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710_금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미광화랑 MIKWANG GALLERY 부산시 수영구 광남로 172번길 2(민락동 701-3번지) Tel. +82.51.758.2247 www.mkart.co.kr
말하기의 안간힘 ● "말하지 못한 것, 생각하지 않은 것, 사고의 안과 밖에서, 또 언어의 경계선 위에서 종횡으로 드러내는 것" 그런 안간힘이 이은경의 작품을 일견할 때의 느낌이다. 여전히 분명하게 잡히지 않지만 그녀의 화면을 지배하는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은 반복되면서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서 처음 알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우울도 불안도 아니다. 삶을 통찰하려는 깊이에의 시선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고기의 배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요나의 이야기 같다. 자기 아닌 것에 열려 있으려는 고투야말로 이질적인 구성의 의미이자 그녀의 작품을 이끄는 힘이다. 그 힘을 몇 몇 작품을 일견하면서 만나본다. ● 출입문 안으로 누드의 인물이 비친다. 그런데 문 안이 아니라 문 밖에 있는 듯하다. 안과 밖의 구별이 애매하다. 온 몸을 내보이는 인물은 때로 문안으로 문밖으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듯하다. 그런데 그 인물은 서 있거나 누워있는 형상이 아니라 무중력 상태로 떠 있다. 응시랄까 아니면 엿보기로 드러나는 어떤 순간 같기도 하다. 스스로를 그렇게 내보이는 것같기도 하다. 타자의 시선이란 물고기 한 마리가 집 밖에서 그 인물을 바라보는 정도이다. 물고기는 지속적으로 그녀의 화면에 등장한다. 처음에는 물고기의 눈이었다가 최근 작품에는 사람의 눈으로 변해 있다.
바닥에 놓인 물고기 한 마리, 등짝을 어루만지는 손이 등지느러미를 대신한다. 그리고 정면을 향한 눈동자, 여기저기 유영하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이 현실의 구체성 위에 겹쳐진다. 마치 수족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지만 수족관에 비친 바깥의 정경이 중첩된 듯도 하다. 그것은 사실적 공간이기보다 만들어진 공간, 언어적 공간이다. 대체로 초기작이면서 그녀의 작품 전체를 이끌고 있는 이미지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거나 그곳에 사물을 놓는다. 공간은 다름 아니라 언어적 공간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자신을 찾아가는 질문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답에 대한 갈증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부터 드러나는 것에 주목하게 한다. ● 계단 위의 물고기, 창이자 액자틀 같은 바다, 술병 안에서 출렁이는 바다 풍경. 이 이질적인 만남은 그녀가 세상을 보는 통찰의 눈일까. 분열적인 이미지 중첩일까. 아니면 마그리트를 학습한 관성의 하나일까.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조합은 계속된다. 건물 벽면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골목길에 인접한 닫힌 문, 그 문 위로 돌연하게 드러난 붉은 입술 등으로. ● 벽, 창, 골목, 나무, 새, 인물, 그림자 등이 정합성 없이 드러나거나 서로의 개체 속으로 스며들기도 하면서 골목이 이어진다. 현실의 한 귀퉁이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비현실의 장면들, 그것은 이질적인 이미지들로 어떤 만남을 바라보고 있거나 응시당하고 있다는 공간의 혼재성을 말한다. 혹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거나 예견하지 못한 낯선 조우를 그냥 그대로 드러내는 수동적 태도이기도 하다.
실내의자, 창, 창밖의 바다, 물고기, 산, 섬, 나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장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초록 문, 계단 옆의 벽, 벽보다 짙고 큰 물고기, 시선이 닿는 순간 벽속으로 사라지는 얼굴 없는 인물, 꽃과 물고기가 골목에 떠 있는 배치는 어긋난 공간의 인상을 가중시킨다. 그 배치은 순식간에 우리들의 지각, 논리적이고 재현적 인상을 흩뜨린다. 나열하듯 드러나는 사물들은 그들 간의 정황이나 논리적 아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그녀가 보는 세계, 그녀가 만나는 세계는 온통 뒤죽박죽이다. 계단, 문, 그 앞의 실루엣으로 앉은 인물, 굳게 닫힌 푸른 문, 붉은 벽, 골목과 계단이 등장하지만 문은 닫혀 있고 계단은 어느 곳에서도 그 끝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골목길과 계단은 그녀 화면의 주요 소재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빈방 혹은 빈 공간으로 계단이 나고 문이 닫혀 있고, 여인의 손이 드러나고 창가에서 유영하는 물고기, 창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나뭇가지들. ● 계단이나 골목은 출입가능한 곳이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어떤 지점이다. 그러나 그녀의 계단이나 골목은 그 닿을 곳에 대한 어떤 제시도 없다, 도리어 의외의 순간에 끊어져버린 의식의 단절 속으로 우리를 내팽개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소재들의 나열을 이어주는 기제가 계단이나 골목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실재적인 공간이 없다. 그곳은 언제나 말들의 공간이다. 새, 물고기, 골목, 문 등의 어휘들이 떠다니는, 그래서 그 어휘들이 만들어내는 공간들이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어휘의 콜라주로 시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 구태여 현실적, 사물의 실재적 공간을 가지거나 묘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무 가지 위로 속옷차림의 여인이 보인다. 그러나 나무 위에 올라 탄 것도 아니고 그것에 의지해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곳에 그 여인이 있을 뿐이다. 그녀의 소재들 중 공중에 떠 있는 듯, 혹은 중력으로부터 일탈한 형태가 인물이다. 말하자면 가장 비재현적인 형상으로 보인다. 그녀의 작품에서 특징의 하나로 드러나는 것이 묘사불가능한 관념으로서 인물의 존재감이다. 그것이 그녀 자신일까. 그런 선정적 호기심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예단은 조심스럽다. 자칫 작품이 심리적 현상을 드러내는 증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심리적 증좌가 아니라 세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자신을 세계와 만나게 하는 통로일 뿐이다. 그것은 소통 불가능할 것 같은 세계의 한 귀퉁이에 발을 밀어 넣어 그곳의 기미를 감지하는 안간힘의 하나이다. ● 수족관 안을 들여 보듯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다. 그 수족관은 언제나 시선의 안과 밖이 중첩되어 있다. 현실과 비현실이, 갇힌 것과 열린 것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안을 들여다보지만 수족관의 유리 위로 바깥의 풍경이 드러나고 바깥의 풍경 사이로 수족관 안의 움직임이 겹쳐져 드러난다. 이 양가적 시선이 그녀의 작업을 이끄는 이질적 이미지와 또 다른 동력이기도 하다. 자신이 보면서 자신의 보이는, 타인의 시선을 느끼면서 자신이 타인인 그런 시선들의 교차와 다르지 않다. 자신과 다르지 않은 타인이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강박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서툴고 낯선 화면구성과 거친 색상처럼 시선과 이미지의 충돌은 온전하게 완결된 곳을 찾기 힘들다. 그만큼 그녀의 작품은 안에서 나오는 것들을 쥐어짜듯 찾아내려는 머뭇거림과 안간힘으로 놓여 있다. ● 소통불가능하기에 소통가능 하도록 안간힘을 쓰는 것, 그것이 언어라면 그녀가 당면한 부조리한 이미지들의 중첩과 배치가 그런 안간힘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그림그리기는 불가능한 언어들의 번역에 가깝다. 비로소 그렇게 드러나는 것들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가지는 것, 그런 작업이 그녀의 그리기다. 몽타주나 콜라주를 보는 듯한 그녀의 화면 구성이나 이미지의 만남은 자신과 삶을 통찰하기보다 드러내기, 그렇게 해서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그리기다. 이질적 이미지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고 자기 아닌 것에 열려 있으려는 고투야말로 그녀가 열어 보이는 세계이다. ■ 강선학
아주 오래 전 '에드워드 뭉크'의 사춘기라는 그림을 보고 느꼈던 떨림을 아직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침대 위에 어색하게 걸터앉아 보이고 싶지 않은 부위를 감추려는 듯 허벅지에 교차시키며 떨어져 있는 긴 두 팔, 잊을 수 없는 불안한 시선의 큰 눈망울, 두렵고도 불안한 소녀를 더욱 더 흔들리게 하는 노랑과 붉은색의 거친 터치의 뒤 배경. 말이나 글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었든 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영감을 따르기 보다는 나 자신에 질문하고 사유하고 관찰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얻는다. 굳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일상생활 속 지나가는 어떤 장면이나 상황들에서 기묘한 무엇을 포착할 때 그 분위기와 감정 상태 등을 자세히 기록하며 그 느낌이 전해지는 대로 가볍게 스케치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느꼈던 내 감정이 무엇인지 거기에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지 등을 깊이 고심하고 그것을 소재로 영감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아직 사람들이 활동하기에는 이른 어스름한 아침이다. 인도보다는 찻길에 가까운 길을 끼고 중년 여성이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워 무심히 걷고 있는 모습을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어스름한 새벽, 찻길, 유모차에 탄 강아지, 끌고 있는 중년여성 나에게 그 장면은 순간적으로 충격과 두려운 낯섦으로 전해졌다. 그 장면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어 작업하게 하는 영감을 가져다준다. 아마도 그리게 된다면 동시대인의 자화상이 캔버스에 옮겨지지 않을까?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고 자기감정에 빠져 눈을 즐겁게만 하기 위해 그리는 맹목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지 않겠다. ■ 이은경
Vol.20150710i | 이은경展 / LEEEUNKYUNG / 李銀慶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