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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홈페이지_www.yeongkyeongkim.com
작가와의 대화 / 2015_0612_금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수요일_02:00pm~07:00pm / 일요일 휴관
비컷 갤러리 B.CUT CASUAL GALLERY&HAIRDRESSER'S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1라길 37-7 Tel. +82.2.6431.9334 blog.naver.com/bcutgallery
반(反) 기념비적인 기념비 ● 가로등만 외롭게 지키고 있는 인적 없는 좁은 골목길과 나지막한 집들이 있는 김영경의 풍경사진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었으나 곧 어디에도 없을 그런 역사적 장면 같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온 한국의 도시 풍경은 약간의 지체현상을 보이는 이런 장소들을 곧장 유적지같은 느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여기에서 낭만적 향수를, 어떤 이는 저개발의 상징을 볼 것이다. 그러나 김영경의 시각은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힌 이 양극단을 벗어난다. 작가는 현재에 주목한다. 예술이 담당하는 것은 과거의 자료나 미래의 전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 포착하기 힘든 현재인 것이다. 이러한 현재의 발견은 보다 미시적인 감식안을 요구한다. 김영경의 풍경들을 개발을 기다리는 과도기적 풍경으로 보기엔 단단한 존재감을 가지며, 향수로 보기엔 아기자기한 인간적 서사가 배제되어 있다. 그것은 중성적인 역사가의 시선에 가깝다. 그러나 만약 역사가가 역사의 기원과 목적에 관한 선적이고 인과론적인 가설만을 읽으려 한다면, 김영경의 시선은 역사가가 아닌 고고학자나 계보학자의 시선과 더 가까울 것이다. ● 거기에는 단절과 균열, 우연과 불연속성이 더 많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 의해 절개된 현실의 시공간에서, 전과 후라는 통시적 관계는 이것과 저것이라는 공시적 관계에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이러한 공시적 관계에서 필연보다는 우연이, 조화보다는 부조화가 두드러진다. 그곳들은 중대한 역사의 현장이라기보다는, 역사가 없어 보이는 일상의 공간들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미시적 삶의 흔적들을 찾는다. 김영경의 사진에 기록된 역사는 의미 깊은 위대한 기념비들은 아니다. 작가는 '랜드 마크가 없는', 심지어는 '랜드 마크와 상반되는' 곳을 즐겨 찾는다. 전시부제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도시의 가치를 기념비적인 상징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다'고 말한 이탈로 칼비노의 동명 소설에서 왔다. 알라이다 아스만이 『기억의 공간』에서 말하듯이, 기념비적인 장소란 어떤 특정한 역사가 지속적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다소 강압적으로 단절되는 곳이다.
유동성을 고무하는 현대성은 땅과 연관된 기억을 파헤치고 장소와는 무관한 기념비들을 이전한다. 기념비는 장소보다는 대표적인 상징인 기념비 그자체로 관심을 옮겨 놓는다. 사건의 현장을 나타내는 전통적 기념비와 상실한 것이 기호로 대체되는 현대적 기념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김영경의 반(反) 기념비적인 기념비들에는 기억 장소를 표시하려는 노력이 있는데, 그것은 기억의 장소에서 생겨나는 분위기를 보존코자 한다. 이 익명적인 풍경에는 삶의 형식과 경험의 형식들이 켜켜이 남아있다. 근 5년 간 작가는 군산, 경주, 안동, 전주, 제천, 서울의 북촌 등, 거의 건축 박물관이라 할 만큼 다양한 시간의 층위가 남아있는 오래된 집들과 골목길을 찾아다녔다. 김영경은 한 도시의 위용을 자랑하는 랜드 마크가 허무한 환영으로 다가온다고 말하면서, 도시의 이면, 즉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일상 공간, 시간이 누적된 골목과 풍경에 관심을 둔다. 그 동네들은 대부분 1960-70년대의 분위기가 남아있다. 초가삼간을 다 뜯어고쳤던 계몽과 개발의 시대, 당시로서는 큰 변화였겠지만, 그 이후엔 큰 변화 없이 자잘한 변화들 기록하고 있는 그러한 장소 말이다.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 우물 있는 한옥에서 살았던 작가의 이력은 고향을 닮은 그곳에서의 작업을 무조건 즐겁게 했을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작업은 주변의 변화에 상관없이 자체 동력만으로 지속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김영경에게 작업은 잃어버린 장소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도 찾는 여정이 되었다. 수직수평의 추상적 좌표축을 벗어나곤 하는 이런 장소에서 기꺼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즐길 것이다. 그것은 미시적인 역사를 고고학자적인 눈으로 포획한 풍경이다. 미셀 푸코는 역사가가 아닌 고고학이나 계보학자의 길을 닦은 '반(反) 역사가로서의 역사가'(헤이든 화이트)로 평가 받는다. ● 미셀 푸코는 『니이체, 계보학, 역사』에서, 계보학의 '백과사전적 기념물'은 '일의적이고 명백히 무의미한 진리들'로부터 구축된다고 본다. 이러한 감각은 구별하고 분리하고 분산시킬 줄 아는, 말하자면 분산력과 주변적 요소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예민한 시선이 된다. 푸코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결코 사건들이 그것들의 본질적인 특징이라든가 궁극적인 의미라든가 최초와 최후의 가치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위축되어 버리는 단순한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서, 그 세계는 뒤얽혀 있는 수많은 사건들의 세계이다. 만일 그 세계가 심오하고 전적으로 의미 있는 하나의 불가사의한 뒤범벅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그 세계가 수많은 오류와 환상을 통해 자기의 은밀한 실존을 이미 시작했고, 또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와 계보학자로서의 푸코는 이러한 이질적인 공간, 즉 헤테로피아를 지지했다. 종합의 힘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분명하고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체계를 발견하려 하는 고고학자나 계보학자의 시선은 작가의 시선과 겹쳐진다. ● 김영경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낡은 벽의 금,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선 줄, 어디로 뻗은 지 알 수 없는 좁은 길목은 삶의 굴곡 면과 밀착하여 자리를 잡은 터전을 모세관의 그물망처럼 보여준다. 이 전시가 열리는 동네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다섯 갈래로 나뉜 길거리를 향한 윈도 갤러리에 밤새 불 밝힐 연희동의 B.CUT 갤러리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저녁 무렵 산책자들이 만나게 되는 골목 안 골목의 풍경이다. 사진 찍힌 동네와 전시될 동네의 분위기는 약간 다르지만,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의 오래된 골목길들이 도시답지 않은 한적함을 자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나의 어릴 적 기억에 의하면, 그곳은 한적하지 않았다. 여태껏 한 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지금은 무너지고 없는 산위의 시민 아파트들을 친구들과 구경하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그 길은 어린 눈에 세상의 중심처럼 보일만큼 번화했었다. 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수년간 쏘다니곤 했던 지방의 소도시와 서울 변두리 지역은 개발 제한에 묶여서 급격한 변화의 흐름으로부터 면제받은 곳이 많다.
작가가 즐겨 포착한 기와나 슬레이트가 얹혀 진 오래된 담벼락은 어느 날 들어선 고층빌딩같이 새 것의 갑작스런 난입에 의한 이전 것의 완전한 말소가 아니라, 더 이전의 시공간의 층위들을 보여준다. 시간의 지층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보존된다. 사진이 아니라면 잘 보이지 않았을, 또는 간과되었을 미세한 터의 무늬들이 살아있다. 김영경의 골목길 사진들을 보면, 작가란 전대미문의 것을 들이대는 이가 아니라, 주변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에 각별한 존재감을 부여하는 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저녁과 새벽의 어스름한 시점을 환하게 밝혀주는 가로등은 인적이 끊긴 시간에 추위나 고독감, 무서움도 잊은 채, 몇 시간이고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을 작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휴머니즘이나 향수적 시선을 넘어서, '사물의 편에 선'(퐁주) 시각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초현실주의나 누보로망, 이후에 미니멀리즘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는 사물은 예술이나 주체와 대비되는 범주이다. 사물은 비(非)예술적이며 비(非)인간적이다. ● 김영경의 어떤 사진에서도 인간은 발견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예술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수수께끼 같은 사물들만 즐비하다. 즉물성과 비의성을 동시에 가지는 사진은 사물의 미학과 잘 어울린다. 그것들이 여전히 인간적이라면 무인지경의 풍경 전체가 인간일 것이다. 오래된 담벼락에 새겨진 흔적들은 뇌와 몸에 새겨진 기억을 떠올리고, 집과 집을 이어주는 복잡한 전선줄은 밖으로 나온 신경망처럼 보인다. 홀로 불빛을 밝히는 가로등은 그 아래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주시해왔을 듯하다. 그것은 작가가 역사가가 아닌 고고학자나 계보학의 관점을 취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셀 푸코는 『니이체, 계보학, 역사』에서, 우리의 희미한 개체성을 과거의 견고한 주체성과 동일시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푸코는 다양한 주체성들의 풍요로운 선택을 통하여 우리를 비실재화할 것이라고 하면서, 주체성을 체계적으로 분해하고자 했다. 그는 우리가 하나의 가면 아래에 유지시키고 통일시키고자 하는 나약하기까지 한 주체성을 복수적으로 해체하려 한다. 작가는 종합의 힘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분명하고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체계를 발견하려는 고고학자나 계보학자의 노선과 함께 한다. ● 김영경의 작품에서 인간이 아닌, 사물의 편에서 시각은 어디서 발견될 수 있는가. 주로 새벽이나 밤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에, 장면에 자주 등장하는 가로등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시선이 경험하듯, 사진 상에서 가로등이 둥글게 나오려면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 포커스를 맞추기 조차 힘들다. 그녀의 작품에서 가로등이 방사형으로 나오는 것은 그 주변도 환하게 나올 정도로 적정 노출 맞추다 보니까 생겨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진적 시선도 현재 만연한 디지털적 감각에 비한다면 다소간 인간적이다. 주로 어두운 시간대에 사진을 찍는 김영경은 미묘한 색감과 명암, 그리고 세부를 살릴 수 있어서 아나로그 방식을 고수한다. 장면 한가운데 달처럼 매달린 가로등은 작품 「K#01」(2013)처럼, 집과 골목이 있는 장면을 위/아래 어둠 사이에 붕 띄워진 빈 연극 무대 같은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김영경의 사진에는 현실 속에 뿌리내린 실재로부터 길어 올린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이 있다. ● 작품 「K#11」(2013)에서 가로등은 마치 전선줄에 걸쳐 있는 태양처럼 빛나면서 사진이 찍힌 시간대를 모호하게 한다. 작품 「A#08」(2012)과 「A#09」(2012)는 창에서 빛이 나오는 원경은 저녁 같지만 환하게 밝혀진 근경은 낮같은 모습이 겹쳐있다. 시간 뿐 아니라 장소도 계절도 모호하다. 그곳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만날 수 있었던 곳이었지만, 지금도 그럴지 확신할 수 없는 장면이다. 불과 몇 년 전에 찍은 장소가 사라지거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를 수없이 체험하다보면, 사진가는 자기도 모르게 역사학자의 감각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작품에만 남아있는 현실의 단편은 현실에서 허구로, 허구에서 현실로 난 좁은 길을 수시로 넘나들게 한다. 북적거리는 대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시선은 이러한 적막한 풍경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한옥마을' 류의 '개발'(=상품화)이 이루어지고 음식점이나 카페, 잡화상들만 바글바글한 그곳들은 원거주민이 사는 독특한 분위기를 잃어버린다. 그때는 작가도 그곳에서 손을 떼야하는 시점이다. ● 우리는 이러한 도시의 운명을 관광객들에 떠밀려 다녀야 하는 몇몇 구도심에서 체험할 수 있다.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살고 있는 곳에서 나오는 불빛은 조금 다를 것이다. 김영경의 작품에서 적막한 가운데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실내의 빛이다. 집 안팎의 광원들은 새벽이나 저녁의 어스름한 배경과 어우러져 쓸쓸함과 아늑함이 교차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빛으로 쓰는 사진가의 감수성은 발광하는 빛 뿐 아니라, 반사되는 미량의 빛도 놓치지 않는다. 새벽 햇발을 받는 미묘한 풍경이 있는 작품 「J#17」(2013)에서 밝은 벽에 비치는 연두와 분홍빛은 새벽녘의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다. 빛을 통한 보다 극적인 대비는 한적한 골목길과 대비될 수 있는 대도시의 지글거리는 빛이다. 김영경이 주로 찍는 마을은 지방의 중소 도시로, 밤 6시만 넘어도 사람이 별로 안다니는 한적한 곳들이지만, 대도시는 24시간 쌩쌩 돌아간다. 이러한 미친 듯한 시간주기가 기억은 물론 망각할 틈도 없는 파괴를 통한 진보를 낳았을 것이다.
김영경의 작품은 원시시대의 차가움과 현대의 뜨거움을 비교했던 한 인류학자의 시선을 떠오르게 한다. 레비 스트로스가 말한 '차가운/뜨거운' 문명은 변화의 속도가 느릿한 원시와, 변화 그 자체만이 목적인 양 뜨거운 도가니 속에서 끓고 있는 현대와의 대조이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한 마을 풍경이 담긴 작품은 시간이 지체된 곳에서 오히려 시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작품 「S#02」(2010)는 추상 표현주의적 필치로 금간 벽을 때운 낡은 벽이 전면에 보이고 뒤로 밤을 잊은 도시의 밝은 빛들이 대조된다. 급격한 단절감은 지나간 과거와 앞당겨진 미래 사이의 현재를 유령 같은 것으로 만들었다, 김영경의 사진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층위가 부딪히면서도 어우러진다. 현실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단편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잠정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단편은 주위와 단절된 오롯한 소우주같은 작품부터 과격하게 잘린 구도를 보여주는 작품에 이른다. 근/중/원경이 겹쳐진 듯 찍힌 구도 또한 꼴라주처럼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이어 붙여졌을 터 무늬들을 반영한다. ● 작품 「K#15-16」(2013)이나 「K#12-14」(2013)처럼, 비슷한 시간대의 동네 곳곳을 찍은 단편들은 하나의 계열을 이루며 접 붙여질 수 있다. 정사각형 필름의 프레임은 동질이상의 단편들을 용이하게 연결한다. 같은 도시지만 다른 동네들을 찍은 장면들이 둘, 또는 셋이 접 붙은 작품들은 마치 여러 갈래로 나뉜 길목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한 공간적 위상은 볼 수는 있지만 통과할 수는 없는 장소이다. 실재의 단편으로 만든 허구적 장면은 총체적인 지도를 그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힌 미로 같은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거시적 역사의 장이 아닌 미시적 역사의 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기억하는가, 알라이다 아스만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전승되어온 전통과는 달리, 기억의 운동들은 산발적이고 기력이 약하며 수면 밑에 있다고 본다. 기억은 항상 자극을 필요로 한다. 『기억의 공간』은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이 미래에 상실되지 않게 하려면 후세의 문화기억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 문화적 기억에는 자체 기구가 없기 때문에 매체와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생생하고 개인적인 기억에서 인위적이고 문화적인 기억으로의 이행은 기억의 왜곡과 축소, 그리고 도구화의 위험이 있다. 그러나 예술은 특별한 기억의 순간에 발생된다. 오늘날 예술은 기억의 위기를 주제로 삼고, 그에 대한 새로운 형식을 창안하려한다. 예술을 통해 문화적 기억과 망각의 역동성이 생생한 모습을 띄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진은 기억술과 관련된 중요한 매체이다. 김영경의 작품에서 사진과 기억의 관계는 내재적이다. 『기억의 공간』에 의하면, 프루스트는 인간의식의 현재 속에서 과거가 떠올려지는 것을, '언제 현상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음화'에 비유했으며, 벤야민도 '역사란 마치 감광성을 띤 판'같다고 말한 바 있다. 사진과 기억의 관계는 '사진이란 하나의 이미지, 곧 현실의 해석이기도 하지만, 발자국이나 데스마스크처럼 흔적, 곧 현실의 직접적인 형판이기도 한 것'이라고 말한 수전 손택의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 사진에서 현실의 단면이 저절로 기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은 무의식의 모체에 기입된다. 기억은 어떤 순간을 사진처럼 자국으로 각인한다. 기억은 우리의 뇌와 몸에 새겨진 것처럼 그렇게 어떤 흔적들을 남긴다. 아날로그 매체에 기억 흔적들에 대한 심상들을 물리적 저장체에 새김으로서 기억의 흔적은 견고해진다. 김영경이 주시한 집의 벽들도 재록 양피지처럼, 실제로 어느 층도 소멸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잃어버린 시공간은 재생될 수 있다. 김영경에게 사진이라는 매체는 문화적 기억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물질적 기반이며 보조수단으로, 인간의 기억들과 상호작용한다. 작가가 포착한 낡은 벽의 이상한 얼룩이나 거기에 새벽의 미광은 우리로 하여금 불현 듯 어떤 기억을 일깨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러한 무질서한 우연성은 프루스트가 우연한 기억에 기대했던 것처럼, '돌연 이상하고 연관성 없는 수천 개의 파편을 불러 올 수'(버지니아 울프) 있다. 그러한 기억을 낳는 김영경의 작품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도시를 지각하게 할 것이다. ■ 이선영
골목과 주거지는 불규칙하게 보이지만 도시를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게 만들어 주는 도시의 컨텐츠이자 역사이 다. 퇴적된 시간과 왜곡이 창조해낸 휘어진 골 목길들은 오래된 집들과 더불어 빼어난 아름다움을 만들고 하나 의 공간에 여 러 층위의 시간이 흐르게 한다. 지난 몇 년간의 여정은 도시의 상징적 랜드마크와 화려함을 찾아나선 것이 결 코 아닌, 도시의 강력한 느낌을 떠올릴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일상 속의 평범한 골목길과 시간이 묻어 있는 공간 속의 집들이었다. 이 탈로 칼비노의 말 을 빌리자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인 것이다. 골목과 집 혹은 건물들에 담긴 거 리의 역사성 이야말로 그 도시에 살아온 사람들이 오랫동안 상호소통하며 이루 어낸 결과물로 도시의 진정한 가치가 될 것 이다. ● "도시의 가치가 위대한 건축물 몇몇에 있는 게 아니라 거리의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 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긇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중에서) ■ 김영경
Vol.20150603c | 김영경展 / KIMYEONGKYEONG / 金暎卿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