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動

이상국展 / LEESANGGUK / 李相國 / printing   2015_0506 ▶ 2015_0602

이상국_1982산동네_마포에 혼합재료_82×1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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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1부 자연 풍경 / 2015_0506 ▶ 2015_0519 2부 삶의 풍경 / 2015_0520 ▶ 2015_0602

관람시간 / 11:00am~07: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이 전시는, 작년에 폐암으로 타계한 이상국화백 1주기를 맞아 나무화랑 대표인 김진하가 작가 이상국과의 우정과 추억과 존경을 담아 헌정(오마쥬)하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약 30여 년에 이르는 기획가와 작가의 미술과 작품에 대한 다양한 대화와 회고가 그 바탕에 있다. 또한 지난 2012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이인성미술상 수상 작가전』의 대규모 회고전과 작가의 화집간행을 진행하면서 전 작품을 일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꾸민 전시이기도 하다. ● 이 전시는 이상국화백의 작품들 중에서 풍경화만을 엄선해서 꾸몄다. 이상국은 40년간 화단의 흐름이나 집단적 활동과는 담을 쌓은 채 홀로 외롭고 고립된 자기만의 조형세계에 천착했던 작가다. 과묵했고, 뚝심있고, 주체적인 시선으로, 서구미술과는 다른 한국적인 회화양식과 정서를 작품으로 구현하려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렸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래선지 이상국이라는 작가의 캐릭터는 외톨이, 뚝심, 과묵함, 작업 만으로 각인되었다. 40년간을 한결같이 서울 서북부 산동네와 변두리 풍경의 서민정서에 천착했던 작가의 이력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작가의 작품에 대한 「민중적 한과 유명의 에네르기」(김윤수), 「소리 없는 아우성」(유홍준), 「대지의 뼈」(김종길), 「견고한 생성의 터」(김진하), 「내면에 감추어진 힘의 외연적 질서의 또 다른 현상」(오광수) 등의 압축된 레토릭은, 작가와 작품의 연계가 얼마나 정직한 것인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 전시의 전체적인 주제는 작가의 전 작품을 일관하는, 자연의 생명력(1부, 자연풍경), 서민들의 삶의 의지(2부 삶의 풍경) 등을 생성과 동적인 이미지의 조형성으로 풀어낸 회화성이다. 1부 자연풍경은 산, 바다, 나무 등을 통해서 근원적인 생명에 대한 생성의 에너지를, 2부는 그 자연(국토)에 거하는 이웃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발현하는 변두리 동네풍경을 뚝심 있고 거친 붓질과 물감붙이기로 표현해 낸 작품들이다. ● 이상국은 풍경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작가 특유의 거칠고 두터운 선과 표현성으로 자기 내면의 생동감으로 드러냈다. 즉 한 폭의 회화가 단순한 이미지를 재현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어떤 추상적인 에너지로 치환되는 힘을 발현하는 것이다. 대상의 재현과, 작가의 내면의 분출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부드러운 표현력과, 능숙한 기량이 동시에 몸과 감성으로 발현되는 화면을 구축해 낸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런 메인 전시 컨셉에 의해 선정된 작품으로 구성된다. 전시장 사정으로 1, 2부로 나뉜 점과 거대한 대작들을 소개하지 못함이 아쉽다. 차후,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서 충분한 관람의 기회가 열리길 기대한다. ■ 나무화랑

이상국_공장지대-구로동에서_마포에 혼합재료_59×81cm_1978

…중략…산이나 자연이라는 소재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갈등구조를 극복하려는 의도는,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못하는 소박한 자기 안주로 폄하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해체의 방법을 통해 인상되는 추상적 표현을 두고 쉽게 추상표현주의적 경향으로 치부해버릴 염려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산이나 나무와 같은 자연적 소재는, 해체의 방법을 통해 획득된 기(氣)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자연주의적 복귀현상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대상, 설명의 요소들이 지워진다고 해서 바로 추상이라는 것은 지나친 이분화 구조(구상과 추상으로 쉽게 분류해버리는 폐단으로서의)의 산물이다. 산의 구체적인 모습에서 산꼭대기로 타고 오르는 다닥다닥 붙은 블록 집 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해서 쉽게 추상화의 단계로 속단해버리는 것은 역시 구상과 추상에 대한 강박적인 분류개념의 오랜 인습 탓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그의 화면엔 현실과 자연의 내면에 숨쉬는 인식의 열기가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내면에 감추어진 힘의 외연적 질서의 또 다른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구상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이며,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구상적인 것이다.…중략…(『밖의 풍경과 내면의 리듬』중에서) ■ 오광수

이상국_북한산_캔버스에 유채_41×73cm_2006

거기에 나타나는 산이나 바다는 재현된 것이 아니라 대상의 분석과 작가에게 각인된 인상의 표현들이다. 아니 이상국의 내면이다. 단순한 풍경이나 정물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생동하는 원리나 기운 같은 것이랄까. 말하자면 구체적인 소재가 작가의 육체적인 개입을 통해 추상적인 에너지로 전환된 것인데 이것은 분명히 사물의 재현과는 다르다. 대상이 변형된 형태로 남아있지만 선과 면이라는 조형요소들로 환원되고, 거기에 다시 작가 특유의 물감 붙이기가 회화적 뉘앙스로 흔적화 되어 재현보다는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육체와 질료의 반응과 그림에 대한 평소의 사유가 일치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양상은 사실 이전의 그의 그림에서 보여 졌지만 더욱 깊은 완성도와 집중력을 보여준다. (『자아와 형식의 집중과 통일』중에서)

이상국_수색에서_종이에 혼합재료_54×78cm_1985

…중략… 이상국의 회화는 바로 이런 작가의 태도와 표현역량이 결합된 장(場 Ground)이다. 미적 체험, 자신과 현실과의 긴장과 화해의 길항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내면의 현상과 작용을 회화적 표현을 통해 연역해 내는 거다. 그 결과인 작업과정에 작용하는 가장 큰 동기가 이상국 특유의 에너지다. 자신도, 세계도, 풍경도, 이웃들의 삶도,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이 기(氣 Energy)의 약동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 그것을 증명하는 회화.... 중심/주변, 남성/여성, 위/아래, 좌/우, 양/음, 선/면, 봉우리/골짜기... 등 모든 상대성 사이에 동시에 작용하는 불규칙하고 혼돈스런 이 중력과 장력을 통하여 이상국은 회화적 '형상성'을 견인한 것이다. 대상과 만나는 현장에서의 미적 감성→내면(존재)의 감정→구체적 현실→보편적 역사성→추상적 기운이 동시에 내재된, 생동하고 확장되고 확산되는 터(화면)로 말이다. ● '구체적 현실'은 풍경과 사람살이에 대한 이상국의 실제 경험이다. 풍경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경험'한다는 것, 그 현장에서의 존재에 대한 떨림과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이상국은 시간에 의한 삶의 운동과 변화의 관계성을 역사성으로 풀어낸다. 그것은 역사적 맥락에 있지만 그 결과는 대단히 추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회화가 갖는 애매모호한 탈 지시언어적 상징기제의 속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 맥락이란 작가나 일반인 개인단위로 분해된 경험들이 그림을 보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의 화면에 집중하면서 불러일으키는 공감에 관한 에토스(Ethos)와 파토스(Pathos)의 변증적 과정을 말한다. 이는 사회과학에서의 역사 개념과는 다르다. 거기에서 역사는 지나간 시대의 객관적 사실로부터 정치나 사회적 담론을 거시적 입장에서 분석하여 보편적 패러다임을 추출하고 기술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화 되어 그 시대의 특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이렇듯 체계적으로 기술되고 규범화 된 역사학의 입장과는 달리 그 역사를 구성하는 인자들의 숨겨진 개인사를 펼쳐놓고 보면 더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람들에겐 모두 자신의 경험과 이력이 있다. 이런 개별 단위들의 삶의 체험이 구성하는 각기 다른 개인사들의 미시적 교집합에 의해 배태되는 복잡다단하고 가공되지 않는 날 것의 정서들이야말로 가장 실증적이고도 감성적인 역사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개별적인 체험과 정서들을 역사성으로 연결시켜주는 동인이 이상국에게 있어서는 추상적 기운이 아닐까. 표현에 있어서나 소통에 있어서의 언어너머 공감대가 되는 시각적 상징기제로 말이다. - 이상국 그림도 이런 개인사라는 단위요소의 전형과 같은 지점에서 보편성을 갖기 때문에 역사성의 개념적 근거가 가능할 거라고 본다. ● 아무튼 불규칙하게 반복된 몸짓과, 붓질과, 물질(物質)과, 감각과, 인식의 운행으로 흔적화된 이상국의 화면은 리드미컬하게 힘차면서도 유려하다. 산이든, 나무든, 집이든, 기타 사람이든 이상국이라는 작가의 조형적 프로세스를 거치면 살아있는 감정으로 변환된다. 오랜 시간의 흐름에 의해 스스로 영(靈)적인 능력을 가진 자연이기도, 또 인간들의 세계에서 긴 세월 부침을 거듭한 역사와 삶의 의지로서의 힘이기도 한 이런 형상의 발현은 화면을 숭고하고 장중한 묵직함으로 유도한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런 무게감과, 공간과 이웃에 대한 체험으로 인한 정서가 꿈틀거리면서 환기하는 졸(拙)하고 박(朴)한 투박한 미감이 이상국의 본원적 체질로 덧붙여지면서 또 다른 소탈한 편안함도 더해준다. 이런 졸박(拙朴)한 표현에서 역설적으로 세련된 회화적 밀도감이 팽팽하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이상국 회화의 형식적 결정성의 지점이다. ● 이 점은 선비들에 의한 문인화류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고아한 관념과 일견 유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표현의 결과는 전혀 다르게 화가의 온 몸에 붙어있는 예민한 신체성의 운용에 의한 것이다. 허허실실, 텁텁하고, 뭉툭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능숙한 손맛과 물성의 표현력이 예리하게 직조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의도하는 바를 표현하는 유화의 질료와 표현의 테크닉(巧)과 졸(拙)한 맛과 여운의 조화가 두드러진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의 화면이 단단하고 견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만큼 이상국은 자신의 '내면과 현실적 세계관'이란 내용과 회화라는 매체 개념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사유하고, 조형적 이미지와 물리적인 질료성을 향해 오감을 열어서 접근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물질을 통해 장인처럼 몸으로 집요하게 주조해서 마침내는 그만의 물리적 결과물을 만든 것이다. (『이상국의 회화 – 견고한 생성의 터』중에서) ■ 김진하

이상국_슈탄 베르크의 나무Ⅱ_나무판에 유채_91×61cm_1992

…중략… 이상국은 대상을 재현하는가 하면 그 대상의 본질을 추려나가고 가시적인 대상에서 비가시적인 힘과 기를 찾는다. 그는 형태의 닮음을 구하지 않고 생동한 기운을 구한다. 만물은 영기의 화신이므로 만물이 영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여하히 표현하느냐는 것은 화가의 몫이다. 그는 보면서 보이지 않는 영역을 시각화하는데 관심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찾는다. 그래서 구상화로 보이면서도 일반적인 사실적 그림과는 차원이 다르고 추상화로 다가오면서도 예의 형식적 관점이나 논리성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런 구분 자체가 모호하고 별 의미가 없다는 발언일 수도 있다. ● 우리는 분명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다. 시각작용은 온 몸의 총체적 반응이고 모든 감각기관의 현현과 맞물려 있다. 내 앞에 존재하는 산이나 나무는 그저 눈에 박힌 외형적 존재의 실루엣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나무의 수런대는 수액들의 즐거운 함성이나 나뭇가지의 세찬 흔들림, 바람에 뒤척이는 몸통,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매번 다르게 존재하는 나무를 거듭 만난다. 아울러 나무를 볼 때마다 느끼는 나의 심리도 다양하다. 그는 수시로 실제 물체를, 자연대상의 치밀한 관찰 속에서 조형을 취해나간다. 그리고 그것을 다복다복 선으로, 칼로 다듬는다. ● …중략… 외형적으로는 단단한 조형과 모더니즘적인 형식을 보여주지만 늘 상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거나 대상의 사의를 추구 하는 데서 벗어난 적은 없다. 그는 항상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느꼈던 것들을 충실히 조형적으로 옳게 올려놓는 일에 관심이 있는 작가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설정한 기준과 가치에 엄격하고 또한 철저하다. 그는 분명 작업이란 모름지기 엉덩이의 힘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충분한 작업량이 결국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작가란 존재는 모여서 떠들고 토론하고 스터디하고 비판만 해대고 모든 것을 말로 해낼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작업실에서 혼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독하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이 고집스러움이 70년대와 80, 90년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자신의 미술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하고 질긴 동인 이였다는 생각이다. (『신명과 애증의 시선』중에서)

이상국_홍은동에서_캔버스에 유채_73×90.5cm_1996
이상국_허허바다_캔버스에 유채_68×118cm_2000

유화만의 깊은 맛, 회화의 참맛, 손의 무던한 노고와 한 인간의 육체와 대상이 함께 녹아 문드러진 그런 경지가 두텁게 깔려 있다. 이렇게 중후한 회화는 만나기 쉽지 않다. 최근작에서 그는 자연을 보는 그만의 노련하면서도 부드럽고 관대한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변화라면 변화일지 모르겠다. 자연을 그리면서도 내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이란 늘상 자기를 선택해나가는 것이고 선택의 기준이란 내가 체험하고 소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일종의 도덕성을 담보케 해준다. (작가노트) ● 그는 산과 나무를 그리지만 기실 그 모습을 빌려 자신을 그리고 있다. 물론 모든 그림이 결국 작가의 인성에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이상국처럼 그리는 이도 드물다. 자기자신이 읽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그런 풍경만을 골라 수없이 붓질을 하면서 그 속으로 파고들어 풍경과 혼연히 어우러지는 그 진득한 경지. 그의 그림을 보면 동양화에서 거론되는 전신이니 기운생동이니 하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느낌이 강한, 제일 아름답게 느낀 인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이와 무관한 것들을 대담하게 생략해버리는 것이 그렇고, 대상의 조직구조, 뼈대만 건져올리는 방식이 그렇다. 전면적인 관찰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대담한 취사 선택으로 건져낸 그의 산은 아름답고 싱싱하고 밝다. ● 이상국은 산의 골격만이 아니라 그것의 기운까지 그려내고자 한다. 유화물감을 구사하는 서양화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상국은 산을 하나의 풍경으로서 그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영혼으로서 그린다. 개념에 의해 추출된 산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그의 산은 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 같지 않다. 굵고 거친 선은 형태를 단순화시키면서 기본 골격을 떠낸다. 이상국의 산은 남성적인 힘과 정서, 부성(父性)으로서의 위안과 사랑을 보여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정신적 풍경과 육체적 땟국까지도 보여주는 것이다. (『식물성의 사유』중에서) ■ 박영택

Vol.20150506a | 이상국展 / LEESANGGUK / 李相國 / pr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