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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쉬 서래 GALLERY AHSH SEORAE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동광로 27길 3 B1 Tel. +82.2.596.6659 www.galleryahsh.com
흔적의 배턴 baton ● 태양은 앞으로 약 50억 년의 삶을 더 지속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구의 수명도 50억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고, 지구를 터전으로 발전한 사람의 역사도 50억 년의 시간만이 남은 것이다. 50초가 아닌 50억 년이라는 체감할 수 없는 기나긴 시간이 남아있기에 우리는 무한한 감정으로 생을 이어간다. 그러나 단명의 운을 타고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의 길이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곧' 또는 '후에' 모두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가 그랬듯 현재도 미래도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50억 년의 유한한 틀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실제와 실체란 없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시간과 기억 속에 잊혀질 수도 있지만, 흔적은 어떠한 형태로든 이어나간다. 역사 속에 멸망하고 흥하는 왕조는 지금까지도 수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고대 로마의 유적은 아직도 발굴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풍파가 모든 것을 침식하며 잠식하여 무로 되돌리고 있지만, 우리는 사라지는 시점의 흔적을 되받아 다시금 넘겨주며 서로가 서로를 이어주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내게, 내가 나의 자식에게... 잃어버린 물건의 만드는 법을 전수 받듯이 흔적의 배턴을 복잡하고 다양하게 넘기고 있다.
신념의 낙인 烙印 ● 낙인은 불로 달구어진 도장을 죄수나 가축에게 찍어 그 표식을 하는 것이다. 이런 낙인은 대부분 범죄의 증거나 형벌로서 행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두려움을 느꼈거나, 그 낙인의 주인을 보며 기피 하였다. ●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불교에서는 연비(燃臂)라 하여 팔뚝에 불로 점을 찍어, 승려가 되는 의식에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카톨릭의 스티그마타(Stigmata)는 성스러운 흔적을 나타내며 성자들에게서 주로 발생하는 신실함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두 개의 다른 종교가 같은 관점에서 낙인을 보고 있다. 불가의 의식은 수행의 고통을 이겨나가겠다는 의미로 또 카톨릭은 십자가 예수의 고통을 상기하며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두 의미 모두 일맥상통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육체적인 교훈의 흔적을 이어받아 신체에 정신적인 신념의 흔적을 새기거나 새겨지는 것이다.
정지선의 텔레그램 Telegram ● 종이 위에 갈색의 점들이 찍혀있다(작품명: The pattern of being). 수백,수천,수만...숫자를 인지할 수 없어 한계가 넘어선 점의 개수가 보는 이를 압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작은 분명 하나의 점이었을 것이다. 그는 향의 불씨를 이용하여 종이를 태운다. 멀찌감치 바라본다면 그것은 점의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향불에 그을리며 타들어 간 자국들이다. 당연한 이치이지만 수많은 화흔에 같은 모양은 없다. 동일하지 않은 수 없이 많은 점들, 하나의 시작으로 끝없이 뻗어 나가는 행과 열은 곧 사람을 닮아버린 흔적으로 오버랩 된다. 타들어 간 구멍은 존재를 기억하는 흔적이고 그 자취는 다른 자국을 불러오며 반복적으로 다른 점들을 찍어간다. 사라졌지만 흔적을 남기고 떠난 자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이어져 지나간 삶의 전보를 우리에게 부친다. 한 가지 다름 점이 있다면, 그 전보는 또 다른 해석을 해낼 필요 없이 가슴으로 바로 찍혀나간다.
정지선의 한 점 ● 작품 'The pattern of being'의 한 점이 그가 가족을 그린 그림은 아닐까. 멀찍이 보이는 하나의 점이 갖는 다른 하나의 이야기가 엄마와 딸 그리고 가족이라는 작품에 담겨있다. 절제된 표정은 오히려 마음속 의뭉스럽고 복잡한 심정을 참아 내리는 듯하다. 단순하지만 응축된 삶의 얽혀진 속내들이 녹아있다. 전자의 작품에서 느낀 그대로 하나의 점이자 모든 것의 점이 될 수 있는 것처럼...손과 발의 위치가 엉뚱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머리에게 머리가 수족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기에 중간의 머리를 지나지 않고 오직 마음만으로 위치를 잡은 손과 발은 본래의 그들을 따라간다.
비록 연기처럼 날아가 버릴 육체이지만 지나온 시간과 추억을 버무려 만든 영혼의 진(津) 만큼은 더욱 깊게 파 내려가는 흔적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고통의 상처조차 도 신념의 표식으로 바뀌어 성스러운 자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생과 사를 반복하며 이어지는 삶의 흔적은 끝없이 생성된다. 애초부터 타 들어간 잔재의 기록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그들이 살아가는 삶이 아문 자리들이다. ■ 김승환
Vol.20150707c | 정지선展 / JUNGJISEON / 鄭智先 / painting.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