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색과 상징에 담긴 사유적 삶의 세계

백진展 / BAEKJIN / 白鎭 / painting   2015_0507 ▶ 2015_0528 / 일요일 휴관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15

초대일시 / 2015_050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1:00am~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소헌 GALLERY SOHEON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34(봉산동 223-27번지) Tel. +82.53.426.0621 www.gallerysoheon.com

소헌컨템포러리 SOHEON CONTEMPORARY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34(봉산동 223-27번지) Tel. +82.53.253.0621 blog.naver.com/soheoncontem

백진이 그리는 '별들의 강', 색과 상징에 담긴 사유적 삶의 세계 ●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에꼴 데 보자르) 회화과 졸업하고 1983년 이후 지금까지 10여회가 넘는 개인전을 가진바있는 작가 백진은 프랑스에서 30여년 거주하다 수년 전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그가 머물고 있는 장소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신사실파 작가인 백영수 화백의 고택이다.(신사실파는 순수 조형미술을 기치로 1947년 창립된 국내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이다. 김환기를 비롯해,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백영수 등이 그 구성원이었다. 이 중 백영수는 백진 작가의 부친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실은 대를 잇는 화업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고, 백진 작가의 손때가 덧대어져 그 어느 공간보다 예술적일 뿐만 아니라 구석구석 흥미로움으로 가득하다.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1×73cm_2015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혼합재료_50×120.5cm_2015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색과 상징으로 채워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백진이라는 이름을 수사하는 대표적인 연작인「은하수」도 이곳에서 태어난다. 이 시리즈는 20대 청년시절 우연히 동해에서 마주한 모래알 같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뭐랄까, 감동의 단초였고 경이로운 신세계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수십 년 동안 동일한 주제 아래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생성해 오고 있다. 허나 그의 작품들을 보면 왜 제목이「은하수」인지 명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언뜻 꽃 같기도 하고 산탄처럼 흩어진 점(點)이 연상되기도 한다. 더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별들의 강'이나 '별모양'과도 다소 거리가 있다. ● 그의 은하수는 강처럼 흐르는 은하계(銀河系)를 거푸집으로 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재해석된 은하수라는 것이 맞다. '별'은 별인데 가시적 명료함을 유도하는 별이 아닌, 이미지 보다 깊은 철학적 의미들이 배어있는 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개체화 하면, 그건 바로 개별적인 우리네 삶,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각각의 우리네 자체이자 그 자체에 대한 사유의 틈이랄 수 있다. 즉, 어쩌면 보잘 것 없고 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을 시간(별들의 강을 은유하는 흐름, 방향, 물결)이란 등고선 아래 메탈과 같은 각종 오브제, 아크릴 및 오일류의 다양한 재료를 통해 점과 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25cm_2015

이처럼 작가는「은하수」연작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우주 속의 인간을 담아내고 있다. 생사의 경계, 밝음과 어둠의 문지방, 삶이라는 여정의 고락을 안고 있는 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들을 하나의 픽셀처럼 화면에 군집해 놓고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극히 나약하고 허물 많은 인간,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을 포함한 우주 자연 존재 일반이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게 영원히 회귀한다는 객관적 사실을 인정할 때 삶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수 있음을 향수적 태도(별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 아래 구현하고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 ● 반면 파스텔 톤의 은은한 색, 넓은 화면이 인상적인 근작들은 화사한 여운이 짙은 여타「은하수」연작과는 달리 군더더기 없는 기하학적인 표현을 이룬다. 작품 제목은 여전히「은하수」를 가리키지만 형식면에서 보다 덜어낸 듯한 분위기가 강하다. 커다란 캔버스를 긴장감 있게 분할하듯 가로지르는 선과 단색 혹은 빨강, 노랑, 파랑 등 몇몇 단출한 색으로 구성된 이 그림들은 흡사 색면추상주의 작가들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여러「은하수」시리즈에서 선보인 의미들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00cm_2010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00cm_2010

다시 말해, 다른「은하수」연작들이 거대한 은하계 내 존재하는 별들을 통해 우주 속 인간을 촘촘하게 치환한 것이라면, 색과 면이 강조되고 있는 근래의「은하수」시리즈는 방대하고 가공할만한 우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다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두 연작은 같은 듯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후자가 사유의 여백과 메시지 전달 측면에서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해석과 설명이 다양하게 접목되는 상징 대신 실존적 입장에서 좀 더 근원적인 단순함과 간결함이 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는 어떤 인위적인 미적 태도가 아니라 인간 자체를 넘어선 근원적인 자각을 바탕으로 작가만의 철학적 이념을 보다 단순하고 강렬한 색과 면으로 표현하고 있는 탓이 크다. 때문에 색면 회화라고 부를 수 있는 작가의 근작들은 은은하면서도 강렬하며, 단순하지만 다양한 함의가 수록된 조형언어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삶, 각자의 마음속에 움튼 자신만의 우주, 동양의 정서에 버무린 서구적 가치관 등의 복잡한 갈래를 폭 넓게 수용-맥락화한 채 이미지화-상상화-하고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 이는 오늘날 선보이고 있는 백진 작가 작업의 주요 특징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2×92cm_2012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00cm_2011

사실 작가 백진의 작업은 의도가 무엇이고 형식은 어떠한가, 그리고 내용은 표현과 맞닿는가, 동시대 예술에 어떤 의미를 생성하는가 등의 비평적 관점을 건너뛰어 인상으로만 기술하자면, 한마디로 따뜻하다.(그가 유독 노란색을 자주 사용하는 것, 에너지를 머금은 강렬함을 선택하는 것,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서도 따뜻함의 이유는 증명된다.) 때론 굳이 긴 말 필요 없는 행복함을 심어주기도 하며 전반적인 긍정성도 이입되어 있다. ● 이러한 여운은 (작가의 의도와도 무관할 수 있지만)아마도 부친이자 한국 추상미술을 촉발시킨 백영수 화백의 아들로서 그 영향을 받은 탓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남농가(家)가 그러했고, 박수근가가 그러했듯 유년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예술을 접해온 환경의 반사적인 양태가 녹아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다만 둘 사이에 간극이 없는 건 아니다. 백영수 화백이 동심의 세계를 건드리는 순진무구한 감성을 구상성이 가미된 형태로 나타낸다면, 백진 작가는 자유로운 추상의 언어를 자신의 작업 속에서 발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때 "자유로운 추상의 언어를 자신의 작업 속에서 발현시키고 있다"는 필자의 해석을 다른 시각으로 설명하자면, 작가는 우주를 일종의 세계 내 존재들이 경험하는 현상학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인간은 우주를 지향하는 실존의 상관자로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적 의지는 1981년 도불 이후 잠시의 사실적 풍경을 제외하곤 지속적으로 이어진 백진의 작업에서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여기에 유학시절 앵포르멜(Informel)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 90년대까지 이어진 지도교수였던 고(故) 올리비에 드브레(Olivier Debre)의 추상에서도 일부분 영향을 받아 완성도를 높여온 것으로 풀이된다.

백진_Milky Way 은하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2×92cm_2014

하지만 무엇보다 백진의 작업은 감각적이라는 것에 방점이 있다. 이는 엠마뉴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시간의식에 준한다. 과거의 경험이 창발의 동기가 되고, 지금까지 긴 시간을 일체의 지향성을 보이는 것도 결국 본질이 시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시간의식이야말로 감각하는 것 바로 그것과 갈음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의 화면에 드리워진 삶의 시간성은 이제 스스로 시간이 되어 흐름으로써 시간을 형성한다. 따라서 그의 캔버스에 얹힌 감각적인 색과 면, 그 내층을 뚫고 끝없이 이입되는 것도 결국 작가 자신이 시간의 흐름이 되어 감각화-표출되는 것과 같다. 지금의 회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자기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홍경한

Vol.20150507b | 백진展 / BAEKJIN / 白鎭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