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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822_토요일_03: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풍경의 오독 ● 작가 양혜령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정주하며 풍경을 수집한다. 일상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이미-항상 기존의 가치와 척도를 벗어나 있다. 지시될 수 없는 그 시간의 기억과 감각은 작가에게 낯선 장면으로 도달한다. 그리고 그 풍경은 작가가 과거에 경험한 풍경과 섞기며, 중층적인 표면을 이룬다. 다시 말해, 그것은 현실에서 비롯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시공간을 넘는 메타-풍경으로 현시된다. 그러한 양혜령의 풍경은 이번 개인전 『제주, 풍경 수집』으로 이어지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풍경의 '오독'을 부추긴다.
겹쳐진 풍경 ●『제주, 풍경수집』展은 작가가 작년 8월부터 4개월간 제주도 문화공간 「양」의 입주 작가로 지내면서 제작한 작품(회화, 사진, 아카이브)과 서울로 돌아가 추가로 생산하고 보충한 작품(드로잉)으로 구성된다. 작품에는 월정리, 사라봉, 용두암 등 제주도의 명소들이 줄지어 출현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맥락이 다른 몇 개의 풍경들도 같이 등장한다. 가령 월정리와 인도네시아의 빈탄 섬이 병치되거나(「인도네시아_제주 월정리」, 2015) 용두암 양옆에 대만 예류와 영화 『셔터 아일랜드』의 장면이 놓인다(「셔터 아일랜드_제주 용두암_대만 예류」, 2015). 작품의 제목을 확인하기 전까지 관람객은 나란히 배열된 그 장면들을 한 장소의 연속적인 풍경이라 여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풍경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이미지는 서로 유사하며, 더구나 수평선 또는 야경 속 불빛, 바위의 윤곽선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하여, 각기 다른 장소와 기억은 하나로 나아가며 동시에 여럿으로 분절된다. 현재의 이곳과 과거의 그곳이 마치 도플갱어처럼 서로 마주 보며 모호한 시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고요해 보이는 양혜령의 풍경이 우리의 안온한 인식을 깨뜨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장소-연결」 연작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제주도라는 지리적 특성상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쉽지 않아 고립된 기분이 들어서 시도해 본 것"으로서 익숙해진 타지(제주도)에서 또 다른 타지를 갈망하는 작가의 내면이 반영된 풍경이기도 하다. 결국, 그 무력감은 작가가 과거에 다녀온 외국의 풍경 또는 영화에서 봤던 이국적 환경을 호출하며, '현실'의 시간에 역행하고, 고정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게다가 그것은 그만의 고유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풍경을 위한 장치 ● 이러한 공존 불가능한 풍경의 조합은 드로잉과 회화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며, 다양한 (비)현실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 화폭에 투영된 풍경들은 하나같이 "예쁜" 것들의 집합으로 수렴되며, 궁극에는 그 다양한 풍경들이 단일한 풍경으로 이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실상, 우리가 관광 엽서나 여행 안내책자 속 풍경 사진보다 작품 속 풍경에 더 끌리는 이유는 작가가 이미 존재하는 풍경의 이면을 들추고, 그 장소와 시간에만 흐르는 공기와 징후들을 '풍경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양혜령의 신작들에서는 그러한 불확실하고 규정할 수 없는 풍경의 공기를 찾기 어렵다. ● 가령 작품 「밤의 검은 모래 해변」(2015) 속 부서지는 포말은 낭만적인 제주도의 밤 풍경을 연상시키며, 흔들리는 차 안에서 동영상으로 찍은 숲을 그린 작품 「0.5초」(2015)는 금방이라도 청량한 제주도의 공기를 내뿜을 듯하고, 작품 「사라봉 가는 길」(2015)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는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제주도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달리 말하면, 그 매끄럽고 아름다운 풍경에는 여백이 없다. 체계의 언어를 뚫고 나오는 이물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풍경은 육지에서 온 이방인의 시선이라 하기엔 너무 온화하며, 일상이 된 거주민의 시선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윤색돼 있다. 즉 작품에서 발현되는 그 "아름다움"은 일반적인 미美의 척도와 기준에 복속되며, 영원히 변치 않는 '낭만성'에 복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풍경은 자조적이거나 폐쇄적일 수 있으며, 지금-여기의 풍경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요컨대, 모든 풍경에는 작가의 시선과 위치가 투영된다. 그것은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그것과 맺는 관계, 그로 인해 생성되는 '적당한' 거리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대상을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작가가 그것에 얼마나 다가설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니 '내'가 보유한 프레임에 대상을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의 시선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와 과정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풍경화를 비롯한 모든 작업에 해당하는 작업적 윤리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양혜령의 작품은 풍경을 위한 장치들은 다양하게 준비했으나, 정작 그 풍경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만 맴돌고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다른 것'으로서의 풍경 ● 그러나 전시장에는 그 "아름다움"으로 둘러싸인 풍경에서 비껴서 있는 작품도 만나게 된다. 특정한 제목도 얻지 못하고 공간 한 켠에 널려있는 오브제들은 작가가 제주도에서 발견한 버려진 물품들이다. 현무암 파편, 반들반들한 조약돌, 나무 조각, 찢어진 어망, 플라스틱 병뚜껑, 나일론 밧줄, 바스러진 낙엽, 억새와 갈대, 형광색 철사, 검은 모래뿐 아니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물품들까지 가지런히 정렬돼 있다. 여행 중에 수집한 물품들을 작품의 일환으로 전시장에 배치하는 것은 양혜령이 고수하는 작업적 스타일이다. 그래서 작가는 제주도 레지던시가 있는 거로 마을 주변은 물론, 버스 정류장, 읍내 거리, 해변, 산 중턱을 거닐며 버려진 물품들을 주웠다. 미세한 균열이 나 있거나 아예 파편으로만 남아있는 것들, 시간이 더 지나면 곧 무無로 돌아갈 것들을 작가는 고스란히 담아와 정성스럽게 펼쳐 놓는다. 사실, 그 오브제들은 실제 장소에 대한 상관물로서 화면 속 풍경과 그 바깥을 매개하기 위해 작가가 계획한 장치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작가가 염두에 두지 않은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망각하고 있던 제주도의 또 다른 풍경을 드러내 보인다. ● 작가가 주워온 오브제들은 낡고 닳아 사용가치를 소멸했거나 제주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어서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다. 더구나 그것이 제주도 풍경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것은 앞서 살펴본 회화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표면 대신 비루하고 허름한 외관이 전면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작가의 회화 작품이 제주도를 상징화하고 있다면, 버려진 물품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은 그 '상징'에서 이탈한 '다른 것'이 된다. 그 낯선 풍경에는 누추한 삶의 흔적들이 넘쳐나고, 현실에서 배제된 표식들이 예고 없이 튀어나온다. 즉 그것은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호명할 수도 없고, 수식할 필요도 없는 '존재'를 가리킨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비재현적 방식으로 나타나는 '풍경'이다.
이렇듯 양혜령의 풍경은 자신의 분열상을 노출하며 일상의 전복을 꾀하고, 가끔은 수사적 장치에 주춤하기도 하며, 어느 때는 무의식적으로 다가간 곳에서 방향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그가 선택한 (관광이 아닌) '여행'이라는 작업적 방법론은 언제나 좌절과 실패, 상처를 딛고 나아가는 험난한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새로운 환경이 주는 매혹적인 풍경, 그리고 거기에 반응하는 '나'의 감정만으로 완료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여행은 견고한 '나'를 허물기 위해 내 몸을 바꾸는 과정이며, 정박해 있는 우리의 관념을 흔들기 위한 수행이다. 그것은 내가 알던 세계의 '바깥'과 만나고, 이해 불가능한 타인과 관계 맺음으로써 실현된다. 오로지 반복되는 실패로써만 도달하는 풍경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 양혜령은 끝나지 않을 여행을 위해 부단히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그러니 이 다음번 여행에서는 좀 더 멋지게 실패하기를 기대해 본다. ■ 이빛나
Vol.20150824g | 양혜령展 / YANGHYERYUNG / 楊惠玲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