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소리

신종섭展 / SHINJONGSUP / 申鍾燮 / painting   2015_0529 ▶ 2015_0617

신종섭_자연의 소리-반딧불 정원_캔버스에 유채_80.3×116.7cm_2014

초대일시 / 2015_0529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이브갤러리 EVE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동 91-25번지 이브자리 코디센 빌딩 5층 Tel. +82.2.540.5695 www.evegallery.co.kr blog.naver.com/codisenss

치밀하고 세련된 문법에 의한 견고한 조형미 ● 실상을 앞에 두고 재현하는 사실주의 회화에서는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상의 형태를 객관화시킴으로써 화가의 주관성을 개입시킬 여지가 거의 없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독창적인 조형성을 추구하는 화가는 필연적으로 형태의 재해석이란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다시 말해 개별적인 조형언어를 강구하기 위해서는 형태의 재해석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형태의 재해석을 통해 창의적인 조형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오랜 동안에 걸쳐 모색과 실험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 신종섭은 최근 수년 동안 기존의 작업과는 완연히 다른 조형적인 변화를 모색해왔다. 그 변화는 전혀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획기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전의 작업 자체를 부정하듯 전혀 새로운 조형세계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청록색과 암적색 및 암갈색 등의 일련의 강렬한 색채이미지로 표현되는, 산을 소재로 한 기존 작업과는 어떤 연관성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새롭다. 산이라는 동일한 제재를 두고 그처럼 전혀 다른 조형적인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색채이미지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기존의 작업이 원색적인 성향의 강렬한 색채이미지를 추구한데 비해 새로운 작업은 색상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물론 중간색 중심이다. 회색을 비롯하여 베이지색, 옅은 청색과 옅은 갈색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각적인 자극이 적을뿐더러 온화하고 차분하다는 인상이다. 이렇듯이 원색을 억제하는 듯싶은 절제된 색채이미지로 인해 시각적인 즐거움은 되레 감소하고 있다. ● 이전의 작업이 감성적이었다면 새로운 작업은 지극히 이성적이다. 어디 한 군데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인 구성이 빈틈없이 꽉 짜여 있어 어느 부분에서도 우연적인 표현이란 허용되지 않을 듯싶다. 이는 오로지 치밀한 수리적인 계산에 의한 정연한 조형언어를 확립하고 있다는 얘기다.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강구되는 개별적인 조형언어가 이미 완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작업은 독자적인 조형성을 전제로 탐색된 조형언어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어느 작품을 볼지라도 단박에 그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기에 그렇다. 한마디로 이미지의 패턴화를 통해 개별적인 형식을 완성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물론 이전의 작업에서도 산의 형상을 단순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위에 열거한 특정의 색채이미지와 더불어 개별적인 형식을 충족시킨 바 있다. 하지만 새로운 작업은 그와는 또 다른 형태해석으로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실현하고 있다. 생략적이고 단순화했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작업과 유사하나 형태해석이나 구성에서는 확연히 다르다. 산과 나무를 비롯하여 새, 꽃, 사슴, 구름, 해, 달, 폭포 등 소재마다 독특한 형태미를 부여하고 이를 패턴화하고 있기에 그렇다.

신종섭_자연의 소리-만남_캔버스에 유채_116.7×80.3cm_2012
신종섭_자연의 소리-일출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3

이전의 작업은 산이라는 전체상에 관한 조형의 문제였다면, 새로운 작업은 소재마다 독자적인 형태를 부여, 이를 조합하여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소재를 적절히 배치하여 이야기가 있는 풍경화를 만드는 식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야기란 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 주변의 소재들과 어우러져 지어내는 서사적인 이미지를 말한다. 바다와 더불어 대자연의 상징적인 이미지의 하나인 산이라는 공통의 제재를 중심으로 서사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어쩌면 자연이 인간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속내를 서사적인 내용으로 재구성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 생략적이고 단순화되어 간명한 형태미를 지닌 각 소재들이 이합집산하면서 풀어내는 아름다운 산 풍경은 지극히 서정적이다. 소재들마다 패턴화되어 있어 소재가 어떻게 배치되고 구성되는가에 따라 작품의 내용이 결정된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업은 패턴화된 소재를 서로 다르게 배치하는 식의, 일테면 구성의 변주라는 현대회화의 전형적인 방법론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의 조형언어 및 어법은 간명하다. 가능한 한 화려한 수사적인 표현을 억제하고 간결하게 압축하고 함축한다. 산의 경우 봉긋하게 솟은 산봉우리 모양을 간명한 도상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한다. 즉, 산의 형태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이미지만을 남기는 식이다. 이때 두 개의 선이 마주하면서 산봉우리 모양을 만드는데, 두 선 사이에는 회색으로 채워 전체적인 이미지가 마치 굵다란 회색의 띠 모양이 된다. 이처럼 독특한 조형어법을 거친 산의 이미지는 개별적인 형식을 이끌어가는 초석이 된다. ● 산 이외에도 나무와 새, 꽃, 사슴, 구름, 폭포 등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도상화 및 정형화하고 있다. 소재 하나마다에 부여되는 세련된 조형미는 선험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느닷없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세련된 조형감각이 단순한 노력의 산물일 수는 없다고 보는 까닭이다. 그처럼 아름다운 조형언어를 내부에 숨겨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 새의 경우에는 부리를 비롯하여 눈과 머리, 양 날개, 그리고 꼬리 및 다리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간결한 윤곽선으로 이를 통합하여 새의 형태를 인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이미지로 단순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독특한 방식의 형태해석이 이루어진다. 매끄럽고 단아하며 명확한 윤곽선이 만들어내는 새의 형상은 지극히 세련되어 보인다. 속도감을 필요로 하는 날렵하고도 유연한 새의 생리적인 특징에 부합하는 것이다. 특히 단정하고 매끄러우며 유연한 유선형의 곡선은 우아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조성함으로써 조형적인 세련미를 한껏 부추긴다.

신종섭_자연의 소리-비상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1
신종섭_자연의 소리-투영_캔버스에 유채_162×112.1cm_2012

꽃의 경우에도 꽃잎을 세 개로 압축하고 있다. 꽃잎이 두 개일 경우에는 나뭇잎과 혼동할 여지가 있으므로 꽃의 형태를 인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숫자인 세 개로 정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무의 경우에는 소나무 형상인데 줄기는 직선의 형태로 두 세 곳 꺾이면서 나뭇가지를 떠받치고 있다. 그가 강구해낸 소나무의 이미지는 줄기와 나뭇가지 부분의 윤곽선을 직선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위로 쭉쭉 뻗어가는 직립형의 소나무가 아니라, 바위 틈바구니에서 힘겹고도 마디게 자라 옆으로 퍼지는 형태이다. 짙은 갈색의 줄기 위에 납작하니 떠받쳐지는 널따란 소나무 가지 중간 부분에는 여기저기 뻥 뚫린 구멍 같은 공간이 자리하는데, 이를 통해 소나무임을 인지하게 된다. ● 압축 및 함축 그리고 생략 및 변형왜곡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개별적인 형식미에 요구되는 조형어법이다. 새의 이미지는 형태의 단순화에 그치지 않고 꿈과 사랑과 행복과 낭만과 자유를 갈망하는 상징적인 언어로서의 기능을 부여한다. 단순화되는 새의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이야기가 담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토속적인 정취를 풍긴다.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얘기의 배경과 흡사한 풍경인 것이다. ● 소재를 어떻게 배치하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 및 내용이 결정된다. 산봉우리가 무수히 겹쳐지는 작품은 첩첩산중, 즉 깊고 깊은 심처의 산을 의미한다. 그런가하면 봉우리들이 겹겹이 쌓인 한 가운데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절경의 산 풍경을 보여 준다. 더불어 수직의 폭포 아래 푸른 물 한 가운데 선명히 비치는 달그림자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이며 신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마디로 수묵산수화에 대응하는 표현인 것이다. 또한 무수한 연봉의 배경에다 소나무를 하단에 배치한 구도는 원근감과 더불어 심원한 공간감을 표현한다. 형태가 단순화되고 간결할수록 평면적으로 보이기 십상이어서 공간적인 깊이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소재를 전면에 배치하는 것은 공간적인 깊이를 얻기 위한 일종의 원근법에 근사한 구도법인 것이다. 소나무는 한국 고건축의 중심 재료로서 민족적인 정서에 부응하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소나무를 채택한 뜻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 그의 새로운 작업은 자연의 울림, 한국 산하의 아름다움, 한국의 삶의 정서를 매개로 하여 설화나 전설과 같은 아득한 시공간에 연원하면서도 현대인의 정서와 상통하는 서사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을 지향한다. 즉 심미적인 관점에서의 자연미는 물론이려니와 생명의 본원으로서의 대자연의 울림을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눈부신 생명의 아름다움 및 조화야말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할 가장 큰 덕목임을 웅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 신항섭

Vol.20150529h | 신종섭展 / SHINJONGSUP / 申鍾燮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