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極端의 극복克服-목수와 화가

김태호_이정섭 2인展   2015_0519 ▶ 2015_0705 / 백화점 휴점일 휴관

김태호_Scape Draw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가변설치_2012~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주)신세계 진행 / 김신애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신세계갤러리 본점 SHINSEGAE Gallery 서울 중구 소공로 63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12층 Tel. +82.2.310.1924 shinsegae.com

대담: 김태오_김 / 윤동천_윤 / 이정섭_이 * 전시를 준비하며 자유롭게 이루어진 대담의 일부내용임.

이정섭_Drawer 1_물푸레나무, 블랙우드_65×85×40cm_2012

_우선 두 분이 '목수와 화가' 이 전시를 함께 하게 된 연유를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덧붙여 오늘 두 분이 말씀 나눌 때 아주 다른 방향으로 새지 않도록, 거기까지만 제가 사회 아닌 사회를 보겠습니다. _나는 이정섭 선생(이목수) 가구에 늘 관심이 있었고, 막연히 둘이 전시를 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왔었어요. 그러던 중 얼마 전 이선생 작업실로 찾아가 윤동천 선생과 함께 밤이 새도록 셋이 술 한잔 했지요. 그때 나름 이목수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고, 인간적 매력에 끌렸다고나 할까... 또 하나는 지난 해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서 '스토브가 있는 아뜰리에'라는 타이틀로 장화진 선생과 함께 전시를 했는데, 참 좋았어요. 평소 난 내 작품이 어떤 사물과도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런 이유에서도 이정섭 선생의 작품을 보는 순간 같이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바로 그날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이정섭씨는 그날 확답을 안하더라고...? _즉답 안 했던 것은... 글쎄요. 대답을 했는데..., 적극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모로 윗길에 계신 분과 함께하는 전시인데 섣부르게 답하고 반응하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했습니다. _그럼 나 혼자 좋아한 건 아니었군요.(웃음) 신세계갤러리를 처음부터 전시공간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고, 윤동천 교수가 여기를 추천했죠. 사실 난 미술관에서 하고 싶기도 했는데, 이 공간에서 전초전을 하는 건 어떻겠느냐 제안을 한 겁니다. 내가 마다할 이유도 없고 아주 좋다고 했죠. _사실 김태호 선생님에 대한 제 선입견이 있었어요. 말하자면 '서울사람', 저에게는 선생님이 그런 도회적 이미지였습니다. 선생님의 작업도 첫인상에서는 세련미가 먼저 다가오지 인간미가 느껴지지는 않았어요...(웃음) _난 사실 강원도 원주사람이에요. 이목수가 말하자면 굴러온 돌이지(웃음). 내가 진짜 강원도 사람이에요. _네. 나중에야 오해였구나, 했습니다. _나도 이정섭씨 잘 몰랐어요. 주위 사람들 이야기 들으며 막연하게 그런 사람이 있구나 하며 좋게 생각했었지요. 그리고 아까 이야기 했지만 실제로 이목수 작업실을 가보고는 작업실에 쌓여진 커다란 목재들, 도구들 그 공간에서 왠지 모르게 느꼈던 어떤 힘, 그 다음으로 이정섭씨 집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것은 안팎으로 널어져 있는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말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 받은 감동, 보여지는 여러 가지 물건들 그 중에서도 마치 고흐가 그린 광부의 신발을 본 듯한 큰 힘이 느껴지는 벗어놓은 낡은 작업화 등... 에서 이정섭씨를 다시 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정섭 선생의 눈과 손이 참 좋았어요. 특히 난 이목수의 손이 맘에 들었어. 이 손이 보통 내공이 아니구나. 진정한 목수의 손이구나. 아주 심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손이구나. 이렇게 감동을 받았어요. 손가락도 하나 잘린 걸 보고, 작업하다 그랬다는 이야기도 듣고 그랬지. 순간 둘이 전시를 하면 재미있겠다. 마치 재즈 연주자들이 연주 하듯 각자의 작품들을 갖고 별 상의 없이 즉흥적으로 전시를 해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둘이 재미있게 한 공간에서 제대로 놀아볼 수 있겠다 라고 말이지요.

이정섭_Element 2_너도밤나무, 블랙우드_13×150×25cm_2012
김태호_스토브가 있는 아뜰리에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2

_선생님 말씀은 이해가 되는데 이목수는 말수가 적네요. 예전에 이목수가 가졌던 김선생님에 대한 인상은 이야기했고... 그다음 하려던 말이 뭔가요? _그전에 김선생님과 인간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사진으로만 선생님 작업을 봤었고, 내촌에서의 전시 때 서너 작품 접한 것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서울역사 전시를 보면서 무언가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작품 속에 담긴 다의성을 보았습니다._김선생님의 서울역사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요? _300호 크기의 대작이 몇 점 있었고 그리고 작은 작품들이 여러 개가 공간에 드로잉처럼 걸려있었어요. 작품 설치를 그 공간에 가장 알맞게 배치해보려고 했죠. 내 작품은 얼핏 보면 차고 물질적이라고 보기 쉬운데, 실은 나의 작업은 감성을 많이 이입하는 작업이거든요. 이목수 가구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단지 가구가 아니라 생명이 있는 느낌이랄까요._감성이 세다. 강직하다. 혹시 가구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신 것은 아닌지요? _꼭 그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풀 소리, 시골의 담, 전통적인 우리의 옛 가치와 연결되는 느낌들. 처음에는 가구의 모양이 약간은 왜색이 아닌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잘못 본 거였어요. 그리고 나의 또 다른 오해는 이목수 가구가 비싸다는 거였는데, 사실 생각해보니 난 캔버스에 물감만 입히는 건데도 내 작업이 더 비싼게 아니겠어요(웃음). 나는 혼자 작업하지만 이목수는 큰 돈 주고 좋은 나무 사와야 되고 일하는 사람 월급 줘야 하고 공장 가동하고 그러려면 엄청난 경상비가 들어갔을 텐데 그런 생각은 안하고 단순하게 이야기 한 거지요. 실제 가서 보고 내가 경솔하게 얘기했구나 생각했어요. 아마 예전에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이선생에게 상처가 됐었을 거예요. 후회했고 이선생에게 섣불리 얘기했다고 말했어요. 지금 이 순간을 빌어서 다시 사과를 해요.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게 이야기 할 참이에요._그건 나중에 이목수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높은 가격이 전략인지 아닌지 저도 궁금해서요. 다시 본 괘도로 돌아가서... 한마디로 이정섭 가구에 흠뻑 빠지셨다 이건데요. 이러한 극찬에 대해 이목수 생각은 어때요? _가구보다 집짓기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재료와 노동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건축비로 집을 지을 건축주를 만나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가구를 살펴보니 가구 역시 제대로 된 재료를 써서 만든 게 없었습니다. 아, 이건 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껏 그런 가구가 없었으니까. 유럽에 가보아도 극히 소수의 장인들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일본의 경우에도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 류 이외에는 개항과 동시에 들여온 유럽풍의 가구들이 답습되고 있을 뿐이었지요. 소위 시대정신이랄까, 변모해가는 시대에 맞게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고 할만한 가구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나름의 안목으로 군더더기를 없애고, 비례를 신경 쓰면서 만들었습니다. 김선생님처럼 다의적인 표현은 욕심내지도 않았어요. 가구는 불가피하게 타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테이블의 경우를 예로 들면 항상 수평을 유지해야 하고 네 다리는 견고하게 받쳐야 한다, 일정 정도의 두께를 가져야 한다는 등의 전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기능성과 실용성이라는 제약 속에서 확률적인 최선을 추구한 것이죠. 감각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은데 모두 다른 일들을 하고 있더군요. 순수미술, 공업제품 디자이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성공한 남자들의 로망으로 목수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제가 상품이 된 거죠. 치과의사, 사진작가도 목수가 되고 싶어 하니까요. _나도 목수 생각 해본 적 있었어요. 내 생각에 보통 일반적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작업한 조형물이 오히려 조잡한 게 많더라고요. 오히려 필요에 의해서 만든 도구들이 훨씬 아름다울 때가 많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어요. 이목수 작품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난 그림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 내 사오십대는 개념과 주제를 정하고 해석해보려는 시도가 주인 작품들을 했었어요. 말하자면 해석과 증명의 시기였다면, 오십대 중반 이후에 '모호함'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면서 풍경을 모호하게 만드는 일을 하던 중 중첩되어 없어지는 화폭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쪽으로 끝까지 밀고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고 그 후 그렇게 해오고 있어요. 왜냐하면 한편 요즘 세상이 복잡하고 거칠어 져서인지 대체로 작품들이 그렇게 나타나는 현상이 많아요. 그게 시대의 정신이니까 대부분 작품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작품들만 있는 세상은 또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점점 나라도 사람들에게 뭔가 위안할 수 있는 작업, 그 중에서도 아름답다거나 머리를 식히게 해주는 그런 작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 후에 이런 작품을 쭉 계속 해왔는데 여기서 아름답다는 것은 그냥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다른 감정 예컨대 슬픔이라든가 인생의 허무 같은 또 다른 복합적인 감정이 내재되어 있는 그런 매력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번 이정섭씨의 가구를 보면서 제가 생각한 그런 것들이 보여지고 느껴졌어요. 그냥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어떤 생명을 가진 실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어떤 떫음이랄까? 아픔이랄까? 하는 그런 것들이 가구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은 뭐 그런 것이 느껴졌어요. 한마디로 매력적이에요. 예쁘게만 만들어 매력적으로 보이겠어요?

김태호_알맞게 움직이다_종이에 먹_90×115cm_2011
이정섭_Element_너도밤나무, 블랙우드_가변설치_2012

_두 분 다 프로시네요. 남의 작업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얘기를 슬쩍 비추시고. (웃음) 제가 거들 필요가 없어 허전할 정도입니다. 그럼 정섭씨, 평소 자신의 작업에 있어 강조점은 무엇인가요? _'변화, 통일, 균형'. 가구는 그 정도면 되지 않겠습니까._이목수는 미대를 나오고 많은 변화과정을 거쳤죠. 사진으로 시작해, 대형 흑백회화, 한옥, 가구, 건축 등 관심사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변모의 원동력이 궁금하네요. _노동에 대한 향수와 지향이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졸업전시를 위해 직접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옮긴 적이 있는데, '그리기'라는 노동행위가 매개됨으로써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상과 느낌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직한 노동이 주는 반향을 믿고 있습니다. _미술은 일종의 농사짓는 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비슷한 생각인데, 논밭을 갈듯이 캔버스에 물감을 겹겹이 쌓아가면서, 정확하게는 그리면서 그 아무것도 아닌 행위 속에서 대단히 뿌듯할 때가 많아요. 아마 그래서 농부들도 고단하지만 농사를 계속 지을 거예요. 어떨 때는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가 앉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리고 실제 그런 환각을 느낄 때도 있어요. 이번에 본 이정섭 선생의 가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가구 속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고... 이목수는 그런 생각 안해요? _선생님도 노동에 대한 원초적 향수와 의식적 지향을 가지고 계신 거겠죠.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 역시 그림을 통해 노동 그 자체의 가치와 새로운 의미를 빚어내는 가치를 함께 경험한 바 있습니다. 사진과 그림이 똑같은 이미지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했죠. 그러나 미술이 당시에는 공허해 보였습니다. 뭔가 확실한 결과물이 남는 그런 것이 하고 싶다는 마음에 여기까지 흘러온 것입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_목수생활하면서 미대를 나와 도움이 되었는지, 한편 역으로 불편한 건 없었는지도 궁금합니다. _불편한 점은 없었습니다. 서양화과 잘 나왔구나._여기 우리가 다 서양화과 선배들이라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_아닙니다. 소위 미대생이라는, 사회에서 소외를 경험했던 자로서의 갖은 잡생각이 모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른 학과와 달리 취직하기도 어려웠던 처지로 인해 미리 가불해서 겪었던 세상과의 단절과 소외의 시간들이 현재의 삶의 거름이 되고 있다 여깁니다. _이목수가 철이 빨리 든거지._전시의 타이틀 '극단의 극복', 이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친절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궁금합니다. _나는 '목수와 화가'로 하자고 했지요. 그런데 둘의 작품을 잘 아는 정영목 선생을 이선생이 만나서 타이틀 이야기 하던 중에 포스트미니멀리즘 얘기가 나왔다고 하대요. 이목수는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을 했대요. 나도 듣는 순간 괜찮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는 전부터 있던 미술사적 용어가 좀 걸려서 우리 말로 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을 했고 이선생이 한참 생각을 하더니 '극단의 극복' 그러는데 아! 그래, 나는 순간 감각적으로 우리 전시의 타이틀로 좋겠다고 말했어요. 바로 그거 같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의미를 담았다기보다는 그 구어가 우리작품을 잇는 무언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_그렇다면 김선생님은 포스트미니멀리즘을 극단으로 보신 건가요? _그건 아닙니다._저는 오히려 선생님이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성향과는 정반대, 즉 '감성', '감수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외형상 조형요소를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처럼 보이지만 선생님의 작품은 그의 극복, 즉 극단으로서의 미니멀리즘을 극복하려는 성향의 작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_그래요. 그럴 수 있습니다._말하자면 포스트미니멀리즘에 대한 대안, 다른 해법이 두 분의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일 텐데요. 그래서 제목이 주는 인상이 매우 강하지만 일면 지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목수는 극단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군요. _저는 '포스트'의 후기라는 의미를 극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말해 미니멀을 극복한다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저의 미술적 정체성을 미니멀리즘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전 실상 미니멀하게 작업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고민한 결과일 뿐입니다. 그렇게 욕심껏 진검 승부를 하고 싶었을 뿐, 미니멀로 비추어지고 분류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지 못합니다. 서울역사전시의 김태호 선생님의 작품도 마찬가지 입니다. 왜 우리가 굳이 서양미술사의 정의와 분류에 규정되어 불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정섭_Element_너도 밤나무, 블랙우드_가변설치_2012

_보는 사람들이 양식주의에 치우친 거지. _그게 불만입니다. 인간이 반드시 본질만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또 제가 굳이 그걸 얘기한 것도 아닌데 그런 원론성에 가두어두고 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전 이 제목 '극단의 극복'이 좋습니다. 다소 자의적인 해석이겠지만 제가 이해하는 미니멀리즘의 특성은 극단이기 때문입니다._두 분의 작품은 양식상 곁가지를 다 뺀 미니멀리즘과 통하면서도, 한 분은 정서와 감수성, 또 한 분은 우리 전통에 대한 존중 등을 통해 새로운 차원을 전개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극단의 극복'이라는 제목과 '목수와 화가'라는 부제의 대비가 아주 극명해서 오히려 재미있는 면모를 기대하게 하네요. _또 삶의 태도에 대한 각오이기도 하고요._삶의 태도를 비춘 제목이라면 제가 아는 두 분과 아주 딱 맞네요. (웃음) _우리 둘이 비슷한 데가 많아요.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해야 직성이 풀려요. 고쳐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생긴대로 살랍니다._강한 대비로 인해 재미있는 전시의 제목입니다. 한편으로 이 제목을 보는 사람들이 다양한 해석을 할 것이고, 많은 오해를 할 것이고, 그래서 더 관심을 끌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작품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관람객이 가장 잘 이해해줬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뭔가요? _말 그대로 '풍경' 입니다. 좋은 산수와 눈 오는 벌판을 바라보듯이 제 작품을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고요. 보는 이들이 작품 속에 들어가서 앉고, 서고, 다시 나오고 또 그 앞에 서고 그랬으면 좋겠어요._미술이 가진 완상의 기능, 위안과 위로의 기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말을 바꾸자면 가장 본유의 기능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_그렇습니다. 내 그림으로 위로를 받고 누군가 편안해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림 앞에서 생각 없이 바라보고 멍 때리는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_그렇다면 보는 이가 자주 오해해서 그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그런 지점도 있으십니까? _백 명의 사람이 보면 백 개의 그림이, 천 명의 사람이 보면 천 개의 그림이 되어야죠. 나는 관객이 어떤 방식으로 보든 관계하지 않습니다.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_선생님의 대형 캔버스 작업은 이미지가 희미하게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이 형상이 뭘 그린 것인지 매우 궁금해하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 작품을 설명해주신다면요. _저는 풍경을 넣고 겹쳐서 결국은 그 풍경의 형상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언젠가 전등사에서 본 두 문구, '세상에 눈으로 보여지는 것들은 언젠가는 다 없어진다.',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에서 제 작업에 대한 확신이랄까... 하는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에서 벗어나서 제 작업을 하는 태도의 버팀목을 만난 계기였습니다._선생님은 워낙 공간을 잘 활용하는 작업을 하시는 걸로 정평이 있으신데요, 적극적으로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만드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그림이 아닌 공간 자체를 만드시는 것 말입니다. _물론 합니다. 서울역사전시 작업도 그런 생각의 일환이었습니다. 작품을 놓을 때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합니다. 정영목 선생이 금호와 학고재에서 제 전시를 보고 콘크리트 아트(Concrete art)라고 칭했고, 윤동천 선생이 구체적 추상이라고 불렀었죠. 제 작품이 정선생 시각에 단단하게 구체화 되어있는 것, 그 어떤 모양을 상기시킨다고 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없지 않아 그런 점도 있네요. 전시장 그 자체가 풍경이 되기도 하고 공간이 되기도 하죠. 캔버스 안의 풍경과 밖의 풍경이 공존합니다. 윤동천 선생이 말한 구체적 추상이라는 것도 매우 와닿는 부분이 있는데, 프랑스에도 그런 개념의 작가들이 있더군요. 문학에서 보면 예를 들어 구체시 같은 것을 말할 수 있겠지요. '비' 라는 시가 있다면, 그 시의 문구들을 마치 비가 오는 모양으로 배치하는 겁니다. 시 자체가 곧 비의 형상이 된다는 것이죠. 제 작품도 어떤 점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_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어떤 구체적 형상을 닮았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요. 어떤 특정 정서와 느낌은 아무리 구체적으로 잘 표현해도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움, 실연(失戀), 회한, 여운, 공허함... 등등의 어떤 추상적인 감정들은 여실히 잘 그려도 추상으로 밖에 표현이 안 되기 십상이죠. 혹은 추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그 정서를 표현했지만 추상의 형태로 드러난다는 의미에서 '구체적 추상'이란 것이죠. 사람들은 선생님의 작품을 마주하고 '형상이 안보이네... 뭐지?' 하며 물러서는데. 사실 그림에는 전격적으로 구체적인, 하지만 모호하고 미묘한 정서와 감수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_내 작품에 대해 정리해줘서 고마워요. 정선생, 윤선생 두 분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_이목수에게 있어 '내 가구는 이것을 지향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컨대 가구의 기능적 편리함, 아름다움 그 자체, 내구성 있는 재료 등, 작가가 생각하는 역점 부분 말이죠. _가구를 대하는 태도는 앞에서 말씀 드렸고, 사실 가구는 그만하면 된 것 아닙니까?_충분히 본인이 잘 만든다는 말입니까? 인터뷰에서 그렇게 얘기하면 안되는데. (웃음) _아트 퍼니처? 아트는 아트이고 퍼니처는 퍼니처입니다. 퍼니처가 할 수 있는 것에는 명백한 경계이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만하면 되었다.' 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갑자기 '디자인 퍼니처' '아트 퍼니처' 라는 장르까지 나왔고, 바젤 페어에까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형용 모순이지요. 가구는 인간의 삶에 유용합니다. 아트, 예술은 전혀 '유용'한 것이 아니지만, 숭고합니다. 인간이 묘한 것 같습니다. 유용함이 없는 '아트'에는 가격을 지불하지만, 유용한 가구에는 실용적, 이성적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아트 퍼니처', '디자인 퍼니처'로 지고 나가는 것이 아닌지? 그러면 그냥 '아트'를 할 것이지. 저는 가구는 엄연히 유용하고, 실용적 목적이 있는 작업이니, 예술의 숭고함과 본질에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구로서는 되었다는 뜻입니다.

김태호_Scape Drawing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2

_마지막으로 전시가 어떤 모습을 갖출지 궁금하군요. 또 향후 계획도 말씀해주십시오. _제목을 정하고 몇일간 이 제목을 생각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동양철학과 자주 결부되면서 '비움', '공(空)'과 함께 같은 개념으로 병치하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듭니다. _나도 이런 표현들은 식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을 극복해야지. _네. 본질이 엄연히 남아 있는데, '비움'이란 인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_두 가지 계획이 있습니다. 첫째, 절제의 끝 아주 최소한으로 모든 요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확 흐트러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두 사람이 이러할 것이다 라는 기대를 다 무너뜨리는 것이죠. 사실 두 개를 다 보여주고 싶은데, 이번 전시는 공간이 한계가 있고, 언젠가 하고 싶습니다._갤러리에 무빙월이 있어서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아이디어입니다. _난 이목수가 작업실에 쌓아놓은 나무 자체를 옮겨서 가구와 함께 설치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있다면 제대로 어지르고, 제대로 정제하고 이 대비를 한번 보여주면 좋겠군요._이번 전시는 별볼일 없다는 건가요? _윤선생이 맛보기라고 하지 않았나._전초전이라고 했지 맛보기라고는 안 했습니다.(웃음) _신세계는 아주 상업의 극단이면서 오히려 아닌, 뮤지움급 전시를 하곤 하던데. 난 이 전시가 나로 인해 이목수의 가구가 팔렸으면 좋겠어요. 그럼 언젠가 내 작품도 팔리겠지(웃음) 나도 약거든... 사실 언젠가 임히주 고문께도 당신 컬렉션과 함께 전시하면 어떨지 제안하기도 했는데, 말이라는 게 이렇게 힘이 있어. 이번 전시에서 나는 이목수 뒤에서 잘 어우러지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설치방법도 이목수가 먼저 가구를 배치하고나면 내가 그 뒤에 내 작품을 배치하는 식으로 진행하려 해요._이 부분은 선생님이 너무 거룩해 보이셔서 조금 편집이 필요합니다.(웃음) _사실 그래야 나도 빛나지 않겠어요? 그럴수록 전시가 잘 될 거 같아요. 그 작업실에서 본 병풍 갖고 오나요? _네. 가져옵니다. _그럴 거 같았어요. 이렇게 우리 서로 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교감하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작품 선택에서부터 말이지요._'극단의 극복', 제목이 한문으로 들어가면 어떨까요. '목수와 화가'랑 부딪히는 느낌인데, 한문이면 못 읽어도 좋으니... 하고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_그럼 이 전시하고 중국 가서 우리 전시할까? (웃음)_장시간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Vol.20150519c | 극단極端의 극복克服-목수와 화가-김태호_이정섭 2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