 썼다. 화가와 화가의 모델이 되는 배우의 이야기이다. 이렇듯 소설가들은 그림을 읽으면서 그림에 포함되지 않은 그 너머의 것들까지 '보았다'. ● 인천아트플랫폼 외부 공간에도 작품들이 설치되었다(지어졌다). 책을 엮고 편집하여 새로운 글짓기를 하듯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작품들을 지은 것이다. 위영일은 호메로스의『일리아스』, 백인태는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 이창훈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참조하고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 이제 관람객들이 읽고 볼 차례다. 소설을 읽고, 그것을 모체 삼아 탄생한 작품을 본다. 아트플랫폼에서 고른 그림을 볼 것이며, 이를 모체로 새로이 탄생한 글들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림을 보다보면 새로운 장면이 눈앞에 떠오를 것이다. 더욱이 작가들이 미처 보지 못 했던 것들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스스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미지와 텍스트는 관람객들에 의해 무한히 생성될 것이다. 상상력의 경계와 한계를 허물고 양진채의 말대로 '그림 옆에서 글을 보고, 글 옆에서 그림을 읽는다'면 말이다. 그리되면 전시는 성공적이라 하겠다. ■ 이영리
Vol.20150906b | 읽어요 그럼 보여요 - 글과 그림 사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