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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창환 홈페이지_www.chunchanghwan.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10:00pm
세움 아트스페이스 갤러리카페 S SEUM ART SPACE GALLERY CAFE S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소격동 73번지) Tel. +82.2.733.1943 www.seumartspace.com
모델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상대에 대한 매우 꼼꼼하고 밀착한 시선을 필요로 한다. 특히나 그 대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착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선의 직접성은 오히려 그에 대한 어떤 거리감마저 불러일으키게 된다.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라서 가족, 친구, 연인의 얼굴을 작은 점과 흉터 하나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막상 작정하고 그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미 알던 특징, 장점, 결함들에 미처 알지 못하는 새삼스러운 낯설음을 느끼곤 한다.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때는 의식하지 않았던 일대일 상황의 어색함과 "너와 나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다"라는 고독함마저 문득 엄습하곤 한다.
천창환의 두 번째 개인전 『어긋난 사람들 (Figure Out)』은 바로 이러한 초상화의 제작방식에 주목한다. 작가의 지인들을 그린 일련의 초상화 연작들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초상화 제작을 위해 세 번의 작업과정을 거친다. 먼저 지인들과 마주하여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대략적인 인상을 크로키한 후 이를 마스킹한다. 그 후 같은 포즈의 초상사진을 관찰하며 캔버스 위에 다시 유화로 초상을 그리고 마스킹을 벗겨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시 드러난 크로키 형상에 맞추어 채 마르지 않은 유화물감에 붓질을 가함으로써 선과 채색 사이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작품제작 방식은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를 알아가는 방식과 사뭇 비슷하다. 상대방을 알아간다는 것은 처음 가지게 되는 '인상'을 토대로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구체적인 성격을 '파악'해가는 것이라고 거칠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많은 오해와 실망을 겪는다. 조금씩 관찰이 더해갈수록 처음 받은 인상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반대로 처음에 가졌던 인상이 세심한 관찰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어긋남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대상에 대한 인상과 관찰 모두 애초부터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거칠고 굵직하게 그려나가는 크로키가 정교한 채색의 섬세함을 따라갈 수 없듯이, 나누고 쪼개진 물감 자국들은 경쾌한 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압축적이고 강렬한 성격표현을 드러내지 못 할 것이다.
작업의 최종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크로키와 유화 사이의 붓질을 통한 관계설정은, 회화적으로 인위적인 물질성을 드러냄으로써 대상의 본질에 다가설 수 없는 한계상황을 고백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러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판단 속에서라도 그 관계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가야 함을 주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상을 바라보며 발생하는 수많은 오판과 오해를 받아들이며 그에 대한 근사치를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명 '어긋난 사람들 (Figure Out)'은 인상과 관찰에도 불구하고 생겨나는 상대에 대한 판단의 '어긋남'이 분명한 한계를 가지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알아가고 이해하는(figuring out)' 데 있어 필수불가결함을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에 가진 첫 번째 개인전 『Burst』에서 천창환은 현대사회의 사소하고 지시적인 기호들을 파편화시킴으로써, 우리의 일상이 피상적이고 비자발적인 시선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기호 작업들에 약간 선행하여 이루어지다가 그 이후 다시 본격적으로 진행한 본 전시의 초상작업들은, 인간이 가진 (시지각이 아닌) 시선의 한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 간격 사이의 기호 작업들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 하지만 기호 작업들이 대상의 형상을 망가트리면서도 그 본질을 파악하기를 관람자에게 요구한다면, 본 전시의 '어긋난 초상화'들은 대상의 본질이 파악 불가능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서로에게 유의미한 관계를 찾아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작가와 마찬가지로 어긋난 관계들 속에 살아가는 입장에서, 이것을 조금은 애틋하지만 '어른스러운' 시선의 변화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의한
Vol.20150704j | 천창환展 / CHUNCHANGHWAN / 千昌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