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526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29-4(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김소형의 행복론, 풍요의 꿈을 좇는 일상의 행진 ● 행복이란 무엇일까? 김소형의 작품은 '행복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거나 직접 손에 잡히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보통은 마음을 비우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이 빈 상자'를 가지고 태어나서 채우고 비우길 반복하는 것일까, 아니면 '꽉 찬 상자'였기에 조금씩 덜어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까? 과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는 사람의 욕심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김소형은 그림을 통해 행복의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오늘날 현대인은 넘치도록 풍요로운 무한의 세계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늘 부족함으로 목말라 한다. 이런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흔히 행복은 겉으론 보이지 않아 '행복함을 느끼는 감정의 상태'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을 그런 '감정을 느끼는 상태'로만 얻을 수 있을까. 김소형 작가는 의외로 행복을 찾는 간단한 방법을 제시한다. ●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음으로 이르기까지의 삶 중에서 인간은 인간들과 얽혀 모든 이야기들을 전개한다. 인간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국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서로가 의지하며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이 찾아온다. 그들의 이야기, 즉 인간의 모습들을 그려보고 싶어서 우리의 모습을 작은 인형으로 제작하여 오브제로 사용하였다. 그들은 늘 풍요롭고 행복하길 바란다." ● 김소형 작가가 말하는 행복은 '서로 의지하며 하나가 되기 위해 더불어 사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군중(群衆)'―일일이 손으로 만든 작은 인형들―이다. 특히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안에서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한 사람이 다니면 작은 흔적이 남지만, 많은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된다는 말이 있다. 김소형 작가 역시 개인의 흔적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진 생동감 넘치는 정겨운 장면을 연출한다. 그래서일까, 김소형의 그림에선 적어도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는 '군중 속의 고독'은 찾아볼 수 없다.
김소형 그림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요소는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목적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외롭거나 불안한 감정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여도 좋다. 삶을 제대로 살려면 간혹 지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로는 머리보다 발이 더 앞설 수도 있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행동과 실천이 중요하단 것을 보여준다. 프랑스 계몽가 루소의 "강물의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즐겁게 배를 저어라. 이것이 곧 삶이다.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일이다."라는 말처럼, 김소형은 감정보다 '어떤 행위'에 주목하고 있다. ● 잰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행진'하는 김소형의 사람들, 그들은 마치 '행복은 마냥 편안하고 만족스러움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힘들고 불편한 부정적인 측면을 감수하는 과정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배고픈 이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상상보다, 그 음식을 얻기 위한 고된 노동을 감내할 때 더욱 값지다"는 기본적인 삶의 지혜를 전하는 듯하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경주를 시작한다. 그렇다고 죽기 위해 태어났다면 얼마나 허망할까? 결국 죽음은 한 순간이지만, 삶은 많은 순간이다. 일상적인 삶은 매 순간의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소형이 포착한 행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애절하면서도 동시에 더욱 숭고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 김소형은 작품 「가는 길」 혹은 「행진」의 군중을 통해, 무수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법정 스님 역시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다정한 친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한 통화, 그 목소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서 늘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행복은 크고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다."라고 했지 않은가. 김소형의 작품도 생을 다해 떨어지는 낙엽도 어여쁘듯, 일상의 매 순간은 죽어가는 과정보다, 행복한 삶을 엮어가는 씨줄과 날줄이라고 말하고 있다. ● 김소형의 최근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모티브는 마치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부유하는 사람들'의 형상이다. 그렇다고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아니다. 점점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나무가 되기도 하고, 산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자연을 참으로 좋아한다. 자연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모습을 보면 행복해진다. 아무런 욕심 없는 자연 속에서'무(無)'로 돌아가는 동안 행복은 찾아오듯이, 우리 모두가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밝힌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물고기 형상에 빗댄 구성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작가의 고향은 울산의 바닷가이다. 고향에 대한 기억 속에서 물고기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때문에 김소형의 작품 「어릴 적에」, 「꿈의 사다리」, 「하나가 모여」 등을 더욱 편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물고기의 상징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동서양에서 물고기 도상(圖像)의 상징성은 매우 다양하다. 우선 동양의 불교에선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아 목어(木魚)로 만들어 수행자에게 '불면면학(不眠勉學)'의 본으로 삼았다. 서양의 기독교 역시 물고기의 형상은 아주 오랫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를 상징하고 있다. ● 한편으로 아프리카 일부에서는 물고기가 부와 풍요, 그리고 치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한 '생명의 물을 주는 존재'로 여기는 부족도 있었다 한다. 우리 민족 역시 민화에 자주 등장시켰는데, 튀어 오르는 물고기 그림으로 입신출세를 표현하거나, 배가 부른 물고기 형상으로 풍요를 상징했다. 김소형 작가의 물고기 모티브는 종교적인 측면보단 '일상 속에서의 풍요로움을 통한 행복'을 염원하는 것에 가깝다. ● 작품 「하나가 모여」 한 점엔 두터운 마티에르의 물감 층을 올려 표현한 사람들은 무려 수천 명이 넘게 등장한다. 하나 같이 '어떤 희망'을 좇듯 위를 향해 날아오르고 있다. 「꿈의 사다리」나 「어릴 적에」 작품 역시 제각각 다른 감정을 대변하듯, 색색의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맞대어 거대한 나무를 만들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 그것이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무수히 작은 사람들을 등장시킨 김소형의 작품 역시 진정한 행복이란 '풍요의 꿈을 좇는 일상의 행진'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되묻는 듯하다. ■ 김윤섭
Vol.20150526f | 김소형展 / KIMSOHYONG / 金昭亨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