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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작 플리커_flickr.com/photos/dungzak
초대일시 / 2015_0522_금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92 애비뉴 92 AVENUE 서울시 광진구 아차산로 392(자양동 216-16번지) JNC Center 1층 Tel. 070.4240.0064 blog.naver.com/92avenue
형태로 읽는 언어, 언어로 읽는 형태 몸 ● 어떤 마음으로 몸을 보는가 에 따라서 육체는 변화한다. 단지 성욕의 배설만으로 본다면 몸은 찌그러진 선 하나일 뿐. 눈을 감고 신선한 공기를 형성하고 눈을 뜨고 몸을 보라. 육체는 살아있는 예술이다. 그대의 몸도. 나의 몸도. 남성의 육체나 여성의 육체나 몸이라는 자체로서는 동일하지만 그 감성은 무척이나 다르다. 생명의 시간. 낯섦의 세월이 지나면 육체는 꽃을 피웠다가 서서히 움츠려든다. 그럼에도 몸은 살아있다. 곡선과 직선의 조화로움이 펼쳐지는 화면. 어디선가에서 본 듯한 익숙함은 인간의 몸이 서로를 닮아있음에 그럴 수 있다. 모든 육체는 다 이유가 있어서 형성된 것이다. 자신의 몸매를 보면서 타인과 비교하고 자신의 성적매력을 알리고 싶을 때. 몸은 변화하는 공간에서 무궁무진하게 향기를 발산한다. 곱고도 고운 여성의 나신이 벌거벗음 이상의 밀도감을 내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막고 정지시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성의 육체는 어떤가? 강함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몸은 훌륭한 매개체이지만 몸은 시간에 바스러진다. 영혼의 몸을 건강하게 일어나게 하는 지상에서의 맑은 하루에, 자신의 육체를 들여다보자. 두려울 것도 부끄러울 것 하나도 없다. 화가에게는 몸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형태이고 색채이다.
빛 ● 검은 향기가 퍼진다. 갈 곳 잃어버린 외딴방. 기억이 소멸하고 육체가 굳어버리는 곳 그곳에서 기다리는 건 빛. 나에게 빛을 다오. 어둠이여. 빛을 주렴. 형태에 있어서 빛처럼 중요하고 다양한 색채를 품어내는게 또 있을까? 빛 앞에서는 옷이 필요하지 않으며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사라진다. 아침에 빛으로 샤워를 하고 갈증을 물로 한잔 채우면 마음은 춤을 추며 언어는 날개를 단다. 헤어지지 못하는 이 빛에 언젠가는 나 또한 빛으로 돌아가서 지상에 흩뿌리리라. 흩어지며 빛을 내리리라. 빛. 언어의 중심에는 낮과 밤이 존재한다. 누구는 밤에 살고 누구는 낮에 산다. 공존의 법칙. 누구도 한쪽에서만 살 수 없는 공간. 우주에 날아가는 빛의 입자는 곱고도 화려하며 찰랑인다. 어느 존재에 닿을 빛.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잊히지 않을 강렬한 조우. 빛은 어둠을 밝히고 빛은 마음을 환하게 한다. 빛의 형태는 제모양이 없기에 당신의 상상에 언어를 더해서 만들어 보길 권유하는 건 빛이 곧 하늘이요 빛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얼굴 ● 당신의 아름다움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타오르는 태양의 얼굴 그러나 당신은 곧 검은 얼굴이 되어 빛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인간은 얼굴이 있다. 제 각각의 얼굴 모양은 곧 인간 자체인양 되어 버리기도 한다. 내면의 고요하고 정갈한 멋을 이야기해도 얼굴빛이 추하면 들어주기 싫은 모양새가 된다. 그대의 눈동자 품은 형태는 여러 표정을 동시에 읽히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궁에 빠지게 한다. 곡선과 직선. 선의 흐름은 얼굴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눈 코 입 귀 머리카락 입술 눈썹의 제 모양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내가 인간의 얼굴을 자주 그리는 것은 인간의 얼굴이 우주와 닮아서이다. 특히 중점에 두는 눈동자의 일렁이는 빛의 형상. 말하지 않아도 눈을 읽으면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형태로 말을 건네고 언어로 형태화 된다. 영혼의 새하얀 꽃은 밝은 모양으로 이마에 내려앉지만 언어화 된 말씨에 담긴 뜻으로 인해 때로 우울하게 때로 경쾌하게 얼굴을 형성하는데 기여를 한다. 자화상은 자신의 얼굴을 자기화 시켜 절대적인 고독과 마주보는 행위이다. 저마다 자화상을 가지고 있다. 파랑의 빛 붉은 미소 노랑 눈빛 초록 이마. 얼굴의 형태는 똑같이 그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다르게 그려져야 한다.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지 않았던 것처럼. 언어가 되는 얼굴은 시가 되어 별이 되고 형태가 된 언어는 달이 되어 지상을 비춘다.
영혼 ● 영혼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을까?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저마다의 빛이 다르듯 제각각의 영혼의 형태는 다르다. 종교적이든 그렇지 않든 시대는 희생을 요구하고 그 희생은 영혼을 잃어버리게 한다. 원형에 가까운 형상은 그 기운이 우주와 닮아있다. 그렇기에 영혼의 형상도 원형에 가깝지 않을까? 란 의문이 든다. 영혼이 환하고 아름답다면 그것을 보게 하는 것은 형태인가? 아니면 언어인가? 형태와 언어는 떨어지기 힘든 쌍둥이와 흡사하며 또한 같은 것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름을 추구한다. 예술에 있어서 형태를 그리고 언어를 말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필요한 부분이 크기에 형태와 언어를 따로 구분 짓는 것 보다 친구처럼 인식하고 닮은꼴이 많은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좋다. 다시 돌아가서 당신의 영혼은 어떠한 형태로 빛을 냅니까? 는 물음에 왜? 영혼이 빛과 동일시되는가에 의아함을 느낄 수 있다. 언어는 빛이요. 영혼도 빛이라. 그러하기에 언어화 된 빛은 영혼과 닿아있으며 함께 공존하고 있다. 는 말을 하고 싶다. 태양이 뜨는 것이 당연하다 고 생각하더라도 영혼이 떠나면 태양은 숨을 죽이고 어둠에서 안으로 안으로 영혼을 품어 또 다른 우주에 내린다. 영혼의 물결, 빛의 물결, 사랑의 물결. 영혼의 형태를 고유한 개인의 인지로 이루고 영혼의 언어를 서로와 서로를 비추는 등불로 이해하는 시간이다.
정신 ● 미쳐 날뛰는 공기에 퍼진 이상한 언어들의 나열. 청초한 백합이 떨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때로는 흐릿하게, 때로는 또렷하게 명징하다. 안개를 걷어내고 살펴보는 정신의 형태는 어떻게 생겼을까? 원, 사각, 삼각, 마름모. 아니다. 정신의 형태는 읽는 자의 느낌에 따라서 변화하고 인지된다. 굶주린 자아에 깃든 정신은 휑한 몰골이며 배부른 포만감의 정신은 비대하다. 언어로 읽을 수 있는 정신의 형태는 두루뭉술하게 표현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나의 정신은 거대한 입술이고 더욱 거대한 혀와 같다. 당신은 어떠한가? 물질이 지배하는 시대에 정신은 홀로 갈 곳 없어서 웅크리며 땅바닥을 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신과 정신의 결합. 누가 누구를 삼켜버리는 상상은 그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시간이 흐르고 비가 내리고 햇살이 돋는 시간. 정신은 서서히 형태를 만들어내며 일어선다. 아름답고 추함을 비켜서고 싶은 정신은 축제를 벌리지만 남는 건 거의 모두 타다가 남은 잿덩이이다. 사랑을 정신에 더해보고 미움도 더해보면, 서서히 걷히는 형태는 극도로 축소된 알갱이 하나일지도 모른다. 무지개가 뜰 때 정신도 함께 성장하면 좋겠지만 다양한 색채로 이루어진 모양의 정신의 형태는 시시각각 흐른다. 유동적인 밀실에 갇힌 정신. 때때로 모든 걸 잊고 살아가고 싶은 정신은 상처받고 할퀴어진 형상으로 어쩌면 엄마의 젖무덤에 빠진 무아지경의 아기를 꿈꿀지 모르겠다. ■ 등작
Vol.20150520a |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