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901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이해일_박명옥_김인_김용애_박재은_이효숙_최선아 원민규_이익훈_박미란_길종갑_Isha Wood (유옥희) 강대선_허강일(그림이네)_박종혁_조임옥
주최 / (사)민족미술인협회 강원지회 후원 / 강원도
관람시간 / 10:00am~06:00pm
춘천문화예술회관 Chuncheon Cuture & Art Center Gallery 강원도 춘천 효자상길 5번길 13 Tel. +82.33.259.5841 www.ccac.or.kr
꿈을 말할 권리에 대해 ● 꿈꾼다는 것. 당연할 것 같은 그 소박함이라고 말해버리지 말자. 시인 안도현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했다. 누군가를 위해 단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한 때 아랫목을 달군 연탄재보다 글쎄 뭘 더 하긴 한 걸까. 미술을 한다는 것은 그 뜨거움을 담는 것이라고 말하자. 그것은 그저 착하지도, 누구에게나 그저 좋기 만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도전받게도 한다. 아름다움을 거절할 필요는 물론 없을 것이다. 우월함을 뽐내기 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말이다. 질식할 듯 참혹한 삶의 처지에서 아름다움만 노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미(美)는 원래 예술을 하는 이유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었다. 미술(美術)이라는 말의 마법에 빠진 탓에 본래의 다른 기능들을 잊었을 뿐이었다. 미술은 아름답고 뜨겁게 때로는 불편한 도전으로 촉발하고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술은 이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해 두자.
있음과 없음의 변주들 ● 길종갑은 붉은 풍경으로 말한다. 온통 천지가 불타오르는 가을에나 있을 법한 그림이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의 색에 취해 그림 속에 끌려 들어가면 그 안에서 뜻밖의 많은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생생한 붓 터치 속에 살아있는 색은 더욱 빛난다. 붉은 색은 푸른색에 대비되어 더욱 붉었던 것이었다. 온통 붉은 색으로만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옛 그림 '곡운구곡도'가 펼쳐져 있는 화천에 그는 살고 있다. 그가 이제껏 담아내던 풍경처럼, 이 작품은 험한 바위를 드러내는 생생한 산의 모습과 멀리 운해를 거느리고 능선과 나무들이 늘어선 옛 그림의 자태도 담고 있다. 짙은 가을이 완연한가하면 봄의 파릇한 잔디도 펼쳐져 있고 푸른 그림자를 가진 설경도 보인다. 근대적 공간에 갇힌 원근법을 해체하고, 하나로 통일되는 시간이라는 근대적 신화를 넘어서서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모든 상상력을 장악했던 일시점의 원근법이 '없다면' 가능한 그림, 하나로 묶어 놓아야만 안심이 되는 정지된 시간이 '없다면' 가능한 화면을 펼쳐내고 있는 셈이다. ● 그림에 '있는' 것은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참 오래도록 배웠던 영문법에 가정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가정법 과거라면 현재 사실의 반대가 된다는... 문장엔 If나 I wish가 들어가는 게 된다. 'Sunrise Sunset(해는 뜨고 해는 지고)'이라는 주제곡의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이 있다. 혼기가 찬 딸들을 둔 러시아 유태인 주인공이 노래한 'If I were a rich man(내가 만약 부자라면)'도 유명한 곡이다. 노래는 러시아로, 미국으로 떠도는 디아스포라로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 속에서 깊은 공감의 장면을 만든다. 그렇게 뭔가 꿈꾸는 것은 감동이다. 길종갑도 꿈을 담으려 했을 것이다. 메마른 시각이 아닌 고전의 멋이 있는, 마음대로 정한 정답만이 아닌 수많은 상상력이 '있는' 그림을 말이다.
한편 최선아의 그림은 아주 조용해 보인다. 색이 있긴 한 걸까 싶을 만큼 순지에 소묘하듯 얇은 먹 선으로 그린 것이 전부로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수많은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이 있다. 길옆을 채운 채 어느 하나 도드라지지 않게 퍼져있는 들풀들을 어찌 다 셀 수 있으랴. 가지 하나하나가 하늘과 호흡하고 있는 나무도 있다. 그것이 어렴풋한 것을 보면 거기엔 분명히 안개도 자욱하다. 호반 춘천의 정서가 가득 차 '있는' 풍경이다. 그 조용한 그림은 결국 순지의 결 하나하나까지도 보여주게 된다. 화지에 먹을 올리는 작가만의 예술성이 '없다면' 결코 살려낼 수 없었을 생생함과 결이 살아있는 화면이다. ● 이효숙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어떤 강렬함도 없지만 한 올 한 올 가슴 속 깊은 정서를 길어내는 힘이 있다. 색에서나 표현에서 수선스러움이 있었다면 완성되지 못했을 그림 세계다. 있다면 딱 좋을 만큼만 드러낸 여린 생명의 하늘거림이 그림의 중심을 살짝 비켜나 놓여있다. 그것만 있다면 그림은 너무 허약해 보였을지 모른다. 그 배경에 흰 선이 놓였다. 사실로서의 시각을 거스르는 그릇모양의 흰 선이 없다면 그림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예술의 가능성으로 칸트는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을 들었다. 예술의 가능성과 수단이어야 할 무관심성은 한 때 모더니즘의 전부가 되었고, 순수성을 위해 예술에 삶을 담을 여지를 지워버리기까지 했다. 이효숙에게 그것은 다른 배경이 되고 있다. 예술로서의 허상과 작가가 발 딛고 있는 사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은 그 태도에서부터 자라난 성과다.
상상력의 촉발과 유토피아 ● 우리는 매일 꿈을 꾼다. 살아있는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런데 그 꿈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꿈을 말하는 것이 예술이 되어야 함에도. 당연한 것을 말할 수 없던 세월도 우리는 살아 냈다. 영화 『변호인』이 주었던 메시지도 너무나 평범한 것이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과 그 권리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그렇게 당연한 것이 우리 삶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웠던가. ● 문자 그대로 '없는 곳'을 일컫는 말, 유토피아는 오래도록 인류의 상상을 자극해왔다. 파시스트에게조차 영감이 되었듯 전체주의의 그늘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이제껏 유토피아는 진보적 사유의 대상이 되어왔다. 개혁과 진보의 원리며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시도이기에. 16세기 영국에서 불온한 사유였던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 경도 결국 현실 정치 속에서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그렇지만 현실비판과 상상은 조금씩 다른 사회를 만들어왔다. ● "만약에 어떤 것이 있다면, 아니 없다면..," 그와 같은 가정쯤이야 마음껏 상상하게 하자. 말하게 하자. 상상하고 말한다는 것, 예술가에게 그것은 숨 쉬는 일만큼이나 당연한 게 아니었던가. ■ 최형순
○ 부대행사 - 체험미술장터 『조물락예술점빵』 : 9월 5~6일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앞마당 - 어린이 사생대회 - 전시 속 전시 『작은그림전』
Vol.20150903b | 없다면있다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