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관 / 문화연구소 길 지원 / 충남문화재단_충청남도_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5 프로그램참여예술가 강노심_김수민_김광래_김홍자_모은미 박성우_박용화_박일정_서강준_신효섭 신희천_안영선_양지은_양아름_이경 이진_이호억_전수민_신동호_치명타_한경희
프로그램디렉터 / 정위상무 프로그램큐레이터 / 정보경
관람시간/ 10:00am~06:00pm
안회당 충남 홍성군 홍성읍 홍성군청 내(內) Tel. +82.41.630.1687
삶이 경험을 통해서 제도화되고 욕망은 제어를 통해서 소외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문명화된 인간은 신체와 정신 그리고 관습과 자유 사이에서 혼란을 맞이한다. 예술은 이러한 혼란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는데, 그래서 예술은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자신이 지닌 이성과 욕망의 부조화를 생생히 증언하게 하고 그에 합당한 반성을 요구한다. 때론 그 생생함이 우리에게 생경(生硬)함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예술 작품은 인간이 세계와 맺어 생겨나는 온갖 다양한 관계들의 감정을 표상하고 있다.
이번에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 이호억은 동물들의 약육강식 논리로써 우리 사회의 비정함을 거침없이 비유했던 그간의 작업 연장선 위에 특유의 솔직함을 더한다. 특히, 작가는 타인으로부터 감시와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불쾌한 감정, 반칙을 서슴없이 행하는 자들에 대한 경멸 그리고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힘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적 태도 등을 동물들의 교미장면 안에 교차시킨다. 이러한 성적 일탈의 경험은 이성이 판단하기에 조악함으로, 억눌린 욕망이 판단하기에 일종의 통쾌함으로 다가오는데, 음란한 것을 바라보게 되는 감상자는 흥미와 수치심 사이에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런 기분이 낯설지만은 않다. 관음증은 현대에 와서 거의 모든 종류의 사회 현상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흥미를 유발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에 이보다 더 경제적인 도구는 없을 것이기에 현대자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음을 대중적 취향(taste)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키치(kitsch)로 무장한 에로티시즘, 접근성이 뛰어난 전자 정보로 전환된 포르노그래피, 노래하는 소녀이미지로 둔갑한 상품화된 여성의 신체, 정도를 넘어선 다이어트와 몸매 가꾸기에 대한 열광 등의 행태에서 우리는 그 계획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욕망은 현재 자유를 맛보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거보다 급진적인 '성의 탈신비화'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욕망은 현대에 와서 더욱 소외되었다. 왜냐면 이러한 현상들 속에서 개인의 욕망은 뒤틀린 채 넘쳐나는 성적 이미지들과 심각한 괴리감만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행위를 관음하는 것으로 '결정된' 작가의 그림은 서로서로 감시하는 그물 같은 '음란함'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현대인의 타성 자체도 보여준다. 작가는 그 타성이 욕망의 진정한 발산과 해방을 급격히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함을 암시한다. 그리고 관음의 주체이자 그것의 대상인 현대인이 스스로 자유를 억압하며 욕망을 억누르는 경험에 점차 익숙해져 버림을 고발한다. 결국, 소외의 원인은 바로 소외된 우리 자신에 의해서인 것임을 인정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작가가 찾은 최초의 저항 방식은 분노다. 나 자신에 분노하고 그것을 통해 분노할 줄 아는 진실의 힘을 확인한다. 동물들의 교미 장면은 작가의 분노가 말초적일 가능성을 거부하고, 원초적으로 드러남을 알려준다.
그는 주로 한지에 직접 채집한 식물성 안료로 염색한 종이를 사용하는데, 단백질로 이루어진 아교를 배합하여 의도적으로 얼룩을 만들기도 하고 얼룩 없이 염색하기도 한다. 작가는 오랜 세월이 착색된 종이를 연상케 하여 박물관에서나 느낄 법한 역사적 무게를 본인의 작품에 얹는다. 하지만 이 무게의 교육적이고 권위적인 성질에 비해 작품의 내용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스며들어 번지는 무채색과 감각을 파고드는 원색들의 강렬함, 형상의 불완전성과 여백의 완전성, 비천하게 묘사된 교미 장면과 여러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반사되는 인간의 소외되고 삐뚤어진 욕망... ● 이 모든 대립과 부조화 속에 작가의 분노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이 세상을 두루 살펴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觀音)의 정신이다. 불교적 신념에 의해서도 아니고 더욱이 도덕적 판단에 의해서도 아니다. 작가는 위계와 공공의 질서라는 또 다른 형태의 권위가 개인의 정신과 욕망에 가하는 폭력을 들추어내고 있으며, 표면에서만 인간해방을 외치는 현대의 물질주의를 염려하고 있다. 이호억에게 관음(觀淫)은 개인과 외부 세계가 맺는 관계가 심각하게 변질하였음을 의미하고, 관음(觀音)은 그 변질에 대한 적극적인 부정인 동시에 절실한 대안이다. 작가 이호억은 이런 문제의식을 한국화의 전통 문법 안에 투영하려 심혈을 기울임과 동시에 현대 예술가로서 미덕인 자기 고백적 솔직함을 더해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의미 있음'에 모두 찬성하지는 않겠지만, 이호억은 적어도 우리의 등 뒤를 엄습해오는 칼날 같은 세계의 비정함을 당당히 응시하고 있다. ■ 이재걸
Vol.20150823e | 홍성레지던스프로그램 지역연계행사_2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