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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613_토요일_05:00pm
장호 1주기 추모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SORI CULTURAL ARTS CENTER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동 1가 산1-1번지(소리로 31) 제1전시실 Tel. +82.63.270.8000, 7844 www.sori21.co.kr
장호와 출판미술-아름다운 그림책 화가 장호의 1주기를 맞이하여 ● 내가 장호에 대해 말하자면 그냥 먼 옛날부터 자연스레 알고 지내던 사이로만 느껴진다. 그 만큼 오래 되었다는 뜻인데 굳이 그때를 떠올려 보자면 1990년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민족미술인협회(이하 민미협)는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체동력이 매우 역동적이었다. 주로 당시에 있었던 민미협의 전용 갤러리 '그림마당 민'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때 민미협은 여러 장르별 분과의 형태를 띠고 활동을 했었다. 그 외 노동자미술위원회(이하 노미위)가 있었는데 이 중 장호는 노미위에서 현장미술활동을 주로 하였다. 이후 시간이 흘러 민미협의 작가들은 각자 전문영역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으며 이 가운데 장호는 출판미술로 천착이 되었다. 오늘날 출판미술계에서 일가를 이룬 작가들 중에 특이하게도 민미협 출신 작가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 또한 결코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어 주목된다.
출판미술을 흔히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말한다. 일러스트는 기본적으로 언어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장르이기에 이 말을 굳이 우리말로 표현해본다면 '말그림'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당시 민중미술이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언어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미술운동사적 의미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대다수가 그랬듯이 미술이 형식주의를 추구했던 당시의 사정과는 다르게 민중미술(리얼리즘)은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하였기에 외형적으로는 서구미학 관점을 배제하고 새로운 민중미학을 실현하고자 했으며 내용적으로는 당대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민초의 정서를 담아내는 대안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연히 형상이 갖는 언어성에 주목했고 이는 일러스트가 갖는 외형적 특성과도 맞물린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출판미술이 갖는 언어성의 미덕은 충분히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개인창작 작업에서도 상호 보완적으로 곳곳에 나타난다. 그래서였을까. 그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미적 형상화 작업에 매진하는 작가들에게 자연스레 눈에 띈 것이 출판미술이었다.
그리하여 정승각을 비롯한 이억배, 권윤덕, 김용철, 조혜란, 송진헌, 김환영, 신가영, 신혜원, 김종도 같은 작가들이 이 반열에 뛰어들었으며 김재홍, 김세현, 김병하, 양상용, 김천일은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뒤늦게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장호는 2006년에 뛰어들었으니 실상 맨 나중인 셈이다. 한편 민미협 초창기 박재동, 장진영, 주완수, 이은홍, 최호철, 탁영호, 장차현실, 이동수는 현실주의 만화의 또 다른 영역을 개척했으며 오늘날 여러 매체에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시사만화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강요배 역시 출판미술을 바탕으로 4.3 항쟁의 역사를 일러스트로 구현하여 이것을 시작으로 오늘의 독보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일구어냈던 과정이 있다. 또 한 축으로 고선아는 '달리 크리에이티브' 라는 디자인 기획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창비의 걸작 '시그림책 시리즈'를 기획 완성하여 우리나라의 그림책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1980년 대 우리나라의 출판미술의 생산력은 그리 풍성하지 않은 편이었다. 국제저작권 협약이 맺어지기 이전에 난무했던 해적판들의 전집형 시리즈들은 그나마 자생적인 창작 바탕을 좀먹는 상황이었으나, 해외 정보력이 빈약했던 사정에서 거꾸로 세계 유수의 수준 높은 그림책 문화를 접하게 한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속에서 새로운 창작그림책의 씨앗을 심은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류재수이다. 그는 '백두산 이야기'(통나무, 1987. 보림, 2009 개정판)를 통해 이 땅에 창작그림책의 시원을 열었으며 많은 후배 그림책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 힘을 더해 사회 각계에서는 민족의 뿌리 찾기 물결이 대세였던 상황에서 외래 수입문화에 대한 반성적 의미로 여러 분야에서 작금의 문화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모색이 뒤따랐다. 이에 영향을 받은 진보미술인들이 그 문을 여는데 가세하였으며, 이 결과 오늘날 한국 그림책의 예술적 역량은 수많은 해외저작권을 보유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이것의 바탕은 작고한 민족문화 사상가 이오덕 선생을 비롯한 당시 사회 각계에서 일어났던 독서운동(어린이도서연구회)이나 젊은 작가들의 그림책 연구모임들과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노력이 함께 했고 길벗어린이, 비룡소, 보림, 사계절, 보리, 웅진 등 출판사들의 과감한 시도와 지원, 인문학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들이 함께 이루어낸 필연적 결과이다. 또한 올해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한국의 작가들이 라가치상을 비롯한 거의 전 부문의 상을 휩쓴 것은 한국의 그림책이 이제 세계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장호의 출판미술 여정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여러 표현 가능성을 타진하는 모색의 단계에서 출발했으나 기존 회화의 표현범주를 넘어 탄탄한 드로잉을 바탕으로 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톤의 사실적 기법을 구현하면서 마침내 정착의 단계에 이른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지극히 서민적이면서 평범한 가운데 자기 반영적 모습이다.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 있는 등장인물들은 마치 동네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복순이나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동무들의 얼굴처럼 친숙하고도 사랑스럽다. 이는 무엇보다도 작가의 탁월한 텍스트 소화력에 따른 일체화 과정에서 비롯된다. 또한 안정적 구도와 역동적인 화면의 구성은 애초 그가 갖고 있는 회화적 역량이 뒷받침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2009년 '달은 어디에 떠 있나?'로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는 영광으로 나타난다. 2010년에는 '강아지'로 한국 아동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작가적 입지는 확고해졌다. 그리고 2012년, 2013년에는 한겨레신문 연재소설 '소금'(박범신 작)의 삽화를 그렸으며 2013년 삶터 환경의 중요성을 담아낸 '갯벌을 살려 주세요(김웅서 글, 웅진주니어)'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장호의 유작은 다음과 같다. 2006 광야의 별 이육사(김명수 글, 창비) 2007 달은 어디에 떠 있나(정창훈 글, 웅진주니어), 큰애기 복순이(김하늘 글, 문학동네), 어린 엄마(조은주 글, 낮은산), 명혜(김소연 글, 창비), 신채호(조정래 글, 문학동네) 2008 귀신고래(김일광 글, 내인생의책), 행복한 이티 할아버지(박선욱 글, 아이세움), 나비잠(신혜은 글, 사계절) 2009 강아지(현덕 글, 길벗어린이), 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강무홍 글, 웅진주니어), 2010 꼬순이와 두칠이(이철환 글, 아이세움), 아! 여우다(김일광 글, 고인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이철환 글, 주니어랜덤) 2011 열두 살, 이루다(김율희 글, 해와나무), 안녕 병아리(한해숙 글, 한림출판사) 2012 서로 도우며 살아요(채인선 글, 한울림어린이), 늑대할배 산밭 참외서리(이호철 글, 고인돌), 해님맞이(이상희 글, 웅진주니어) 2013 갯벌을 살려 주세요(김웅서 글, 웅진주니어)
장호는 민미협 활동을 통해 수많은 작품활동을 해왔으나 출판미술을 통해 작품세계를 더 확장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미술이 시대에 따른 사회적 책무를 작가적 가치관으로 삼은 그를 봤을 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도 모른다. 그는 평소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곧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그림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미래 세상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호의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아득한 꿈에 대한 향수와 서정을 품고 있어 따스한 정감이 넘쳐나는 그림들로 귀결된다. 이것은 책을 보는 독자들에게 그림이 글과 함께 감정이입의 효과로 나타나는 구조를 이루게 된다. 그렇게 장호의 출판미술은 독립된 체계를 이루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했던 그가 이 땅에 머물다 간 시간이 고작 52년이었다는 것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쩌면 이제 막 시작하여 제대로 된 그림들을 마음껏 펼쳐보려 했는데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몸이 아프다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가야 하는 현실, 그래서 그가 병상에서 노트에 볼펜으로 그려댔던 주변 인물들의 얼굴 드로잉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아픈 마음을 드러낸 작품들은 생애 마지막까지 화가이고자 하는 처절한 전투행위였다.
장호가 떠난 지 일 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그를 떠올려 본다. 착한 화가 장호, 막걸리에 흠뻑 취해 '쑥대머리'를 즐겨 부르며 잘 웃어댔던 장호, 그림을 참 잘도 그렸던 장호가 지금 그립다. 하지만 떠났어도 떠나지 않은 장호는 지금 우리 곁에 아름다운 화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사회적 숙제를 우리 남은 자들이 떠안게 된 것이다. (2015년 5월 1일) ■ 김종도
Vol.20150613d | 장호展 / JANGHO / 張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