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814_금요일_06:00pm
기획 / 박상희
후원 / 인천문화재단_(재)가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선광미술관(선광문화재단) SUNKWANG ART MUSEUM (SUNKWANG CULTURAL FOUNDATION) 인천시 중구 신포로15번길 4(중앙동4가 2-26번지) Tel. +82.(0)32.773.1177 www.sunkwang.org
열림을 향한 횡단적 연결 ● 박상희, 김진우, 김혜영, 경지연이 함께 하는 전시 『Cross & Over』전은 고립된 각자로부터 탈피하여 서로를 횡단하고자 한다. 횡단을 통해서, 주체는 상호적 주체로 거듭난다. 현대인은 자기만이 사는 섬이나 성에 고립되어 있다. 예술가만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적 삶에서의 어려움 중의 하나는 과도하게 비대화된 주체들이 너무 근접하여 살고 있다는데 있다. 그것은 인간 간의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스스로를 보는 시선과 타자가 보는 시선이 결코 일치하지 않는 공적 사회에서 주체의 비대화는 색다른 결과를 낳기 보다는 갈등, 그리고 해소되지 않는 갈등에 대한 자기 위안을 낳는다. 소비생활은 값싼 위로의 대용품이 되었다. 예술은 능동적 생산이라는 점에서 수동적인 소비에 불과한 문화와 다르지만, 현대인은 생산할 수 있는 권리나 자유보다는 소비할 수 있는 권리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더욱 매진한다. 남들만큼, 또는 남들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살겠다는 보편적 추세와 예술의 길은 얼마나 다른 것인가.
이를 삶과 예술의 사이의 대립이라고 손쉽게 단정 짓지 말자. 각자의 섬이나 성에 갇혀서 비슷한 것을 소비하다보니 생겨난 자기동일성을 개성으로 착각하지 말자. 주체의 고립이 다름으로 변화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타자와의 만남과 대화는 하나의 돌파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의 네 작가는 각자 열심히 해왔던 이들이기에 대화는 더욱 생산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름만이 대화를 활성화한다. 하나에 몰입했던 삶만이 횡단에의 욕망을 낳는다. 그룹전은 당연히 이러한 교감을 전제로 한다. 각자 해온 것을 전시 전날 뚝 가져다 놓는 평범한 그룹전은 소모적일 뿐이다. '나는 나다'는 식의 소아병적 관념으로 뭉친 그런 전시들은 어차피 예술은 '우리끼리' 알고 가면 된다는 안이하고도 위험한 관념에 바탕 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과 접속될 수 있는 맥락이다. 전시를 위해 새로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도,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맥락을 통해 기존의 작업도 다시 읽히고 씌여지는 것도 중요하다. ● 이 전시의 작가들은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서로의 작품을 알아보고 만난 사이이다. 어떤 작품은 협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같이 만나 하나의 종합을 이룬다는 목적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전시 개념어인 'cross'와 'over'가 합쳐지지 않고 중간에 'and'로 연결되어 있음에서 알 수 있다. 각자의 이질성을 보존한 채 '그리고'로 엮이는 것이다. 'and'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라는 융통성 있는 사고와 관련된다. 이분법적 사고는 선명성—법학이나 논리학, 수학 등에서 진가를 발휘하는-을 보여주지만, 현실 자체는 이분법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는 좀 더 느슨하다. 너무 느슨해지면 정신분열증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반대편에, 억지로 정해진 하나의 키워드로 모든 작품을 열어 보이려는 편집증이 있을 것이다. 분열증과 편집증 사이에 적당한 자리는 없을까. 서로를 잇는 연결고리가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네 작가는 이 전시에서 그러한 연결과 열림 모두를 원했다.
도시적 일상을 물감과 시트지로 표현해온 박상희, 자동차나 로봇같은 소재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온 김진우, 가위 같은 물건에 인간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담아온 김혜영, 구글 어스 맵을 활용하여 상상의 유목을 그려온 경지연의 작품들은 외형적으로 너무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작품의 소재나 주제에 기계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참여 작가들은 그것을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기계는 그들 작품의 무의식에 깔려있다. 도시적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자동차를 그리는 박상희, 로봇의 외형 뿐 아니라 아예 자동차를 통째로 만들기도 했던 김진우, 가장 간단한 일상의 도구인 가위들이 등장하는 김혜영, 우리 머리 위에 떠있는 위성들을 전제하는 경지연의 작품들이 그렇다. 회화라는 기본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현대생활의 필수품인 기계가 깊숙이 자리한다. 마치 자기 몸에서 뽑아낸 거미줄과도 비교될 수 있는 회화 안에 이질적인 것, 즉 기계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기계는 단순한 소재를 넘어 주제이자 방법론이기도 하다.
기계는 잘려진 단면의 조합이라고 가장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하면, 기계는 연속체의 힘. 어떤 부품이 다른 부품과 연결을 말한다. 꼴라주나 몽타주, 구성주의에서 발견되는 잘라 붙이기는 20세기나 돼서야 미술의 방법론으로 인정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박상희의 도시풍경은 물감 칠 뿐 아니라, 시트지를 잘라 붙여 완성된 것이다. 간판으로 도배되어 있는 도시 역시 인공적 표면에 시트지를 잘라 붙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적 풍경을 현대적 재료로 표현한다는 발상이다. 김진우가 만드는 로봇이나 자동차 형태의 작품들은 서로 맞물려 작동해야 하는 수많은 부품들로 되어있다. 김혜영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위는 두 개의 날로 이루어진 간단한 기계이며, 이러한 가위는 현대 과학에서 '유전자 가위' 등의 개념에서도 알 수 있듯, 여러 차원의 재단이 있을 수 있다. 경지연의 작품 속 풍경이자 지도인 장소들은 인공위성에서 촬영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했으며, 서로 다른 두 지역을 작가 마음대로 접붙이기도 한다. ● 그림이든 테크놀로지 아트이든 잘라 붙이는 방식은 공통된다. 박상희의 그림 속 자동차와 김진우의 모터 형태의 작품은 직접 합쳐진다.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인 박상희가 강조하는대로, '크로스' 만큼이나 강조 돼야 할 것은 '오버'다. 횡단의 결과는 열려있는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따로 또 같이 작동한다. 그들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전시장에 서있는 것은 아니다. 기계를 통한 종합이라는 이상은 고전과학에서 전형적이다. 그 시대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시계였다. 제임스 글릭은 『아이작 뉴턴』에서 요소들이 맞물려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완벽한 기계공의 작업처럼 복잡한 시계처럼 함께 돌아가는 우주를 소개한다. 이러한 시계장치의 은유는 그 시대의 최고봉이었던 과학자 뉴턴의 세계관에서 발견된다. 물론 뉴턴 자신은 순수한 질서와 완전한 결정론이라는 환상에 굴복하지 않았다. 제임스 글릭에 의하면 뉴턴은 많은 운동의 원인을 고려하고 쉽게 계산할 수 있는 정확한 법칙으로 운동을 규정하는 것은 인간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전지전능한 신이나 연금술 등을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설은 계몽이 다시 마술로 빠져든다는 현대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해석이나, 확실성이 불확실성을 동시에 높인다는 논리학자들의 관점과도 함께한다. 과학의 역사는 뉴턴이 열어젖힌 근대과학이 결정론의 세계로 빠져들어 현대과학의 극복 대상이 됨을 알려준다. 시계처럼 모든 부품들이 딱딱 맞아 떨어져 돌아가는 사회는 근대의 이상이긴 하였지만, 이러한 총체성의 가상이 빅브라더의 그림자가 어른대는 원형감옥(Panopticon)의 세계를 창출한 것도 분명하다. 현대철학자들은 현대에서 빠질 수 없는 기계의 은유를 사용하면서도, 총체적 가상에 의존하지 않는 세계를 그려보았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티 외디푸스]가 대표적이다. 저자들은 기계를 절단들의 체계로 정의한다. 저자들은 하나의 체계에서 외부세계의 실제로 구별되는 두 부분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모든 곳에 기계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를 확장하여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로 보며, 어떤 사물이나 제도 등도 기계로, 예술조차도 기계로 비유한다. 부분과 부분이 만날 뿐, 유기체처럼 이를 총괄하는 전체는 없다. ● 전체와 부분 간의 유기적 조화에 근거하는 유기체적 비유가 억압적인 사회를 낳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현대의 기계론은 유기적 총체성이나 사이비 통일성 대신에 이접(離接)을 중요시한다. 이 전시에서 접속에 의해 연결된 기계라는 이미지는 각 개인의 작품 속에, 그리고 작품과 작품의 관계 속에 선명하다. 물감과 시트지(박상희), 그림과 기계(박상희, 김진우), 기능(쓸모)이 불확실한 기계(김진우), 사물과 사물 간의 예측할 수 없는 만남(김혜영), 마술적 사실주의와 위성지도(경지연) 등이 그것이다. 예상 밖의 이질적 항목들이 연결되는 만큼이나 작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욕망처럼 무엇인가에 붙어서 작동한다. 『앙티 외디푸스』에 의하면, 욕망은 기계요 기계들의 종합이요 기계적 배열이다. 즉 욕망하는 기계들이다. 욕망하는 기계들을 규정하는 것은 모든 방향에서 또 모든 방면에서 그것들이 무한한 것과 연결되는 능력이다. 이 힘에 의하여 그것들은 많은 구조들을 동시에 횡단하고 지배하는 기계가 된다.
「북촌 까페」, 「북촌 야경」, 「홍콩 스트릿」 등, 물감과 시트지로 이루어진 박상희의 도시 풍경은 간판, 인간, 자동차 등의 빽빽한 연결망을 보여준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간판을 홍콩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은 그러한 연결망의 예이다. 특히 인공조명이 지배하는 밤이라는 설정은 자연을 복속시킨 기계 문명의 위용을 강조한다. 박상희의 그림 속 자동차와 접속된 김진우의 동력장치는 있음직하면서도 이질적인 접합이다. 차의 심장인 엔진은 밖으로 빠져 나와 그림과 상호작용한다. 엔진은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평면과의 관계 속에서 그림도 기계도 아닌 어떤 영역을 창조한다. 접속은 비슷한 방법론을 통해 관철되는데, 박상희가 활용하는 시트지나 김진우가 사용하는 스테인레스 스틸이 모두 잘리워져 조합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김진우의 「플라잉 맨」, 「스케이터」와 같은 로봇형상의 작품들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신인류의 초상」처럼, 인간과 기계가 수렴하는 지점을 알려준다. ● 김혜영은 가장 간단한 기계장치 중의 하나인 가위에 은유적 사물을 접붙여 여러 관계들에 대해 말한다. 작품 「CRITIC.SCISSORS-독설」처럼 말로 상대나 대상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폭력적 관점부터, 「CRITIC.SCISSORS-방법」처럼 여러 쓰임새로 변신하는 사물들 간의 접합에 이른다. 접합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잘려져야 하며 단면이 생성되어야 한다. 작품 「FACE」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손쉽게 선택하는 이모티콘처럼 인간의 얼굴을 여러 버전으로 극대화한다. 쥐덫과 미궁을 중첩한 「new instrument유혹 –덫」에서는 기계와 유혹의 연결지점을 알려준다. 경지연의 작품에서 구글에서 검색한 위성지도의 풍경은 '예술을 통한 소원성취'(프로이트)의 예이다. 작품 속 장소는 실제로 가봤던 곳도 있고 정보로만 알고 있는 것도 있다. 경험과 정보는 서로를 강화한다. 경험과 정보는 작품 속 구불구불한 선과 환상적 색채처럼 분리할 수 없이 섞여 든다. 여기에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문학적 서사가 가세하면서, 작품은 마술적 변신의 장이 된다. 화가로 하여금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게 하는 그림이라는 장치는 이곳과 저곳을, 이 차원과 저 차원을 누비고 다닐 수 있게 한다. ■ 이선영
Vol.20150814c | 크로스 앤 오버 Cross & over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