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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 2015_0725_토요일_02:00pm
1회, 약 10분간 진행
관람시간 / 09:00am~08:00pm / 일~월요일_09:00am~07:00pm
서학 아트 스페이스 SEOHAK ARTSPACE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7(서서학동 51-3번지) Tel. +82.63.231.5633 www.seohak-artspace.com
vita nova! ● 롤랑 바르트가 콜레쥬 드 프랑스에 교수 취임 강연에서 마지막쯤에 이런 말을 했다. "가르치는 데는 3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교육의 시기 즉, 아는 걸 가르치는 시기이다. 두 번째는 연구하는 시기로 모르는 걸 가르치는 시기다. 마지막 단계는 잊어버리는 시기다. 지금까지 배운 걸 잊어버리는 시기. 잊어버린다는 것은 그동안 망각하고 있던 것을 다시 깨우기 위함이다. 약간의 지식, 약간의 지혜, 그리고 되도록이면 많은 사유(sapientia), 신체적 사유를 통해 끊임없이 나오는 어떤 생산적 사유를 불러오기 위함이다." 이런 사유를 바르트는 『vita nova』로 명명하였다. ● 작가와의 대담에서 필자가 농담처럼 물었다 "이번 사진기획은 현대사진 미학에서 유행하고 있는 방식들, 유형학적 방식, 따블로 이미지, 중성미학, 무표정성, 리메이킹, 시뮬라크르 미학 등등.. 중 어떠한 미학적 관점이 주 대상이었는지?..." 대답은 역시 그 다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현대사진'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방식을 일부러 피하려고 노력했다." 'vita nova!'
형식의 탈주 (désertion) ● 사진이 미술관에 걸리기 시작한 것은 예술의 역사에 비하면 일천하기 그지없다. 뮤지엄(Museum)이라는 말은 그리스 여신인 뮤즈(Muse)신을 섬기는 신전인 뮤제이언(Museion)에서 유래한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원래 종교적 성격을 가진다. 인류가 처음에 예술작품을 만든 것은 주술에 사용되는 형상물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즉, 제의가치에 의해 만들어졌다. 신에게 바치는 물건과 예술품들이 한 곳에 모아지면서 경배와, 신비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던 것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차츰 예술 활동이 儀式의 목적에서 해방됨에 따라 예술작품은 점점 더 전시를 위해 만들어졌다. 근대에 가까워질수록 전시가치는 제의가치를 밀어낸다. 제의가치의 최후의 보루는 인간의 얼굴이었다. 초상 사진이 그것이다. 이후, 사진에서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비로소 전시가치는 제의가치보다 우월한 지위를 획득한다. ● 벤야민이 주목한 것이 바로 사진에서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앗제의 사진이다. 벤야민은 제의가치와 展示가치(exhibition value)가 예술작품을 규정하는 두 개의 특징적 성격이며, 이 두 성격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고 들어서는 역사가 곧 예술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알려지지 않은 무명배우 으젠느 앗제(Eugene Atget 1857~1927)는 텅 빈 새벽 파리 거리로 현실의 분장(거짓 아우라)을 지워버렸다. '(앗제의 사진들) 영상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물을 빨아들이듯이 현실에서 아우라를 빨아들인다.'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길, 184면.) 벤야민이 아우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한 것은 아우라가 대상의 본질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상에서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때어내는 일, 다시 말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이 현대적 지각이 갖는 특징이라 생각했다. ● 그러나 현대의 전시회를 보라, 다양한 큐레이팅 기법들, 전시장의 조명, 구도, 배치 등은 여전히 아우라를 강화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강화된 아우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물 흐르듯 작품 속을 스쳐 지나간다. 채 일분도 안 되는 시간을 스쳐 지나가며 과연 작품 속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Price Sticker'의 부제 'The Objet'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형식의 탈주이다. ● 벽에 걸린 사진,, 그렇다고 사진집도 아닌 새로운 오브제로서 존재한다. 사람들을 관객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제거하는 것이라 했다. 반대편에서서 '바라보기' 보단 자신의 손으로 '넘겨보기'를 통해 관계와 인식을 강화하려는 시도이다. 'The Objet'를 들뤠즈와 가타리가 펼치는 '접속'의 시도라 하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오브제는 또 다른 실존이자 상징적인 스토리텔링의 연기(演技)이다. 벤야민이 직시했던 사진의 본질인 '아우라 파괴'의 또 다른 형식이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 '가치'란 하나의 대상과 이를 평가하는 인간이 마련한 기준 사이에서 생기는 관계이다. 가치는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성질로 나타나는 '가치(價値)'와 '반가치(反價値)'로 구별되지만, 포괄적으로는 이들을 함께 포함한다. '판단'이란 두 개의 서로 다른 개념 또는 표상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 '가치판단'의 문제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이기적이며 폭력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을 억압한다. 그렇기 때문에 억압당하지 않기 위해 가치판단에 뛰어들어 자기를 방어해야 한다. '가치판단'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사실판단'은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 영향력을 상실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하나의 체계이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를 구속하지 못한다. '사실'은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치'는 인간의 내부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가치판단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논리적이다, 과학적이다 라는 말은 언뜻 그 자체가 객관성이나 사실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철저한 가치편향적인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단지, 가치와 사실이 혼합된 판단문제에서 사실적인 우위를 점해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주입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것이다. ● '가격표 붙이기'라는 행위에서 작가는 '가치판단'이라는 행위가 갖는 '주체'와 '기준'의 공모를 폭로하고 관객에게 질문한다. 가격표를 붙일 수 있으려면 상품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상품이 나타나기 전에는 '가치'(경제학에서의 가치란 교환가치를 의미함)라는 말이 없었다. 화폐로 교환되지 못하는 상품은 가치가 없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간의(구매)욕구를 자극해야 한다. 광고미학은 이렇게 탄생한다. 상품미학은 오로지 인간의 (구매)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미'를 왜곡한다. 'Price Sticker'가 붙은 사진속의 사물(타자)들을 보라! 당신은 어떠한 상품가치를 보았는가? 당신은 어떠한 'Price Sticker'를 붙이겠는가? 사진 속 가격표는 저곳에 붙어있을 수는 있는 걸까? 작가가 '가격표 붙이기'를 통해 드러내려고 한 것이 상품사회(모든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치환 시켜 버리며 사물의 고유한 특성을 말살시켜 버리는)의 인간의 위상에 대한 조명일까?
'주체' 와 '타자' ● 'Price Sticker'는 하나의 인덱스다. 이 인덱스가 누설하고 있는 것을 좀 더 깊이 파헤쳐 보면 거기에는 욕망이 존재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캉』 '가격표 붙이기'라는 가치판단 행위의 기저는 '욕망'이다. 그 욕망의 정체는 나의 욕망이라고 착각하는 타자의 욕망이다. 카프카의 말대로 우리는 '나(주체)'와 '세상(타자)'의 싸움에서 언제나 '세상(타자)'을 지지해야 한다. '주체(욕망)'의 공백과 한계를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주체가 된다. 주체의 공백과 한계를 인식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무어감수감어인(無鑒於水鑒於人)' 『묵자』 '자신을 물에 비추어 보지 말고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는 말이다. 거울에 비추어보면 외모만 보게 되지만, 자기를 다른 사람에 비추어보면 자기의 인간적 품성이 드러난다. 주체의 공백과 한계는 주체의 내면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를 다른 사람(타자)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인식이 가능하다. 진정한 주체는 여기(타자성의 인식)에서 탄생한다. Price Tag는 우리의 욕망이자 나를 직시 하게 하는 감어인(鑒於人)인가? 타자에 붙여진 가격표는 바로 주체가 타자를 대하는 상품사회의 방식에 대한 폭로이다. 역사적 변화의 동력인 타자성을 악령 몰아내듯 몰아낸 자본주의적 신기루다. '가격표 붙이기'는 주체가 타자를 대하는 폭력성에 이미 무심해져버린 나에 대한 각성이다. ■ 서민석
'돈을 지불하라!' 가격표 붙이기는 하나의 행위이다. 그 이면에는 '가치 판단'이 있다. 하지만, '가치 판단'은 판단의 '주체'와 '기준'의 공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당신은 '주체'와 '기준'에 대해 확신하는가? 도대체 '가치'란 무엇인가? 고민의 '주체'는 다시 스스로(주체)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도대체 이러한 질문들은 '가치'가 있는가?.... ■ 엔지 양
Enzi.Yang의 'Price Sticker' 시리즈 중 'The Objet'는 사진집도 아니고 책도 아닌 새로운 오브제이다. 사진전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흥미로운 구성이다. 벽에 걸린 사진이기보다는 사진으로 구성된 그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사진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오브제를 통해 관객들 스스로 경험하게 만듦으로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격표 Price Sticker'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했다. 'The Objet'에는 페이지가 없다. 시작도 없으며 끝도 없다. 이로써 당신은 무수한 이야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엘리엇 맥거핀(Elliot MacGuffin)
Vol.20150723a | 엔지 양展 / Enzi.Yang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