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530_토요일_03: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사랑, 그 달콤한 말의 속삭임에 관하여 ● 오! 마이 러브. 이 얼마나 달콤한 언어인가? 사랑을 꿈꾸는 자에게나 사랑이 지나간 자에게, 심지어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사랑은 늘 욕망 자체이다. 사랑이 욕망 자체라니? 사랑은 고귀한 것이 아니던가.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라고 하면서 사랑이 제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변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중가요, 드라마, 영화, 그리고 문학 등 많은 예술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사랑은 꼭 그러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사랑을 얻으려고 갖은 수를 쓰거나 불륜 등을 다루는 막장 드라마에서도 사랑은 꽤 많이 다르게 등장한다. 꽤 오래전이지만 휴대폰 시장이 본격화될 때 한 통신회사 광고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카피문구는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세대를 풍미하는 표현이었으며 나아가 기호의 변화가 당연한 것이며 그것이 세련된 것임을 나타내는 상품광고의 강렬함이었다.
조은용 작가의 개인전 『오! 마이 러브.』 역시 이러한 상품광고와 같은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전시명이면서 윈도우 갤러리의 작품은 어떤 떨림이나 울림도 전혀 없는 "오! 마이 러브."라는 외래어 표기와 함께 커다란 빨간색 하트를 붙여놓았으며, 심지어 러브의 끝에는 단호하게 마침표까지 찍었다. 이러한 표현은 나의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 언어의 기능보다는 무엇을 가리키고 설명하는 지시어의 느낌을 지닌다. 자, 그럼 이렇게 지시하고 설명하고 있는 듯한 작가의 '사랑'을 들여다보자.
전시는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마주하는 커다란 사진 작품인 「1000가지의 정물 시리즈」가 걸려있고, 바로 오른쪽에는 「해골과 꽃」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왼쪽 아늑한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러브」라는 설치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온갖 물건이 나열되어 있는 사진작품과 해골에 둘둘 말아놓은 천 뭉치가 어떻게 '사랑'과 연관을 맺는 걸까? 잘 모르겠으니 우선 안으로 들어서보자. 안쪽으로 아늑한 공간은 "LOVE"라는 네온 작품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보다 직접적으로 작가의 '사랑'이 표현된 작품인 것 같다.
안쪽 아늑한 전시장 내부는 등이 점멸되어 어두운데 핑크빛 하트모양의 네온이 빛을 발하여 주변의 어둠을 푸르게 하여 해질녘과 같은 오묘하고 야릇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지지직~ 소리를 내는 라디오 음악과 정기적으로 뿜어내는 싸구려 향수 냄새까지 더하여 작품은 시각과 청각, 심지어 후각까지 자극하여 온몸으로 작가의 'LOVE'를 체험하게 한다. 네온 빛과 지지직 음악소리는 왠지 모르게 서부영화의 한 장면 같다. 황량한 사막에 pub이나 싸구려 호텔방과 같은 이미지. 서부영화, 라디오, 네온 등은 대중문화와 소비사회를 상징한다. 지지직 소리가 나서 집중할 수 없는 대중음악과 사이사이 들려오는 라디오 광고에 자극적인 향수는 정신을 집중할 수 없게 하며 야릇한 네온 불빛 역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어딘가 유혹당하는 느낌이다. 윈도우 갤러리와 등을 맞대어 한 쪽에서는 "오! 마이 러브"를 외치고 다른 한 쪽에서는 흐릿한 불빛과 정신을 혼미케하는 소리와 향으로 유혹한다. 이것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사랑'일까? 작가의 '사랑'이 무엇인지 오히려 더욱 궁금해지는 국면이다.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고자 공간을 나서려는데 1000개의 사물이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온갖 현란한 사물들이 정렬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사물들은 화장품에서부터 조리도구, 음료수병, 치약, 시계 등 나열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선정적인 반라의 여자사진과 콘돔, 여성자위도구까지 있으며, 알약, 매니큐어, 플라스틱 머리빗도 있고, 초콜릿과 맥주병, 그리고 버거킹, 맥도날드, 던킨도너츠 등의 패스트푸드의 포장박스도 있다. 각양각색의 물건으로 가득 찬 사진은 역시 총천연색으로 넘쳐난다. 그리고 각각의 사물들은 좀 귀하고 값진 것이라기보다 대량생산으로 주변에 넘쳐나는 것들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우리는 각각의 상품에 익숙해서 뚜껑만 보이는 것임에도 그것이 어느 브랜드의 무슨 제품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1000가지의 정물 시리즈」라고 이름을 달아주었는데, 실제 1000가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많은 상품들을 정열하고선 이를 '정물'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상품들을 '정물'이라하니 사뭇 의아하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상품과 정물은 어느 정도 닮은 구석이 있다. 정물이라고 하니 17, 18세기의 정물화를 떠올리게 한다. 정물화는 17,18세기 네덜란드에서 독립적인 장르로 구분되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네덜란드의 경제발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신흥 부르주아지의 취미가 반영된 것으로서 각각의 정물은 일종의 '상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한 정물화의 본래 의미를 발견한 것일까? 작가는 현대적 의미의 정물로서 대량생산된 상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실제 1000가지가 아니라 하더라고 온갖 상품들로 가득 찬 자본주의를 풍자하듯 각각의 상품들로 이 시대의 정물을 표현하고 있다. 정물화의 정물들이 상징을 내포하듯이 「1000가지의 정물 시리즈」 역시 자본주의를 표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정물시리즈 작품은 자연히 오른쪽 방의 「해골과 꽃」의 작품과 연결되어진다. 1000가지의 정물 설치 작품을 정물화가 아닌 '정물사진'으로 표현하였다면, 이번에는 정물을 우리에게 대면시킨다. 그것도 화려하면서도 끔찍한 형상으로. 본래 정물화의 사물들은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데 특히 꽃과 해골은 네덜란드 정물화에서도 많이 등장하며 비-영속성과 허무를 나타내는 정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정물 Still Life'은 일상의 사물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지된 생명', '죽은 자연'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허무와 죽음의 '바니타스 Vanitas'의 의미를 본래 지니고 있다. 바니타스의 전형인 꽃과 해골을 통해 작가는 설치작품을 정물화와 정물사진과 연결시킨다. 이 흥미로운 점은 나중에 다시 언급하고 작품 자체로 집중해보자. 머리에 화려한 장식과 흰 블라우스와 짧은 반바지를 입은 해골은 요염한 자태로 앉아있다. 옷 안에는 불빛이 반짝거려서 화려함을 더하고, 머리에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장식이 빛나고 있다. 이와 함께 바닥에는 화려한 색색의 천들이 꽃모양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뒤편에는 큰 휘장이 둘러있다. 그러나 요염한 자태의 그녀는 해골이며, 바닥의 형형색색의 꽃도 싸구려 보자기들이다. 심지어 크게 드리워진 휘장 역시 우리가 흔하게 보는 비닐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된 모든 것들이 다 가볍고 덧없기 그지없다. 「1000가지의 정물시리즈」와 「해골과 꽃」 작품 모두가 그러하다. 그리고 그 둘은 연결되어 문장을 완성하듯 작품을 완성해 간다. 천 가지의 정물은 마치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우리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의미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와 요즘 유행하는 '잇아이템(it item)' 또는 '겟잇박스(get it box)'가 연상된다. 잇아이템이나 겟잇박스 등은 기호로서 소비문화를 대변하는 가장 최신의 언어일 것이다. 누구누구가 가지고 있고 혹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또는 그것쯤은 가지고 있어야 요즘 대세에 안 밀리는 그런 기호로서의 상품을 가장 간편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버킷 리스트(bucket list)' '버킷 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보고 싶은, 가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을 가리킨다. 버킷은 '죽다'라는 의미의 속어인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에서 만들어진 말인데, 이는 중세시대 교수형을 집행할 때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를 걷어찬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 의미 역시 이와 상통하는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 유래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다. 기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이라는 말 역시 그 의미의 진정성 보다는 자본주의의 상품소비를 요청하는 기표로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버킷리스트는 상품광고의 도구로 등장하고 있다.
정물화의 상징성을 차용한 작가의 정물사진과 설치작품은 왼쪽의 「러브」 설치작품과 이제 조우하며 작품은 하나로 완성이 된다. 『오! 마이 러브.』라는 전시는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되고 배치된다. 정물화는 실제 놓인 사물을 현실적으로 그린 것이기 보다는 각각의 사물을 배치하고 사물 하나하나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여 일종의 교훈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와 유사하게 조은용 작가의 사진과 설치작품들은 그러한 의미에서 '설치'이면서 '배치'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직접적으로 지시되는 작가의 '러브 LOVE'는 '버킷리스트', '잇아이템'과 같은 상품소비를 상징하며 연결되고, 이는 해골과 꽃과 같은 허무와 죽음의 '바니타스'의 의미로 귀결된다. 소비자본주의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들의 무의미성을 작가는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속에서 사회가 제시하는 정해진 틀대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버킷리스트만을 작성하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가지라고 경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와 같은 햇살이 쏟아지던 오후, 문화공간 양에서 조은용 작가를 조우하였다. 작품으로 일종의 '경고'를 하고 싶었다고 거듭 강조하였던 작가의 결연한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 최창희
Vol.20150530h | 조은용展 / CHOEUNYONG / 趙垠龍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