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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708_수요일_06:00pm
기자간담회 / 2015_0707_화요일_02: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29-4(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행복을 찾는 여행 ● 누구나 행복(幸福)을 꿈꾼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흔히 사전적 의미로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김경민의 조각이 지닌 중심 키워드 역시 '행복을 찾는 여정'이다. 이 행복에 대한 갈망은 인류의 가장 오랜 염원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행복에 대한 열쇠를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 수많은 선인(先人)들도 제각각 행복에 대한 의미를 남겼다.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자만이 또한 행복을 얻는다.(플라톤),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남의 장점을 존중해주고 남의 기쁨을 자기의 것인 양 기뻐하는 자이다.(괴테),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링컨), 행복에서 불행의 거리는 고작 한 발짝밖에 안되지만 불행에서 행복의 거리는 매우 먼 거리다.(유태인 격언)…. ● 김경민 조각의 남다른 점은 바로 인류의 숙원과제인 행복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은 참으로 단순하고 경쾌하며 재밌다. 난해하거나 멀리 있지 않다. 어둠 속에서 등잔불을 들었을 때에 가장 먼저 보이는 발등만큼이나, 평소 잊고 있던 아주 가까운 곳에서 '행복의 조각들'을 모으고 있다. 어쩌면 건강의 비결이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먹는 '밥심'에서 나온다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왜냐면 그녀가 선보인 주인공들은 대개 우리의 모습이거나 주변인이기 때문이다. ● 몇 해 전 흥미로운 책이 화제였다. 무려 42년간이나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의 총책임자를 지낸 조지 베일런트(George E. Vaillant) 교수가 쓴 《행복의 조건》이란 책이다. 이 책은 장장 75년간 하버드를 졸업한 814명의 성장과정을 관찰해서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분석했다. 결과는 짐작했듯 놀랍도록 '정말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책에서 강조한 것 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선 '삶을 즐기는 놀이와 창조성을 발휘하고, 사랑의 친밀한 정서와 유머감각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의 작품들은 최대한 무심코 바라보면 좋습니다. 보이는 대로 직관적인 느낌이 중요하죠. 작품은 사회적 변화를 강요하거나 의도하는 무거운 주제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작품으로 인해 어떤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그것은 단지 어떤 편견들이나 왜곡된 시선들을 벗어버리는 것으로도 가능합니다. 상처와 고통으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작품을 통해 따뜻함과 치유의 기쁨을 전달해 주고 싶습니다." ● 김경민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엔 우연성과 지속성 그리고 친밀감이 넘쳐난다. 의도되지 않고 꾸밈없는 일상의 반복적인 모습, 누구나 꿈꾸고 싶은 행복한 미소 가득한 모습들이다. 서로 다른 이가 만나 부부의 연으로 오래 살다보면 닮아 간다고 한다. 같이 울고 웃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흔히 한 가족이 취미가 같거나 여가생활을 공유할 때 더 큰 행복의 공감대가 생긴다고 한다. ● 전시 출품작 중 하나인 「야구가족」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절로 난다. 주말을 맞아 온가족이 야구복장으로 갈아입고 주말야구장 나들이에 나섰다. 앞서가는 엄마의 배낭엔 야구배트가 담겨 있고, 아빠는 어깨엔 방망이를 목에는 막내를 태웠다. 뒤따르는 두 아이들도 질세라 야구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하버드의 조지 베일런트 박사가 강조한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한 가족상이다. ● 이처럼 김경민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녀의 가족이야기는 전혀 특별하거나 진지한 것이 아니다. 그저 주변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목격할 수도 있거나, 너무 흔해서 스쳐 지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장면이다. 그런데도 왜 그토록 실감나고 정겨울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직접 체감하고, 실천하고,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솔직한 독백이다. 꾸밈이 없기 때문에 더욱 진한 진정성이 묻어나오는 것이다. ● 마치 작품 「집으로Ⅱ」처럼, 작가에게 가족은 선물과도 같은 존재인 셈이다. 아무리 힘겨웠던 하루였다 해도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면 어찌 발걸음이 무거울까.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남편과 그 허리를 감싸 안은 아내 사이엔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가득하다. 만세를 부르고 있는 아이나, 안장에 높게 쌓인 선물더미에서도 이 가족에게 있어 행복의 의미가 무엇일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일상에서 만난 힐링 ● 휴식은 쉼 없이 달리던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부터 시작된다. 휴식이 없다면 쉼 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갑갑하고 무료하며 심적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자신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위한 여행으로 재충전을 하는가 보다. 생텍쥐베리의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라는 말처럼, 그 떠남은 특별한 목적에 얽매이지 않는 가벼움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힐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아마도 김경민의 조각이 지닌 핵심 키워드는 행복 못지않게 '자가 치유될 수 있는 일상의 발견'일 것이다. 이처럼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의 피로감까지 개운하게 씻어주는 작품'으로 인식되는 것도 작가 특유의 위트 넘치는 감정표현에서 비롯될 것이다. 자신의 주변 일상에서 느끼는 평범한 요소들을 포착해 맛깔스럽게 재구성해낸 센스가 돋보인다. ● "나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삶의 리듬에 대한 감각과 동시대성의 감각, 공동체의 감각, 그리고 보편적인 공감 능력 등이다. 이는 작품들이 주로 가장 일상적인 삶의 이슈들, 일상의 인간들의 모습들, 즉 일상성의 리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작품은 이 리듬을 이해함으로써 가장 깊이 공감할 수 있다. 나의 작품들은 일상의 삶과 그것의 존재론적 리듬, 신체의 리듬들에서 오는 느낌들을 공감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 일상적인 삶의 재발견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은 김경민 작품 전반에 깔려있다. 그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최근 작품의 표현형식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김경민의 작품세계는 기존의 팝아트와 엄격히 구별해야할 새로운 장르의 '팝 리얼리즘(Pop Realism)이다. 올덴버그나 리히텐슈타인, 나아가서는 앤디워홀 류의 팝아트와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낼 뿐 아니라, 국내외의 재현적 극사실주의의 리얼리즘과도 궤를 달리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 상대적으로 2000년 전후의 초기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미술평론가 이경모의 경우 "김경민은 자신과 주변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통하여 사회적 삶의 모순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거듭되는 자문(自問)과 자답을 통하여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나 정형화된 시스템 속에 구속되어 자신의 처지조차도 생각할 겨를이 없는 현대인의 단상들이었다."고 바라봤다. 주요 모티브는 같은 일상이되, 작품주인공이 지금처럼 가족구성원이 아니라, 치열하고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려는 현대인이었다.
"작업의 주제들은 동시대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삶에서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고 행한 적이 있을 법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엔 예술과 일상의 삶이 단절되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들에 등장하는 대상들과 상황들은 우리가 습관처럼 행하는 그런 행위들, 무의식중에 무반성적으로 행해지는 것들이어서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담론이나 이론을 끌어들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 김경민의 초창기 작업 역시 인위적인 이론과 담론에 의존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솔한 생활상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인간적인 욕망의 이면들을 서사적이면서 희극적으로 중계해 주었다. 아마도 최근 작품들의 성향은 1997년 대학원 시절의 석사논문 「풍자적 리얼리즘에 관한 조형성 연구」나, 같은 해 첫 개인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김경민의 희화(戱化)적 작품성격은 '채플린의 일생을 영화화한 희극을 조각으로 옮겼던 경험'들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된다. 시기별로 작품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자. ● 우선 첫 개인전을 가진 1997년의 작품들은 사회성 짙은 상황을 포착했으며, 고된 현대인의 일상을 묘사했다. 당시는 'IMF 사태'가 일어난 원년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중년 남성들은 마치 힘겨운 현실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던 우리의 아버지상과 같았다. 가령 작품 「귀가(歸家)」은 버스 손잡이에 체중을 싣고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라면, 광대처럼 공중에 매달린 두 남자가 창과 방패를 들고 겨루고 있는 장면의 작품 「인생놀이」는 당시의 치열한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 또한 중년의 고된 일상이 눈물겹게 그려지기도 했다. 작품 「앗차!」는 사다리를 오르다 발판이 부러져 아찔한 순간을 맞은 중년 남성의 당황한 모습이 보이고, 작품 「자유의 야성적인 행복감」은 영업을 마친 술집에서 관객도 없이 홀로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중년의 남자에게선 형언하기 힘든 외로움이 전해진다.
1999년에 접어들어서는 작품의 관심사가 사회성에서 개인사로 점차 전환되는 시기를 맞는다. 예를 들어 작품 「감언이설(甘言利說)」은 턱에 욕심 살이 두둑한 남성이 천사의 날개를 달고 좌대 위에 신상(神像)처럼 세워져 있고, 「가로등도 졸고 있는」의 경우 무엇이 그리 고단한 지 거나하게 술 취한 중년의 가장이 가로등 밑 벤치에 기댄 채 늘어져 잠든 모습으로 대조를 이룬다. 같은 해에 제작된 다른 작품들인 「결혼식」, 「어느 동물애호가의 주장」, 「I like shopping」 등은 점차 개인의 일상으로 표현범위가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I like shopping」의 경우 2001년에도 시리즈물로 재등장한다. 이처럼 2000년이 넘어서는 완전히 개인사적인 일상이 주를 이루고, 브론즈 본연의 색을 살렸던 이전과 달리, 작품 표면에 원색의 칼라로 채색하는 형식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 2000년 초반의 대표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변기 위에 올라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인을 묘사한 「습관」이나, 걸레질 하는 남편 엉덩이에 태연하게 앉아서 독서 중인 아내를 표현한 2001년의 「낯선 천국」을 들 수 있겠다. 이 「낯선 천국」은 같은 제목으로 2008년도에도 등장하는데, 마치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역전된 형국을 연출해 보인다. 이런 성향은 이후 줄곧 2004년까지도 이어진다. ● 2004년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여성 상위시대'를 보여준다. 작품 「Yes Man」의 빈 의자에 줄 서서 굽신굽신하는 남성들의 연약함에 비해, 「쇼핑하러 갑니다」에선 고급스럽게 치장한 젊은 여인이 강아지와 함께 쇼핑하러 신나게 백화점으로 향하고 있다. 또한 다이어트가 걱정되는지 쇼파에서 빵을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여인의 「갈등」이나 「일하는 여성」과 달리, 작품 「우리 아빠」에선 방금 젖병을 물렸던 아이를 안고 런닝머신에서 뛰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 2008년에 들어서는 비로소 가족이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작품 「Good-Morning」에선 아빠와 엄마는 출근하고 아들은 등교하는 모습이고, 가족이 함께 달을 따러 나선 작품 「달 따러 갑니다」는 이전의 동명 작품에선 남편 혼자였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작품 「돼지 엄마」은 목욕탕에서 아내의 등 밀어주며 행복해하는 남편의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그리고 2011년의 작품 「기념일」에선 아내를 위해 선물 한 가득 사서 귀가하는 남편도 등장하고, 역시 같은 해 작품 「집으로」도 온 가족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더 없이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이렇듯 작품 속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젊은 부부와 세 아이, 애완견 등은 바로 작가 자신의 가족이기도 하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모습에 작가만의 풍부한 상상력을 더해서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고 있다.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이 구비된 김경민 작품의 등장인물에서 '조각은 육중한 것이 제 맛'이란 고정관념은 보기 쉽게 깨져 버린다. 난해한 개념이나 추상적인 이미지가 난무하는 현대미술의 홍수 속에서 김경민의 '쉬운 조각'은 어쩌면, 인간이 예술과 나눌 수 있는 가장 소소한 교감의 기쁨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 김윤섭
Vol.20150709b | 김경민展 / KIMGYUNGMIN / 金庚民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