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세움 아트스페이스 SEUM 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소격동 73번지) 1,2전시장 Tel. +82.2.733.1943 www.seumartspace.com
봄날에 활짝 핀 꽃이 참 아름답다. 이내 곧 꽃잎이 떨어진다. 흩날리는 꽃송이에는 생명의 정점에서 발하는 아름다움과 함께 그 명을 다한 소멸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현실의 무상(無常)함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람을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살아있지만 동시에 죽어간다.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혹은 '나는 오늘을 죽어간다.'는 더 이상 부정적 가치관과 긍정적 사고방식의 의미차이를 논하기 위함이 아니다. 생과 죽음은 절대적 의미로서 서로가 반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속에 상대적으로 함께 있음을 생각해본다.
생사의 집착에 대한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려는 불교의 가르침을 떠올려 본다. ● "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옛 부터 갖가지로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을 장소를 바꾼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잘못 알아 자기의 몸이라 하며, 육진(六塵)의 그림자를 자기의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이 허공 꽃[空花]이나 제 이의 달[第二月]을 보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허공에는 실제로 꽃이 없는데 병든 자가 망령되이 집착을 하나니, 허망한 집착 때문에 허공의 자성을 미혹할 뿐 아니라, 또한 실제의 꽃이 나는 곳도 미혹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허망하게 생사에 헤매임이 있으니 그러므로 무명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무명이란 것은 실제로 체(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꿈속의 사람이 꿈꿀 때는 없지 아니하나 꿈을 깨고 나서는 마침내 얻을 바가 없는 것과 같으며, 뭇 허공 꽃이 허공에서 사라지나 일정하게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함과 같다. 왜냐하면 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이 남이 없는 가운데서 허망하게 생멸(生滅)을 보니, 그러므로 생사에 헤맨다고 이름 하느니라." (圓覺經)
불교에서 존재는 '연기'로 설명되어진다. 연기는 연(緣)하여 기(起)한다는 것으로 어떠한 것도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것에 의존하여 존재함(無自性)을 의미한다. 그래서 존재는 스스로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무자성(無自性)'이며, 중론을 통해서 불교의 공(空)사상을 꽃피운 나가르주나(龍樹;Nagarjuna)는 이러한 존재가 유(있음)와 무(없음)의 중도(中道)인 공(비어있음)의 경계에 있음을 가르친다.
내가 바라본 허공의 꽃을 통해서 영원한 삶도, 영원한 죽음도 아닌, 공의 경계에서 무상하게 변화하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작업으로 옮겨본다. ● "모든 존재들은 환화(幻化)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물속에 비친 달과 같고, 꿈의 속성을 지닌다." (金剛經) ■ 주희
Vol.20150617c | 주희展 / JUHEE / 朱熹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