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행사 / 2015_0823_일요일_04:00pm
“매향리 평화의 밤”(가칭)_참여 작가, 관객, 마을주민과 함께
참여작가 / 강용석_국수용_노순택_이영욱_윤승준_정진호
주최 / 화성시 주관 / 화성문화재단_씨네21 기획 / 최연하
관람시간 / 10:00pm~06:00pm
미향리 미군부대 반환 공여지 일원
매향리 쿠니사격장 폐쇄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 『못살, 몸살, 몽상』展은 반 세기 넘게 몸살을 앓아왔던 매향리의 기억을 이야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중앙이 아닌, 지역적 민주주의를 개화시킨 매향리 주민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2000년과, 폭격장이 폐쇄되고 10년이 지난 2015년 현재의 매향리를 여섯 명의 작가, 여섯 개의 시선으로 교차시켜 보았다. 54년간의 폭격으로 ‘못살’았고, 다시 긴 주민운동 기간 동안 ‘몸살’을 앓았지만, 그 모든 상흔과 함께 매향리는 이제 ‘평화의 마을’로 거듭나려고 한다. ‘평화’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의미로 한국전쟁 이후의 우리네 마을들은 줄곧 쉽게 포장되었다. 그 속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말이다. 상처와 피해를 철저히 생각하기보다 못살았던 기억 위에 평화를 내면화하는 것이 어쩌면 회복에 용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몸과 가족을 담았던 집과 마을공동체에는 보이지 않는 기억이 축적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오랜 피해의 서사가 ‘매화꽃으로 향기로운 평화의 마을’로 신화화되기 전에 매향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매향리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기억의 장르인 사진으로 다가가 보고자 한다. ● 현재 한국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예술 장르인 사진은 대중 속으로 빠르고 친숙하게 스며들어 왔다. 각종 기술 매체의 도움으로 반복적이고 기계적으로 재생과 회생이 가능한 사진이미지는 우리의 의식 속으로 가볍고 쉽게 ‘스며드는’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 해상도도 높기에 다른 감각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작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맹목에 빠지게도 했다. 이미지-세계는 우리의 인식 체계를 찍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볼 수 있는 것과 보면 안 되는 것,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등으로 단단하게 분리시켰다. 사진이 풍요로워짐과 동시에 그 본질에 대한 물음이 가속화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못살, 몸살, 몽상』展은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쿠니사격장 내의 미군기지에서 열리는 최초의 사진 전시로, 그 실체가 너무 거대하여 가늠할 수 없었던 분단이데올로기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당장 해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어려운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 예술의 몫이 아니던가. 단 전시가 열리는 미군기지는 폐쇄된 지 이미 10년이 지난 존치된 건물로, 어둡고 눅눅하다. 일반의 갤러리가 아니기에 하얀 벽면과 화사한 조명, 윤기 나는 바닥이 아니어서 사진을 감상하기에 불편할 것이다. 부서진 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에 의지하여 더듬거리며 자세히 봐야 겨우 보일 수도 있다. 전시장을 찾아 가는 길 또한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불편한 전시 보기가 역으로 감겨 있었던 눈을 뜰 수 있게 해주리라 생각한다.
매향리(梅香里)에는 매화꽃이 있다? 없다! ●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에 위치한 매향리(梅香里)는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이다. 남쪽으로는 아산만이, 북쪽으로는 남양만과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발안 읍내가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매우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과 함께 조류의 영향으로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여 왔다. 미공군 사격장 인근에 위치한 매향리 일대의 연안지역과 해안지역은 1951년부터 2005년까지 폭격 및 기총훈련이 실시되다가 2005년 8월 12일, 54년 만에 완전히 패쇄 되었다. 매향리 앞바다에는 본래 구비섬(구비도), 웃섬(웃도), 농섬(농도) 등의 섬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형체만 간신히 남아있는 웃섬과 농섬의 일부만 존재 한다. 사격장이 들어설 무렵 당시 매향리의 지명은 고온리(古溫里)였고, 폭격장의 명칭도 ‘고온리폭격장’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향리 인근에서 ‘고온리’라는 지명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온리’의 영어식 표기인 ‘Ko-on ni'가 'Koon-ni'로 표기되며, 고온리사격장(Ko-on ni air range)이 ‘쿠니사격장’(Koon-ni air range)으로 불리어 지게 되었다고. 구들장처럼 오래된 온기(고온古溫)의 마을에 미국의 ‘쿠니’가 들어선 것이다. 매향리(梅香里)라는 명칭도 매향비(埋香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미륵의 정토를 꿈꾸는 민중들의 염원으로 향을 땅에 묻고, 그 자리에 세운 비(碑)가 바로 매향비(埋香碑)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고성의 삼일포, 경남 사천, 서산 해미 등지에서 매향비가 발견되었고 한다. 불가(佛家)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매향’은 그 향을 통해 내세의 미륵불과 이어진다고 생각했기에, 특히 왜구의 침략이나 풍랑이 잦았던 해안지역에 매향의 풍속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4, pp. 742~743) 매향리(梅香里)가 본래 고온(古溫), 고온동(古溫洞)이라 부르던 곳이었다가, 매향(埋香)이라는 이름에서, 다시 매향(梅香)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매향리에는 매화꽃이 있다? 없다! 매향(埋香)을 매개로 미륵의 정토를 꿈꾸는 주민들의 염원의 향은 분명히 있다.
슈팅Shooting이미지 - 사격훈련과 사진 찍기에 좋은 서해의 섬 ● 우리 마을은 시끄럽습니다. 날마다 날아오는 비행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는 폭탄을 쏩니다. 그래서 창문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다가 깨질 때도 있습니다. 밤에 비행기가 날아오면 잠을 잘 못 잡니다. 텔레비전 소리도 잘 안 들릴 때가 많아요.(…)친구네 집에 갈 때도 빙 돌아서 가야합니다. 사격장 울타리 때문입니다. 울타리가 있어서 가고 싶은데도 못 갑니다. 미국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비행기는 자기 나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장주식 글, 김병하 그림,『그리운 매화향기』, 한겨레출판, 2011, p.86.) 매향리 폭격장은 미군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낮은 구릉지대로서 안개가 끼는 날이 거의 없고, 바다와 육지의 사격이 동시에 가능하며 조종사의 폭격 결과가 바로 나오는 유일한 곳입니다. 여기보다 더 좋은 사격장은 한국 내에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 사는 마을이 있으니, 폭격 연습에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요.' (위의 책, pp.124~136) 소설 속 앤더슨 소령의 말처럼, 이곳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 인접해 있어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고도의 긴장을 요구했기에 훈련의 최적의 장소였다고 한다. 최신예 전투기와 공격용 헬기는 매향리, 이화리, 석천리 일대의 마을상공을 저공비행하다가 사격을 하고 다시 급상승하는 방법으로 행해졌다고. 폭격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일 평균 11시간 동안 20여 분 간격으로 이뤄졌으며 그 횟수만도 하루 새 600회가 넘었다고 하니 그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이상 현지인들의 고통을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 세월이 50년이다. 엄청난 일이 반세기 동안 일어났던 것이다. 피해자는 누구이고, 가해자는 누구인가? 매향리에서 주민운동이 자생적으로(외부의 지원도 있었지만) 일어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안전하게 살아야하는 주민들의 생명권은 심각하게 침해당했고(폭격장 설치 이후 이미 많은 주민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큰 문제로 부각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주거권 또한 유린당한 것이다. 거기에 환경오염과 소음공해로 인한 피해까지 더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폭격장 인근의 마을에 쌓인 탄피와 불발탄처럼 산재해 있는 셈이다. 매향리 주민대책위원회(위원장, 전만규)는 결국 미군사격장 폐쇄 및 소음피해 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하였으며, 현재는 매향리 평화,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 서해의 작은 마을 매향리에 가해지던 폭격소리는 서울까지 들려오지 않았다. 간간이 뉴스에 오르는 기사를 접하며 나와는 무관하게 먼 바다에서 출렁이는 거센 파고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마을쯤으로 상상이 되거나, 근처의 대부도와 궁평항의 낙조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려는 사진찍기의 명소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매향리가 사진 찍기Shooting에 좋은 평화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에, 폭격Shooting당시 얼마나 어두운 상황일까에 대해, 그곳 사람들의 절망과 고뇌를 들여다보며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선취되어야 할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이 전시 기획을 맡게 된 것도 2000년 당시 매향리의 고통과 연대하지 못한 부채의식 때문이다. 동시대에 전시기획자로서, 내가 과거의 사건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는지, 보편의 느낌을 찾아보고 싶었다. 이 한 번의 전시로 갚을 수도 해결 될 수도 없겠지만,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을 다시 쏘아Shooting 해체하며 당장 답을 얻을 수 없더라도 기억의 회생에 동참하는 일은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이곳은 민중들의 삶의 터전에 위험이 살갗으로 파고들었을 때, 그 현실적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한 몸부림으로 매향(埋香)의 염원을 세웠던 마을, 지역적 민주주의를 자생적으로 ‘꽃피운’ 소중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서발턴(subaltern)이 과연 말을 한다면 이러한 형태가 아니었겠는가.
매향리의 꿈, 쿠니Koon-ni의 흔적 ● 이번 전시에서 매향리 사람들의 사연은 윤승준의 ‘고온동 풍경’시리즈에서 볼 수 있다. 오래 전 흑백사진을 환등기로 비추며 과거와 현재를 한 화면에 봉합시킨 사진이다. 폭격이 멈춘 현재와 과거의 사진이 중첩되며 관객에게는 매우 착잡한 물음을 던진다. 이 사진들은 오랜 꿈이 실현되었지만(폭격장 폐쇄), 아직 깨어나지 못한 숨결들을 매만지고 있는 듯하다. 정진호의 ‘이상한 바닷가’는 폭격의 기억으로부터 점차 회복되어가는 듯한 마을 사람들의 포트레이트와 함께 매향리의 일상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뭔가 조금씩 뒤틀리고 낯설기도 하다. 다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고, 농사를 짓고, 꽃이 핀 마당에서 여유를 찾고 있는 보통의 풍경이지만 불안정해 보인다. 친숙한 삶의 터전인데도 결코 친숙하지 않은 희미한 해안가의 풍경이다. 그런가하면 ‘쿠니의 기억’을 담은 이영욱은 폭격의 진원지에서 발견된 오브제와 함께 지난 60여 년의 흔적들을 찾아 나선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만 흔적을 통해 짐작해 볼 뿐이다. 쿠니 사격장내에 있는 미군기지는 대체로 단단하면서 희뿌옇고, 견고하면서 부서지기 쉬운 장면이다. 대게 기억의 처소가 그러하고, 전쟁의 본질이 그러하듯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들에 ‘흠집 내기’를 시도하고 있는 세 작가는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2015년 매향리를 새롭게 촬영하였다. ● 2000년 매향리의 긴박했던 상황들을 타전하고 있는 노순택의 「고장난 섬 Wrong Island」은 작가의 초기작에 해당되는 사진들로, 노순택 특유의 위트와 비꼬기를 볼 수 있는 작업이다. 그가 ‘얄읏한 공’에서도 시도했듯, 농섬을 ‘Wrong Island(뤙아이랜드, 뤙섬)’으로 표기하며 악몽의 실체를 유머스럽게 드러내려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비극의 풍경이다. 특히 실재 폭격을 담은 장면은 한 여름 밤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면서 슬프다. 노순택은 이번 전시를 위해 2000년도에 촬영한 흑백필름을 다시 스캔하며 잠들어 있었던 필름의 유령들을 불러냈다. 국수용은 2000년 당시에 매향리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상처와 함께하려는 저널리스트의 의지의 기록이다. 50여 년 전 당시, ‘16세였던 어린 아들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미군의 폭격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남편마저 화병으로 죽은 후 미군에게 항의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노라’고 눈물로 증언한 이춘분(2000년 당시 매향리 거주, 88세)어르신은 지금은 어디에 계실까. 이 엄청난 사건들을 건조하고, 무미하고, 삭막하고, 고요하게 촬영해 낸 강용석의 ‘매향리 풍경’은 우리가 풍경사진에 기대하는 것들을 모조리 상쇄시키고 있다. 이곳은 어디인가? 사막인가, 아니면 우주선이 포착한 다른 별의 표면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사람이 보이고, 더 깊이 보니 폭탄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너무도 기막힌 사건들로 퇴적된 상처의 풍경을 강용석은 ‘상처를 직시하라고, 피해를 무섭게 보고 느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피해자로서의 기억과 서사가 이만큼 구체적일 수 있을까 싶다. ● 이 사진들은 폭격과 폭력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몽상의 청사진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못살았고 몸살을 앓았던 흔적들을 보여 주며 질문을 던질 뿐이다. 이미지 시대에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개인들은 이미지가 품고 있는 진실에 대해 묻는 것을 주저한다. 또한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묻기를 그쳤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 어떻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기억의 주체는 누구이고,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한 사유의 장이 열리길 기대한다. 이것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타인이 전하는 말들과 그들의 풍경을 기억하는 것은 이미지 시대의 사진을 보는/하는 이들의 책무가 아닐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 대답이 분명치 않더라도 ‘지금-여기, 이 곳(매향리)’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이기에 놓치지 마시길. 여름의 끝자락에서 서해의 바람이 그 대답을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 바람만이 아는 대답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사람은 참사람이 될 수 있을까. /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잠들 수 있을까. / 얼마나 많은 포탄이 휩쓸고 지나가야 더 이상 사용되는 일이 없을까. / 사람들은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 얼마나 하늘을 올려다봐야 우리는 진정 하늘을 볼 수 있을까. /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이 있어야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것을 알게 될까. 나의 친구, 그 해답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어,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밥 딜런, ‘바람만이 아는 대답’」 ■ 최연하
Vol.20150822h | 못살, 몸살, 몽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