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7길 12(옥인동 62번지)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오늘의 미술작업은 회화와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 이외에도 사진, 영상, 설치, 디지털 아트, 커뮤니티 아트 등 새로운 매체가 사용되고,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미술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의 상황들과 내용들로 인해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이러한 미술작업들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을까. ● 『실패하지 않는 그림: 드로잉』展은 모든 미술작업에 있어 선행하고, 실제로 이를 작동시키는 '드로잉'에 주목하는 전시다. 드로잉은 '생각'을 시각화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반복적으로 그리는 과정을 통해 이상적인 형태와 구도의 화면을 가능케 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드로잉은 짧은 시간동안 빠르게, 공들이지 않고 그려졌다거나 회화라는 완성된 작품을 위해 숨겨져야 하는 스케치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드로잉 작업 역시 그럴까? ● 이번 전시는 최근 회화장르에서 '드로잉적 요소'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부터 시작됐다. 드로잉의 방법론을 사용하지만, 회화적인 화면을 획득하고 회화적 감수성을 환기시키는 작업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관자들은 드로잉 작업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더이상 흘깃 바라보고 지나치지 않는다. 이렇듯 과거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지 못했던 드로잉 작업은 오늘날 독자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회화만큼의 시각성을 구현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로잉은 회화라는 최종목적지를 향한 과도기가 아니다. 또한 미완의 상태에 따르는 막연함이나 답답함이라는 감정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된다. 이제는 회화와 드로잉을 구별 짓는 일은 어렵고, 혹은 그와 같은 일이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드로잉 작업은 실패하지 않는 그림이 된다. ● 『실패하지 않는 그림: 드로잉』展은 강성은, 성민화, 이선경, 허윤희, 네 명의 여성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은 각각 연필, 잉크, 콘테, 목탄이라는 드로잉적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만을 공유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경험과 참조에 따라 사적인 서사구조를 형성하고, 흥미로운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통해 드로잉이 미술작업의 시작점에 위치한다는 사실과 현대미술에서의 드로잉 작업이 지닌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강성은의 '펜슬 클래식'은 2011년부터 드로잉 매체-연필-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부터 시작됐다. 특히 작가는 "밤"이라는 시공간에서 마주한 풍경을 성실하게 그려나간다. 켜켜이 쌓인 검은 연필 선은 밤 풍경에서 체험하는 시각적 깊이를 실현한다. 보통 빛이 사라지는 밤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상 눈의 감각이 가장 밝아지고 곤두서는 순간이다. 작가는 밤 풍경이 내재하고 있는 어두움과 찬란함이라는 이중적 시각을 검은 연필 선 그 자체와 그것들이 반사되는 순간으로 구현해낸다.
성민화는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낯선 누군가의 집과 담벼락을 잉크로 세밀하게 그린다. 얇은 잉크 선의 '집'의 풍경들은 유희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시각 경험을 하게 해준다. 건축적 조형 감각과 건축물에 켜켜이 쌓인 주름들과 흔적들을 투명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보이는 것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보이는 것은 무엇이었고, 보이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섬세하고 성실한 관찰을 해야 할 것이다.
이선경은 거울을 통해 바라본 자신의 익숙하지만 낯설기만 한 얼굴을 작업의 주요한 모티프로 삼고, 색연필 혹은 콘테로 그려나간다. 여성의 옆 얼굴과 의도적으로 변형된 신체가 함께 그려지는데, 이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근작은 가벼운 재료인 색연필과 콘테 사용에 깊이감이 더해지고 있다. 또한 특정 오브제나 동물들이 함께 나타난다. 이는 신체를 은폐하는 방법으로 충족되지 않았던 내면에 잠재된 불안과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보여진다.
허윤희는 목탄으로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사물들을 다소 투박하면서도 힘을 주어 그려나간다. 특히 「나무」 작업은 목탄으로 그린 후에 이를 지워내 자국을 남기고, 다시 그 위에 그림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쌓여진 '층(레이어)'은 흔적을 남길 뿐 아니라 회화적 화면의 깊이감을 형성한다. 한편 이는 삶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삶에서 마주하는 해답 없는 질문들에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성실하게 사유의 흔적을 좇는다. ■ 박은혜
Vol.20150813b | 실패하지 않는 그림: 드로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