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빙: 관찰의 예술 WANG Bing: Art of Observation

왕빙展 / Wang Bing / 王兵 / film.video.photography   2015_0501 ▶ 2015_0509

왕빙_이름 없는 남자 无名者 Man with No Name #9_61.5×120cm_2013

마스터클래스 / 2015_0503_일요일_02:00pm

「아버지와 아들」상영 후 4층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게스트 / 왕빙(감독)_정성일(평론가) 참가비용 / 12,000원 * 영화 관람 포함 / ACADEMY ID 이용 시 50% 할인 제공

주최,주관 / 전주국제영화제 www.jiff.or.kr

관람시간 / 11:00am~08:00pm

전주영화제작소(지프떼끄) JEONJU CINEMA COMPLEX(JIFF THEQUE)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3길 22 (고사동 429-5번지) 1층 기획전시실 Tel. +82.63.288.5433 theque.jiff.or.kr

왕빙의 작품은 관습적인 제작 방식으로 만든 영화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홀로 일하는 시각예술가의 작업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때문에 그의 어떤 작품들은 극장이 아니라 갤러리에서 상영하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특히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세 편의 작품은 영상과 일련의 사진들이 짝을 이루어 하나의 '영화'를 구성하는 독특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 왕빙의 카메라는 대상과 아주 근접하여 촬영된다. 중국이라는 현실을 피해가지 않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으로 읽히고 있지만, 그가 보고자 하는 인물들은 매우 개인적이고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다. 왕빙은 수동적으로 보일만큼 그가 선택한 대상과 인물들의 삶에 의도적으로 개입하거나 드라마를 만들지 않으며, 단지 그들의 일상에 강하게 밀착하여 관찰자의 시선으로 머문다. 인물들은 카메라의 존재를 별로 개의치 않으며, 때때로 카메라를 쳐다보기도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왕빙에게서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피사체를 향하는 특유의 어떠한 공격성을 찾기 힘들다. 수집가가 아닌 관찰자로서 왕빙은 그가 찍는 이들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삶의 증거를 남기고자 하는 기록자의 태도를 갖고자 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어떠한 의도된 의미와 주장을 말하기 보다는 촬영자가 그들 삶의 곁에서 경험한 그대로를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이미지와 현실세계를 대하는 작가의 윤리를 드러낸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보는 행위에서 우리가 어떠한 예의를 가져야 하는지를 적극적인 수동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왕빙은 피사체로부터 왕빙이라는 하나의 예술적 자아를 찾기보다는, 그들 주변부적인 인생의 순간을 기록함으로서 그들 자신에게 어떠한 불멸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왕빙이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는 것과 동시에 그가 카메라에서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왕빙이 프레임 밖으로 잘라내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이미지 안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두는 현실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사진으로 확대하지 않은 현실과 결코 카메라로 포착되지 않는 어떠한 유동적인 삶의 흐름. 그러한 보이지 않는 틈새를 찾는 것이 왕빙의 작품을 보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소개되는 세 작품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방식은 동일하나 그 매칭의 시간차와 우연의 요소들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러한 점을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왕빙_흔적들 遗址 Traces #10_50×50cm_2014

「흔적들」의 1인칭 카메라 시점은 관객들이 카메라를 든 사람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동일시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그가 프레임 안으로 끌고 오는 것은 관객에게 지금 이 순간, 이 장면들을 보고 함께 증인이 되자고 하는 요청이다.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강제로 노동수용소에 끌려와 비참한 죽음을 맞았던 이들의 흔적, 이들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그의 바램이기도 하다. 왕빙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그의 영화가 스크린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의 물리적인 시작과 끝은 있지만, 그것은 스크린 밖의 시간, 사진들과 교류한다. 극장과 달리 갤러리 안에서는 영상이 무한 루핑되며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반드시 전시장에서 경험되어야만 온전히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를 끝까지 다 보았다고 할 수도 없다. 몇 년이 지난 후 왕빙이 그 지점에서 다시 영화를 진행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

왕빙_아버지와 아들 父与子 Father and Sons #8_80×120cm_2014

「아버지와 아들」에서 왕빙이 영상에 담고 있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무기력한 일상이다. 그냥 흘러가버릴 수도 있는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을 붙잡아 그 표면 안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하염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바라보는 행위'에 사로잡혀있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현대사회는 경험한다는 것이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축소되고 있다. 아들들은 TV와 핸드폰이라는 창을 통해 보고 듣고 소통하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그들의 몸은 지리한 일상에서 시간을 견디고 있다. 왕빙은 관객들이 이들의 시간에 동참하여 그 시간을 함께 경험하도록 한다. 그의 작품이 가진 독특한 점 중 하나는 흔히 말하는 '결정적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물들은 포즈를 취하지 않으며 특별한 목적이 없어 보인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어떠한 스펙터클한 사건이 아니라 인물들의 존재감에 눈뜨게 된다. 관객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 어떤 일이 곧 일어날 것인지 무수한 예측으로 기대감을 갖기보다, 그저 그의 삶을 방문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관찰자의 태도가 오히려 관객들을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세계를 재구성하지 않고 그저 기록하는 듯한 태도는 이미지 자체를 불안하고 위태롭게 한다. 이미지로 환영을 만들어내지 않고 그저 관찰의 기록으로 내려놓음으로서 영상의 집중성을 낮추고 영상 자체를 오히려 사진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만약 그렇다면, 왕빙에게 영상-이미지는 사진-이미지가 그 자체로 고정되지 않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장치가 아닐까? 대상이 순간에서 떨어져 나와 이미지로 고정되면서 추상적이고 낭만적이 되어버리는 사진 매체에 내포한 시간성의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영상이 사진 옆에서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왕빙의 영상은 관습적인 영화언어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가상의 현실을 만들지 않고, 현실 그 자체를 관찰하는 데에 머물며 적극적인 개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오히려 이미지가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미지 세계와 현실 세계의 층위 자체가 무의미해져버리게 만드는 고집스러운 프레임들은 그가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이미지로 추출된 무엇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현실임을 조용히 선언한다.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어디에서 끝날지 그 시작과 끝이 모호한 작품들은 그가 관계 맺고 있는 세계가 한 작품 안에서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있는 구조 속에서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작품에서 알게 된 한 인물이 다른 작품에 다시 등장하고,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방문한 곳이 다른 작품의 로케이션이 되기도 한다. 또한 영상이 찍힌 다음, 몇 년 후 관련된 사진을 찍어 비로소 그 작품이 완성되기도 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그의 영화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현실과 이미지를 구별짓지 않는 방식은 그가 작품을 만들며 찾고자 하는 것이 완결된 주제의식으로 뭉친 개별작품이 아니라 왕빙이라는 하나의 시선이 마주하는 세계임을 보여준다. 작가 스스로가 마치 카메라로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영화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 영화를 극장이라는 집중된 관람공간이 아닌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펼쳐진 갤러리 공간에서 만날 때, 관객들은 오직 시선으로서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에 펼쳐진 하나의 경험으로서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극장에서는 정확한 상영시간이 정해져있어서 그 안에서 일제히 공통의 시각적 경험을 하는 반면에, 갤러리에서는 개별자로 각각의 작품과 만나게 된다. 작품을 보기 위해 머무는 시간도, 작품의 시작지점과 끝도 모두 관객이라는 개인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뭉치고 펼쳐져 있는 왕빙의 이미지들 속에서 자신만의 관찰의 시점을 갖도록 초대되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현실에서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왕빙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 전하영

Vol.20150502g | 왕빙展 / Wang Bing / 王兵 / film.video.photography

2025/01/01-03/30