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수 없는 바다(The Unhaversted Sea)

안유리展 / ANYURI / media.installation   2015_0709 ▶ 2015_0809 / 월요일 휴관

안유리_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 테셀에서 제주까지 (Floating Land Drifting Heart; From Texel To Jeju)_re-edited_단채널 비디오_00:05:42_2015

초대일시 / 2015_0709_목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5_0801_토요일_04:00pm 대담자 / 안소현(큐레이터)_정은영(작가)

후원 / 서울시립미술관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풀 ART SPACE POOL 서울 종로구 세검정로 9길 91-5 Tel. +82.2.396.4805 www.altpool.org

말들이 잠긴 바다에 부치는 시(詩) ● 안유리는 20대의 끝에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떠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작가는 할머니에게 말과 글을 배웠고, 모든 것의 처음을 할머니와 함께 했다. 항상 어딘가를 가보고 싶어 했으나 가지 못한 할머니의 말들과 마음을 먹고 자란 그에게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을 게다. 그리고 떠나간 곳에는 늘 할머니의 말이 따라다닌다. 이동과 미동(微動), 싸움과 화해의 기록이자 자신의 첫 단어장이라 밝힌 작가의 책 「깍(Writing on the Edge)」(2011)에서는 앞선 말들의 발자국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그 여정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인생의 한 단락을 모아 일종의 고백과도 같은 문장들을 세상에 내놓은 뒤, 작가는 곧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유학 길에 오른다. 자신의 말을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방인의 삶은 작가 안유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낯선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려지는 말들은 그의 안에서 다른 언어와 충돌한다. 누구나 겪지만 저마다에게 특별한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존재들- 과거와 현재, 고국과 이국, 모국어와 외국어 -과 그것이 빚어내는 현상에 관심을 갖고 텍스트와 영상작업을 이어간다. ● 「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 테셀에서 제주까지(Floating Land Drifting Heart: From Texel To Jeju)」는 작가의 그러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으로 네덜란드 북해의 한 섬, 테셀(Texel)에서 진행되었다. 이 낯선 섬에서 작가는 암스테르담으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제주를 떠올린다. 테셀은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이 항해를 시작한 곳으로 400년 전 그 먼 이야기의 '첫 페이지'이다. 작가는 테셀에 남겨진 하멜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지금 서있는 곳(테셀)에서 출발해 자신이 떠나온 끝(제주)에 표착한 그에게 이방인으로서 시간을 초월해 공통점을 발견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이 떠나온 제주를 향해 편지를 띄운다.

안유리_추수할 수 없는 바다(The Unharvested Sea)_단채널 비디오_00:09:00_2015
안유리_추수할 수 없는 바다(The Unharvested Sea)_단채널 비디오_00:09:00_2015
안유리_추수할 수 없는 바다(The Unharvested Sea)_단채널 비디오_00:09:00_2015

2014년 여름, 학업을 마친 작가는 이국의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귀국한다. 작가가 집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던 시기에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라 전체가 침몰할 듯한 슬픔을 겪고 있었다. 공교롭게 「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에서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진도와 제주도로 찾아갈 계획이던 작가는 아직 귀환하지 못한 말들과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픈 바다로, 섬으로, 그곳에 남겨진 이야기들을 향해 조심스런 발걸음을 옮긴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들에는 저마다 오래 간직한 이야기들이 있다. 전라남도 진도에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는 '뽕할머니'의 간절한 기원을 듣고 용왕이 바다에 길을 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매해 음력 2월이면 자유롭게 육지를 오갈 수 있는 바닷길이 열린다. 더 먼 바다, 제주에서는 같은 시기 '영등할매'를 위한 제(祭)와 굿이 한창이다.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그 노래는 바다로 흘러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말들을 위로한다. 「추수할 수 없는 바다(The Unharvested Sea)」(2015)에서 그는 바다를 떠다니는 전설이나 신화를, 바다로 떠난 이와 바다에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들과 함께 엮어 낸다. 제주를 거쳐간 하멜, 바다를 건너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가족을 향한 기도로 바닷길을 연 뽕할머니, 남은 사람들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바람을 몰고 오는 영등할매까지, 모두 작가의 상상 속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이야기 또는 지나간 자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다시 쓰여져 한편의 시가 된다. ● 항상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을 품어왔던 작가는 시인 허수경의 작품에 공감하여 시인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의 문장이 자신에게 위로였다는 작가의 고백에 시인은 서늘하지만 기꺼워하는 문장으로 화답한다. 이렇게 시작된 특별한 인연으로, 당시 시인이 연재 중이던 소설 『박하』에는 유리라는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 나귀의 이름을 유리라고 지었다. 유리가 물을 먹고 난 뒤 눈을 감는 시늉을 하자, 나는 놈이 행여라도 잠이라도 들까봐 등에 올라타고는 고삐를 조였다. 유리는 아무 기척도 없이 가만 서 있다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고대 어느 왕국의 신화에 나오는 신 하나를 떠올렸다. 사막과 오아시스의 신으로 나귀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의 머리에 인간의 몸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귀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었다. (허수경 『박하』 중)

안유리_항해하는 말들; 시인과의 대화; 허수경 (Sailing Words; A dialogue with the Poet, Huh Sujkyung)_ 텍스트 인스톨레이션, 천_160×80cm×12_2015

서신으로 계속 이어진 둘의 대화는 어느새 첫 만남을 추억할 만큼 켜켜이 쌓여 작품이 되었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시인과 주고받은 서신을 선별하고 다듬어서 텍스트 설치로 선보인다. 두 예술가, 또는 두 시인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걸어온 길들의 이야기와 고민을 알 수 있다. 전설과 신화에 기반한 작가의 영상과 이미지, 텍스트들은 특별한 장치나 기교 없이 공간 안에 담담하게 나열된다. 영상은 사운드와 함께 공간을 감돌고 텍스트는 바람에 스치듯 가볍게 떠있다. 작가는 이미지와 말들이 공간 속에 부유하도록 내버려 두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시각화한다. 「추수할 수 없는 바다」는 긴 여정을 담고 있는 서사시이지만, 그 여정의 매 순간에 그리움과 공감을 담은 서정시이다. ● 허수경은 작가와 주고 받은 서신에서 젊은 예술가를 만나는 계절은 어느 날씨이든 어느 계절이든 특별하다 말했다. 시인의 표현처럼 "가장 혼자이고 가장 독특한 개인"–바다를 건너 아직 건져내지 못한 말들을 안고 이곳으로 찾아온 젊은 예술가–안유리를 만난 이 계절은 우리에게도 특별한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 정재은

안유리_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Floating Land Drifting Heart)_슬라이드 프로젝션_20점_2014

내게 말을 처음 가르쳐준 사람은 물과 뭍이 만나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말들은 대지에서 바다로 나아가려는 물줄기처럼 언제나 여기에 없는 누군가를 향해 울부짓는 휘파람과도 같았다. 그녀의 말을 먹고 자란 나는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그녀의 세계밖으로 나간다면 어딘가에 새로운 말들이 사는 집이 있을거라는 기대를 했다. 낯선 말들의 집앞에 이를때마다 생각했다. 그들의 입속에도 땅과 바다의 소리가 함께 있었다. 사라져가는 말들과 기억되길 원하는 말들이 떠올랐다 부서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풍화된 말들을 입속에 품은채 살아가고 있었다. 때때로 그들의 말이 지나간 자리에 길이 생긴다. 나는 그 길이 불러주는 노래를 듣는다. 노래는 먼곳에서 먼곳을 부른다. 말들은 집으로 향하는 길을 수놓는다. 당신의 이름을 따라 계속 걷는다. 집으로 가기위해, 나는 노래한다. ■ 안유리

She who taught me my first words, was born in the village where water meets land. Her words sounded as if it were a stream that wanted to go forward from the earth to the sea, whistling to someone who is not here. I who was raised by her words, always desired to leave to someplace. When I walked out from her world, I expected to find the house of new words. Whenever I reached the house of unknown words, I listened to people's voice. There was the sound of the land together with the sound of the sea. Dying words, words that wanted to be remembered, were floating and coming apart. People were living with the weathered words in their mouth. Sometimes, their words would leave a trail. I listen to the song that the path sings for me. The song is calling from afar to faraway. The words embroider the way home. Walking along your name. To go home, I sing a song. ■ Yuri An

Vol.20150709d | 안유리展 / ANYURI / media.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