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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 컴퍼니 긱 Art Company GIG 서울 서초구 방배로 42길 31-5 Tel. 070.7795.7395 www.artcompanygig.co.kr blog.naver.com/suntory0814
환영의 세계, 우주의 환영 ● 밤하늘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우주다. 검은 하늘에는 별의 무리들이 별자리를 이루며 하늘에 뿌려져 있다. 지금은 문명의 밝은 불빛 때문에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 밤하늘에는 죽은 자의 영혼, 신들, 삶 저 너머의 세계가 있었다. 의미 있는 별에는 오래된 전설이 담겨 있고, 죽은 자는 별이 된다고도 했다. 이처럼 밤하늘의 별은 영겁을 거슬러간 과거의 사건이나, 어느 미래에 과거가 되어 있을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별이 보인다는 것은 몇 초에서 길게는 몇 광년을 건너온 빛이 내 망막에 닿는 순간의 사건인 것이다.
오늘날 우주에 대해 이미지화하는 것은 허블 망원경으로 찍은 우주, 혹은 무인탐사선이 전송한 우주의 사진으로부터 유추한 것들이다. 천체망원경은 거대한 규모의 렌즈와 굽은 거울이 빛을 조작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은하와 경이로운 우주의 장관을 시야 앞으로 끌어당긴다. 우리는 실제 경험을 넘어선 축척과 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우주공간을 천체망원경이라는 미디어가 전달한 이미지를 통해서 인식한다. 이 기계는 빛의 속도로도 몇 년을 가야 하는 거리를 순간으로 축소시키는 기적을 행한다. 가만히 서서 인간의 삶과 죽음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뛰어넘는 세계와 대면하는 것이다. 그 이미지는 상상력에 의해 육안으로 보는 밤하늘과 비교 확장되며 더욱 생생하며 경이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우주는 이미지로 밖에 경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환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손경환은 이런 기계들에 의해 포착된 이미지를 참조하여 우주를 그린다. 태초에 거대한 폭발로 우주공간 안에 별들이 흩뿌려졌다는 빅뱅가설처럼, 작가는 텅 빈 캔버스 위에 물감을 뿌려 우주를 재현한다. 평면에 재현된 이미지는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지만 무한대로 펼쳐진 우주 어딘가에는 있을 법도 한 공간이다. 이번에 함께 전시될 수채화 컨셉 드로잉은 작품의 원상을 기록한 것들이다. 물감을 뿌리는 제작 기법이 우연적이기에, 작가는 원래 떠올렸던 우주를 기록한 작품이다. 작품에 함께 사용되는 것은 판화의 기법인 소멸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화면위에 생성된 무수한 별들 중의 많은 부분이 화면에서 분리되어 사라진다. 우연 속에서도 필연적인 소멸이 따르는데, 소멸은 또 다른 생성으로 연결되며 무질서 속의 질서를 이끌어 낸다. 작가가 우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참조물은 이미지가 차고 넘치는 인터넷에서 발견한 것이다. 작가는 우주 공간과 인터넷의 공간이 닮아있음을 발견한다. 우주는 한 번에 파악할 수 없는 무한대의 공간이며 무수한 별로 채워져 있지만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인터넷이라는 무한의 개념적 공간 또한 0과 1로 이루어진 정보모듈로 채워져 있으며 그 범위와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디지털 공간의 정보들을 마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곤 하는데, 그것은 기계들이 우리가 조작하기 쉬운 방식으로 매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취하고 있지만 실체는 없다. 그 속에 펼쳐진 화려한 우주의 이미지 역시 실체로 경험할 수 없는 개념 속의 이미지이다. 이미지로 재현된 태양이 붉은 빛으로 불타지만 실제 육안으로 태양을 바라보면 눈이 멀고 말 것이다. 이처럼 이해를 돕기 위해 조작된 별들의 화려한 색상을 실제 그 별들과 대면했을 때 육안으로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툴이나 몽타주를 거친 출처 없는 이미지들의 진위를 증명하기 힘들다.
손경환은 우주의 이미지를 재현하는데 병치혼합 기법을 사용한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우리가 빛을 이해하는 방식을 연구하기 위해 점묘기법을 사용하였다. 우리 시각이 불연속적인 색상을 연속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오늘날 망점이나 픽셀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크스크린 인쇄 기법이나 오늘날 디지털적인 이미지들이 그렇듯이, 화면에 찍힌 색점들이 모여 우리 육안으로는 생생한 이미지로 보인다. 작가가 캔버스 위에 뿌려 놓은 원색의 색점들은 모여서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 작가는 2008년 「The Wheel」이라는 작품으로 병치혼합으로 만들 수 있는 색상에 대해 이미 실험한 적이 있다. 검은 바탕에 색점으로 색상표를 만들어 내었는데, 이 구성이 오늘날의 디지털 이미지의 기초인 동시에 '우주 이미지'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모티프를 얻는다. ● 오늘날 우리가 접하게 되는 이미지들이 깊이를 가장하고 있지만, 작가가 참조하는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미지처럼 가볍고 비물질적이다. 인터넷에서 접하는 초신성의 폭발 장면이나 우주의 성운들은 허블 망원경이 찍어온 사진조차 아니며, 일반적으로 이론에 기대어 지어낸 이미지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가벼운 이미지에 깊이를 더하고 물질성을 부여한다. 검은 화면 위에 겹겹이 뿌려진 점들은 압도적인 밀도를 제공한다. 그것은 버넷 뉴먼이 크기로서 숭고의 감정을 이끌어내려고 했던 시도를 넘어서 밀도로서 절대적인 크기와 다른 축척을 제시하며 또 다른 숭고를 의도한다. 화면의 크기와 상관없이 작은 점들이 모인 화면의 이미지는 직관적으로 우주와 연결되며, 상상 속에서 천문학적인 크기로 확장되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상상력은 경험을 넘어서고, 시간과 공간,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하는 공간으로의 문을 연다. 그 안에는 작가라는 창조자가 부여한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이 담긴다.
「창백한 환영」은 존재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유령과 같은 실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이러한 '환영'을 영어로 'Ghost(유령)'이라고 번역한 것은 인간의 경험적 한계를 넘어서지만 존재할 수도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건낸다. 우리가 보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혹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하는가. 손경환의 작품 속애서 인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게 하는 동시에, 인식의 한계 속에서 상상력의 무한함을 발견하게 된다. 유한한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무한성을 우주라는 상징으로 풀어낸 것이다. ■ 이수
나는 늘 멀리 있는 것을 그린다. 순간보다 영원에 가까운 것을, 절대적으로 커다란 것을, 갈 수 있는 곳 보다 갈 수 없는 곳을 화면에 담고자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선택하는 소재도 내 두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들, 예를 들어 행성이나 항성, 그 크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은하나 성운들이다. 이 소재들에 대한 모든 정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해 얻게 된다. 인류가 관측하고 기록한 우주의 수많은 정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대상과 우리 사이를 탈-거리화하며 대상을 원격현전시킨다. 몇 번의 클릭으로 얻어지는 우주의 이미지는 나에게 초거시경적 시선을 선사하고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는 내파(implosion)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빛의 속도라는 절대 척도는 대상을 시공간 연속체로 인식하게 만들고 여전히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초월성을 함의한다. 즉,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와 시공간에 상관없이 내 눈앞에서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의 실체는 아득한 시공간의 저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과거의 빛이라는 면에서 분명 유령 같은 것이다(예를 들어 우리가 보고 있는 태양은 8분 전의 모습이다). 나는 이러한 비경험적 대상인 우주의 유령에서 경외심을 느낀다. 우주의 유령을 응시하면서 생겨난 정념은 대상을 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포착된 순간적인 이미지가 아닌 계속해서 움직이는 잔상들이 켜켜이 쌓인 층처럼 무한히 누적되어 만들어지는 이미지로 인식하게 만든다.나는 내 눈앞에서 원격현전하는 초망막적인 우주의 이미지에 대한 의문과 초월적인 대상에 대한 인간 경험의 한계에서 느끼는 숭고함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이 유령 같은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점묘법을 선택한다. 화면 위에 흩뿌려진 점들은 병치혼합 되어 우리의 망막과 화면 사이 어딘가에서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유령을 닮았다. 또한, 처음 뿌려진 것을 완벽하게 가릴 수 없기에 시간의 흔적을 보여준다. 빛이자 시간처럼 작용하는 점들로 시공간을 하나의 화면에 압축하고자 하는 시도는 화면을 등방하게 만들고 원근법적 깊이의 환영에서 멀어진다. 오히려 이미지는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속도로 화면 밖에 나타난다(어쩌면 아주 느리게 또는 아주 빠르게... 하나의 점은 2차원 평면에서 좌표로 0,0,0(x,y,t)이지만 수많은 점은 빛의 충격파처럼 망막을 향해 돌진해 온다).나는 시간의 층으로 이루어진 잔상, 즉 유령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보들을 하나의 화면에 몰아넣는다. 수많은 점(빛-시간)으로 재구축되는 대상의 잔상들은 점점 화면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 자체가 되어 간다. 이제, 나의 그림은 유령 같은 우주의 이미지에서 출발했지만, 결코 동일시될 수 없으며 완벽하게 독립될 수도 없다. 그림이 점차 대상의 이미지에서 멀어질수록 내가 대상에서 느낀 감정이 드러난다. 그것은 괴리감이다. 나는 자문한다. 2진법으로 구현된 이미지와 정보들을 보면서 대자연을 느끼는 일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하지만 여전히 내가 느낀 경외심과 숭고는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는 이러한 비경험적인 것을 회화로 가시화시키기 위해 재현을 포기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에 집착하면서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감정과 의심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한다. 나는 내 그림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관념적 풍경화로 보이기를 바란다. ■ 손경환
Vol.20150904f | 손경환展 / SOHNKYUNGHWAN / 孫卿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