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숲

임주리展 / IMJURI / 林珠悧 / painting   2015_0716 ▶ 2015_0823 / 월요일 휴관

임주리_세심한 격정_종이에 드로잉_41×56cm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성북구립미술관 2015 Summer Project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 관람종료 30분전까지 입장가능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로 134(성북동 246번지) Tel. +82.2.6925.5011 sma.sbculture.or.kr

소소한 일상의 숲에서 ● 일상의 숲이 존재한다. 수많은 삶들이 생동하는 그 숲은 인간의 소소한 심리와 감정이 깃든 내밀의 세계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현실의 껍데기와 세월의 무게를 벗어 버리고 각자의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어린 아이로 되돌아간다. 그는 최초의 순수함만을 간직한 존재이다. 우리는 어린 아이의 투명한 눈을 통해 수많은 존재와 풍경들을 바라보고 상상하며, 내면의 의식세계를 확장시킨다. 그 세계는 현실의 시공간을 넘어선 현실과 상상, 일상과 상상을 연결시키는 통로이자, 한 개인의 순수한 의식을 통한 내적 탐구와 일상의 변주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일상의 숲은 매일매일 새로운 자아와 풍경이 만들어내는 삶의 또 다른 은유이다.

임주리_세심한 격정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90cm_2012

임주리의 작품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매일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일상과 감정의 흐름들을 화면 위에 담아낸다. 때로는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평범해서 금방 잊혀질 것 같은 존재와 사물들이 빚어낸 찰나의 풍경들을 포착하고 기록한다. 사라 베이크웰(Sarah Bakewell)이 저술하였듯이 흘러가는 인생을 움켜질 수 있는 비결은 매 순간 겪는 경험에 꾸밈없이 순수하게 경탄하는 것이다. (사라 베이크웰, 김유신 역, 『어떻게 살 것인가』, 책 읽는 수요일, 2012.) 우리가 존재하고 느끼는 찰나의 순간은 마치 흘러가는 냇물처럼 머무르기도 전에 사라지고 만다. 작가는 일상의 순간에서 조우한 심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드로잉으로 그 이미지들을 가시화한다. 그것은 여과되지 않은 의식의 세계를 통해 드러나는 심상의 원형들로 복잡하지 않게, 그냥 단순하게 표현된다. 작가는 아무 거리낌없이 백지 위를 유영(游泳)하던 유년기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손짓으로 일상의 단편들을 자유롭게 그려 나간다.

임주리_회색숲_종이에 드로잉_59.7×42cm_2015
임주리_회색숲_종이에 드로잉_59.7×42cm_2015

임주리는 꽃과 신체를 조합한 인물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와 일상을 표현해왔다. 작가에게 꽃은 피고, 지고, 사라지는 생명체로서 무상한 자연계의 원리를 함의한 소재이자, 희로애락(喜怒哀樂)과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변화와 심리를 상징하는 소재이다. 작가는 꽃과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 일체화(一體化)시키고 표현함으로써, 그의 내면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또, 분절되거나 조합된 신체의 형상들은 타인의 시선과 실재하는 자신의 이미지에서 오는 차이와 역설을 의미한다. 그의 초기작품부터 등장한 꽃 모양의 머리를 한 '줄(Jule)'이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감정 세계 혹은 여성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을 투영하는 그의 분신이다. 늘어난 가슴을 천연덕스럽게 책상 위에 펼쳐 놓기도 하고, 날개처럼 돋아난 사람의 두 손을 단 채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기도 하며, 그를 짓누르는 악몽 같은 형상의 그늘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다. 이처럼 꽃은 작가의 다양한 감정과 심리를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상징체이자, 일상의 사물들이나 풍경 혹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자아를 드러내는 매개체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감정이나 상황, 맥락 속에서 변형되고 왜곡된 변종(Hybrid)의 형태로 존재한다. 작가는 현실의 시공간을 따라 매 순간 변화하는 자아의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내면 속을 흐르는 새로운 의식 세계를 발견하고 탐구해 나간다.

임주리_회색숲_종이에 드로잉_59.7×42cm_2015

최근 제작된 「세심한 격정」시리즈에서 작가는 여성의 성을 상징하는 화판이나 꽃술은 생략한 채, 단순한 선묘로 이루어진 꽃 모양 혹은 포니테일을 한 여성의 얼굴로 자신을 표현한다. 또,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들이나 나무의 형상과 결합된 신체 혹은 작은 숲의 형태로 묘사하기도 한다. 자크 브로스(Jacques Brosse )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무는 포근하고 넉넉한 여성적 이미지와 강인하고 든든한 남성적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양성적인 존재이며, 숲은 성스러움이 깃든 장소이다. (자크 브로스, 주향은 역, 『나무의 신화』, 이학사, 1998.) 근작에서 나타난 꽃이나 나무, 숲으로 표현된 자아의 모습은 기존의 작품에서 보여준 여성적 혹은 타자적 정체성에서 나아가 삶의 주체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자아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변화들이 더욱 두드러진다. 임주리의 신작 「회색 숲」시리즈는 일상과 상상의 미묘한 경계선을 넘어선 몽상의 세계이자, 무한한 내면의 세계를 담고 있다. 신작 드로잉 시리즈에서 작가는 초기 작품에서 보여줬던 다채로운 컬러를 배제하고 일상에서 깊이 들어간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화면을 무채색으로 채우고 있다. 뭉글뭉글 떠오른 작가의 몽상은 무채색 숲의 형상으로 무한히 증식된다. 숲 사이사이로 그의 어린아이가 돌아다닌다. 숲은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자아가 만들어낸 초현실적인 세계이며, 그 곳에서는 더 이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공을 초월한 자아와 일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 내밀한 숲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순수의 나날들을 통해 우리는 마음 속의 원초적인 자아를 찾아 나선다.

임주리_소소한 숲展_성북구립미술관_2015
임주리_소소한 숲展_성북구립미술관_2015

임주리는 오늘도 삶의 풍경이 어우러진 한 편의 에세이를 쓰듯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단편(斷片)들을 종이 위에 담아낸다. 우연히 조우한 삶의 순간들은 그의 손 끝에서 찰나의 꽃으로 피어나고, 하루의 나무로 자라나며, 일상의 숲을 이룬다. 한 개인의 일상과 내면에서 시작된 소소한 풍경은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무한한 사색의 세계로 확장된다. 숨죽인 채 공간 속 가득한 Jule의 움직임을 좆다 보면 어느새 관람자의 삶 역시 예술적 은유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 김경민

Vol.20150718d | 임주리展 / IMJURI / 林珠悧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