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 생명

ART제안展   2015_0829 ▶ 2015_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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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829_토요일_02:00pm

퍼포먼스 일정 오프닝 퍼포먼스 / 2015_0829_토요일_02:00pm Art blender 파랑캡슐_Project 필그림 2015_0912_토요일_02:00pm_Project 필그림 2015_0919_토요일_02:00pm_야마가타 트윅스터_Project 필그림

예술인 그룹 『ART제안』 강민주_김미향_김은영_김수향_박설아_박용 송수연_신정원_심정아_이유현_하민수_허은영_황선영

협업 미술평론가 / 심상용(미술평론, 동덕여대 교수) 협력단체 / 서울혁신센터

서울혁신파크(구 질병관리본부) 내 동물실험실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innovationpark.kr

동물실험동 안에서 '아트 제안'의 예술이 제안하는 것예술, 재개발, 그리고 생체실험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이전되고 남은 자리, 그 중에서도 폐쇄된 동물실험실, 방역실, 부검실, 발열실험실, 사체냉동고, 샤워실이 있었던 동물실험동이 북정마을에 이어 아트 제안이 두 번째로 선택한 전시장소다. 북정마을과 질병관리본부의 동물실험동은 전혀 상관이 없는 장소며 공간이다. 하지만 두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닮아 있기도 하다. '약자의 타자화'와 '정당화된 폭력'이라는 이중의 의미에서 그렇다. 북정마을에서는 미처 동네를 뜨지 못한 '많이 가지지 못한 이들'이 추방의 대상이 되어도 무방한 '타자'로 규정된다. 동물실험동에서는 타자-동물의 논리가 약식으로 확인된 다음, 찢겨지고 내장이 드러내지고, 죽임을 당하고, 사체가 폐기되는 정당화된 폭력의 절차 안으로 밀어 넣어진다. 그 종국이 예외 없이 죽음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치료의학의 진보라는 훨씬 더 위선적인 명목으로 인해 후자의 폭력은 더 상징적으로 현 문명의 속성을 대변한다. ● 만연한 학문적 분과주의와 총체적인 지식과 지혜를 방해하는 분할되고 쪼개진 관료주의에 의해, 오늘날 '예술'과 '재개발'과 '생체실험'은 각각 별개의 주제요 관심분야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들이 서로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 재개발이 그렇듯 동물생체실험 역시 타자화와 관계단절, 추방과 폭력의 운명적인 동원에 의해서만 지속 가능한 문명의 속성이 아니고선 쉽게 정당화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리고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오늘날 예술의 작동도 그러한 세계의 일환으로 신속하게 귀속되어지고 있다는 점! ● '재개발'과 '동물생체실험'과 '현대예술'은 각각 이 시대가 선전하는 중요한 문명적 혜택의 출처들이다. 재개발은 쾌적한 도시와 주거환경을, 동물생체실험은 인간 수명의 획기적인 연장을, 그리고 예술은 정신건강과 정서적 고양을 약속한다. 물론 약속은 허술하고 갈수록 겉치레적으로만 이행된다. 주목해야 할 진짜 사건은 거의 언제나 진실이 머무는 장소인 그 이면에서 일어난다. 타자화된 약자의 주거권 박탈과 그 범주가 동물로만 그칠 리 없는 생명 약탈, 그리고 정작 정신과 취향의 몰취가 그것이다.

분노하지도, 눈물을 닦아주지도 않는 세계에 대항하기 ● 필립 얀시(Philip Yancey) 를 빌자면, 사람들을 도취시키는 문명의 화려한 성과들은 '인간성을 속속들이 발가벗기는 생체실험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명이 제공하는 반짝거리는 것들의 실체는 자주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투여되는 약물, 마취제, 안락사 메커니즘의 일환이다. 얀시가 빗댄 문명의 생체실험실 안에서 사람들은 마치 스키너 상자 안의 비둘기처럼, 또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테렌스 데 프레가 직접 경험했던 유태인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들처럼 "점차 생각 없는 존재들", "예측가능하며 철저하게 통제된 행동만 하도록" 조작된 인격으로 변모한다. 강제수용소에 대한 데 프레의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사회, 특히 한국사회의 오늘과 빼다 박은 듯 닮아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규제를 받는 하나의 총체적인 세계"인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은 다만 고통과 죽음을 면하고, 음식과 담요라는 보상 앞에서 굴복하도록 길들여진다. 주체가 온전히 무릎을 꿇는 순간까지 체벌과 보상의 반복으로 구성된 길들이기가 지속된다. "그러한 힘이 인간 욕구의 가장 깊은 내면에 하루 스물 네 시간, 끝없이 들락거렸다."1) ● 이러한 사회에서 감성과 상상력의 신체도 그에 상응하도록 발가벗겨지거나 찢겨져 왔으리라는 것이 단지 추론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시장주의의 노선이 종용되고 콜렉터의 취향에 예속되는 것과 관련된 수치스러운 정신의 생체실험들이 자행되면서 문명과 사회를 직시하는 인식의 번뜩이는 촉이 심각하게 무뎌지고 구부러졌다. 뼈 속 깊이 내면화된 초개인주의적 태도로 인해, 자신들의 정체를 구성하는 기반에 대한 기묘한 몰이해가 만연하게 되었다. 서양미술과 미술사의 비판 없는 답습은 '생각하지 못하도록' 해온 역사적 타자화 기제들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어 마땅하리라. 그 결과 이 땅의 역사와 실존에 기반한 미학과 미학적 인식은 거의 증발되다시피 했다. ● 그러므로 생체실험동은 인식론적 난맥의 장소이기도 하다. 찢겨지고 유기된 신체만큼이나 심각하게 무감각하고 교란된 인식도 폭력의 산물이긴 매한가지다. 참여작가 모두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상당하고도 직관적인 수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하민수의 작품에는 동물생체실험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폭력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그 분노는 즉각 동물실험동을 넘어 우리의 실존적 상황, "한 개인의 생명과 그 삶의 존엄함"마저 철저하게 자본화하는 사회로 이전된다. 같은 맥락에서 송수연은 한국사회의 고유한 폭력성의 성찰로부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되묻도록 고안된 방으로 안내한다. 사람들을 "작은 촛불 하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어둠" 안에서 자신을 에워싼 두려움의 보이지 않는 기제들과 대면하도록 하는 것이 의도이다. 신정원은 "무고한 죽음을 정당화하는 것"에 기대고 있는 번영의 실체에 대해 의구심을 표한다. 같은 맥락에서 황선영은 네오스텔라라는 혹성의 진화된 존재들이 인간실험을 진행한다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 문제를 객관화해 보려 애쓴다. ● 김미향은 쓴 맛을 감추는 캡슐 형태의 약을 들어, 강요된 희생과 그로 인한 수혜에 의존하는 이 시대 문명의 위선적인 속성을 정제해낸다. 이에 의하면, 우리가 동물실험동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약탈을 외면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기원을 잊고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명의 선물 안에 은밀하게 설치된 '올가미'를 말하는 강민주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문명의 선물이라는 것의 실체, 우리의 안락한 일상이 그것의 회피나 희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그것은 모두 어느 정도 괴기하고 흉물스럽기만 하다. ● 다른 한 부류의 작가들은 냉정한 객관화와 분석 대신,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자행된 폭력과 죽음에 대한 위로와 치유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허은영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의해 존재 자체를 박탈당한 무력한" 동물들에 공감으로 다가선다. 희생과 고통은 단지 '그것들'의 것이 아니라 '너'의 것인 동시에 '나의 것'이기도 하다. 심정아의 감정이입은 보다 직접적이다. 그가 인두로 지져 만든 토끼의 가슴 부분에는 아마도 죽임의 순간 떠올랐었을 그리운 풀밭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곳으로 토끼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지면서 토끼풀들이 조금씩 타들어간다." 박설아도 자신의 회화 이미지에 실험대상이 되었던 생명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담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 이유현은 "동물실험실의 뒷문으로 떠났을" 동물들의 기억을 불러와 위로하는 일종의 함축적 제의를 수행한다. 생명의 끝에서 시작을 찾는다는 의미다. 박용도 죄의식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인간의 욕망에 의해 임의로 이용되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추모의 대열에 합류한다. 김은영은 여전히 목전의 현실이기도 한 참혹함의 기억 앞에 사랑초의 꽃말을 헌사하고 싶어 한다. 김수향은 실험실로 쓰였던 방에 소파나 쿠션 등의 가구를 배치해 "즐거운 공간"으로 바꾸는, 다소 낭만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사실 이들 모두는 분노하지도, 눈물을 닦아주지도 않는 세계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리다. 물론 그것이 예술에 특권적으로 허용된 길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불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 ● 삶과 예술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시대와 미학의 경계가 명쾌하게 그어진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 안에서 꽃피거나 시들고, 시대를 호흡하고, 시대에게 말을 건다. 삶과 분리된 예술은 순수가 아니라 질병일 뿐이다. 예술이 시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정신이나 시대성에 함몰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술은 그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시대에 깊이 천착하는 것을 통해서만 역사적 보편성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사회를 건너뛰어 문명적 보편성으로 도약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는 자신과 자신의 시간과 장소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대가 되어야만 한다. 이 시대의 발명품들은 자주 "우리가 불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타자화의 도덕이나 분열의 미학 등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고지해주고 있다. 타자화의 도덕이나 분열의 미학…, 우리의 현 단계 미학과 심미감각은 피상적이며 여전히 심화의 긴 여정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 그러므로 동물실험동에서의 예술이라는 주제 자체가 이미 아트 제안의 핵심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수치스러운 생체실험의 대상에서 오늘날의 그 무엇도 예외가 될 수는 없으며, 자유와 상상력이 고도로 위축되어 있고 진실에 쉽게 등을 돌리는 현 단계의 예술 자체가 그 실험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아트 제안이 단지 시대의 아픔을 향해서만 눈을 돌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이 작은 행보의 의미는 역사와 문명의 기원으로 나 있는 길로 들어서리라는 결의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트제안의 구성원 모두에게 그래서 더 분발을 촉구할 수밖에 없다. ■ 심상용

『ART제안』은 『생명:생명』이라는 제목으로 극단적 자본주의 신봉과 이기적인 욕망에 따라 인간,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함부로 훼손하고 방치하는 병든 사회의 가치관과 패러다임을 고발한다.

『ART제안』은 현 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 참여적인 예술을 실현하는 예술인 그룹이다.    강민주 김미향 김은영 김수향 박설아 박용 송수연 신정원 심정아 이유현 하민수 허은영 황선영 퍼포먼스 일정    오프닝 퍼포먼스: 8월29일(토) pm 2:00    Art blender 파랑캡슐, Project 필그림    9월12일(토) pm 2:00: Project 필그림    9월19일(토) pm 2:00: 야마가타 트윅스터, Project 필그림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art.ze.an.2014    소개 동영상: vimeo.com/98927502 전시 문의: 하민수 ([email protected] 010-7743-4840)

Vol.20150829c | 생명 : 생명-ART제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