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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정 리 홈페이지_www.helenchunglee.com
초대일시 / 2015_0822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01:00pm~08: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아티온 ART SPACE ARTION 서울 종로구 옥인 3길 2(누상동 16-3번지) Tel. +82.2.6080.4932 www.theartion.com
발견된 이미지와 작은 위안들 ● 구름을 보며 동물들을 떠올린 적이 있는가. 어린 시절 낡은 벽의 얼룩을 보고 기이한 생명체를 생각해내거나 오래된 큰 가구의 옹이 무늬가 괴물의 두 눈 같아 무서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사람을 닮은 돌이나 나무를 친구처럼 여겼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풍화작용에 의해 그냥 생긴 산의 바위들도 그 생긴 모습에 따라 근사한 명칭이 붙여지며 또 그에 걸맞은 전설이 생겨 이야기와 함께 대대손손 내려오지 않는가. 헬렌 정 리(Helen Chung Lee)는 우연히 생긴 자연 속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포착해내는 작가다. 한국과 미국 양쪽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는 사진을 통하여 사물에서 친근한 이미지를 발견하고 여기에 회화적인 기법을 덧붙여 작업한다.
"나는 사진에 회화적인 기법을 가미시켜 사진의 실재적 이미지와 회화의 환영적 이미지 사이의 연관성과 차이점을 연상하고 유추하는 과정을 즐긴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이미지는 온통 꿈에서 본 듯한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며 기묘한 색채로 덮여있다. '꿈풍경(Dreamscape)'이라 묶인 초기작들을 보면, 바다는 붉고 푸른 오묘한 색들로 덮여있어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바다에 빠뜨렸다는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Siren)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초록색 달빛은 쓸쓸하고, 파란 새벽은 적막하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혹은 다른 꿈으로 넘어가면서 머릿속의 이미지들이 일그러지며 낯선 색깔로 낯선 장면으로 바뀌는 모습이 화면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 꿈은 기분 좋은 꿈도 악몽도 아닌 내 마음 그 자체다. 내가 기쁠 때는 그 화려한 색깔들이 나와 함께 춤을 출 것이고, 내가 외로울 때는 형상의 쓸쓸함이 다가올 것이다. 잉크 얼룩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는 로르샤흐(Rorschach) 검사처럼, 헬렌 정 리의 그 얼룩들은 우리의 심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는 한국의 땅을 여행하며 만난 나무옹이에서 여러 풍경을 보기도 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각양각색의 빛들을 카메라에 담아 이름을 붙여준다. 김춘수 시인이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듯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형상들이 그녀의 '이름 짓기'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나무옹이는 넘실대는 산과 물 위에 떠오르는 태양이 되고, 빛의 잔상은 못다 핀 꽃잎이 된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작품에 담는 작가는 이 후 전복 무늬가 지닌 다양성을 화면에 담기 시작한다.
우연히 이미지를 찾는 것을 작가는 '숨은 그림 찾기'에 비유한다. "사물을 발견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공유하고 싶어요. 미시세계가 거시 세계가 되었을 때 자연이 주는 숭고함을 느낍니다." 작품 속 남녀 한 쌍은 달동네를 걸으며 미래를 이야기하고, 펭귄은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얼음 위를 여행한다. 거위는 꿈을 꾸고 UFO는 빠른 속도로 날아온다. 거대한 달무리를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푸르고 노란 빛을 뿜어대는 그 달은 희망의 모습일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IQ84'에서처럼 불길하고 기이한 것일 수도, 쓸쓸하고 외로운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의 마음 때문이다. 베이컨(Francis Bacon)이 설명했듯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보고, 이름 짓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종족의 우상(Idola Tribus)'일 수 있다.
눈의 확장이랄 수 있는 카메라를 사물에 근접하여 들이대고 그 이미지를 사진기 프레임 안에 가둔다. 그리고 이를 또한 작가의 회화적 재해석으로 작업해 그 효과를 극대화 한다.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작가의 이러한 작업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들을 담고 있다. '그대와 영원히', '내 안에 너 있다', '나를 찾는다', '달콤한 슬픔'처럼 드라마 같고 대중가요 같은 제목들은 작가의 심리상태이지 전복 껍데기의 모습이 아니다. 작가가 설명한대로 미시 세계가 거시 세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작은 이미지의 부분이 확산되지 못하고 더 작고 은밀한 내면의 이야기로 환원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헬렌 정 리가 포착한 추상적이고, 혼돈스러우며, 알듯 모를 듯한 이미지에 위안을 받는다. "이러한 나의 작업은 사람들의 시선을 잘 끌지 못하는 작고 하찮은 사물들을 통해서도 다양한 꿈을 꿀 수 있으며 그것들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세상 사람들과 조우하게 만들고 싶다는 나의 소망에서부터 비롯된다." 작가가 쓰고 있듯이 우리는 작가가 보여주는 아주 작은 이미지의 큰 확대를 통해 꿈을 꾼다. 노을 가득한 하늘처럼, 일렁거리는 바다처럼, 쓸쓸한 달빛처럼, 우리도 그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둡고 혼자인 곳에서 사람의 형상을 닮은 얼룩을 보고 위안을 얻듯이, 등산을 하다가 살아 있는 듯한 바위에게 혼잣말을 건네듯이, 우리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주는 위로를 계속 받고 있다. 작가는 사물의 그러한 토닥임을 잘 찾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평생 큰 바위 얼굴을 보다가 마침내 그 바위 얼굴을 닮아버린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처럼 우리도 어느 샌가 우리를 위로해주는 자연과 사물의 그 소박한 모습들을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 전혜정
Vol.20150818a | 헬렌 정 리展 / HELEN CHUNG LEE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