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으로의 침잠_SINK INTO MEMORY

백영훈展 / BECKYOUNGHOON / 白榮勳 / painting.installation   2015_0526 ▶ 2015_0620

백영훈_가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백영훈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0530_토요일_06:00pm

금요영화관 2015_0605_금요일_06:30pm 2015_0612_금요일_06:30pm 2015_0619_금요일_06:30pm 명함 그림 그려보기 2015_0613_토요일_12:00pm~06:00pm

기획 / 핑퐁아트_강동구청 후원 / 강동구청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주말_12:00pm~09:00pm

강동구 성내동 예술창작소 예정지 철거 전 건물 서울 강동구 천호대로 168가길 65-29

작가는 2007년부터 2013년 겨울까지 남양주 지금동의 주민으로 살았다. 당시 그가 지냈던 곳은 서울외곽지역 토지의 상당부분으로 이용되는 창고였다. 주변에는 논밭이 있고 배나무 밭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곳이 재개발구역으로 확정된 후 거주민들과 그곳을 직장으로 삼던 사람들은 터를 떠났다. 2013년 말에 그도 이사를 했다. 영화를 비롯한 영상물에 관심이 많던 작가가 영상 및 사진촬영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남긴 것은 대단하고 뚜렷한 목적 없이 습관적으로 기록했던 그곳과 그 주변 풍경들, 그리고 작가의 일상을 둘러싼 매우 사적인 행위들이다. 작가는 이사 후로도 그곳이 완전히 쓸려 붉은색 흙만이 남는 시점까지 그 장소를 몇 회 더 방문했다. 재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과정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삶의 터전 유실에 대한 분노나 설움보다는, 현재형이었던 자신의 삶이 과거로 변환되는 지점, 그것도 외적으로는 다시는 그때의 모습을 재생시킬 수 없는 완벽한 단절로 이루어진 과거형을 관조하고, 그것으로부터 오히려 현재의 자신을 더 생생하게 인식하는 방식에 가깝다. ● 특히 그는 개(들)에 지속적으로 시선을 보낸다. '자신은 개 같다'라고 작가가 종종 하는 소리를, 개가 작업의 주요 소재가 된 이유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작품을 보게 되면 그보다는 '자신이 누구인가' 에 대한 탐구를 개를 통해 보여주려 한다는 쪽으로 기운다. 처음으로 풀어놓고 키웠던 개가 염려와 달리 사라지지 않고 온 동네를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을 함께 경험한 작가는 개를 기록한다기 보다는 그런 개가 머물고 돌아다녔던 장소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장소는 물질적 공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속의 삶과 기억, 풍경의 정서가 분명히 함께 존재하기에 작가는 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듯한 화면 속에서 그가 기억하는 장소의 정서를 포착한다고 볼 수 있다.

백영훈_뛰어오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cm_2014
백영훈_전시전경01_페인팅 된 샌드위치 패널_가변설치_2007~13
백영훈_쑥스러운 명함그림 전시전경_종이에 혼합재료_9.5×5.5cm×270, 가변설치_2012~14

본 전시는 작품 형태에 따라 4등분 된다. 작가가 살던 샌드위치 패널 조립식 방을 현재의 공간에 맞추어 재현한 설치작품, 재조립된 방에 함께 걸리는 오일페인팅, 재개발의 본격적 시작인 철거의 전후 풍경을 둘러싼 영상작품, 지속해서 그려온 개 소품이 그 구분이다. 작품의 제작 기간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중에는 전시라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의 본능적으로 그려낸 이미지들이 다수를 이룬다. 조립식 방에 그려진 이미지는 물론, 영상작업과 작은 종이에 수없이 그려온 개들마저 여기에 포함된다. 근작의 오일페인팅은 그가 미술작가로서의 작업이라는 상황적 설정을 지닌 결과물이며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내면의 정서를 집중적으로 표출하기 위한 흔적들이다. 이와는 달리 샌드위치 패널로 이루어진 조립식 방은 실제로 그가 몇 년간 살면서 자행했던 페인팅(분노에 찬 낙서에 가까운)의 흔적들이 있다. 방안 이곳 저곳의 거칠고 무작위적인 이미지들은 당시 작가의 즉흥적인 상황이나 정서와 맞물리며 되려 페인팅의 순수한 측면을 순진하게 드러낸다. 날것과 익힌 것의 혼재가 현재 작가가 작가로서의 궤도에 자신의 지점을 확인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 지난 시간 목적 없이 담고 남겨두었던 기록일지라도 그것이 현재 하나의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고 동시에 그 기록이 남겨져 있다는 것은 그것이 마냥 과거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진행형이다. 그 기억이 들추어진 전시장은 개인의 경험과 기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전혀 다른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철거를 위해 해체된 조립식 방이 낯선 지금의 이곳에 다시 조립된다고 해서 결코 지난 공간의 의미까지 지니지는 못한다. 다만 존재했었던 시공간의 기억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시공간을 따라가 볼 수 있으며 전혀 다른 각자의 시공간과 기억들을 연결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백영훈_서있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_2014

한 낮에 어슬렁어슬렁 산책 나온, 풀린 채 살아가는 개가 있다. 온 동네와 온 산을 누비고 저녁이 되어서야 자신에게 밥 주고 예뻐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본능적으로 땅에 코를 박고 분주하게 킁킁 냄새를 맡아 지난 시간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따라 돌아간다. 그렇게 집 근처로 돌아온 개는 아는 길인지 냄새도 맡지 않고 신나게 달려 집으로 들어간다. 개의 등에는 낮에 풀숲에서 얻은 도깨비바늘이 그득하다. 작가가 종종 말하는 '자신이 개 같다'는 말이 지금의 작업에 엮일 때, 그는 마치 한낮의 숲을 누비는 개와 같을 것이다.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는 본성이 그에게는 작업을 위해 침잠하는 기억일 것이고 그것이 망각되면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것, 점차 망각의 과정을 밟을 것들에 대해 두는 시선을 우리도 따라 가볼 수 있게 된다. 동시에 등에 붙은 도깨비 바늘은 그 기억과 잊혀져 가는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다시 겁도 없이 풀숲을 누빌 수 있는, 그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 서민정

백영훈_지붕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15
백영훈_다친_하드보드지에 아크릴채색_20×30cm_2007

5월 초에 성내동에 집이 하나 비었는데 전시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듣고 솔직히 반갑지 않았다. 아무리 전시경력이 없고, 작업도 버려진 것들을 그리고 있다지만, 전시는 희고 반듯한 갤러리에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지난 2013년 2014년 여름 동안 성내동 강풀 만화거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보았던, 80년대 스타일의 오래된 단독 주택들이 모여있는 풍경이 떠올랐다. 다만 새로운 전시장 형태의 가능성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일단 장소를 보여달라며 대답을 미뤘다. 언제나 지겨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주가 지나고 처음 그 장소에 갔는데 일단 외관은 엉망이었다. 출입금지 밴드를 넘어 무너진 담장의 잔해들을 밟고 올라서야 겨우 대문에 다가갈 수 있었다. 집만큼 낡은 번호키에 열쇠를 넣고 돌리니, 건전지가 닳아서 늘어지는 기계음과 함께 힘겹게 문이 열렸다. 가파른 실내 계단을 올라가서 집의 내부가 보이는데 무언가 마음을 쿡 찔렀다. 수십 년 전에 유행했을 나무 패널로 감싸진 벽과 천장, 단열과 상관없이 뻥 뚫린 커다란 창문들, 그리고 꽃봉오리 모양의 오래된 전등갓. 장판을 걷어 드러난 튼튼한 콘크리트 바닥을 보다가 난데없이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 건물은 4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반지하 형태의 1층에 세 가구, 2층에 두 가구, 3층에 한 가구로 모두 여섯 가구가 살았었다. 강동구청에서 예술창작소 및 지역 커뮤니티 센터를 설립하려 집을 매입했고, 7월에 철거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 유예 기간 동안 26일간의 전시를 하게 되었다. ● 많은 수의 예술가들이 아르바이트와 작업을 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두 배로 살아도 정작 전시기회는 얻기 힘들다. 갤러리를 대관할 돈이 없으니 무료 전시 공모에 매달려 보지만, 괜찮은 전시 공모는 8명이 선정되는데 지원자가 500명이다. 예술 창작을 하며 꼭 전시할 필요는 없지만, 혼자 보려고 작업을 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 이번 강동구의 전시지원 형태는 작가가 전시할 기회를 넓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래된 주거밀집지역에는 관리되지 않는 빈집이 많다. 재건축이나 다음 거주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런 빈집에서 지역의 예술가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시할 수 있다면, 공간의 관리나 주변 이웃들의 문화예술 향유가 가능해진다. 전시장을 청소하는데 아저씨 한 분이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겠느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잘 될 것 같다. 또 꾸준히 하면 더 잘 될 것 같다. 우리 동네에 우리 집이랑 똑같은 구조의 집이 갤러리라면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 전시를 기회로 방안 구석에 축축히 쌓여있던 그림들이 햇볕을 쬐게 되었다. 밖에 나온 그림들을 보니 더 좋은 작업을 하고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 백영훈

Vol.20150526e | 백영훈展 / BECKYOUNGHOON / 白榮勳 / 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