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616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안성준_해미_이우제_강지현 여환지_이수현_이윤서_문성주
관람시간 / 12:00pm~07:00pm
에이에이 디자인 뮤지엄 aA Design Museum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8-11번지 aA 디자인 뮤지엄 Tel. +82.2.3143.7311 www.aadesignmuseum.com
"안 돼, 안 돼! 내 이야기 먼저를. 설명은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다고." ●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나오는 괴물 그리핀은 "안 돼, 안돼! 모험 이야기 먼저. 설명은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다고."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각색한 서문의 제목 "안 돼, 안 돼! 내 이야기 먼저. 설명은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다고."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상대 이야기를 대꾸조차 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행태를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여덟 명의 작가들처럼 말이다. 그룹전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지만, 여덟 명의 작가들은 그러한 사전적인 설명을 뒤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 하지만 중구난방(衆口難防)처럼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그 이유는 20대라는 그들의 공통적인 속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본 전시에 참여하는 여덟 명의 젊은 작가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출함과 동시에 서로 간에 꼬리를 무는 교차점을 가진다. 이러한 관계는 다른 고유의 의미를 가지면서 상호 간 교차하는 십자 퍼즐(crisscross puzzles)의 형태를 연상시킨다. ● 「관계의 미학」 저자 니꼴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는 "현대 예술의 아우라는 자유로운 연합이다."라고 말한다. 관계라는 이론적 준거로 현대 예술을 해석한 그의 이론은 본 전시의 다소 느슨한 접점을 해석할 수 있는 좋은 열쇠다. 그의 '자유로운 연합'이 연상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젊은 세대가 가지는 구심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에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 또한 『CRISSCROSS』展은 단순히 작가들만의 교차점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의 관객들 또한 같이 접촉할 수 있게 해 주는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 강지현은 글자와 점자 두 가지의 대비되는 소재를 이용한 작업 「IT IS ( ) ALWAYS WHAT YOU THINK」에서 보이지 않는 본질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는 우리들의 오만에 대해 경고한다. 'IT IS ( ) ALWAYS WHAT YOU THINK'라는 문구를 이용한 그녀의 작업은 글자 사이 공백에 점자를 삽입함으로써 시각이 가지는 한계성에 대해 지적한다. 더 나아가, 본질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다. 시각에만 의존하여 현상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작가가 시각 예술을 통해 작업을 풀어나가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도발적이다.
문성주의 작업은 시간의 잔인함 속에서 일시적인 아름다운 것들을 붙잡아 두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한다. 멀리서 그의 작품 「light over window」를 관망하면 캔버스에 뚫린 수많은 점들 사이로 빛이 쏟아져 나온다. 유한함의 대표적인 상징인 벚꽃의 형태를 취하는 빛은 관객이 접근하는 순간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라지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냄과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유한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각적으로 피어오르게 만든다. 또한 이 작업은 수많은 점들을 뚫는 과정을 연상 시킴으로써,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구멍을 뚫는 반복적인 행위로 승화시킨 작가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안성준은 「G'd up」에서 단순한 흥미에 그친 패션에 대한 그의 허술했던 의식이, 스트리트 컬쳐를 수용하면서 비로소 완성되고 있음을 표현한다. 담금질을 연상시키는 일련의 행위에서 패션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업의 기틀을 다지는 작가의 다부진 결의가 느껴진다. 「OFF THE RULE」은 스트리트 컬쳐의 하위문화인 그래피티적 요소를 반영한 작품이다. 작가는 땅에서 벗어나려는 좀비의 손과 'OFF THE RULE' 이라는 글귀를 통해, 자유로워야 하는 스트리트 컬쳐가 자본의 물결에 잠식되버리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대중들에게 진정한 스트리트 컬쳐를 즐기기 위해서는 자본의 틀에서 벗어나 그것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선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소 을씨년스러운 이 작품은 현 상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중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고, 획일화된 틀을 깨고 나올 것을 촉구한다.
여환지는 우리 시대에 만연한 이기적인 인간관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Sjsmswlrmagodqhrgksl?」「UNmeant」를 통해 이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그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 사이에 많이 쓰이는 '답정너' 라는 단어의 뜻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의 축약어인 '답정너'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특정한 대답을 미리 기대하고 질문을 하는 것을 뜻한다. '답정너'라는 용어가 현시대에 각광받는 사실은 더 이상 타인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세태가 동시대에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작가는 'YES' 와 '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글자 안에, 이와 상충되는 상황을 새겨 넣음으로써 이율배반적인 '답정너'의 구조를 보여준다. 우리가 생각 없이 내뱉는 긍정적인 단어에 수많은 글자를 하나 하나 각인시키는 작가의 행위는, 우리의 가슴에 현 세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새기기 위한 감염 주술의 과정을 연상시킨다.
이수현에게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대체 종교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종교의 순수 영역이 좁아지고 있는 현시대에서,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통해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 고차원의 쉼터를 찾는 그녀에게 노동이란 오히려 종교에 가까워 보인다. 절대자의 빛을 연상시키는 「무아지경_Trance」의 색감과 압도적인 인조 손톱의 개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아지경의 세계로 초대한다. 작가 역시 수만 개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구축하고 있다.
이우제는 노동을 천시하고, 학문적인 것을 숭배하는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단면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미 고려 시대 때부터 나타난 숭문천무(崇文賤武) 정신은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인해 더욱 고착화되었고, 현시대까지도 계속 답습되고 있다. 개인의 특수성에 기반한 다원화 사회와 구시대적 관념 사이의 공존은 문화 지체 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화이트칼라를 맹목적으로 숭상하는 이 세태를 「백의 민족」이라는 언어유희를 통하여 풀어나간 이 작품은, 끝없이 연결된 흰 와이셔츠로 표현된다. 길게 늘어진 이 하얀 사슬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우리 씁쓸한 의식 수준을 꼬집는다.
이윤서의 「시선 교착의 이동: A Complication」은 거미줄처럼 교차하는 다양한 관계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주체에 주목하고, 이를 객체의 입장에서 조망하려 시도한다. 우리 시대는 산업화로 인해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맺는 관계는 농업 사회 보다 복잡해졌다. 더 나아가 정보 혁명을 통해 물리적 거리가 무의미하게 바뀌게 되었고,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는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관계의 실타래 안에서 동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이 시선을 주는 존재인지 아니면 시선을 받는 존재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이러한 혼란은 마치 게슈탈트 붕괴 현상처럼 결국 자신이 여러 인칭이 섞여 있는 존재 그 자체임을 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시선 교착의 이동: A Complication」을 통해 시점이 혼재하는 메커니즘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그녀의 공간은 자신의 위치를 객체의 입장에서 관망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이면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장해미의 「RETWEET」은 최근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소통의 부재에 대한 고찰의 산물이다. 그녀는 그 배후로 급박하게 발전한 가상세계를 지목한다. 정보를 전달받는 데에 있어서 시각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는 가상 세계는 한계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가상 세계가 의사소통 과정의 중간다리 역할을 수행하면서, 화자가 의도한 바와 다른 정보가 확산되는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다. 가족오락관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영상 작업은 가상 세계의 정보 유통 과정에서 생략되고 변형되는 지점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 이우제
Vol.20150616e | 크리스크로스-CRISS CROS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